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01)
마성에 미쳐 결국 주화입마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 부릴 생각하지 말고 날 돕기나 해!” “알겠습니다!” 사도천 무리가 별말 하지 않고 욕심을 버렸다. 산화일장이 등장한 순간 상황은 이미 종결됐다. 혈근경을 손에 넣고 도망쳐도 금세 따라잡힐 게 뻔했다. “산화일장! 무인으로서 마공을 봉인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이용하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무림맹 측에서 청년이 한 걸음 나서서 외쳤다. 산화일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애송이. 넌 누구냐?” “소태산, 고찬정이다!” “태산파의 소문주? 잘도 여기까지 왔군.” 산화일장이 심드렁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자세히 보니 고찬정 외에 다른 후기지수들도 보였고, 그들을 보호하듯 오악검파의 제자들이 보였다. “일지검에 검화. 남궁재영은 어디있고 웬 애송이들만 여기에 있는 게냐?” 산화일장이 누구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남궁재영은 상명진인이나 염화살마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경계할 수준의 적수는 된다. 괜히 혈근경에 정신이 팔려 뒤통수를 맞는 건 사양이다. “선배님께서는 전장을 정복하고 계신다. 그분의 검에 마도와 사도의 무리가 곧 전멸할 것이니, 산화일장 네놈도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소, 소문주!” 고찬정이 답하자 태산파의 제자들이 기겁했다. “허, 묻는다고 전장 상황을 곧이곧대로 답해?” 산화일장이 그걸 보고 좋아하면서도 어이없어했다. “정파의 후기지수 놈들은 머릿속이 텅 비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정말이구나. 네가 말한 게 얼마나 생각 없고 어리석은 대답인지 알고 는 있느냐?” “흥! 선배님께서 오시지 않는다 할 지라도, 사파의 우두머리 따위 결국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항복을 제안한 건 최소한의 자비를 보여 준 것뿐이지.” “그렇다! 내 일지검에 과연 몇 수 버틸 수 있을까?” 곽채도 앞으로 나서면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다만 그 주변의 정파인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숭산파의 제자들 또한 ‘저질렀다!’라는 얼굴이었다. 산화일장은 그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없어했다. “내 살다 살다 너희처럼 오만방자하고 우둔한 놈들은 처음이구나. 그래도 이걸로 함정이 없다는 건 알았다. 그 건방진 혀를 더 이상 놀릴 수 없도록 단숨에 끝내 주마.” 第三章서문세가(西門世家) 남궁재영은 검성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만큼, 천하백대고수는 아니나 그에 견줄 정도로의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 그 무위는 남궁세가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남궁세가의 힘을 보여 줘라!” 남궁재영이 외침과 동시에 앞을 막아선 무인을 베었다. 가슴부터 골반까지 깊게 베이며 핏물이 터졌다. “와아아아!” 남궁재영이 앞을 이끌자 남궁세가의 사기는 떨어질 일이 없었다. 누구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남궁재영과 마주한 무인들은 상태가 영 좋지 못했고, 대부분 공포에 짓눌려 목숨을 잃었다. 남궁세가는 질풍처럼 날쌔게 움직여 불이 번지듯이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 원래라면 이 상승세를 타고 적들을 무찔러 고원에 도착해야만 했으나,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남궁패검(南宮覇劍)! 여전하구나!” “누구냐!” 남궁재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물으면서도 방금 전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새 안 봤다고 내 목소리를 잊어 먹었나?” “서문이진(西門펴 晉)!” 남궁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뇌승도(雷承刀)!” 후방에 있던 초련이 곧장 별호를 불렀다. “뇌승도? 그 서문세가?” 주서천도 알아들었다. 절강(浙江)의 서문세가. 사도칠문의 명가로 도법이 빠르고 패도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서문이진은 남궁재영과 같이 천하백대고수와 엇비슷한 무공을 지닌 초절정의 고수였다. “아!” 주서천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방금 전에 떠올랐다. ‘남궁재영과 서문이진!’ 남궁세가는 안휘에 있고, 서문세가는 절강에 있다. 둘 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할 정도로 가까워서 그런지 예로부터 만날 일이 많았다. 다만 정사의 명가였던 탓에 동료가 아닌 적으로서, 대부분은 말싸움을 하거나 병기를 부딪쳤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고, 후기지수였던 시절에 특히 충돌이 잦아 악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결국은 정사대전에서 겨루다가 공멸하지만.’ 남궁재영과 서문이진이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정사대전에서 주야장천 싸우다가 이슬이 되는 것뿐이니 자세히 기억할 리 없었다. 그래도 남궁재영이 검성의 아들이고 현 가주의 동생인지라 기억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 “왜 여기에 서문세가가?” “참전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수군거렸다. 앙숙인 만큼 항상 의식하고 있고, 어디에 참전한다하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칠대 세력 중 사도천 측 인원 목록에서 서문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파가 그걸 얌전히 따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 어디 보자…… 대충 봐도 백은 되려나?” 주서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파도 칠검전쟁 규칙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사파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파는 더 나아가 백 명 정도 되는 인원을 비밀로 하고 잠입시켰다. “이 비겁한 놈들!” “그러고도 무인이라 할 수 있느냐!”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씩씩거리면서 화를 냈다. “더러운 서문세가 놈들!” 온갖 비난이 쏟아졌으나 서문세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콧방귀를 끼면서 그들을 비웃었다. “누가 정파 아니랄까 봐 정말이지 꽉 막혔구나.” “네놈들은 전쟁에서도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싸울 생각이 냐?” “하긴, 바닥을 구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놈들!” ‘그건 그래.’ 주서천도 서문세가의 비난에 수긍했다. 평화가 지속되었던 현 정파 무림은 목숨보다 자존심을 더 중요시 여겼다. 자신 역시 한때 그랬다. 그러나 수많은 전란을 겪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점점 정파의 고집을 버렸다. 물론 그 관념에도 어느 정도 선이 있어 가끔씩 막가는 사도천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독봉도 있으니 운이 좋군.” 서문이진이 당혜를 보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모라 일찍이 발견했다. “오늘에야말로 네놈을 쳐 죽인 다음, 내 상으로 독봉을 취하겠다!” 서문이진이 몸을 날렸다. 그 뒤로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뒤를 따랐다. “아가씨를 지켜라!” 원대식이 당혜를 뒤로한 채 외쳤다. “자비 따윈 없다!” 남궁세가와 서문세가가 충돌했다. “흐합!” 서문이진이 뛰어올랐다가 도를 힘껏 휘둘렀다. 서문세가의 쾌도(快刀)답게 그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칼이 대기를 ‘부욱’ 가르면서 남궁재영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남궁재영은 얼른 검을 세워 도를 막았다. 째앵!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았다. 검과 도가 서로 버티면서 몸을 파르르 떨어 댔다. 파직! 파지직! 도신에서 보이지 않는 전류가 흘러, 검을 통해 이동하려 했으나 남궁재영이 내공으로 막아 냈다. 서문세가의 대표 도법, 뇌전도법(雷電刀法)이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내 칼을 갈고 닦아 뇌전도법을 대성하고 십팔승천도(十八承天刀)까지 익혔다!” “뭘 익혔건 간에, 서문세가의 잔재주 따위는 남궁세가의 검에는 당하지 못할 것이다!” 남궁재영이 도를 쳐 내면서 낮게 으르릉거렸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이지!” 서문이진이 도를 재빠르게 여러 번 휘둘렀다. 빠르기뿐만 아니라 도세 또한 강맹했다. 이에 남궁재영은 가전 무공인 창궁무애검법(蒼窟無珪劍法)으로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막아 냈다. “흥!” 서문이진이 혀를 차면서 다음 공격을 잇는다. 도를 휘두를 때마다 벽력 소리가 들렸다. 초절정의 고수들답게 공방을 교환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 초를 교환했다. ‘괜히 창궁무애검법이 아니로군!’ 상천십좌인 검성의 검법이다. 결코 수준 낮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남궁패검의 실력 자체도 뛰어났다. 괜히 적수로서 칼을 닦았던 게 아니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 지금 싸움에 집중했다. 한편, 남궁재영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놈, 정말로 수련을 허투루 한 게 아니었구나.’ 일격 하나하나에 강맹한 힘이 들어가 있다. 받아칠 때마다 팔 근육이 찌르르 울렸다. ‘큰일이다.’ 아마도 동수,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정말로 큰 문제는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산화일장이 혈근경을 차지할 것이다.’ 상명진인이 염화살마를 맡겠다고 떠났다. 사도천의 대표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정파에서 자신뿐이다. 일단 후기지수들을 위로 보내긴 했으나, 그들이 산화일장을 이길 가능성은 적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서문이진으로 향한 신경을 조금 떼어 내서 주변을 둘러봤다. 무사들이 서로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혈근경이 위치한 곳을 향한 길을 뚫기는 어려워 보였다. 다들 기세가 엇비슷했다. 설사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 시간이라면 산화일장이 혈근경을 차지하고 도망치기까지 충분했다. “날 앞에 두고 딴 곳을 봐도 괜찮겠나!” 서문이진의 도가 하단에서부터 파고든다. 뒤로 급히 물러났으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큭!’ 불행 중 다행으로 상처는 옅었다. 싸우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 혈선(血線)이 그어진 것으로 끝났다. 남궁재영은 복잡한 심경을 어찌할 줄 모르고, 다시 정신을 서문이진에게로 집중했다. ‘이렇게 된 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황을 빠르게 정리한……’ 펑! 파바밧! 생각을 잇기 전, 무언가 소리가 덮친다. 뇌전도법의 천둥소리도 아니고, 익숙해져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아니었다. 수십여 마리의 새들이 동시에 날갯짓하는 소리가 나면서 서문이진 어깨 너머로 화살 비가 쏟아졌다. 푸부북! “아악!” “끄아아악!” 창궁을 까맣게 물들인 건 백여 발이 넘는 화살 비! 남궁재영은 촘촘한 거리를 유지한 채 폭포처럼 쏟아진 화살 비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전장은 언제나 예측 불허라 하지만, 방금 전 벌어진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대체 뭔……” 남궁재영과 서문이진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했다. “뭐긴 뭐야! 다발화전(多發火簡)이지!” 화살에 화약을 넣은 통을 묶고 불을 붙일 경우, 그 열의 힘으로 목표물까지 날리는 걸 화전이라 한다. 그리고 이 다발화전은 다발이라는 이름에 맞게, 불을 붙이면 단숨에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속이 빈 육각형 상자를 만든 다음, 화전을 담을 수 있는 관을 설치. 그리고 화문(火門)까지 도화선을 넣어 불을 붙이면 단숨에 쏠 수 있었다. 사거리는 약 일 리에서 이 리 정도 되며, 그물처럼 촘촘히 배치된 화살을 넓은 범위로 공격이 가능했다. “기관의 천재, 제갈승계의 특제요!” 초련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뒤로는 금의검문 무사들이 옆구리에 다발화전 통을 끼고 있었다. “그건 또 뭐야?” 주서천이 초련에게 물었다. “그 도련님이 사용할 때 꼭 외치라 했소.” 초련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제갈승계는 기관으로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상당하다. 어차피 틀린 말도 아니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엄청난 천재다.’ 다발화전은 전생에서도 없었던 무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만각이천은 원래 온갖 푸대접을 받아 기관을 만들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등장하면서 기관의 중요성이 뒤늦게 알려져 지원이 들어왔지만, 그것에도 제한이 있었다. 제갈세가에서는 암기 등을 치욕적으로 여겨 무기를 금했고, 오직 기관 및 함정의 해제에만 집중시켰다. 사천당가의 독문 무기로 알려진 죽통노가 그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