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1)
뒤따라 바깥에나갔다. 두 사람은 거처 근처의 개인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유정목은 미리 준비해 둔 목검 한 자루를 가리켰다. “자, 저걸 써라. 오늘부터 검법을 가르쳐 주마.” ‘아아, 벌써 그럴 때가 됐나.’ 자고로 예로부터 화산은 검! 화산파 무공의 진정한 시작은 목검을 쥐었을 때다. 그 중요성은 위와 같은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화산파에 막 입문한 제자들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그리 생각했다. 검을 쥐기 전까진 어디까지나 기초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만드는 정도에 한해서 끝나는 수준이었다. 주서천도 과거에는 검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제자리에서 팔짝 뛸 정도로 좋아했다. “자 앞으로 네가 익힐 검법의 시범을 보여 주마. 이게 매화검(梅花劍)이다.” 유정목이 화산의 기본 검공, 매화검을 펼쳤다. 제자가 눈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도록 일부러 속력을 줄여 초식을 전개했다. ‘음’ 주서천은 연무장 바닥에 앉아 그걸 지켜봤다. ‘다 알고 있는 거군.’ 회귀 전에 화산오장로였고, 말년에는 화경에도 올랐다. 검법에 대해서는 주서천이 유정목보다 위였다. 매화검이 워낙 쉬워 굳이 연습할 필요도 없다. 매화권처럼 몸에 익히면 그만이었다. 아니, 매화권 만큼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매화검과 매화권은 그 기초와 구조가 거의 동일해서, 그 묘리만 몸에 익혀 둔다면 쉽게 펼칠 수 있었다. 괜히 매화권부터 배우는 게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사부님. 제가 사부님보다 매화검을 더 잘 압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겉으론 최대한 흥미 있는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음, 아마 절정 정도의 고수셨나……’ 삼류, 이류, 일류를 넘어가면 절정에 오른다. 그 정도의 경지가 되어야 강호에서 고수라 논할 수 있다.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 사부님은 초절정을 앞두고 돌아가셨었는데……’ 전생을 떠올리는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아비와도 같았던 스승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침상에 누운 채로 힘들어하시다가 눈을 감았던 유정목. 그 마지막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여하튼, 유정목은 절정 중에서도 최상승에 위치해 있었다. 초절정이 앞이었으나 결국 벽은 못 넘었다. ‘ …… 어라’ 눈으로 매화를 쫓는 도중, 불현듯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 부족한 건 내공 같은 것이 아닌, 깨달음.그렇다면 그걸 내 가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무인, 특히나 벽을 앞에 두고 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군가의 조언에 항상 목말라 있다. 하수들도 그렇지만 고수 역시 자기들보다 몇 수 위인 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이미 그 벽을 넘고 경지를 이룩한 자들에게서 벽을 넘을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일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일어나며, 이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수를 찾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 이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깨달음이 부족하여 벽을 앞에 두고 다음 경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도와주면 되는 거야.’ 유정목이 절정의 경지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초절정의 경지였고, 화경으로 넘어가는 벽이라면 설사 주서천이라 할 지라도 별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벽의 높이도 높이지만, 일단 화경의 고수들마다 각자 경지에 오르는 깨달음이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가르칠 필요도 없지. 사부님께서 무엇을 궁금해하시는지 확인하고, 그 실마리만 전해 준다면……’ 자고로 무공이 건 공부건 간에 답만 알려 주는 건 의미 없다. 답을 알려줘봤자 이해할 수 없으니, 시원하게 풀리긴커녕 자칫 잘못하면 껍껍함만 늘어 벽이 두꺼워질 수가 있었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왠지 모르게 스승과 제자의 역할이 좀 바뀐 것 같았으나, 그런 사소한 것 따위 상관없었다. 모든 걸 잃고 세상 속에 고아로 던져진 자신. 그런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사람이 스승이다. 주서천에게 있어 스승은 곧 하늘이자 세계. 무림맹주나 황제조차 비교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회귀 이후에도 그 존경심과 은혜에 대한 감사함은 여전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설사 악귀나찰이 되어도 상관없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부님은 결코 절정 정도의 경지에서 머무를 사람이 아니다.’ 11 화 일주일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주서천은 요 일주일 동안 유정목에게 매화검을 전수받는 한편, 어떻게 깨달음을 전해 줘야 할지 고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매화검처럼 기초적인 것은 이미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상태인지라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나 주서천이 자신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진 탓에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유정목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 ‘이럴 수가!’ 유정목은 주서천이 휘두르는 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 일 년 전부터 무언가 범상치 않더니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매화검은 기초다 보니 쉽다. 매화권까지 대성했다면 그 난이도는 대폭 하락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 만에 매화검을 저렇게 여유롭게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 이론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하여도 저 정도로 하는 건 분명 이상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 ‘내 제자가 천재였구나!’ 주서천은 결코 천재가 아니다. 근골이나 반사 신경 등의 타고난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혈맥이나 기맥이 천성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를 제자로 둔 유정목이 더더욱 잘 알았다. 하지만 재능이란 건 신체 능력과 두뇌 능력만 있는 게 아니다. 오롯이 검에 대한 재능일 수도 있었다. 유정목은 주서천이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착각했다고 하는 게 옳았다. 주서천은 어디까지나 원래 이루었던 경지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했다. 또한 매화검이 워낙 기초라서 그렇기도 하다. 하나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유정목의 입장에선 주서천이 검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주서천이 유정목의 증진 체조, 그 지옥 수련을 겪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었을 거다. 스승에 대한 조언을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실력을 숨기고 펼쳤다. 그러나 지옥 수련으로 인해 육체 능력이 워낙 좋아진 덕에 무의식적으로 매화검의 모든 걸 펼쳐 버렸다. ‘이 정도면 능히 연화각(蓮花閣)에……’ 연화각. 화산파 내의 구조물 중 하나인 동시에, 오직 선택받은 ‘사대제자’들만 소속될 수 있는 기관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매화검수의 축소. 성년이 되기 전, 사대제자들 중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인재들이 따로 수련을 받기 위한 곳이다. 또한 장문인이나 화산오장로의 제자들처럼 특출한 이들 역시 연화각에 들어가서 수련을 받았다. 스승이 스승이다 보니 대부분 첫 시작이 일반 제자들에 비해 앞서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역대 매화검수의 구 할 이상. 거의 대부분이 이 연화각 출신이었다. 유정목 자신은 아쉽게도 연화각에 들어가지 못했다. 병약했던 체질 탓이었다. 어쨌거나, 주서천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연화각에 들어가 좀 더 수준 높은 수련을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영약이 내려질 수도 있고, 전담 교두 또한 옆에 붙어서 직접 가르침을 줄 수도 있었다. 힘과 재능만 증명할 수 있다면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불공평해 보일지 몰라도 화산파처럼 대문파 아니, 무림의 방파라면 흔한 일이었다. 며칠 뒤 주서천은 유정목에게 부탁했다. “사부님 송구하오나 매화검 외의 검을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매화검 외의 검 ?” “예 ” 주서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제자의 부탁에 유정목은 고민에 빠졌다. 아직 매화검을 연공한 지 이 주일도 채 되지 않은 제자. 아니, 검을 쥔 지 이 주일도 되지 않은 제자였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한들, 매화검도 전부 대성하지 않았는데 상승의 검법을 가르쳐 주면 방해만 된다. 유정목이 걱정하는 건 그것이었다. 주서천이 이를 눈치채고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물론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희 화산의 또 다른 검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렇습니다. 화산파의 제자로서 제대로 된 화산의 검을 한 번쯤은 보고 싶습니다.” “음, 좋아. 알겠다.”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련동 근처에만 가도 사대제자 중, 일찍이 입문한 앞 기수 사형제들이 매화검 외의 검법을 수련한다. 만약 보는 것만으로 문제가 됐다면 일찍이 수련동에서 제재를 가했을 것이다. 유정목은 자세를 잡기 전, 은근히 기대에 찬 눈을 한 제자의 시선을 느끼곤 고민에 잠겼다. ‘어디 보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검법은 다섯. 육합검(六合劍), 낙영검법(落英劍法), 매화영롱검(梅花玲職劍),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 십사수매화검법 (十四手梅花劍法) 이었다. 육합검과 낙영검법은 기초 검공 수준에서 약간 위에 있는 검법이다. 대부분의 속가제자들이 이 정도만 익히고 하산한다. 매화영롱검은 화산의 얼마 없는 쾌검(快劍)이고, 오행매화검은 이름그대로 오행을 담아 펼치는 검이다. 둘 다 그럭저럭 상승 자락에 걸쳐 있으며, 속가제자 중에서도 인정받은 자들만이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속가제자의 한계선이기도 하다. 이 둘을 제외한 상승 무공은 본산제자가 아닌 한 배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십사수매화검법은 이름에도 알 수 있다시피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축소판이다. 화산의 상승 무공 중 끝자락에 있으며, 그만큼 난이도도 상당했다. 유정목 자신도 대성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십사수매화검법을 보여주도록 하마.” 유정목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비록 아직 대성하지 못했지만, 이왕 보여 주는 것이라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것 중 제일인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보여 주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마. 너는 십사수매화검법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예, 사부님. 십사수매화검법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일초식인 매화노방(梅花路傍)부터 십사초식인 매화난만(梅花爆漫)으로 구성된 화산의 검입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이름 그대로 이십사초식으로 되어 있다. 최후 초식인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까지 펼칠 수 있게 된다면 검에서 매화 향이 난다. 과거, 누군가는 매화 향이 나는 것이 뭐가 대단하냐고 비웃었지만, 이는 실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검을 펼쳤는데 냄새가 난다는 건 곧 자연의 순리(順理)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검수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경지. 괜히 화산파 제자들이 매화검수를 우상으로 두는 게 아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다만, 혹시라도 착각할지도 모르니 부가적인 설명을 해 주마. 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과 같아 보여도, 실은 조금 다르다. 만약 똑같았다면 그건 십사수매화검법이 아닌 이십사수매화검법이지 않겠느냐?” “축소판, 곧 하위 호환을 말씀하시는군요.” 주서천은 이미 다 알고 있었으나 유정목의 긴 설명예 맞장구를 쳤다. 십사수매화검법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축소판. 초식 열네 개를 하나의 검법으로 정리하여 난이도가 줄은 대신, 그만큼 그 위력 또한 상당 부분 줄었다. “잘 알고 있구나 좋다. 그 정도면 됐다.” 유정목은 제자의 답변에 흡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