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13)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체나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멀쩡했다. 그야말로 유령 그 자체로 기척까지 지워지고 있다. 유령선공은 정파의 무공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화경의 깨달음으로 어찌어찌 끌어낼 수는 있었다. 중도만공 덕분에 반 정도밖에 못 배우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괜히 신공이 아니었다. “여기야.” 목소리를 내고 손을 흔들어 줘야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걸 대성한다면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떨지 궁금하군.’ 유령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들을 반드시 회유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삼 일 후. “좋아, 그럼 슬슬 가 볼까.”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이 앞에 뭐가 도사릴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괜찮겠어요?” 낙소월이 걱정되는지 묻는다. “괜찮으니까 기다려 줘.” 삼 일 동안 유령선공에만 집중했다. 적어도 유령처럼 걷는 중에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는 됐다. “함께 가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나 하나 챙기는 것도 힘드니까. 먼저 다녀올 테니까 기다려 줘.” 인사를 끝낸 다음 안개 속을 향해 걸었다. 무작정 걷는 게 아니라 유령심법을 운용했다. 호흡과 맥박이 느려지다 싶더니 곧 멈춘다. 발걸음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으니 살아 있는 것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내공을 머릿속에 있는 구결대로 운용하면서 걷는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했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른다. 앞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답답했지만 인내했다. ‘혹시 이미 도착한 것이 아닐까?’ 체감상으로 반 시진 정도 지났을까, 인내심이 떨어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럼 잠깐 쉴 겸……’ 발걸음을 처음으로 멈춰 봤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을까?’ 일반적인 발걸음으로 안개에 진입하지 않았다. 유령이 아니면 진입하지 못한다 해서 유령보를 펼쳤다. ‘천천히……’ 오른발을 내디딜 차례였으나, 왼발을 내디딘다. ‘허.’ 지면을 밟기도 전에 이변이 벌어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안개가 걷히면서 화상을 넘어 온몸이 불살라질 정도로의 열기가 뿜어져 나와 이글거렸다. 지금까지 걷고 있던 길이 과연 맞나 싶었다. 고작 한 발자국을 다르게 내디디려고 했을 뿐인데 땅이 꺼지면서 용암이 나오고 붉은 하늘이 펼쳐졌다. ‘과연, 이래서 유령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건가!’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거세게 뛰려던 맥박도 사전에 막았다. ‘어떤 진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정된 발걸음을 밟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추측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신에 가까웠다. 실제로 원래 밟고 있던 곳에 다시 발을 딛자 기현상이 사라지고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눈앞이 보이지 않던 안개 속이 설마 이렇게 안심될 줄은 몰랐다. ‘제대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괜히 확인하려다가 길을 잃는 걸 넘어 황천길로 갈지도 몰라. 조심하자.’ 고강한 무공과 끊이지 않는 내공을 지녔지만 기문진법 안에선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길을 잃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제일 두려웠다.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 보자.’ 요 삼 일 동안 꾸준히 수련한 보람이 있었다.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전진한다. 체감상으로 한나절이 지났을까, 자욱했던 안개가 드디어 걷힌다. “여기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변을 가득 메운 절벽이었다. 고개를 직각으로 올려야 겨우 그 끝이 보이는 절벽은 세상천지를 뒤덮어 햇빛을 먹어 치웠다. 약간의 틈이 보이긴 했지만 그 넓이가 좁다 보니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 헷갈렸다. 이승이 아닌 저승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내리니 어떠한 무늬도 없는 문이 보였다. 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이던 주서천을 문을 밀어보았다.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한 움직임이었다. 문이 열렸으나 어떠한 함정도 발동하지 않은 걸 확인한 주서천은 마음 먹은 듯 문을 닫고 물러났다. ‘좋아, 이 앞인가. 그러면 낙 사매를 데려오자.’ * * * 이 주변은 유령곡 일대다. 낙소월을 근처에 내버려 두었다간 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함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가 사매를 안고 다시 문으로 향했다. 유령보를 모르는 낙소월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었고, 다행히 무게의 증가로 진법이 변한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정해진 발걸음만 밟는다면 사문(死門)에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여기가 유령곡인가요.” “뺨이 조금 붉지 않아?” “……기, 기분 탓이에요.” 낙소월이 헛기침으로 얼버무렸다. “그래? 그럼 들어가자.” 문을 열고 유령곡일지도 모르는 곳으로 들어섰다. 주서천도 이 앞에 무엇이 펼쳐져 있는지는 모른다. ‘대규모로 유령곡을 습격해 승리했다는 건 알지만, 그 과정은 그렇게까지 세세하지 않으니까.’ 유령곡에 대한 무공 등의 특징이나 장소 등은 있었지만 어떻게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였는지는 잘 모른다. “야명주가 아니었더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통로였다. 야명주가 없었다면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았을 터. 주변을 슥 둘러보니 인공적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 입구에 문이 있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매.” “네, 사형.” “유령들을 만나게 된다면 일단 공격하지 말고 침착하도록 해. 혹시라도 그들이 공격한다고 해도 웬만하면 방어나 제압하는 것으로 끝내줘. 일단 우린 그들과 적이 아니니까.”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만약 그들이 공격을 한다면, 그들을 찾으려 하지마. 호흡도 느껴지지 않을 거고 발걸음이나 기척도 희미할 테니까.” “강호에 전해지는 대로네요. 그 대신 날아오는 공격을 받아치거나 막는 편이 나을까요?” 덧붙여 오감을 극대화해야겠다고 말하자 과연 낙소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고를 받자마자 대안, 그것도 단숨에 정답을 꼽았다. 유령들은 기척이나 발걸음, 호흡을 숨길 수 있다. 하나 아무리 그래도 무언가를 휘두르거나 날리는 소리 등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싶지만, 자객이란 자들이 본래 암습에 성공하지 못하면 패배하는 이들이니 그건 무리겠지. 백이면 백 우리를 발견하면 선제공격해 올 터. 조심하자.’ 이 앞은 유령의 소굴이지 않은가.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주서천과 낙소월은 경각심을 유지한 채 앞으로 곧장 나아갔다. 그리고 반 시진이 덜 된 시간이 흐르자 지긋지긋한 통로가 끝나면서 공동이 나타났다. “여긴……” 낙소월이 주변을 슥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거대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공동이었다. 천장까지의 거리만 해도 몇십 장을 가뿐히 넘었고, 넓이 역시 입이 벌어질 정도로 광활했다. 다만 곳곳에 암벽이 숲처럼 위치해있어서 전체를 구경할 수 없었고, 그 외에는 이끼 정도밖에 없었다. 신기한 것은 이끼에서부터 광채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와 공동을 밝히고 있는 것이었다.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저 이끼들이 없다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사형.” 낙소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오 장 정도 거리려나.”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다만 그 비명이라는 것이 사람이라기보단 동물에 가까웠다. “소리는 되도록 내지 말고, 기척도 지우도록 해. 유령들을 얼마나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평소라면 누군가 위험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하고 협의를 펼치러 가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다. 주변을 주의하고 또 주의하면서 경각심을 높였다. 주서천은 낙소월을 데리고 기척이란 기척은 최대로 죽이고 되도록 유령과 비슷하게 행동하며 움직였다. 오 장을 넘어 약 육 장 정도를 움직였을까. 암벽에 몸을 가리고 머리만 빼꼼 내밀어 옆을 살폈다. 채앵!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적색을 띠는 빛이 튀면서 주변을 조금씩 밝힌다. 눈앞에 대치하고 있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반은 이성을 잃은 듯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무기를 휘둘렀다. 공통점이 있다면 복장이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검은 건 그렇다 쳐도 노출도가 상당했다. 남녀 할 것 없이 전부 옷이라기보다는 천을 몸에 두른 것 같았고, 전부 몸에 꽉 들러붙었다. 또한, 특이한 것은 한 명도 빠짐없이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령들!’ 전란의 시대에서 유령곡과의 전면전 이후 그들에 대한 정보가 풀렸다. 그중에서도 외관이 제일 잘 알려져 있었는데, 저걸 보면 안 유명할 수가 없다. ‘왜 유령들끼리 싸우고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저 중에 반은 유령이 맞는지도 의심이 되는군.’ 반은 유령 같은데,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외관만 비슷할 뿐 전부 소리를 지르면서 처절히 싸운다. 유령이 아니라 상처 입은 짐승에 가까웠다. ‘도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적인 고민 그러나 곧 결심한 표정을 짓는다. ‘어차피 유령곡과 손을 잡아야 하니 도와야 한다. 어떻게 봐도 저 정신 나간 것들은 적으로 보이니……” 괴성을 지르는 쪽이 좀 더 인간답다면 인간다웠다. 유령들은 당황하기는커녕 옆에 동료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대응해 가니까. 무엇보다 여전히 기척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왠지 모르게 섬뜩하기도 했다. 하나 그러한 자들을 아군으로 맞이해야 하니 누굴 도와야 할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돕는다!” 주서천이 몸을 날리자, 낙소월이 그 뒤를 따랐다. 이십여 명이 서로 맞대고 있는 전장에 불청객 둘이 갑작스레 끼어들었지만 기이하게도 당황하지 않았다. 시뻘건 안광을 내뿜는 광인의 무리들 중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검(小劍)을 쥐고 달려든다. ‘휘익’ 하는 날쎈 파공음이 머리카락을 스치면서 위협해 왔으나 머리를 트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 냈다. ‘유령?’ 방금 전 발걸음은 유령보가 맞다. ‘ 아니야.’ 그러나 유령치곤 호흡이 거칠었다. 일반 무인이 아니라 자객이라 생각하면 부적절했다. “죽어랏!” 게다가 살의로 가득한 목소리로 외치기까지 했다. 이건 더 이상 자객이라 볼 수 없다. 적을 눈앞에 두고 흥분한 동물이었다. 판단을 끝낸 주서천은 고개를 젖혀 광인이 휘두른 소검을 피해 낸 뒤 반격했다. 검이 대기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가슴 정중앙에 틀어 박혔다. “키헥!” 광인이 눈을 부릅뜨면서 절명했다. “사형, 보통 성가신 게 아니네요!” 주서천과 달리 낙소월은 기습에 실패했다. 주서천이야 유령보에 익숙했으나 낙소월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희미한 기척이나 유령보의 조합만으로도 힘겨웠다. 자객치고는 호흡이 거칠다곤 해도 일반적으로는 적은 편이니 호흡으로 추적하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낙소월이 천재라도 자객과의 대결은 단 한 번도 경험이 없었기에 대응하기가 힘든 일이었다. 반대로 여기까지 버티는 것이 용한 편이었다. “힘들면 되도록 방어에만 신경 쓰도록 해!” 주서천이 공격을 받아치면서 낙소월에게 외쳤다. 그리고 바로 옆의 유령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는 그대들을 도우러 온 것이니 부디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괜찮다면 전투가 끝난 뒤 천천히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유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