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19)
공손한 건 좋지만 과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는 걸요. 대단한 건 대단한 거예요.” 사형의 칭찬에 사매가 생긋 웃었다. 그의 진가를 오롯이 혼자 알고 있던 시절에 비해선 조금 쓸쓸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적어도 전처럼 저평가되어 속이 썩을 일은 없으니까. “졌다.” 주서천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최근 금의검문에게 가르침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오. 그저 눈에 걸리는 것이 보이면 지적해 주는 것 정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 않습니까. 혹 괜찮다면 문주직을 맡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무리요.” 무곡이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리 그대의 부탁이라도 사문 탓에 그럴 수가 없소.” “호오, 사문 말입니까?” 훗날 천하제일 이인자로도 불렸던 검마의 사문! 무인으로서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그에 관련된 정보는 여러 가지 있지만, 사문에 대해서는 없었다. 그의 무공이자 검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정작 무공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무곡이 딱히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가 워낙 무서워서 그 누구도 묻지 않은 탓이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그다지 어려울 것 없소. 일인전승으로만 내려오고 강호에도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으니 아마 모를 거요. 용재문(龍帝門) 이라는 이름인데, 들어 봤소?” “확실히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요.” 원래라면 제자를 들였어야 했지만, 딸을 치료하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없었다. 미래에는 암천회주의 오른팔로서 무림 공적이 되어 싸우다가 결국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문파 자체도 은거 성향이 강하니 알려지지 않았고 최후의 문주도 이렇다 보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아, 그리고 괜찮다면 소저께 호위를 붙여드리려고 합니다만, 어떠십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소. 혹시 저들 중 하나요?” “예. 동성이기도 하니 불편할 리 없을 겁니다.” 유령 중에서 약관 정도의 여인을 둘 붙여 줬다. 무곡이 그 둘을 보고 흡족하게 웃으면서 감사해했다. 성별까지 신경 써 주니 참으로 고마웠다. 안 그래도 호위나 시녀를 새로이 고용하려고 이의채에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었다. 주서천은 부녀에게 유령에 대한 몇 가지 안내 사항을 알려 준 뒤, 주인을 무곡과 무선화로 지정했다. 그 뒤로는 차를 마시면서 적당히 대화를 나눴다. 낙소월과 무선화는 여성이기도 하고 연령대도 비슷해서 금세 친해졌다. 둘 다 성격도 잘 맞았다. 무곡은 딸의 웃음을 보고 방해하지 않겠다면서 나갔고, 주서천도 그 뒤를 따라 마당에서 대화했다. * * * 하북곡에서 데려온 유령도 소령만 남았다. 그래서 인원을 충당할 겸 산동곡을 찾았다. 어차피 지배 영역을 늘리려면 찾아가야 할 곳이었다. 이번에는 낙소월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 갔다. 소령이 안내자로 나섰으니 굳이 따지자면 혼자는 아니다. 여하튼, 산동곡은 하북곡처럼 광인이 덮쳐 오거나 하는 상황은 없었다. 애초에 하북곡이 특이했다. 유령은 마흔 명이었고 수련령(修練靈)은 백이었다. 이걸로 산동곡을 손에 넣었지만 고민도 생겼다. ‘수련령은 어떻게 해야 하지?’ 유령을 양성하는 건 결코 인도적이지 않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하북곡의 경우에는 가무량이 워낙변칙적인 인물이었는지라 반항하여 탈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산동곡의 수련령은 그러한 이가 없었다. 그들은 모든 걸 체념하고 살아남는 데만 집중하여 명령에 절대복종했다. 눈을 감고 이대로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전부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고민하던 끝에 차선책을 내놓기로 했다. “더 이상 심살을 하지 않는다.” 암살로서 유령들을 따라올 자는 없다. 괜히 자객방 중에서 전설로서 군림한 게 아니다. 심살은 이겨 내기만 한다면 최고의 능력을 얻는 것이었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위험이 너무 컸다.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이자 마음을 앗아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것은 남겨 주고 싶었다. 하북곡에도 서신을 보내 전했다. 원래라면 타 지부에도 보내고 싶었지만, 심살의 과정 같은 경우는 워낙 중요하다 보니 증명이 필요했다. “응?” 산동곡의 의뢰 목록을 보던 도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상단주의 이름이 왜 여기에 있지? 설마하니 암살을 준비하던 건 아니지?” “얼마 전 온 서신의 암살 불가 목록을 열람하기 전에 받은 의뢰입니다. 전부 거절하고 위약금을 지불할 예정입니다.” 암살에 실패하면 의뢰금의 네 배에서 여섯 배를 지불했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두 배를 지불했다. 금의상단주의 목에 걸린 금액이 적지는 않았지만 유령곡의 자금도 보통이 아닌지라 지불이 가능했다. “의뢰자는 강소의 상단인가. 산동에서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밥그릇 빼앗긴다고 의뢰한 모양이군.” 시간이 지날수록 상왕의 면모와 닮아 가고 있다. 무려 몇십 년을 단축했다. 하늘이내린 상재에 자금이 주어지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됐다. 산동곡에 유령 삼십을 남기고 열 명을 데려왔다. 상단에 도착해 이의채에게 암살을 의뢰한 곳의 이름을 가르쳐 주자 고맙다면서 눈을 빛냈다. 여전히 아부를 하면서도 그 이름을 볼 때의 눈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아무래도 상단이 커지다 보니 절 노리는 자들이 좀 늘었습니다. 그리고 이자들 중 몇몇은 머리가 빈 바보들인데, 참으로 괜찮은 먹이이죠.” 가끔씩 이렇게 섬뜩한 미소를 지울때가 있다. 돈, 이득에 관련된 일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잔인했다. “유명해지면 정말로 피곤해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원의 상권을 전부 손에 넣게 해 주겠다는 등의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자도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던 주서천의 손이 움찔 떨렸다. “어떤 자였습니까?” “이름은 말하지 않고 만남용으로 금 열 냥을 내놓고 가더군요. 그래서 냉큼 받긴 했지만, 대충 흘려들은 다음 보냈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더군요.” “상단주. 당분간 내부와 외부의 보안을 철저히 하십시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고용된 자들을 주의하시오.” “역시 대협이십니다. 그놈이 수상한 자인 걸 이야기만 듣고도 알아보셨군요!” 경박한 태도로 아부만 해 대는 것 같았지만, 그 속은 전혀 아니다. 살에 파묻힌 눈이 날카롭게 떠졌다. “어떻게 할지는 저에게 딱히 묻지 않으셔도 되지만, 그저 앞으로 조심해 주시면 됩니다.” 미래, 전란 동안 이의채는 별 피해없이 알아서 대처하여 상단을 키우고 크게 성공했다. 가만히 놔두어도 최상의 결과를 내는 사람에게 굳이 뭐라 조언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적당한 경고만 한 뒤, 따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천권성이 접근했나.’ 칠성사의 천권은 천기나 회주에게 명령을 받아 미래가 돋보이는 세력에 간자를 심는다. 그리고 간자를 심기 전에 아군으로 회유하려고 사람을 보내 확인하는데, 이번에 온 듯했다. 아직 확신을 할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금의상단의 성장.’ 금의상단은 요 몇 년간 몰라보도록.성장했고, 한 지역이 아닌 중원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상왕이 전생에서 암천회의 회유를 어떻게 거절하고 자산을 지킨지는 잘 모르지만 제지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공격당할 테니까. ‘너희 맘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눈을 감으면 비명이 들려온다. 전란에서 죽은 이들의 절규와 비명이 세상을 붉게 만들었다. 그 위에는 암천회가 있었고,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칠성사와 도감부, 그리고 암천회. ‘천선성.’ 반격, 아니 습격의 시기가 왔다. 그 첫 번째 목표는 암천회 정보의 중심이기도 한 천선성이다. 천권이 첩자를 심어 얻어 내는 정보도 보통이 아니지만, 천선에 비교하자면 그 양은 압도적으로 적다. 그야 그들의 정체가 천하에서 손꼽히는 정보 단체이기 때문이다. ‘하오문(下五門)’ 무림에는 정도가 있고 상도가 있으며 마도가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흑도(黑道)라는 것이 존재한다. 실온 말만 흑도이지 하오문은 무림에서 제대로 된 강호 문파로 취급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 문파지 그들을 구성하는 건 순 시정잡배들 뿐이었던 탓이다. 저잣거리의 소매치기부터 시작해서 기녀나 점소이, 장원의 하인이나 마부나 혹은 표국의 말단 무사. 구성원만 봐도 어떤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무림의 밑바닥층이 모인 곳으로 그 숫자는 문파 중에서도 제일이지만 결속력은 좋지 못하다. 시정잡배이다 보니 인의라거나 충성이라는 건 농담거리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다만 온갖 직업을 지닌 이들이 모이다 보니 이들의 정보 수집 능력만큼은 무척 탁월했다. ‘일곱 수장 중 일인인 하오문주!’ 그리고 그 하오문주가 천선의 정체였다. 문주라고 하지만 흑도 방파이기에 온갖 무시를 당하는데 그 정체는 암천회의 수뇌부였다. 第十二章무음사자(無音使者) 하오문은 시정잡배의 연합체인데도 불구하고 구파일방이나 사도천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 그들의 생존력은 가히 불멸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지닌 정보도 정보지만 점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그렇다. 추격을 하려고 해도 점조직이라 추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작 중요한 수뇌를 몰라 추적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지부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 인원을 대체할 이들은 어디든지 많았다. 길거리에 널린 게 시정잡배가 아닌가. 애초에 전부 질이 낮고 믿지 않기에 적당히 데려오면 그만이다. 고문을 하려 해도 정말로 모르니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불멸의 생존력을 지닌 연유다. 그러나 수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정말로 극소수이기는 하나 그런 역할을 하는 지부가 존재한다. 주서천은 그 지부를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있으니 이왕 기회가 된 것 새로운 무공부터 배워 볼까. 유령신공의 암기부터 익혀 봐야겠다.” 전에는 필요성이 없어서 심법과 보법만 배웠다. “소령. 괜찮다면 암기를 가르쳐 주겠어?” “네.” 유령신공과 유령공의 통제능력을 제외하곤 거의 차이가 없어서 소령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비수(七首) 위주로 부탁할게.” 기간은 이 주일로 잡았고, 적당한 장소도 있었다. 금의상단의 제남 지부 지하에는 특수한 시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는 비밀 연무장도 존재했다. 그동안 정말로 기초적인 것만 배웠다. 비수를 잡는 법부터 투척하는 법까지 가지각색이었다. 투척술이나 휘두르는 법까지 포함한 이 암기술의 이름은 유은비도(閩隱飛刀)였다. 일성은 기초적인 공격법이었고 이성부터는 투척이 가능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배웠다. 그리고 가르침 도중에 유령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깨닫게 됐다. “뭐, 뭐야!” 배우던 도중 실수를 하자 소령이 날아와서 복부를 힘껏 걷어차려다가 맞기 직전에서 멈췄다. 유령곡주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어서 멈춘 듯했으나 어째서 공격을 한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실수하면 폭력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대협을 때릴 수 없으니 멈췄습니다.” “……허어.” 일성은 워낙 기초이다 보니 능숙하게 성공했지만, 어디까지나 깨달음이 있거나 검의 고수여서 그렇다. 원래의 수련령이라면 막 시작했으니 실수도 많을 터인데 이런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한다니! 괜히 가무량이 지옥이라 몸서리친 게 아니었다. 그들의 수련 방식은 혹독하고 잔인했다. 그렇지만 그만큼 효율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이란 건 때로는 위기감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