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2)
미소 지었다. 그러곤 자세를 잡고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주서천은 매화노방부터 펼쳐지는 걸 보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생전에서 볼 수 없었던 걸 보게 되다니.’ 회귀 이전에는 매화검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그래서인지 유정목은 주서천에게 상승 무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까 말했듯이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원래라면 주서천이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가르쳐 주려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안타깝게 절명하였다. 제일 가까운 사제 관계임에도 주서천은 스승의 검을 제대로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주서천은 속으로 자신을 꾸짖으며 유정목에게 집중했다. 지금의 경지 자체는 유정목이 한참 위이나, 보는 눈만큼은 화경에 올랐던 주서천이 위였다. 실제로 주서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정목의 검과 무공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구초식까지는 완벽하신 것 같고, 십초식인 매화만개(梅花滿開)부터 막히시는군. 다행히 깨달음이 아니라 숙련도의 부족이신 것 같은데 ……’ 십사수매화검법은 주서천도 회귀 전에 대성한 경험이 있었다. 내공과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유정목보다 완벽하게 펼칠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응?’ 주서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흡!” 유정목이 십사초식인 매화난만까지 펼쳤다. 상당한 내력과 체력을 소진했는지 땀을 흘렸다. “자, 방금 것까지 해서 십사수매화검법이다. 다만 이 못난 사부의 실력이 부족해 완벽하게 펼칠 수는 없었구나. 미안하다.” 과연 유정목. 보통이라면 제자 앞이란 걸 생각해 조금이라도 멋져 보이려고 허세를 부렸을 것이다. 아니, 설사 제자 앞이 아니라 하여도 대부분의 무인, 특히 정파인은 자존심이 무척 높은 편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러워 숨기려고 할 텐데, 유정목은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며 무공의 전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사과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주서천이 무한한 신뢰를 담은 눈으로 손뼉을 쳤다. “장문인은 물론이고 무림맹주도 지나가다가 ‘허억!’ 하고 경탄할 정도의 훌륭한 검이셨습니다!” “요 녀석,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 정도는 듣지 않았느냐? 칭찬이 과하면 아부로 보이니라.” 유정목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결코 아부 따위가 아니었다. 주서천에게 있어서 유정목은 신이었다. “자, 또 보고 싶은 검 이 라도 또 있느냐?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것도 보여 주마.” 그 말에 주서천은 속으로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순수하게 호기심이 강한 열 살의 아이를 연기했다. “오행매화검도 보고 싶습니다, 사부님” “이 사부의 무능함을 만회할 기회를 주는구나. 오행매화검은 일찍이 대성하였으니, 전부를 보여 주마.” 본산제자가 매화검을 대성하게 되면 몇 가지 상승 무공을 배우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오행매화검이다. 제자가 오행매화검을 보여달라는 걸 딱히 이상하거나 의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부님, 불초 제자가 견식이 부족하여 방금 전 사부님께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쳐 주셨을 때 무엇이 지나간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송구하오나 이번에는 느릿하게 펼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말고.” 유정목은 제자가 열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무공 공부에 열의를 보이자 무척 흡족해했다. 재능도 있는 데다가 자세도 이렇게 훌륭하다니. 이런 제자를 둔 것이 스승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웠다. 유정목은 주서천이 요청한대로 오행매화검의 일초식부터 느릿하게 펼쳤다. 참고로 무공이란 건 검법이건 도법이건 간에 뭐든지 일부러 느릿하게 펼치는게 더욱 어려운 법이다. 검 한 번 휘두르는 것조차도 느릿하게 움직이려면 상당한 근력이나 체력,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정신력도 마찬가지다. 느릿하게 펼치는 걸 그만큼 의식해서 그렇다. 비록 예전에 대성한 무공이라 할지라도, 매화검 정도의 수준이 아닌 이상 상당한 집중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서천은 그 점을 노렸다. 第七章사부출도(師父出道) ‘내 생각대로다.’ 주서천의 눈동자에 유정목의 모습이 담겼다. 유정목은 여전히 오행매화검을 느리게 펼치고 있었다. 다만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칠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검을 펼치되, 제자가 편히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서서 지켜보는 주서천이 되도록 많이 볼 수 있도록 느리게 펼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일부러 자세를 크게 하거나 시선의 방향을 보이는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 하나 그 배려는 이상하게도 오행매화검의 삼초식이 시작할 때 즈음 멈추었다. 주서천이 몸을 움직여 다른 방향에서 보지 않는 이상,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자세가 간간이 나왔다. 유정목이 도중에 지치거나, 혹은 귀찮아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제자의 존재도 잊은 채, 오행매화검에 빠져들었다. ‘내 행동으로 바뀌는 미래.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사부님일 줄은 몰랐다.’ 방금 전 주서천은 유정목이 십사수매화검법, 곧 본신의 무위 전부를 보였을 때 이상함을 발견했다. ‘오행의 불균형. 수령신과를 복용한 탓에 수기 (水氣)가 상당 부분 치우쳐져 있었다.’ 수령신과의 힘으로 선천진기가 새는 걸 막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전부인 것 같았으나,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세하지만 그 잔재가 남았다. 주서천도 유정목이 십사수매화검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유정목이 온 힘을 다해 검기(劍氣)까지 발현했고, 기운 속에서 음기(陰氣), 곧 수기를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일부러 오행매화검을 느릿하게 펼쳐 달라고 요청했다. 오행매화검은 이름 그대로 오행순환의 이치를 담은 무공이다. 오행의 불균형을 고치기에는 딱 좋았다. 그리고 느리게 펼쳐 달라고 한 건보다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워낙 미세한 탓에 놓칠 수도 있었다. ‘설마하니 영약 하나로 이렇게 바뀔 줄은…… ’ 질병이라 생각했던 병약 체질을 고쳤고, 또 그것은 경지를 높이는 단서가 되었다. “ ……” 생각하는 사이 유정목이 오행매화검을 최후 초식까지 전개했다. 그러고는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지금 얻는 깨달음을 흡수하고, 경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주서천은 호법을 위해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유정목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다. ‘오행의 불균형은 어디까지냐 계기에 불과해.’ 수령선과의 잔재, 수기가 그렇게까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불균형이라해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미세한 부분을 보완한 것에 불과하며, 내기가 더더욱 안정되고 내공이 손톱만큼 늘어난 정도였다. 그렇다면 유정목의 진정한 깨달음은 무엇일까? ‘휴식(休息)’ 유정목은 근면 성실한 노력가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과할 정도다. 워낙 올곧다 보니, 꽉 막혀 있다 평가될 정도이다. 매화검수에 떨어진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실제로 그를 아는 몇몇 사형제들은 그 근면 성실함에 질려 할 정도였다. 이 노력은 너무 과해 하나의 집착으로 보일 정도였다. 누가 말해 줘도 소용없었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사고방식 밖에 없었고 화산에 입문한 이후로 몸에 상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증진 체조만 봐도 알 수 있다. 유정목은 자기 자신을 밀어붙여도 너무 밀었다. ‘아아, 가끔은 놓아줄 때도 필요하구나’ 오행은 곧 순환, 자연의 흐름이다. 유정목은 오행의 불균형을 고치면서 재차 오행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해했다. 순환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때로는 물 흘러가듯이 내버려 둬야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기, 오행, 순환 이 세 가지를 깨우치고 이해한다. 그리고 절정의 벽을 뛰어넘는데 성공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유정목이 두 눈을 슬며시 떴다. 눈빛도 기도도 전부 달라졌다. 전에 없었던 여유가 보였다. 다만, 전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거기에 여유까지 더해지니 마치 현인과 같았다. “내가 아니라, 네가 날 가르치는구나. 이 모든 게 네 덕분이다.” 제일 먼저 한 말은 애정으로 가득한 미성이었다. 그 말에 주서천은 감격에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사부님!” 주서천은 자신의 일인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회귀 전, 언제나 스승에게 짐만 됐다. 그의 임종 또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을 미치도록 후회했다. 오직 빚만 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는데…… 그 숙원을 이렇게나마 갚을 수 있는 게 행복했다. 주서천은 다시 한번 새로운 삶에 감사했다. * * * “호, 소유검이 초절정에 올랐다고?” 유정목이 초절정에 올랐다. 그 소식이 퍼지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참 경사로군!” 화산파 같은 구파일방에는 고수가 많다. 괜히 대문파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썩어 넘치는 정도는 아니다. 초절정 고수는 대문파 내에서도 귀한 전력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유정목이 그러한 초절정 고수에 올랐다. 충분히 주목받을 만했다. 평소에 유정목과 알고 지내던 사형제들은 그를 찾아가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주서천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주거지에 방문객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온 걸 처음 봤다.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소유검 대협이시라면 언젠가 해내실 거라고 예전부터 믿고 있었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받아 주십시오.” 유정목은 그렇게까지 발이 넓지 않다. 나름대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아 봤자 다섯이었다. 하나 최근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는 일찍이 백을 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연줄을 원하는 자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산파에는 화산파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속가제자 중에서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의 경우, 시중을 들 사람 몇몇과 호위 무사가 따라오게 된다. 그 외에도 의뢰인, 상인, 비무 목적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선 화산파의 본산제자들과 어떻게든 연을 만들려는 목적을 가진 자가 상당히 많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방문객 거의 모두가 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구파일방 중 화산파. 제대로 된 친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떠한 검보다 든든하다. 힘이 없는 중소 방파의 경우, 화산의 본산제자와 친분이 있다 하면 웬만한 흑도 방파는 얼씬도 못 한다. 나쁜 의미로는 화산을 뒷배경으로해서 권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어휴, 사부님도 참.’ 주서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눈에는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열심히 응대하는 스승, 소유검 유정목의 뒷모습이 비춰졌다. 휴식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 올곧은 품성은 여전했다. ‘경지에 오른 지 별로 되지 않아 피곤하다고 하면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을 텐데……’ 주서천은 걱정했으나, 유정목은 괜찮다며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사람들을 상대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승이 사리분별을 못 하는 건 아닌지라 호구 취급을 당하거나, 빚을 만들지는 않았다. 선물 공세 또한 적당한 선에서 받거나 받지 않는 능숙한 처신을 보였다. 연화봉 정상, 상궁(上宮) 화산파가 시작된 이후 아직도 남아있는 구조물로, 유구한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설계부터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 세운 것이지만, 그 이후로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들어갔다. 그만큼 여러 의미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소였다. 상궁에서 내려다보는 화산의 경치는 실로 아름답고 장관인지라 그 누구라도 넋을 잃는다 한다. 그 명성 또한 대단하여 풍류가라면 한 번쯤 꿈꾼다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또한, 풍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