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22)
순진하게 비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됐다!’ 주서천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웃었다. 하오문주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 자주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수하들에 대해서도 대강 알았다. 다만 하오문주가 정주에 자주 방문한다는 것만 알뿐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괜히 암천회의 천선성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며 지부를 습격했다간 도망치거나 숨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렇게 되면 찾기가 정말 힘들어진다. 그렇지 않기 위해선 도망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앞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야 한다. ‘내부의 분란. 하오문주라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평소 그 힘을 노린 이들을 이용한다.’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섬똑하게 번들거렸다. ‘천선성이 지닌 정보력은 곧 하오문이니, 그 근간이 흔들린다면 하오문 역시 가만히 숨거나 도망칠 수는 없지. 무엇보다 외부의 인물이 아니라, 내부의 인물이 일으킨 소란이라하면 나에 대한 의심도 안 할 터.’ 그래서 일부러 얼굴을 바꿔 하오문도가 됐고, 무음사자를 칭하면서 청루를 도왔다. “과연, 날 이용할 생각인가.” 주서천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강능초의 뒤편에서 기척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아무래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모양이었지만, 하오문 수준답게 그다지 대단하진 않았다. “무림이란 그런 게 아니겠나. 서로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지. 협의를 지킨다니 뭐니 하는 건 입에 발린 헛소리에 불과할 뿐!” ‘이 정도나 되는 인물이 왜 알려지지 않은 거지?’ 인독종, 강능초. 그 이름은 현생에서 처음 알았다. 만나 보니 생각보다 그릇이 큰 자였다. 당당하면서도 기개가 높은 데다가 강자 앞에서도 숙이지 않는다. 흑도의 인물치곤 보기 드물었다. ‘아니, 그렇기에 알려지지 않은 건가. 천선인 하오문주에게 적의를 지녔다면 살아남았을 리 없지.’ 아마 원래의 역사 역시 문주의 자리를 노리고 도전했을 터.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뻔하다. 꿀꺽! 뒤편에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청루주가 침을 삼켰다. 얼굴은 긴장감과 더불어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만약 여기서 무음사자가 거절하게 된다면 강능초와 운명을 함께할 청루도 최대의 적을 만들게 된다. 그의 적이 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청루주의 걱정은 다행히 우려로 끝났다. “받아들이지.” “휴우!” 청루주가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에 반면 강능초는 반대로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미간을 좁힌 채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간단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스스로 설득한 주제에 의심하는 건가?” “무림, 아니 세상이란 그다지 녹록하지 않은 법이니까.” 피식하고 웃음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굳이 이유를 붙여야 한다면 얼굴도 모르는 놈보다는 믿음이 간다는 정도일까.” “그것만으로 믿는 건가? 어쩌면 내가 거짓을 고해 하오문주를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믿다니,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하오문도로서 생활한 지는 별로 되지 않았지만 이 밤거리의 법칙을 나름 잘 알고 있지. 누구도 믿을 만한 사람은 없다는 걸 말이야.” 점소이라면서 객잔 앞까지 안내하려는 아이는 실은 길만 아는 거지일 뿐이고, 어두운 골목에서 도와 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대부분이 미끼 역이다. 그 누구도 믿지 말라! 흑도에서는 예부터 내려오는 격언이었다. * * * 반월이 밤하늘에 떠올랐다. 구름이 껴 일부분만 보일 뿐, 전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때보다 어둡지만, 무서운 건 간간이 울리는 비명이다. 강능초는 하오문도 백여 명을 이끌고 홍루의 뒷배를 습격했다. “끄아아악!” “아악!” 정주가 눈치를 보면서 혈투를 지켜 봤다. 괜히 휘말릴지 몰라 경계를 높이고 주의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 규모의 총력전은 확실히 흔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벌어졌다. “무음사자다!” “강능초가 무음사자를 포섭 했어!” “도망쳐! 홍루에는 가망이 없다!” 하오문도에게 의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설사 어제 형제의 연을 맺었다 할지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친다. 괜히 흑도가 아니다. 안 그래도 눈에 띄게 약화된 홍루의 세력은 습격에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고수인 부두벽과 참락가를 잃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다. “이제부터 홍루는 나, 강능초의 지배를 받는다.” “모,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청루와 홍루가 전부 강능초 밑으로 들어갔다. 둘 다 정주의 밤거리에서 나름 영향력이 컸던 만큼 수익이나 무력 등이 전부 배로 증가하게 됐다. 그리고 이 소란은 하오문주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강능초, 강능초라……” 하오문주가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에는 성가시다는 감정이 다분했다. 인독종, 강능초. 그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떠오르며 펼쳐졌다. 내용이 제법 자세하다. 강능초는 태생부터 정주로서, 밤거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고아였다. 어릴 적에 다리 밑에 버려져 부모의 이름도 모르고 자랐다. 남들처럼 어릴 때 동정심을 유발하며 구걸로 연명하다가 운이 좋아 어떤 무림인에게 무공을 배웠다. 다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말로 대단한 건 강능초 본인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무공을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재능도 약간 있긴 했지만, 더 대단한 건 끈기였다. 가끔씩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기루에 서성이는 무림인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가르침을 받았다. 도중에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화풀이나 다름없는 폭력이 가해졌지만, 그에 굴하지 않았다. 죽을 뻔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온갖 고난을 경험한 덕에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정주의 밤거리는 타지보다 험하다. 하루아침에 어떤 세력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군림한다. 이런 일이 정말 숱하게 벌어진다. 흔하진 않지만 외부에서 고수를 초빙해 세력권을 넓히기도 했다. 무음사자가 눈에 밟히긴 했으나, 암천회의 일로 바쁜 하오문주가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정주의 하오문에는 청루와 홍루 외에도 이름을 크게 떨치는 세력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는 하오문주에게 충의를 맹세하여 천선의 수족이 된 자들이 있다. 앞으로 노려야 할 목표가 그들이었다.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 주겠다.” 강능초 앞에는 어릴 적부터 함께한 동료와 최근 그의 비호를 약속받고 수하로 들어온 하오문도가 있었는데, 그 숫자가 백을 조금 넘는 숫자였다. 그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비장한 얼굴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얼마 전, 홍루를 집어삼켰으나 나는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정주의 밤거리가 얼마나 위험하고 욕심이 많은지 알고 있지?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놈들이 많다. 그놈들에게 먼저 당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선수를 쳐야 하지.” 꿀꺽! “그 말은 즉, 전면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형님?” “그래. 그뿐만 아니라 정주를 지배하에 둘 것이다.” 수하들이 웅성거렸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전부 예상했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비소돈, 독사검, 음살녀! 세 명의 이름이 나오자 수하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대다수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삼 인은 정주, 아니 하오문 전체에서도 오랫동안 이름을 떨친 강자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삼 인 전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와 힘이 대단하였다. 행동도 악랄하기 그지없어 그들의 손에 거쳐 이용되거나 목숨을 잃은 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에겐 무음사자가 있다!” “무음사자!” 좌중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다. 그늘까지 끼었던 얼굴이 몰라보게 환해졌다. 무음사자의 이름은 정주에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아군이라는 말에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강능초는 힘만 내세우는 머저리가 아니다. 정주의 밤거리, 흑도에서는 온갖 암계가 도사리고 있다. 힘만 믿고 설치면 이름도 채 남기지 못한 채 죽는다. 물론 압도적인 무공을 지닌 고수라면 상관없으나 애초에 그런 인물이 강호의 밑바닥에 올 리가 없다. 그는 오늘 밤을 위해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해 뒀다. 급습을 위한 병력을 분산한 다음 곳곳에서 적지로 모여 공격하는 수단을 사용했다. 온갖 정보가 모이며 소문의 전달도 빠른 정주인 만큼 움직임을 조심해야 했다. 최근 홍루를 흡수하면서 강해졌다지만 괜히 방심했다가는 허무하게 질 수 있었다. “일단 제일 성가신 독사검부터 처리한다.” 독사검은 삼 인 중에서도 상대하기가 제일 껄끄러웠는데, 그 이유는 그가 무공도 강할 뿐만 아니라 지략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순간 숨을 때를 잘 찾고, 세력 싸움 중에 주변의 지원 세력을 적절히 이용했다. 게다가 함정을 파는 것이 특히 성가셨다. 괜히 나머지 둘과 싸우다가 전력을 소비했다간 그 틈을 파고들 것 같아 일 차 목표로 삼았다. “어떻게 하겠나?” 고수는 약자에게 명령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지휘자가 하오문도라면 두말할 것 없다. 하오문주조차도 멸시받는 현실이다. 무음사자나 되는 고수가 말을 들을 것이라곤 기대도 안 했다. “비소돈.” 주서천이 몸을 풀 듯이 손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설마……?” 청루주가 입을 떡 벌렸다. 강능초가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쪽을 맡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청루주가 목소리를 높였다가 흡, 하고 입을 닫았다. 그 낯빛이 시체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내가 미쳤지!’ 강농초는 상관없다. 그는 자기 사람에게는 따스하고 부드럽다. 이 정도 무례는 어느 정도 용서해 준다. 무엇보다 청루주는 이곳에서 나름 책사였다. 강능초 다음으로 권한이 제일 높았다. 그래서 작전을 실행하기 전 회의에도 지속적으로 참석했었다. 문제는 무음사자였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잊을 수 없는 위압감을 보여 준 괴물 같은 그가 두려웠다. 그러나 걱정과는 다르게 주서천은 청루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비소돈이 다른 둘보다 머리가 나쁘지만, 그렇다고 두뇌 능력이 전무한 건 아니다. 너희가 독사검에게 승리한다 해도 전력의 소비가 제법 클 테니 그걸 노리고 덮쳐 올 게 분명해. 어쩌면 청루나 홍루를 점령하고 인질로 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후자의 경우 저희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음사자일 지라도 혼자서 비소돈의 소굴에 들어간다면……” 강능초가 손을 들어 청루주의 말을제지했다. 안 그래도 매서운 눈매가 가늘어지며 무서워졌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군. 무공에 대한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다.’ 강능초도 주서천이 말한 것이 신경쓰여 여러 계책을 준비해 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설사 무음사자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 실력이라면 계책 이상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동귀어진이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원하는 바다. 통제하지 못하는힘은 양날의 검. 적을 베어 주되 내 목이 노려질지 모르지 않나. 이 상황, 이용해 주마.’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힐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이런 좋은 흐름을 망칠 수는 없다. “알았다. 그렇다면 잔존 병력을 청루로 집결하여 방어에 힘쓰지. 지원은 힘들 텐데 괜찮겠나?” “그래.” 정주의 외곽은 전부 치안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