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26)
번개같이 회수됐다. “흐흐흐!” 연검은 무림에서도 보기 드문 병장기다. 검 자체가 유연하여 휘는 탓에 다루기가 무척 힘들다. 하나 그만큼 궤도를 읽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어서, 일단 다루기만 한다면 그 위력은 상당했다. “강능초.” 독사검이 입술을 혀로 적시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너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정주에 버려진 고아가 고군분투해 살아남은 것?”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설이다. 정주의 밤을 살아가는 주민들이라면 어린아이도 알고 있다. 정주 출신의 하오문도가 최근 세력과 명성을 떨쳐서 그런지 비교적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청루에 거둬진 점소이.” 강능초의 차가운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비록 순간에 불과했으나, 독사검은 그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홍루가 넘어간 이후로 좀 알아봤지.” 독사검의 비열함과 치밀함은 하오문에서는 제일이다. 무공을 쓰기 전에 일단 책략부터 짜낸다. 그중 즐겨 쓰는 건 적의 약점을 낚아채 놓아주지 않고 천천히 소화시키는 것이다. 비소돈과 음살녀 등의 강자들은 그 음침함이 싫어 대화도 꺼린다. “다리 밑에서 함께 동냥질하던 여아가, 청루의 포주의 눈에 들어오면서 운 좋게 같이 떠나게 됐던가?” 고아였던 강능초가 할 수 있는 건 동냥뿐이었다.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다. 다리 밑에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아이들이 많았다. 서로 의지고 기대면서 살아가던 도중, 독사검이 말했던 것처럼 청루의 포주가 찾아왔다. 청루의 포주는 여아들을 씻긴 다음 몇몇을 데려갔다. 가끔씩 이렇게 데려가 기녀로 키운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니를 걱정하는 고아들 입장에선 나쁜 게 아니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으니 좋았다. 원래라면 여아들만 갔어야 하지만, 그중 한 명이 포주에게 강능초를 점소이로 써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닥쳐라.” 여태껏 냉정함을 유지하던 강능초가 반응했다. 독사검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더욱 진해졌다. “어린 시절을 함께하고, 자신을 구원해 준 기녀에게 사랑에 빠지는 건 널리고 널린 흔한 이야기 아닌가?” 결말만 이야기한다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기녀의 삶은 짧다. 남자의 정기를 하루에 몇 번이나 받다 보면 자연스레 폭력에도 쉽게 노출된다. 무엇보다 병에 걸리면 치료가 어려웠다. 의원을 부르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운 기녀를 데려와 가르치는 것이 더 돈이 적게 들었다. 당시의 강능초는 어떻게든 해 보고 싶었지만,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건 무력감이었고, 그 끝은 결코 좋지 못했다. “눈물겨운 이야기야!” 독사검은 말과 다르게 조소를 흘렸다. “독사검!” 역린을 건드리자 철옹성 같던 이성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강능초의 눈이 분노로 돌아갔다. 강능초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진득한 살기를 흩뿌리면서 독사검에게 덤벼들었다. ‘걸려들었다!’ 독사검은 웃음을 꾹 참으면서 손을 쭉 뻗었다. 손에 잡혀 있던 연검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려 낸 연검은 강능초의 어깨를 비스듬하게 베고 지나갔다. “크으읏!” 마치 불에 담근 쇠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놓지 말아야 할 이성의 끈이 끊겼다는 걸 깨닫곤 뒤늦게 몸을 황급히 뒤틀었으나 늦었다. 독사검은 한번 잡은 먹잇감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연검을 휘두르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인독종만 처리하면 이긴 거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눈엣가시였던 인독종을 처리하려 했지만,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성공하는 이가 없었다. 지붕 위에서부터 날뛸 때도 몇몇 이들을 빼내 습격을 시도했으나 한명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어차피 적들이라 해도 하오문도 아닌가. 통솔자인 인독종만 죽는다면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다. “어어,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인독종이 당하고 있잖아!” 실제로 공방을 잇던 하오문도들이 반응을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적이라 불리던 사굴의 침공에 성공하여 사기가 높아졌으나, 순식간에 떨어졌다. 얼굴에는 불안감이 묻어났고, 하오문도 아니랄까 봐 도망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시끄러워!” “그럴 리가 없잖아!” “큰형님을 도와야 해!” 하오문도가 구 할 이상은 의리도 없고, 삼류 잡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전원이 그런 건 아니다. 그중에는 소수지만 인독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도 몇 있었다. 다만 그들도 크게 영향력을 떨칠 만큼 고수는 아니었는지라 부대 전체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형님!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수하라고 누군가 나섰지만, 독사검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독사검이 옆으로 눈짓을 보내자, 수하들 몇몇이 빠져나와 독사검과 인독종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았다. 혹시라도 인독종이 도망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퇴로까지 완벽히 차단했다. ‘틀렸나……’ 정신을 되찾았지만 어깨 탓에 전투를 속행하기가 힘들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른 행동에 후회가 들었지만 후회는 항상 늦은 법이다. “이곳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거늘……”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무심코, 소망 어린 말을 중얼거린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정주. 그 정주가 좋으면서도 싫었다. 어릴 적,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보았다. 끼니를 때우지 못해 죽는 사람부터, 동냥을 하다가 기분이 나쁘다며 맞아 죽는 아이도 있었다. 점소이가 된 이후로도 주문한 음식이 늦는다면서 폭력을 받곤 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 취급받지 못하고, 하루의 끼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걱정했다. 현실이라는 이름에 굴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품에 안은 채 독기를 머금고 살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서 독종이라 불렸고, 다리 밑의 고아는 청루의 뒤를 봐주는 무인이 됐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혼자 어찌어찌 버텨 봤으나 그것도 여기까지. 강능초는 머리를 위로 늘어뜨리곤, 달빛조차 없는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름 원망하지 않고 혼자 열심히 살아왔거늘…… 조금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않소?” 그 중얼거림에 답한 건 원시천존이나 부처도 아닌 사굴을 오랫동안 지배한 독사겸이었다. “흑도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다니, 그거야말로 네놈의 패인이다! 나약한 자신을 원망해라!” 공력을 쏟아 낸 검이 강능초의 목젖을 노렸다. 쐐애액! 날이 선 검이 빛을 뿜어내며 날아온다. 눈으로 확인하고, 뇌리에 박히자 몸이 반응했다. 몇십여 년 동안 경계하고 긴장한 신경 탓이었다. 근육이 수축되고, 힘을 주면서 움직인다. 피를 꿀럭꿀럭 토해 내는 어깨가 움직임이며 통증을 극대화했다. ‘죽는 것도 편히 못 하나……’ 머릿속에선 다리 밑에서 살아왔던 시절부터의 인생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이 주마등이란 것일까. “끝이다!” 저승사자처럼 사형선고를 내리는 독사검의 목소리. 미련 가득한 감정이 치솟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검극이 목살을 파고들려는 순간. 번쩍! “흡!” 채앵!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가 독사검의 검을 후려쳤다. 목을 꿰뚫으려던 검은 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강능초는 놀라움에 흡, 하고 숨을 멈췄고 독사검도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웬 놈이냐!” 독사점은 공격을 연결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비령……” 강농초가 서늘한 목덜미를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비령? 아, 그런 이름이었지.” 그 사람은, 갑작스레 나타났다. 눈을 껌뻑이니 그곳에 원래 있던 것처럼 서 있었다. “설마……” 독사검의 얼굴이 똥을 씹은 듯 일그러졌다. “만나서 반갑다, 독사검. 돼지부터 처리하고 오느라 좀 늦었다.” 주서천이 머리를 빙그르르 돌렸다. 뼈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희를 죽일 거다.” 정주가 발칵 뒤집혔다. 여태까지 세력 간의 싸움은 숱하게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크게 난 적은 없었다.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던 동쪽과 서쪽이 습격당했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던 지하 투기장이 무너졌다. 한밤중에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무음사자가 비소돈의 목을 벤 사실이 소문이 되어 발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주서천이 의도했던 대로,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하오문주 천선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였다. “이게 도대체 뭔……” 천선의 얼굴은 볼 것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다툼 정도야 늘 있는 일이다. 비소돈의 권좌에 도전하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있었다. 애초에 비소돈 역시 십여 년 전에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자에게 승리하여 자리를 빼앗지 않았나. 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예상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난리를 친 거야?” 가슴속에서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천선을 진정 분노하게 만드는 건 바로 피해였다. 무음사자는 살인에 굶주린 악귀처럼 하오문도를 살려 두지 않았다. 무자비하게 목숨을 앗아 갔다. 신기하게도 주민이나 고객은 건들지 않았다. 목숨을 잃은 건 구 할 이상이 비소돈의 수하들이었다. 전쟁에서야 그러는 것이 보통이지만, 하오문에서는 아니다. 하오문은 보통 따르던 우두머리가 사망할 경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거나 고개를 숙여 항복한다. 그들에게 의리 따위 존재하지 않으며, 위광을 두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덕분에 머리가 바뀌어도 큰 변화는 없다. 어차피 그 머리도 수족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평소처럼 정보의 수집에도 문제가 없고, 지하 투기장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돈도 큰 변동은 없었다. 도전자나 지하 투기장의 주인도 이를 잘 안다. 어차피 믿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수하들이다. 과거에 누구 밑에 있었든 상관없이 몇몇을 제외하곤 자기 밑으로 흡수할 예정이니 굳이 무리해서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전부 무시했다. 이렇게 되면 천선 입장에서는 굉장히 성가시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천선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였다. 강능초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음사자……?” 방금 전에 일어난 상황보다 시선 끝에 있는 낯익은 등을 보고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에 있지?” 머릿속의 의문은 곧장 입 바깥으로 나왔다. “비소돈을 맡겠다며 지하 투기장으로 가지 않았나?” “무음사자?” 독사검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정보와 전략을 중시하는 그가 무음사자란 전력을 빼놓을 리는 없었다. 그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쪽을 습격한 사실은 몰랐다. 애초에 오늘 일이 벌어진 지 고작 한 시진이 지났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서 어디에 숨어 있거나 혹은 문제가 생겼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무음사자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강호의 소문은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지만, 이곳 하오문에선 그런 소문조차 조심해야 한다. “일을 전부 끝냈으니까.” 주서천이 목을 한 바퀴 돌리면서 답했다. “뭐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답에 강능초가 황당해했다. 아직 한 시진이 조금 지났을 뿐.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동쪽의 지배자를 제압했다니…… 무음사자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그는 헛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너무 터무니없지 않나. 자신이 믿던 수준은 비소돈의 수하들 몇몇을 암살한 정도다. 애초에 임무 자체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사굴을 치는 동안 돼지들의 움직임을 막아 주는 수준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시원할 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강능초가 고민의 답을 내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지 못했다. “최근 소문이 자자한 무음사자가아니오? 만나 뵙게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