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29)
회전하며 진동하는 것처럼 웅웅 소리를 토해 내며 날뛰었다. ‘천선!’ 유령들 가라사대, 암살에서 중요한 건 적을 방심시키고 속이는 것이라 하였다. 의도를 들킨 순간 암살이 실패한 것이니 적의 시선을 돌리거나 혹은 완벽히 숨기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일부러 처음 만난 순간부터 속이고 속였다. 정보를 관할하고 중요시하는 천선이라면 반드시 무음사자에 대해 조사할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무음사자가 ‘자객’이라는 정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천선이 상천십좌, 아니 검마 정도만 됐어도 경지가 알려져 통하지 않았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화경에 가까운 초절정의 자객. 그 정보를 주입시키고 확신시켰다. 그리고 천장에 유령들을 숨겨서 비장의 수를 준비한 것처럼 허초로 만들었다. ‘할 만한 것 같다고?’ 헛소리! 암천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칠성사 수뇌의 치밀함과 강함 또한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들을 얕보는 순간 패배한다. 그걸 명심하고 있었기에 몇 번이나 생각하고 생각해서 계획을 세웠다. ‘자하!’ 모든 걸 속여서, 일격에 끝낸다. ‘개벽!’ 회전하는 강기를 머금은 검이 쏘아진다. 그 경로에 있는 공기가 터지고 찢어지면서 성난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검극을 코앞에 둔 천선은 놀랍게도,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했다. ‘뭔……’ 천선의 섬섬옥수가 재빠르게 올라온다. 손끝에서부터 손목이 창백할 정도로 흰 게 특징이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반응한 신체는 코 앞까지 다가온 강기를 받아칠 수 있도록 강한 힘을 뿜어냈다. 콰―앙! 머리가 울릴 만큼의 굉음이 터졌다. 동시에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면서 충격파를 만들었다. 그 힘의 여파는 파도가 되어 주변을 슥 훑었다. “꺄아앗!” 벽에 서 있던 기녀들이 충격파를 이겨 내지 못하고 날아가 바닥을 불썽사납게 구른다. 불행하게도 그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희미하게 자색을 띠는 검강과 눈부실 정도로 흰 백색의 장강이 마주한 채로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간다. “……?” 천선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화산파의 신공보다는 검극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무식한 공력에 대경했다. 입으론 신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머릿속에선 의문과 불신이 동시에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천선은 묘령으로 보이지만 실제 연령은 훨씬 많다. 화경에 오르면서 노화가 늦춰진 것도 있지만, 음살녀처럼 주안술과 색공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정기를 빨아들여 목숨을 빼앗은 남자들의 숫자만 해도 네 자릿수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실제로는 상천십좌와 동시대에 살았던 노파이며, 그만큼 쌓은 내공량도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암천회에 입회한 뒤로는 영약이나 정기 등을 끊임없이 지원받아 일반적인 수준을 넘겼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아무리 급하게 끌어 올렸다고 한들 상천십좌가 아니라면 대응할 수 없는 내공량을 받아쳤다. 아니 , 받아치는 걸 넘어서 밀어내고 있다. 그 사실에 경악했으나, 놀라고만 있지 않았다. “이익!” 오른손을 위로 쳐올렸다. 장강에 맞닿던 검강도 그 힘에 이끌려 방향을 꺾었다. 미간을 노리던 검극은 최초로 전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색의 벽을 전부 뚫지 못하였다. 힘을 급격하게 끌어 올린 천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과하게 힘을 써 내장이 저릿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격렬하게 부딪치던 강기가 방향을 틀면서 멈췄고, 그에 따른 충격파도 사라졌다. 그러나 안심하기도 잠시.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충격에 의하여 신체가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후웁!” 주서천의 오른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면서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인다. 천장을 향해서 위로 튕겨져 나간 검은 거짓말같이 멈추며, 이윽고 아래를 향해서 무섭게 떨어졌다.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내려오는 검을 본 천선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쌍장(雙掌)으로 받아치려 했다. ‘이걸 노렸구나!’ 급히 끌어올린 내공으로는 한계가 있다. 막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다음에 틈이 생긴다. 게다가 방금 전 일격 탓에 몸이 밀려나 비스듬하게 세워졌다. 정상적이라면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다. 모든 걸 쪼개 버릴 것 같은 기세를 뿜어내던 일검(一劍). 그 순간, 천선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 방금 전의 그 기세는 어디 갔는지, 검이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그 대신 보인 건, 왼팔을 뒤로 힘껏 내빼면서 주먹을 쥐는 모습이었다. ‘허초의 허초의 허초!’ 비수와 자하개벽과 내려 베기 전부 눈속임. 찰나 동안 무리했던 하단전을 쥐어짜 낸다. 독혈곡과 당가에서 얻어낸 독기를 끌어 올렸다. 배꼽 아래에서부터 용솟음친 기운은 가슴 부근의 천지혈(天池穴)을 지나쳐 천천(天泉)으로 향한다. 이윽고 곡택(曲澤), 극문(邸門), 간사(間使), 내관(內關), 대릉(大陵), 노궁(勞宮), 손가락 끝자락의 중충(中衝)까지의 수궐음심포경(手闕陰心包經)을 지났다. 전력을 걸었던 것처럼 보였던 오른손엔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전 감각을 왼손에 집중한다.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열기를 뿜었다. 녹안만독공의 일성은 독에 물들여 내성이 생기고, 이성은 독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삼성부터는 근접에 한해서 타격에 실을 수 있어 접촉만 한다면 중독된다. 어떠한 초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능히 목숨을 위협하는 주먹이 완성됐다. 슈슈슛! 허리와 어깨를 비틀면서 회전력을 가하고, 속력이 붙으면서 그 위력을 높인다. 시원스러울 정도로 터지는 파공성과 함께 떨어지는 그 주먹은 마치 철퇴를 연상시켰다. 어찌어찌 막아 보려고 하지만 아무리 초인적인 반사 신경과 무위가 있더라도 불가능하다. 손은 머리 위를 막으려 하고 있고, 신체는 비스듬하게 세워진 채로 서지도 눕지도 못한 채 허공에 떠 있다. 그리고 환영한다는 듯이 열린 복부 위로 주먹이 내리꽂혔다. 쿠-앙! 철퇴가 떨어졌다. 그 충격파가 고스란히 온몸으로 전해졌다. 정기로 매끈해진 피부가 꿀렁이고, 그 아래로 충격이 고스란히 퍼진다. “캬하악 …… !” 천선의 등이 활등처럼 굽어진다. 벌려진 입 사이론 피가 뿜어져 나와 안개처럼 흩어졌다. 손을 휘감았던 백색의 강기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비산했다. 콰아앙-! 굽어졌던 등이 다시 퍼진 순간, 굉음이 터지면서 최상충을 지탱하던 바닥이 ‘쩌적’ 하고 금이 갔다. 거미줄처럼 그어진 금은 얼마 가지 않아 전체로 퍼졌고, 천선이 있던 지면이 원형으로 꺼졌다. 꺄악!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녀들은 천장이 갑자기 꺼지자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구 층에 떨어진 천선은 부러진 척추뼈의 감각에 절망감을 맛보며 피를 울컥 토해 냈다. 화경에 오른 이후로는 한 번도 다쳐 본 적이 없다. 잊힌 고통을 재차 맛보자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개새……!” 오른쪽 어깨를 뒤로 젖히면서 주먹을 쥐는 주서천이 보였다. “아직 한 발 남았다.” 힘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여유 따위는 없다. 하나하나에 전력을 쏟아 부으며 주먹을 휘두른다. 그 눈동자에는 죽이겠다는 일념이 가득했다. ‘왜?’ 그 눈과 마주친 천선이 의아해했다. 저건 살의를 넘어선 무언가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원수를,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로 보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원념이 보였다. 혹시 모르는 사이 원한을 진 것일까? 그 의문은 풀기도 전에 철퇴가 재차 떨어진다. 훌륭할 정도로 깔끔한 선. 그 목적지는 더 이상 막을 게 없는 얼굴이었다. 주먹이 콧대를 살짝 누른 순간, 다시 한번 벼락을 연상시키는 굉음이 터지면서 구 층 바닥이 꺼졌다. “꺄아아아악!” 십 층 바닥은 중앙만 꺼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구 층이 전부 부서져 버렸다. 그 위에 있던 기녀들이 팔 층으로 떨어졌다. 팔 층에 있던 기녀들도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껴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그 먼지구름 속에서 기녀들이 기침을 토해 냈다. 연속된 주먹으로 인해 충격파를 받자 남화루의 기둥도 불안하게 끽끽 소리를 냈다. “……” 최상층 끝자락에 서 있는 음살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낯빛은 좋지 않게 창백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머리가 따라가지 못했다. 무음사자가 이리 강했나 하고 생각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먼지구름을 내려다보던 음살녀는 순간 섬뜩한 느낌에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검줄기가 지나갔다. 음살녀는 머리를 들어 검의 주인을 확인했다. “인독종……!” “감이 좋군.” 낯빛이 좋지 않은 움살녀와 다르게 강능초는 딱히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무뚝뚝했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흥, 미쳤다고 널 믿겠니?” 음살녀가 어림없다는 듯이 손바닥을 쫙 펼치자 장풍이 쏘아졌다. 강능초는 예견이라도 한 듯, 검을 크게 휘둘러서 마찬가지로 바람을 만들어내 장풍을 상쇄시켰다. 경지만 보자면 서로 엇비슷한 편이다. 초식 등의 무공 자체는 강능초가 우세했지만 내공 면은 음살녀다. “하오문주는 죽었다.” 강능초가 구멍이 난 바닥을 힐끗 쳐다봤다. “하오문은 이제 내가 이끈다.” “호호홋!” 음살녀가 허리를 크게 젖히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하오문주가 겨우 이런 일로 죽을 것 같아?” 낯빛과는 다르게 태도가 당당하자 강능초는 의외인 듯 눈을 껌뻑였다. “하오문주가 얼마나 괴물인지 너는 모를 거야. 천하가 문주에게 속고 있었어. 그녀는 사람이 아니야.” 자신감과는 다르게 무언가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 두려움의 종착지는 하오문주. 천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능초가 눈살을찌푸렸다. 음살녀가 말했던 대로 시야를 가렸던 먼지구름이 걷히면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하오문주였다. “제발 저 아랫것들로 만족해야 할 텐데……” 그녀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떨렸다. * * * 천선이 백옥처럼 흰 섬섬옥수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사나운 눈매가 눈에 띄었다. “감히, 감히, 감히!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을!” 듣는 것만으로 멈칫하게 만드는 분노였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보인다. 그 주변으로는 탄력을 잃은 피부가 보였다. 얼굴에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백색으로 물든 호신강기가 뿜어져 나와 막혀 버렸다. 아무리 대해와 같은 공력을 지녔다 할지라도 강기로 형성된 막을 부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천선이 막을 확장하면서 밀어내는 탓에 잠시 물러나야 했다. “지독한 년!” 주서천이 혀를 내두르며 욕했다. 척추뼈를 부러뜨리고, 내상을 입혔는데도 용케 호신강기로 대응해 마무리 일격을 피했다. “너!” 천선이 주서천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고 팔을 옆으로 쭉 뻗어 근처에 있던 기녀를 잡아했다. “꺄아아아……”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이제 막 높아지려던 비명이 멈추고, 목소리의 주인이었던 기녀가 순식간에 미라처럼 변했다. 새까맣던 머리카락도 노인처럼 새하얗게 변하고, 마치 오랫동안 굶은 것처럼 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동시에 천선의 얼굴도 변했다. 탄력을 잃고 주름졌던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걸 본 주서천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소수마공(素手魔功)……” 극음(極陰)이자 극마(極魔)의 마공! 마도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이름 높은 무공으로, 육대금공과 비견될 정도로의 악랄함을 지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