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32)
있지 않겠나?” “남화루의 화재도 신경 쓰인다.” “이미 조사를 해 봤으나 이렇다 할 목격자가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남화루면 눈에 띄는 곳에 있는데 목격자가 없다고? 눈에 뛸 수밖에 없었을 텐데?” “칠성사병이 외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탓에 그곳엔 하수들밖에 없었다. 흑도에서 뭘 바라나.” 절정, 아니 어쩌면 일류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목격자 없이 잠입할 수있다. “후우.”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인독종의 처리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대들도 알다시피 천선이 보통내기가 아닌 건 알고 있지 않나. 그런 그녀를 우리들의 눈을 피해서 살해한 것은 무위가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 눈에 뻔한 꼬리를 잡는다고 잡힐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를 끌어내기 위한 함정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천기는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다. 생각이 많은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추측한다. 그렇지 않아도 미증유의 사태로 인해 누군가 자신들을 알고 있고, 추가적인 정보를 얻어 내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사실 천선의 행방이나 죽음이 오리무중이 된 건 천선 스스로가 이번 정주 사태를 쉽게 생각하고 비밀스럽게 처리하려 했기 때문이었지만, 그러한 내부 사정이 있다는 걸 천기나 암천회가 알 리 없었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접근한다. 천선성의 업무는 분담하고, 대계의 준비는 중단 없이 진행하도록.” * * * 숭산(腐山). 오악(五嶽) 가운데 중악(中岳)이라 불리는 숭산은 보기만 해도 영험하여 성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그 봉우리는 오악 중에서도 가장 낮았으나 중원인들에게는 천하제일의 산이라 칭송받았는데, 그 연유는 태실(太室), 준극(峻極), 소실(小室)로 일컬어지는 봉우리 중 서쪽의 소실봉에 있었다. 준험한 산세를 따라 북쪽 중턱쯤 다다르면,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는 중원 무학의 본향이 나온다. ‘소림사!’ 천년 소림이라 불릴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소림사의 그 웅장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근을 아우르는 종소리는 잡념을 모조리 씻어 낼 정도로 청아하여 뭇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정도였다. 전란의 시대에서도 그 굳건함은 끝까지 유지되어 정파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버텼었다. 새삼 과거의 일을 회상한 주서천은 뱀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방문 행렬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남곡에서 볼일을 끝낸 뒤 곧장 소림사로 달려갔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무거운 짐을 전달하고 돌아가자. 낙 사매에게 금방 돌아온다고도 말했었고.’ 한 달이란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강호행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낙소월이 삐쳐 있을게 눈에 훤했다. 품 안에 썩혀 둔 반야신공의 무게가 천근처럼 무거웠다. 새삼 이의채의 괴로움을 느끼게 됐다. “이 줄에 서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구나.” 무림인, 그중 같은 구파일방 출신의 제자라면 무림인 전용의 줄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 산문으로 올라가자 아래에서부터 이어진 행렬의 끝과는 반대로 아무 줄도 없는 탁자가 보였다. 줄이 없는 곳으로 가자 방문록을 앞에 둔 승려가 주서천의 소매 안에 새겨진 매화를 힐끗 쳐다보곤 합장하여 인사했다. “소림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 사문과 성함, 그리고 별호와 방문 목적을 기재해 주시겠습니까?” 방문목적을 그대로 기재했다간 어떤 소란을 불러들일지는 뻔하다. 다행히도 무림맹주가 보내온 서신중에 만약을 위한 상황을 대비한 암호가 있었다. “고불경 (古佛經)……?” 승려는 방문 목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방문록의 이름과 별호를 보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화정검!’ 소림사의 제자라면, 아니 무림인이라면 최근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다시피 했다.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혈승의 비급을 불태운 장본인이 아닌가! 무엇보다 소림사의 입장에서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소림의 숙원을 풀 기회를 영영 없애 버린 장본인! “괜히 눈에 띄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조용히 들여보내 주시겠습니까?” 승려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대경했다가, 이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산문에서 무림인들을 받다 보면 이렇게 유명인이 종종 오곤 했다. 그들 중 몇몇은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등의 이유가 있어 조용히 방문하기를 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손님들을 대접하는 지객당(知客堂)으로 곧장 안내받았다. 신승(神僧) 혜만대사(慧晩大師). 소림사의 현 방장이자 상천십좌 중 일좌. 그 이름은 무림맹주와 비견될 정도였다. 석벽으로 되어 있는 방 안. 자그마한 불상이 중앙 끝자락에 있고 그 앞에는 누렇게 변질됐으나 그래도 잘 관리된 불경이 정리되어 탑처럼 쌓여 있었다. “어찌할꼬……” 혜만에게서 근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혈근경. 소림사의 숙원을 풀 수 있는 마공이 강호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지도 어언 반년이 넘었다. 원래라면 소림사 역시 비급 쟁탈전에 참전했어야 하나,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쳐서 구경만 해야 했다. 소림사가 나서게 된다면 쟁탈전이 아니라 정마대전 혹 정사대전 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인 만큼 은원 관계를 이리 간단히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불학을 공부하는 소림사가 대전쟁의 계기가 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치욕으로 남았던 숙원이라 할지라도 이념 그 자체를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 사정이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무림맹이 완승을 거두었으나, 정작 중요한 혈근경이 소림의 치욕을 풀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와 함께 한 줌의 재로 불타 없어졌다. 이후에 소림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는 두말할 것도 없었고, 결정을 내렸던 혜만도 난처해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무림맹주가 혈근경을 대신할 수 있는 수를 건네줘서 소란을 어찌어찌 진정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고, 좋지 않은 건 아직까지 그것이 소림사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백팔나한이라도 보내 가져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눈에 띄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저 믿고 맡기라는 무림맹주와 군사의 설득에 결국 이렇게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직 혈기가 넘치는 편인 손아래 배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특히나 혜자 배분의 바로 아래, 앞으로 미래를 짊어질 홍(洪)자의 목소리가 상당해서 난처했다. 얼마 전만 해도 제자와의 대화가 어찌나 골치 아프던지. ‘마도이세나 사도천이 아닌, 같은 구파일방의 제자로 인해 이리될 줄이야. 그러니 부디 반야신공을 한시라도 빨리 전달해 주시오.’ 혜만은 이때만 해도 설마하니 그 전달자가 혈근경 사태로 인해 문제가 됐던 매화정검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차가 차갑게 식은 지 한참이다. 일다경도 아니고 반 시진이 지났을 때 쯤, 고개가 절로 기울여졌다. 아무리 암호문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전달이 늦어도 너무 늦는다. 지금 자신의 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일각도 되기 전에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어야 한다. 그런데 달려오기는커녕 지객당에 온 뒤로 누구도 들어오지 않으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늦는다고 언질이라도 주었다면 모를까, 아무런 말도 없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소.”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쯤, 마침 그 순간에 맞춰 문이 열리면서 승려가 들어 왔다. 그러나 겉모습부터 예사롭지 않은 승려였다. 법복 차림인데도 확연히 보이는 근육들이야 소림사의 외가무공이 워낙 잘 발달되어 이상하진 않다. 다만 칠 척에 가까운 신장이나 험상궂은 얼굴을 보면 부처라기보다는 수라를 연상시켰다. ‘초절정인가?’ 무위를 가늠해 보니 그쯤 되는 듯 하다. 그것도 하위가 아니라 상위에 속했다. ‘응?’ 얼굴이 어디선가 낯익었는데, 누군지 떠올리지는 못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무승이 따라오라고 해서 먼저 발걸음부터 옮겨야 했다. 처음에는 팔대호원(八大護院)에 둘러싸인 방장실로 가나 싶었으나 가벼이 지나쳤다. 크고 작은 전각을 지나쳐 경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수록 마주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그동안 지나쳐 오면서 상당한 인사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동행하고 있는 승려 ㅣ의 배분이 높은 듯했다. 얼굴이 낯이 익은 걸 보면 전생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승려가 아닌가 싶어 기억력을 더듬어 갔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할 때쯤, 돌로 된 불탑들이 늘어진 숲을 지나 한적한 곳에 도착하자 승려가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봤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전란을 겪으면서 예리해진 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피부를 쿡쿡 찌른다. “매화정검, 주서천.” 승려가 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읊조렸다. “어째서 불태운 거요?” “예?” “혈근경.” 여태껏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 주지 않았던 승려가 몸을 돌려 똑바로 섰다. 얼굴에 묻어나는 그 감정이 분노는 아니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탐탁지 않게 여기는 느낌이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주서천이 뒷걸음질 쳤다. “그건 원래 소림사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소. 내 알기론 그대가 몰랐던것도 아니라고 들었는데, 알고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자리를 만들었지.” “알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전 이런 곳에 있을 때가……” “고불경, 반야신공을 말하는 거면 나도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도대체 뭐야?’ 반야신공의 암호명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다. 그 사실이 주서천을 더더욱 혼란케 했다. 반야신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자신을 이런 곳까지 불러 지난날의 혈근경에 대한 추궁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 문의 신공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해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오. 그러나 잘잘못은 따져야 하지 않겠소?” 얼굴이 점차 험악해졌다. “스님은 뉘시오?” “이런,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건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소승은 홍고(洪高)라 하오.” “……” 주서천이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디선가 봤다 싶더니, 신권(神拳)이잖아!’ 신권, 흥고! 홋날 신승을 이어 소림을 이끌 방장의 이름이다. 어릴 적부터 무공에 천부적인 자질을 보여 신승의 제자로 들어갔으며. 홍자 배분 중에서도 제일로 높다. 다만 정말로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전란에서 나한들을 이끌어 끝까지 버텼다가, 끝내 영웅들과 힘을 합하여 회주에게 치명상을 입힌 고수!’ 신승은 나이가 많아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전란의 시대 도중 열반에 든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소림사의 방장으로 추대를 받은 승려가 바로 눈 앞의 홍고였다. 참고로 신권이란 건 훗날 눈썹이 새하얗게 될 때 즈음에 얻는 별호로 지금의 흥고는 아직 중년이었다. “백보권승(百步拳僧)을 뵙습니다.” 주서천이 얼른 인사했다. 강호의 선배를 향한 인사이기도 하나,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다. 미래이자 과거, 전란의 시대에서 활약하여 여러 사람들을 구원한 영웅에 대한 예의였다. 홍고도 반장을 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낭패로군!’ 주서천이 속으로 혀를 찼다. 훗날 소림의 방장이자 상천십좌인 영웅을 만난 건 좋은데, 별로 좋지 않은 시기에 만났다. 사실상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필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