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37)
전부 손에 넣게 해 줄테니 복종하라는 말이었습죠.” 이의채가 말하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엔 그냥 미친놈인가 하고 돈만 받고 대화를 적당히 흘려듣고 쫓아 냈었다. “서, 설마 그자가 적림십팔채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의 입장에선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금의상단주 정도 되면 정말 별별 이상하거나 미친 사람이 자주 찾아 온다. 그중에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을 내보이며 기가 막힌 사업이 있다면서 천금을 달라는 이도 있었다. 값비싼 금품 등을 선물하고 상당히 기다렸는데도 이렇게 별별 이상한 용건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의채는 귀를 기울일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흘려들으며 내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천권성에서 보내온 사병.’ 주서천이 골치 아픈 듯 눈살을 찌푸렸다. 온 신경을 천선에 곤두세우느라 천권성일지도 모르는 접근을 그만 깜빡하고 잊고 있었다. ‘상왕이 제안을 들은 척도 안 하니 포기한 거군. 그리고 그걸 강제로 손에 넣으려고 움직인 건가.’ 암천회가 중원의 상단을 지배하여 자금줄로 이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부분 제안을 받아들이면 적절하게 거래 관계로 이용했었고, 그렇지 않으면 힘으로 굴복시켰다. 암천회가 전생에서 금의상단을 건드리지 않았던 건 대체할 상단이 얼마든지 있었고, 결정적으로 상단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였다. 금의상단이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이름을 떨치게 된 건 암천회가 준비를 끝내고 시작한 전란의 때였다. 전란 때야 암천회가 워낙 바빠 금의상단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후, 이거 여간 머리 아픈 게 아니구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건 예상할 수 없는 큰 흐름이야.’ 주서천이 말없이 생각에 잠기자 이의채는 불안한 듯 노심초사했다. 그로서도 주서천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거의 처음 봤으니까. ‘적림십팔채에 누가 숨어 있는지는 잘 모른다.’ 전란의 시대에서도 도적은 빠지지 않았다. 반대로 전란을 기회로 여기고 날뛰었다. 싸움이 끊이지 않은 덕에 무인들은 숫자가 나날이 줄어들었고, 그만큼 치안에도 신경을 크게 못 썼다. 도적들은 그 틈을 타서 노략질을 일삼았고, 훗날엔 관부까지 움직여 결국 멸망한다. 알고 있는 정보라곤 암천회에게 버리는 말 정도로 쓰인 정도였다. 전생의 기억 중에서도 그냥 전란으로 일어난 혼란을 이용해 여기저기서 노략질을 한 정도다. ‘아무래도 금의상단이 아직 힘을 기르는 중이란 약점을 이용해 곁에서 부추긴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제대로 된 추측은 어려웠다. “흑흣, 대협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뭐라도 잘못된 겁니까? 설마하니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건지요?” “그럴 리가요.” 주서천이 쓰게 웃으면서 이의채를 진정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었습니까?” “호위를 늘리긴 했으나, 아무래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인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표사나 낭인들을 대거 고용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늘어나는지라 돈이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닙니다.” “대대적인 토벌이 필요하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이의채가 환하게 웃으면서 주서천의 말에 동조했다. 확실한 방법은 문제가 되는 적림십팔채를 혼쭐을 내 주는 것.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와 드리기가 조금 힘듭니다. 약간의 무사들을 내어 줄 수는 있으나, 아무래도 각지의 화물을 지켜야 하는 만큼……” 무림맹이나 사도천조차 적림십팔채를 부담스러워하여 나서기를 꺼려했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걱정 자체를 하지 않았다. “조금만 도와 주시면 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정이 어려워 절 부른 것 아닙니까?” “과연, 대협이시옵니다! 척하면 척이지요! 이 소상, 대협의 천뇌(天腦)에 깊이 감복하였습니다!” 손바닥을 비비면서 씩 웃는 상인. 그야말로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소인배 악당이었다. 주서천은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좋아하는 이의채를 질린 눈초리로 쳐다보곤 생각에 잠겼다. * * * 적림십팔채, 중경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도적 무리들은 산과 들, 강 등 안 가는 곳이 없었다. 대부분이 삼류나 이류로 이루어진 오합지졸이었으나 흑도의 하오문처럼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래도 하오문보다 나은 것은 나름대로의 고수가 있다는 것이고, 채주들 몇몇은 천하백대고수였다.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주서천이 토벌대의 편성을 고민하는 동안, 소림사에서 있었던 일이 강호 전제에 퍼졌다. “반야신공이 소림사로 돌아왔다며?” “허! 반야신공이면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무공이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 찾았다고 하던가?” “듣기론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했다더군. 그리고 지금 장소 같은 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세.” “과연, 누가 찾았는지가 더 궁금하군. 무공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소림의 신공을 갖고도 욕심을 갖지 않다니. 어떤 멍청이인가?” “주서천!” “주서천? 매화정검 말이야?” 강호인들은 주서천의 이름을 듣고 놀라워했다. 대략 반년 전에 전쟁을 종식한 장본인 아닌가. 이후 활동이 뜸하더니 이렇게 또 이름을 날렸다. 한 사람이 일생에 이루기 힘든 공적을 둘이나 세웠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그야말로 대협이 아닌가!” 서책에서 나올 법한 영웅이 따로 없었다. 비록 지쳤으나 산화일장이나 되는 고수를 홀로 쓰러뜨리고, 혈근경을 불태워 전쟁을 끝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출신도 뛰어나며, 용모까지 준수하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사실상 소림의 은인이 됐다. 사람들은 이에 관심을 가지며 열광했다. 언제나 신진고수, 그것도 젊은이는 무림에서 주목을 받는 법이다. “매화정검이 직전제자이긴 해도 아직 대단하다 할 지위를 가지진 않았지?” “스승인 소유검 또한 외부에서만 활동하고 내부에선 어떠한 자리에도 있지 않다고 하더군.” “진전을 이을 것이 없다고? 뭐하고 있어? 어서 혼담 준비해!” 원래부터 주목받았던 주서천이었다. 안 그래도 높았던 인기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몇몇 중소 문파나 가문에서는 주서천을 사윗감 후보에 영순위로 올려 혼기에 찬 여인들을 준비시켰다. 도가의 적전제자라 할지라도 주요 지위가 없고 절기만 전수하지 않는다면 결혼이 가능하다. “칫!”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운이 좋았을 뿐!” “듣자 하니 어릴 때도 기연이 있었다며?” “영약 조금 잘 먹은 걸 가지고!” 그러나 사람들이 전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알이 뒤틀리는 게 사람이다. 하물며 모르는 이가 잘되니 온갖 시기가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가 이걸 노리고 혈근경을……” 소림사에서 나왔던 의심스러운 의견도 나왔다. 몇몇 이들은 대놓고 주서천을 깎아내렸다. 그렇게, 소림을 넘어 무림 전체에 주서천의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나흘 후, 주서천이 산동에서 준비를 끝냈다. “아니, 형님. 모진 사람은 왜 끌고 갑니까?” 공방에서 살다시피 하는 제갈승계가 질색했다. “일일부작일일불식(一 日不作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 도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냐. 앞으로 큰 싸움이 남았으니 힘 좀 빌려야겠다.” 제갈승계의 기관지술은 삼안신투의 비고나 흉마의 무덤에서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전에 있었던 죽통노나 다발화전처럼 별 힘을 들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병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병기가 필요하다면 사용법을 알려드릴 테니 그냥 가져가면 되지 않습니까.” 제갈승계가 불만이란 듯 툴툴거렸다. “최종 목적지가 비록 도적들의 소굴이지만 그래도 적림십팔채 아니냐. 중경에 박혀서 산 지도 제법 되었으니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흠, 그건 좀 관심이 가는군요.” 제갈승계가 턱을 매만지면서 눈을 반짝였다. 집, 아니 방 바깥에서 나가는 걸 지독히 싫어하면서도 기관만 연관되면 이렇게 눈빛부터 달라진다. “어차피 우리만 가는 것도 아니고, 너도 내공이 보통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 제갈승계는 과거 소환단을 복용했다. 그 덕에 상당한 내공을 소유하여 일반적인 수준은 넘었다. 다만 순수한 신체 능력이 그 정도인 것이지, 아직 초식 등의 무공 전체 수위는 상당히 낮다. “그러니까 얼른 준비나 해. 상단주의 애가 바싹 타들어 가고 었으니 늦어도 내일은 출발할 거야.” “저, 저……” “응?” 주서천과 제갈승계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아, 소저.” 무곡의 딸, 무선화였다. 안 본 사이에 더 건강해졌다. 눈에 띄게 좋아진 혈색을 보니 안심이 됐다. 다만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걱정스러워 보여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혹시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을까요?” “……?”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지?’ 무선화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는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호기심이 많진 않다. 가끔 금의상단의 지부에 들러 무선화의 소식을 들었을 때 별 특이사항은 없었다. 아직 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인근의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 정도였다. 산적 소굴을 들어갈 수준은 아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무선화가 걱정 어린 표정인 채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제갈 공자님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식사도 거르시는 분인지라……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가슴 위에 고이 모아진 손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듯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 “……?” 주서천이 두 귀를 의심하며 방금 전 말을 되뇌었다. 생각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순간 멍해졌다. “아니, 제가 애도 아니고 그럴 리 있겠습니까. 언제나 말하지만 무 소저는 걱정이 많아 탈이요.” “그렇지만 전에도 그리 말씀하셔 놓고 삼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셔서 핼쑥해지셨잖아요.” “그때는 새로운 기관을 설계하느라 어쩔 수 없었고, 굶은 건 내공으로 대신할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역시 믿을 수 없겠어요. 은공, 부탁이니 절 데려가 주……” “거길 어디라고 무 소저가 가십니까? 전 어르신에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 좀 봐주세요.” 제갈승계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고, 무선화는 계속해서 조목조목 따져 가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을 보고 있는 주서천의 입이 점점 벌어지더니 이윽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둘, 그렇고 그런 사이야?’ 무선화가 제갈승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범상치 않았다.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내처럼 보였다. “저, 혹시 그……?” 주서천이 결국 힘겹게 말을 꺼냈다. “승계와 무선화 소저께선 그렇고 그런……?” “……?” 제갈승계와 무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무선화였다. “어, 어머나.” 무선화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뭔 소립니까?” 제갈승계가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랍니다.” “허어.”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랐다. ‘아직’이라는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 제갈승계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사제 관계라고 오해하셨군요.” “하?” 주서천이 진심이나는 표정을 지었고, 무선화의 낯빛에 그늘이 끼었다. 제갈승계는 눈치 없게도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조금 거만한 자세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기관을 만들다 보면 가끔씩 무 소저께서 가까이 와 구경하고 가시더군요. 최근엔 기관지술에 대하여 가르쳐 드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형님 다음으로 기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신 분이지요.” 제갈승계가 어떠나는 얼굴로 코를 높이 세우면서 기관에 대해 잘난 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주서천은 그런 제갈승계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