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50)
창을 쥔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품 안을 파고드는 주서천을 막기 위해서 왼손으로 창대를 위로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힘껏 내렸다. 힘의 방향을 사선으로 향하게 했으며, 창대가 휘면서 그 반탄력을 이용해 좀 더 빠르게 올라왔다. “크하악!” 푸욱! 그러나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결국 오른쪽 가슴을 허용했다. 몸을 최대한 비틀었지만, 그래도 범위 안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호신강기의 전개도 늦어 막지도 못했다. 뒤늦게 뛰어올랐던 창도 목표를 잃고 멈춰 섰다. 공중에서 다시 잡지 않았다면 바닥에 내팽개쳐졌겠지만, 맹강의 자존심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맹강은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이라면 들지도 못하는 창을 한 손으로 낚아채 세웠다. “이런, 육, 시랄……!” 쿨럭! 맹강이 피를 울컥 토했다. “암천회의 도움을 받았나?” 주서천이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맹강이 몸을 움찔 떨었다. “한적한 시골의 산적이라면 모를까, 한때 군의 장수였던 무인이 적림 같이 눈에 띄는 곳에 숨을 수는 없다.” 맹강은 본연의 실력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양가창법을 사용하면서도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을 보면 혹시라도 정체가 밝혀질 걸 두려워했을 것이다. “탈주병이야 많지만, 그게 장수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관에서 널 가만히 두지 않을 터.” 장수, 즉 무관인 게 분명했다. 이런 신분이라면 함부로 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애초에 조용히 살아간다, 라는 전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 파벌이라면 방해꾼을 드디어 쉽게처리할 수 있다며 좋아할 것이고, 같은 파벌도 뒤가 구린 비밀을 발설할 것을 두려워해 죽기를 바랄 것이다. 황제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방에 숨어 있다 반역을 꾀하지 않을까 싶은 불안 탓이었다. 실제로 역사 속에 그런 전례가 있었다. “천기인가?” “흐, 흐……” 맹강이 끓는 목소리로 실소를 흘렸다. “우습구나, 우스워……” “뭐가?” “천하가…… 손바닥 위에…… 있다고 잘난 듯이 떠들더니…… 그게 아니니 웃을 수밖에……” 역시 암천회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적림십팔채는 몰라도 총채주는 관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겼으니 그 상으로…… 알려 주마. 아는, 건…… 많지 않다. 그저, 그 지긋지긋한 북방의 오랑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 나고 싶어 도움을 받았을 뿐……” 쿨럭! 상태가 좋지 않은지 말이 중간중간 끊겼다. 안색도 파리하고, 피도 드문드문 토했다. “대단, 하긴…… 하더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얼굴도 고쳐 주고…… 또……” 말을 할수록 그 목소리가 낮아졌다. 알고 싶은 것이 더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크하하하…… 천하가, 속고 있구나. 암천회는 물론이고, 무림까지. 화산의 괴물에게 속고 있었어……” 맹강은 있는 힘을 쥐어짜 내듯이 외쳤으나, 그 목소리는 주서천에게 밖에 닿지 않았다. 맹강과의 격전에서 승리한 주서천은 그의 등 위에 발을 올려놓고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그만!”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찌나 큰지 메아리가 되어 녹룡채를 넘어 산에 퍼졌다. 나뭇가지 위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소동물이 깜짝 놀라 도망쳤다. “……!” 토벌대와 적림도도 잠시 멈췄다. 이제 막 목을 베려던 무인도 목소리에 반응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몇백 명의 무인들의 이목이 모조리 한곳으로 몰렸다. 맹강의 시신 위에 서 있는 주서천이었다. “서, 설마!” 근처의 적림도가 시신을 알아본 듯 떨리는 목소리로 경악했다. 그 파장이 주변의 동료들에게 퍼졌다. 반면 토벌대의 표정은 환해졌다. 상당히 지쳐 있었는지 거칠게 심호흡하고 있음에도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총채주는 죽었다! 괜한 반항 말고 항복해라!” 주서천의 말이 여러 사람의 표정을 변화시켰다. “말도 안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채주가 힘껏 부정했다. 여태껏 온갖 기적을 보여 줬던 총채주다. 지금껏 누구도 보여 주지 않았던 전술을 응용하였고, 관아의 토벌대나 정파의 고수가 쳐들어와도 간단히 물리쳤다. 맹강이 있는 한은 영원히 일인자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일인자 못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허, 헛소리다!” 사람 같지 않았던 총채주가 패배, 그것도 약관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에게 죽은 것이 믿기지 않았다. “현실에서 눈 돌려서 괜한 헛짓하지 말자.” 주서천이 맹강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확인시키려는 듯 시신을 발로 차 얼굴이 보이도록 했다. “와아아아아-!” 맹강의 얼굴이 보이자 토벌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총채주가 죽다니……?” 부채주가 충격에 빠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뇌에 속하는 적림도도 마찬가지였다. 챙그랑. “하, 항복!”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대협을 몰라뵈었습니다!” “저에겐 고향에 홀어머니가 있어……” 맹강의 죽음에 녹룡채의 산적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여기저기서 병장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천하제일의 산채라 불리던 녹룡채의 최후였다. 승리는 토벌대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 승리에 취해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녹룡채의 토벌은 성공했지만, 적림의 토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녹림칠채와 수림구채가 남았다. 대호채와 녹룡채가 차례대로 함락됐으니 그 소식을 듣고 분명 지원을 보낼 게 분명했다. 이미 지칠 때로 지친 토벌대는 더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다. 설사 도적들이라 해도 싸운다면 필패다. 그래서 전투가 끝나자마자 급한 대로 금창약 등으로 상처를 치료한 뒤, 후퇴의 준비를 했다. “사문에 상관없이 셋으로 나눠 움직입니다. 뇌옥에 인질들이 갇혀 있을 테니 전부 풀어 주시고, 함께 떠날 준비를 시키십시오. 투항한 적들을 포승으로 묶어 대신 넣어 두십시오. 저항하면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재물은 어떻게 할까요?” “금으로 한두 푼 정도만 챙기세요. 그 외에는 이동예 방해되니 놓고 갑니다.” “으헥. 그 많은 것들을 말입니까?” 제갈승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우린 지쳐 있고, 인원도 적지 않아. 게다가 인질 중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부상자부터 우선해야 해. 그리고 안 그래도 준험한 산세를 따라 움직여야 하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해. 식량도 최소로 한다.” “어쩔 수 없군요.” 아쉬워하는 건 제갈승계뿐만이 아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토벌대원의 눈빛에 미련이 묻어났다. 주서천은 그들이 혹시라도 욕심에 눈이 멀어 사고라도 치면 어쩔까 싶어 못을 박았다. “아무리 금은보화라고 한들 사람의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약간의 욕심으로 인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어깨에 재화가 아니라 목숨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사형……?” 낙소월이 감격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토벌대도 그 말에 적잖이 동화된 듯 아쉬워하면서 생각을 고쳤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전생에도 오늘날처럼 비스름한 일이 있었다. 적의 진지를 습격해 승리했는데, 그때도 창고에서 상당한 금은보화를 발견했다. 당시에도 적의 지원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후퇴해야 했으나, 지휘관을 비롯해 전원이 재물에 눈이 머는 바람에 창고를 털게 됐다. 그 뒤로 곧장 진지에서 물러났지만, 결국은 시간을 소모해 적의 추격을 받게 됐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재물의 무게 탓에 속도가 느려져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고, 부대의 사 할 이상을 잃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재물들을 버리고 겨우 살아남았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적이 근방에 다가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예!” 토벌대의 눈이 달라졌다. 얼굴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남아 있었으나, 그 대신 사명으로 빛났다. ‘대단해.’ 제갈수란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합류를 뒤늦게 해 주서천의 제대로 된 활약은 보지 못했으나,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민은 길지 않고 판단은 일체의 흔들림도 없으며 현명하였다. 사람들이 혹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았고, 강호의 협의를 중시하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술처럼 느껴지고, 무엇보다 그 지휘는 최전선의 장군처럼 능숙했다. ‘휴, 봐 둔 게 많아서 다행이다.’ 주서천도 대대적인 지휘는 거의 처음이었다. 전란의 시대에서 여러 전장을 숱하게 경험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명령받는 입장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러 곳을 전전했던 만큼 수많은 영웅이나 사문의 인재들에게 보고 들은 것이 있었고, 이후에 찾아올 평화의 시대에서 책을 통해 지식을 쌓았다. “부채주.” “예.” 부채주의 얼굴은 엉망이 됐다. 눈은 한쪽이 부풀어 오르고, 코는 뭉개졌다. 이도 몇 개가 비었다. 패배가 확실해지자마자 도망치려 했으나, 주서천에게 붙잡혀 먼지나게 맞았다. “시간이 없다 보니 내가 좀 급하다. 사람이 급하다 보니 성질이 좀 안 좋아져.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몇 가지 물을 건데, 뜸 들이지 말고 바로바로 말했으면 좋겠어. 혹시나 거짓말을 하면 어디 한두 군데 부러질 거야. 아, 말은 해야 하니 입은 안 건들게.” “감히 누구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물어만 봐 주십시오, 대협.” “총채주가 평소 드나들던 곳이라거나 혹은 무언가 숨겼을 법한 장소 알고 있으면 바른대로 말해 봐라.” “넵.” 시간이 없어서 기부터 죽여 뒀다. 공들인 노력 이 있는지 알아서 불었다. 조금이라도 뜸을 들이거나, 혹은 거래를 하려 들면 다소 심한 폭력을 행사했다. “이쪽입니다.” 부채주가 순순히 안내했다. 참고로 혹시 모를 기관에 대비하여 제갈승계와 동행했다. 안내받은 곳은 채주실의 옆방이었는데, 주로 여자들을 가둬 놓고 온갖 더러운 성욕을 풀던 곳이었다. 좋지 못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신은 없지만 핏자국이 상당 부분 보였다. “나가 있어라. 또 도망쳤다간 어떻게 될지 알지?” 주서천이 부채주에게 턱짓했다. “무, 물론입니다.” 부채주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형님,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문이 닫히자마자 제갈승계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냐?” 주서천이 신기한 듯이 물었다. 기관의 기초를 공부했으나 이상하다는 건 느끼지 못했다. “……?” 제갈승계는 이해가 안 가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 보면 알지 않습니까? 방의 구조부터 이상합니다.” “됐다. 물은 내가 잘못이지.” 천재의 부류도 여럿이 있는데, 제갈승계는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자신이 이해하는 걸 당연시하고, 그걸 모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건 더 최악이다. 기초적인 것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두루뭉실했다. “자, 보십시오. 이걸 침으로 누르면……” 제갈승계가 정중앙의 벽 면으로 다가가 품 안에서 꺼낸 침으로 꾹 눌렀다. 드르륵!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가운데 부분의 벽이 움푹 들어갔다가 옆으로 밀리며 비밀 공간이 나왔다. 손가락으로 두들긴 것도 아니고, 본 것뿐인데 비밀 공간을 알아챘다. 어떻게 알아챈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천재란 것들은!’ 주서천은 한숨을 푹 내쉬며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무엇을 숨겼을까?’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대부분 뒤가 구린 법이고, 뒤가 구린 사람은 중요한 걸 숨겨 두는 법이다. 특히나 적림도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