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54)
만큼 웃는 얼굴이 정말로 멋있다. 어떤 말을 해도 멋있어 보였다. “무림이, 천하가 아닌 형님이 절 인정해 줬습니다. 남들에게 쓸모없고 머저리 같다고 평가되던 제가 천재라고, 기관의 가치를 알아주셨습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성장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꿈이다. 응원받기는커녕 제지까지 받았었던 공부였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시종들조차 별난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가족은 물론이고 무림, 아니 중원의 모두가 천시하던 지식과 공부였다. 바보 같다고 욕을 먹었다. 그러나 어느 날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화산의 인재라 불리는 소년이었다. 연령은 비슷하나 그 능력이나 행동은 전혀 달랐다. 그런 사람이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며, 노력해 달라고 했다. 그대로만 노력해 달라고. 지략이건 진법이건 무공이건 간에 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던 걸 하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전 믿습니다.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믿습니다. 형님이 믿어 달라 하면 믿겠습니다. 무림이, 중원이, 천하가 형님을 믿지 않아도 전 믿겠습니다. 칠 년 전에 절 알아봐준 것처럼 믿고, 함께하겠습니다.” 가슴이 뭉클했다. 언제나 ‘기관! 기관!’이라고 외쳐 대던 최악의 천재가 저렇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다. 평소의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감동도 배가 되는 것 같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맺혔다. “이 소상도 믿고 따르겠습니다!” 이의채가 언제나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평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언제나 비굴함으로 가득했던 눈은 온데간데없고, 얼음처럼 차가우며 수면 아래처럼 잔잔함이 있었다. “아니, 설사 거짓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누구 말이라고 안 믿겠습니까. 힘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대협을 위해서라면 손실도 마다치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모든 걸 잃지 않게만 해 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헤헤헤.” ‘과연, 상왕인가.’ 주서천은 순간 긴장했다. 이의채는 돈과 관련될 때만 되면 이렇게 가끔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금의(金意). 금에 의의를 두다. 돈에 의의를 두다. 그게 훗날 상왕이라 불릴 이의채의 전부다. 이의채는 오직 황금이자 ‘이익’이라는 신념하에 행동하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게 삶이고, 죽음이며, 철학이요, 전부였다. 그에게 도중에 배신당할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정당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누구보다 믿을 수 있다. 그 신뢰 관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양날의 검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지불한 대가가 사라지면 어찌 될지 모른다. 물론, 금의상단이 망하지 않는 이상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전생에서의 금의상단은 이의채가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 쌓아 올렸지만, 현대에서는 여러 도움이 있었다. 귀주에서 무림맹과 거래할 수 있도록 소개시켜 준다거나, 삼안신투의 유산이 있었다. 이 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금의상단은 없었을지 모른다. 최근의 적림 일도 마찬가지다. 전부 합치면 그 빚의 대가는 아무리 갚아도, 갚아도 부족하다. ‘하지만 앞으로 받을 도움으로 인해 금의상단이 혹시라도 망하기라도 한다면 관계는 변한다.’ 황제나 관부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망할 리는 없으나, 암천회가 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준비해도, 몇 발 앞서가도 방심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 상단이 망할지 모른다. 만약 그 일로 인해 상단의 전부를 잃는다면, 그동안의 도움이나 지원을 대가의 지불로 보고 여태 쌓아온 신뢰나 관계가 초기화될 확률이 높았다. ‘잊어서는 안 돼 상왕은 의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실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걸 유의해야 해.’ 처음부터 이걸 알고 접근했다. 도리어 이런 사람이기에 앞으로의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상단이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이의채는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된다면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전생처럼 정파와 사파, 마도이세와 암천회를 넘나들며 장사를 할지 모른다. 그중에는 자신도 포함되리라. “나 역시 진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소.” 무곡이 팔짱을 낀 채로 담담히 말했다. “그저 은인을 따를 뿐이오.” 딸의 목숨을 구해 줬을 때, 그리 맹세했었다. 무곡의 원동력이자 살아가는 의의는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은의(恩義)일 뿐이고, 이는 절대적이다. “농담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진담일 줄은 몰랐네.” 당혜의 목소리가 주서천의 상념을 깨뜨렸다. ‘이 여자에게 말하는 건 고민했지만……’ 당혜에게 이야기할지 말지를 가장 고민했다. 낙소월, 제갈승계, 이의채, 무곡. 이 네 사람은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설사 모른다 할지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가 있었다. 하나 당혜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도 잘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첫 만남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이후에도 복수심과 원한을 지닌 채 찾아와 기회만 노리지 않았는가. 그래도 그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동안 지내며 불신할 정도는 아니라고 느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다양한 도움을 받았다. 궁귀검수에 관한 일도 비밀로 해 줬다. 혹시 몰라 유령을 붙인 적도 있었지만, 딱히 수상한 움직임은 보인 적 없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그녀의 유능함이었다. 독만 보자면 중원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전문가고, 무공이야 후기지수니 두말할 것도 없었다. 비록 당가의 혈족답게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나, 그래도 판단력이 없어질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 외에도 의술을 할 줄 안다거나, 정보에 눈이 밝거나, 강호의 경험도 상당하다는 등 유용한 부분이 많았다. ‘하루에 독설을 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을 만큼 성격이 더럽지만, 능력 면으로는 최고다.’ 무공으로나 두뇌로나, 심지어 사천당가의 직계 혈족이라는 것까지 합하면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 이 정도의 여인이 전생에서 제대로 활약조차 하지 못하고 전장의 이슬로 사라진 게 어이없었다. “믿어?” “그럴 리가.” 당혜가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신이 그동안 숨겨 온 게 한둘은 아니잖아. 이것도 어떤 것의 일환일 지도 모르는 일인걸. 무엇보다 당신의 말을 제외하곤 근거가 부족해. 그런 걸 섣부르게 믿는다면 그거야말로 머리를 의심할 일이지.”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예상한 반응이었다. 도리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앞의 세 명이 조금 이상한 편에 속했다. 그들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었으나, 낙소월이나 당혜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낙소월은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당혜의 눈초리를 보면 반이라도 믿는 지가 의문이다. “그러니까……?” 당혜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야. 어차피 아직 내기로 묶여 있는 몸이니까.” 당혜는 내기를 떠올리며 기분이 상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그거면 충분해.” 주서천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낙소월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야.” 품 안을 뒤적거리고 한 권의 책을 꺼냈다.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네요?” “굳이 말하자면 맹강의 일기 비스름하다고 말해야 하나.” 맹강은 관의 눈을 피하려 암천회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협력을 구했을 뿐, 믿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무언가 속셈이 있는 건 아닐지, 혹은 관에 자신을 팔아넘기진 않을지 의심하다 보니 그 관계는 언제나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또한 도망치거나 반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그 ‘준비’란 것이 그건가요?” “그래. 적림 내부에 침투한 간자부터 시작해서 암천회와 관련된 표국이나 상단의 목록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암천회를 적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보물이었다. 어떠한 영약이나 법보도 비교될 수 없다. 이 정보는 어떠한 것보다 귀중하다. 괜히 맹강이 철저한 관리까지 하면서 숨긴 게 아니었다. “과연, 있을 만도 하군요. 암천회 입장에선 약탈하지 말아야 할 표국이나 상단이 있을 테니까요.” 이의채가 두툼한 턱 살을 매만지며 눈을 빛냈다. “그쪽은 상단주께 맡기 겠습니다. 관련된 정보를 전부 넘길 데니, 그들이 가진 걸 전부 빼앗아 주십시오.” “흐흐흐, 얼마든지요.” 불어날 재산에 벌써부터 눈을 빛내는 이의채였다. 주서천은 종이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이 중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정보는 바로 이것, 비밀 분타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마치 무저갱처럼 그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하.” 빛 한 줌 새어 나오지 않은 암흑 속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썩 기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하하!” 웃음소리가 점차 커져 갔다. “으하하하하!” 커져 가던 웃음소리는 이윽고 주변을 뒤흔든다. 소림의 사자후조차 작게 들릴 정도의 크기였다. “……” 천기는 피를 울적 토하려던 걸 참았다. 웃음소리에 담긴 공력만으로도 가벼운 내상을 입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천기만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발이 담 아니 피가 나도록 뛰어다니는 도감부장을 제외하곤 칠성사의 모두가 숨죽인 채로 부복했다. 배꼽 아래의 단전이 찌릿찌릿하며 아파 온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으나 전부 참아 냈다. 만약 지금 어떠한 소리를 내거나, 몸을 떨기라도 해서 주인을 거스르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재미있지 않느냐.” 암천회주가 웃음을 뚝 그쳤다. “어떻게 그렇게 사사건건 방해할 수 있는지 궁금하도다.” “죽여 주십시오.” 쿵! 쿵! 쿵! 천기가 지면 위로 머리를 몇 번이나 부딪쳤다. 어찌나 강한지 두 번 부딪칠 때 피가 쏟아졌다. “어허, 그만해라. 본 회의 소중한 머리인데, 그 머리를 다치게 하면 쓰나.” “회주님의 아량을 생각하지 못한 점 역시 죄송하옵니다. 부디 이 못난 놈을 죽여 주십시오.” 실패했다. “못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본 회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고작 도적의 우두머리가 죽은 것뿐인데 말이야.”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직접적인 타격은 없으나, 실패했다. 최초는 제의를 거부하고, 상계에서 실권을 쥐려는 금의상단을 무너뜨려 권리와 이익을 빼앗으려 했다. 그래서 적림도에게 맡겼고, 겸사겸사 주서천의 제거도 맡겼다. 그러나 실패했다.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심지어 협력 관계였던 적림총채주가 사망하면서 적림십팔채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통제가 불가능해졌다. 후에 협력 관계를 쌓는다고 해도 그건 나중의 일이다. 후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장기짝으로 준비했는데, 잃어버렸다. 다시 쓰려면 시간이 걸린다. “주서천, 주서천, 주서천이라……” 암천회주가 훼방꾼의 이름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선 불쾌하다는 감정이 묻어났다. “당가의 계집이나 쫓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송곳니를 숨겨 둔 호랑이였단 말이지. 흥미롭군.” 최근에 일어난 강호의 사건, 사고에는 전부 주서천이 껴 있었다. 그의 행보는 확실히 놀라웠다. 아직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거늘, 한 사람이 평생 이루기 힘든 업적을 서너 개씩 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최전선에서 군부의 장수로서 활약하고, 무림인이 된 맹강을 단신으로 박살 냈다. 이제는 더 이상 경시할 수 없는 문제다. 그동안 준비한 전쟁과 적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