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58)
제갈승계나 소령이 순식간에 당할 수도 있었다. 들키지 않도록 내공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청각뿐만 아니라 여러 감각을 활성화하고 드높였다. 중간에 두꺼운 벽이 있어서 방해했지만, 그래도 화경의 고수답게 너머에 있는 숫자를 대충 파악했다. ‘십오에서 이십!’ 개양성 외에 다른 소속도 있는 모양이었다. 제일 높은 가능성을 잡자면 천기성이었다. 이 비밀 분타에 있는 기관의 조정 등을 하려면 기관지술을 전담하는 천기성밖에 없었다. ‘좋아. 들키기 전에 친다!’ 이대로 기회를 재면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제갈승계의 무공이 낮다보니 금방 들킬 게 분명했다. 콰앙!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기분이 아닐까. 박살 난 석벽의 잔해 사이로 보이는 얼굴들이 그러했다. 눈동자를 최대한 굴려 칠성사병의 인원수를 파악하는 데 힘쓴다. 정확히 열여덟의 숫자다. “누구 ……” 칠성사병이 외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토끼 눈처럼 동그래진 눈동자를 보아하니 정체를 알아챈 듯했다. “주서천!” 아니나 다를까 주서천의 이름이 지하에 울렸다. “어떻게!” 의아해하면서도 몸을 움직였다. 머리를 밀어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대머리가 박도를 휘둘렀다. 꽤나 패도적인 기세지만, 무섭진 않다. 침착한 마음가짐을 유지한 채 중검으로 받아쳤다. “으악!” 칠성사병의 일도(-刀)는 깔끔하고 빨랐다. 그러나 습격으로 인해 순간 주춤해 버려 평소와 같진 않았다. 그걸 놓칠 주서천이 아니다. 검을 비스듬하게 올려쳐서 간단히 튕겨낸 뒤 곧장 하단으로 내려 벤다. 외관만 보자면 평범한 검 같지만, 그 위력은 전혀 아니다. 배나 되는 무게가 실려 대검과도 같았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검이 두개골을 박살 내고 그 안의 뇌까지 쪼개면서 가랑이까지 이어졌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의 잔인한 광경이었으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후퇴! 재정비!”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석벽이 무너지면서 생긴 먼지가 시야를 가려 섣불리 싸울 수가 없었다. 보통이라면 갑작스런 습격에 당황하여 어떻게든 반격하려 할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처음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방 침착하고 냉정해졌다. “어딜!” 주서천이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행백변으로 보법을 밟았다. 검에 실은 무게를 지우고, 몸을 가볍게 한다. 그리고 지척에 있는 칠성사병에게 접근해 흉부를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으아!” 칠성사병이 도망치던 와중에 발걸음을 멈추고 반격에 나섰다. 검기를 싣고 전력으로 받아 내려 했다. 스윽. 다급함이 보이던 그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검을 받아 내려고 휘둘렀으나 맞지 않았다. 검극을 흔들어서 잔상을 만들어 내는 허초에 속아 넘어갔다. 착시가 사라지고 진짜배기가 나타나 흉부에 구멍을 냈다. “컥!” 단말마의 비명. 나머지 인원들은 뒤로 물러나 진을 쳤다. “난 니들이 정말 싫어.” 반응 한 번 귀신같이 빠르다. 웬만한 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최적화된 움직임을 보인다. 수적으로도 차이가 날 텐데, 자만하지 않고 뒤로 물러난 다음 최적의 환경부터 만든다. “주서천……” 남은 인원 중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눈 부근에 낀 주름살을 보니 꽤 나이가 있는 듯 보였다. 남들보다 작은 편의 체구는 그렇다 쳐도, 몸을 보니 선은 가늘고 근육은 적다. 무인은 아니다. ‘천기성인가.’ 암천회는 무인이 아니어도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다면 얼마든지 입회할 수 있다. 무인이 아니라 문인처럼 보인다면 팔 할은 천기성이요, 나머지는 간자를 심어 두는 천권성이다. “강소 분타주냐?” “……” 아무도 반용하지 않았다. 그저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기만 했다. ‘예상했다?’ 그들의 반응을 보니 이 상황을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가. 암천회도 맹강을 믿지 못했군.’ 내부의 인물들도 믿지 못해 옥형성이라는 기관을 만들어 감시하고, 수상한 낌새를 보이면 척살하는 단체다. 단순히 협력 관계인 사람을 신뢰할 리 없었다. ‘그나저나 함정을 잔뜩 준비해 놓고, 뒤에 칠성사병까지 배치해 둬? 이런 변태도 또 없지.’ 방금 전까지 거쳐 간 함정들은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부담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설사 화경이라 해도 내공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많지 않다면 함정들을 막아 내려다가 내공의 소모로 당했을지도 모른다. 강기라면 만년한철로 된 방 안에 갇히지 않는 이상 두부 가르듯이 전부 베어 버릴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공이 무한할 경우다. 강기란 게 내공의 소모가 극심해서 물 쓰듯이 쓸 수 있는 게 아니 다. “어떻게 그리 돌아올 수 있었던 거지?” 강소 분타주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돌아오는 건 불가능하다. 섣불리 벽을 건드렸다간 발동하고 만다. 분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관이었다. “저승사자에게 가서 물어봐라. 그럼 친절히 알려 줄 거다.” “입만 살았구나, 주서천.” 강소 분타주의 안광이 불타올랐다. “급습에 놀라긴 했지만, 거기까지다. 앞질렀다 생각했다면, 그건 크나큰 착각이다.” 입가가 비틀어 올라갔다. “걷든, 뛰든, 날든.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아니, 부처조차 우리의 손바닥 위에 있다.” 광오했다. 그러나 그 광오함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말로 천기성이냐?” “……?” 강소 분타주의 입가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고, 눈가의 주름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껏 어떠한 말에도 반응하지 않던 칠성사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요가 파도처럼 퍼져 휩쓸었다. “아무래도 몇 가지 재주 믿고 큰소리 떵떵 치는 모양인데, 그게 패인이 될 거다. 하기야, 천기 성격에 오만방자한 놈을 중요한 곳에 배치하지는 않지.” “…뭣!” 강소 분타주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복면으로 입을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입 부근이 깊게 파인 걸 보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뭘 놀라고 그래, 암천회.” 주서천이 히죽 웃었다. “부처님 손바닥 위라고 하지 않았나?” 목줄기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졌다. 시뻘건 혈선이었다. 우측 끝에 있던 칠성사병이 옆으로 쓰러진다. 주서천이 아니었다. 소령이었다. 처음에 석벽을 무너뜨린 뒤, 먼지 구름에 몸을 숨기며 호흡을 멈추고 존재감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주서천이 시선을 끄는 사이 몰래 접근하여 칠성사병의 목 동맥을 슥 그었다. “주서천은 생포해라!”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열네 명이 된 칠성사병이 움직였다. 각각 열 명과 네 명으로 흩어졌다. 그중 열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주서천은 눈동자를 굴려 나머지 넷을 찾았다. 넷이 둘로 나뉘어져 소령과 낙소월에게 붙는다. 석벽 안쪽에 숨어 있는 제갈승계는 내버려 두었다. ‘다행이다.’ 제갈승계의 존재감을 눈치 못 챈 건 아니다.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차라리 이러는 편이 좋았다. 전력을 분산시켜 제갈승계를 노렸다면 꽤나 성가신 싸움이 됐을 것이다. 마음을 편히 놓은 순간, 정면으로 무려 여섯이나 되는 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여섯 개의 검격 전부 보통이 아니다. 검극에서 느껴지는 기를 보니 최소 절정 정도의 수준으로 보였다. ‘흡!’ 숨을 힘껏 들이쉬고, 검에 무게를 실었다. 기의 순환은 느리지만 안정적이고 굳건했다. 막을 형성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검기를 평소보다 두껍고 넓게 펼친 다음 수비에 힘썼다. 채재채챙! 금속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앞에 있는 여섯의 눈에서 이채가 서렸다. “전부 막아 내다니!” 한두 개 정도 쳐 내고 피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부 막은 것도 모자라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매화검이 아니야?’ 암천회에서 주서천에게 척살령을 내렸던 만큼, 그에 대한 정보, 주로 무공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주로 회피하여 환검이나 변검, 혹은 산검을 쓴다 해서 그에 알맞게 대응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셋 다 전부 아니다. 화산의 검중에서 중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합!” 주서천이 짧은 기합과 동시에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에 실린 압력이 바람처럼 불어 전방을 밀어냈다. 여섯 명이 검을 갈무리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나머지 넷이 풍압을 뚫고 들어왔다. ‘어딜!’ 중검을 거두고 태세를 변환하여 검을 내지른다.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려 허초를 만들어 냈다. 넷 중 셋이 허초에 속아 넘어가 빈 곳을 찔렀다. 하나가 제대로 된 검격을 받아쳤다. “쿨럭!” 그러나 공력의 차이가 심했다. 주서천의 내공을 밀어내지 못하고 내상을 입었다. 입에서 피를 토했다. 파밧! 검이 섬광을 토해 낸다. 검격이 연거푸 쏟아졌지만, 막아내지 못했다. 심장 부근이 꿰뚫리며 구멍이 났다. 하나를 처리한 다음 허초에 넘어간 셋이 자세를 틀려고 한 게 보였다. 주서천이 얼른 발을 굴렀다. 쿠웅! 천근추의 수법. 만중검을 더해 그 무게가 늘어났다. 살짝 구른 것에 불과한데 지면이 움푹 파였다. 자세를 틀려고 했던 셋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삐끗할 뻔한 발을 제자리로 돌리느라 시간이 걸렸다. 주서천의 손에서 검이 번개같이 출수했다. 쐐―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함이 느껴졌다. 만중검이 사라지고, 드디어 장기가 튀어나왔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다. 검기가 화려한 빛줄기를 토해 냈다. “크아아악!” “커허억!” 자세를 바로잡으려던 칠성사병들이 결국 균형을 완벽히 잃었다. 피 안개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하고 있어!” 강소 분타주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암천회의 무력 집단인 개양성이다. 그런데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했다. ‘어떻게 저리 강하지?’ 설사 재능이 넘친다고 할지라도, 열아홉이면 경험이 부족해 실전에선 전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온갖 실전에서 구른 칠성사병이 농락당하고 있었다.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었다. 파앙! 공기가 터졌다. 대기가 둘로 갈라졌다. 한곳이 아니다. 사방에서 소리가 났다. 아까 전에 나가떨어졌던 여섯 명의 칠성사병이었다. 그들이 다시 일어나 전력을 쏟아 냈다. 한곳을 노리고 절정의 고수들이 공력을 전부 쏟아 내니 대기에 분포된 기가 터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끝이다!” 강소 분타주가 신난 듯이 외쳤다. “그래?” 주서천의 안광이 불타듯이 빛났다. 단전에서 팔을 따라 검으로 향하던 기의 순환이 방향을 바꿨다. 배꼽 아래에서 용솟음 친 내공은 몸 곳곳을 타고 회전했고, 이윽고 몸 외부로 막을 형성했다. “호신강기!” 누군가가 경악 어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째애앵-! 절정의 고수 여섯이 낸 전력도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순도 높은 강기의 막 앞에선 소용없었다. 호신강기가 나타나자마자 대기를 몇 조각으로 나누었던 검기와 도기가 순식간에 소실됐다.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복면 너머에서 놀란 목소리가 귀를 통해 고막에 닿았다. 휘리릭! 옆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자세히 보니 비수다. 그러나 목표는 자신이 아니었다. 푹! 코앞의 칠성사병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의 관자놀이에 비수 하나가 꽂혔다. 멈춘 듯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 주서천이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저 멀리 칠성사병의 목을 허벅지 사이에 끼고 부러뜨리고 있는 소령이 보였다. 왼손은 적의 목을 감싸 안고 있었고, 오른손은 쫙 펼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