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62)
있습니다, 장로.” 하오문의 복주 지부장이 비굴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장로?’ 머리를 기울이게 만들 말이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복주 지부장에게 서찰을 건네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호!’ 변장의 대가를 수소문할 때의 일이다. 사도천에 잠입하게 할 수 있도록 강능초에게 협력을 요청했었다. 노인을 찾아 준 것만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오문의 장로로서 사도천에 방문하라고?’ 하오문과 사도천은 그럭저럭 밀접한 관계다. 가끔씩 장로가 찾아가 귀중한 정보를 팔아넘기기도 했다. 사도천주도 하오문의 정보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되도록 건들지 말라고 명령을 내버려 두었다. 직접적이진 않으나 간접적으로 비호하고 있었다. ‘하오문의 장로, 궁귀검수인가.’ * * * 사도천의 영역은 절강에서부터 시작해 복건, 강서, 광동, 호남, 광서다. 그중 호남과 광동, 광서가 그 중심지다. 사도천 본부도 이곳에 있었다. 신분이 준비됐으니, 사도천 본부로 가면 인근의 하오문이 알아서 돕는다고 들었다. 복주에서 남서 방향으로 말을 타고 꾸준히 이동했다. 도중에 복건곡에 들러 유령들을 포섭했다. 이동 중 가끔씩 얼굴을 보고 놀랐지만, 이제 그것도 익숙해졌다. 착용감도 면구를 착용한 것을 잊을 정도로 편안했다. 과연 변장의 대가다운 실력이었다. “너 이 새끼, 방금 쳐다봤냐?” “왜 갑자기 시비야? 그래! 쳐다봤다, 어쩔래!” “죽여 주마!” 말을 타고 삼사일을 이동해 광동곡에 도착해 역시 평소 하던 대로 유령들에게 얼굴만 보여 주고 떠났다. 또 며칠을 달려 본부 인근의 마을에 도착했다. 사파의 중심지답게 떠들썩했다. 마을에서 툭하면 싸움이 일어났다. 거리에 시체가 굴러다녀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정파에 비해 사파에는 무림인의 숫자가 많을뿐더러, 하나같이 성질이 거칠어 항상 온갖 사고가 났다. 이런 곳에서 조금이라도 만만해 보이면 얕보여 시비가 걸린다. 인피면구 덕에 그건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지, 가끔 누가 싸움을 걸어왔으나 압도적인 무위로 패서 내쫓았다. “어서 오십시오!” 약속된 장소에 찾아가니 하오문도 몇 명이 반겼다. “내가 누군지 아나?” “문주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로.” “장로를 뵈어 영광입니다.” 흑도인들이라 그런지 전부 아부를 하기 바빴다. 강자 앞에서 약자는 숙이고 굴복하는 법. 기분 나쁠 정도로 아부를 해 금의상단의 이의채가 절로 떠올랐다. “이번에 전달할 것은 일반 문도에게 맡길 수 없어 직접 왔다.” “헤헤헤, 그렇군요.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지 계속 눈치를 봤다. “현재 사도천의 상황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설명해 봐라. 온 김에 너희들 능력을 시험해 봐야겠다.”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지만, 세세하게는 못 들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법이니, 혹시 몰라 물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오문도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눈을 반짝이면서 성심성의껏 알려 줬다. 주로 호남과 광동을 아우르는 정보였고, 그 외에 사도천 본부와 관련된 정보도 있었다. “장로께서도 알다시피, 칠검전쟁 이후 내부가 시끄럽습니다. 특히나 정파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매화정검의 등장 이후로 사도천주가 예민해져 있지요.” 순식간에 종료되어 버린 칠검전쟁에서 득을 본 건 정파뿐이었다. 사파와 마교는 실밖에 없었다. 사도천주는 이러한 결과에 분노했다.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는데 약간의 이득조차 얻지 못했다. 안 그래도 그 전에는 폭섬도문의 멸문으로 빈자리를 채우려 엉망인 상황이었다. 그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쟁의 결과까지 좋지 않으니 화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피바람이 불며 시체가 늘어났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내부의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특히 난봉꾼 담리백이 심상치 않습니다요.” 담리백이 나오자 주서천의 눈빛이 변했다. “정파에서 후기지수들을 다수 배출해서 그런지, 사도천주가 사파의 젊은 무인들을 좋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아들인 담리백도 마찬가지지요. 얼마 전에는 수하들 앞에서 처음으로 망신을 줬답니다.” ‘허 , 설마 이렇게 역사가 흘러갈 줄이야.’ 알고 있는 미래가 완전히 틀어진 건 아니었다. 계기는 달라도 역사 자체는 유사했다. 수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치욕을 시작으로 아비에게 반기를 들게 되니까. “게다가 얼마 전에 녹룡채의 토벌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일로 정파의 위상이 높아진 탓인지 사도천주의 심기가 굉장히 안 좋아졌습니다. 결국 주변과의 불화로 이어져 내부가 엉망진창이랍니다.” ‘정말이지 쉬운 일 하나 없군.’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발생한다. 왠지 가시밭길만 걷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내 행동으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기다니!’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무림을 구하려고 노력한 건 좋은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건 아직까지 소문입니다만, 사도천주에게 불만이 있는 주요 인사들이 담리백에게 붙고 있답니다. 내부가 정말 여러모로 개판이니, 장로께서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헤헤헤. 아랫것이 뭘 더 자세히 알겠습니까.” 이것만이 아니라 그 외의 잡다한 정보도 얻었다. 생각보다 수확이 많아서 물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유용한 정보라 상당히 괜찮았다. “훌륭하군. 내 문주에게 잘 말해두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장로!”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됐다. 등허리에 장궁을 챙기고, 화살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누가 알아볼 것 같아 애검인 태아도 소령에게 맡기고 그럭저럭 쓸 만한 철검을 구해 허리에 찼다. “너희는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복건곡에서 유령 넷을 데려왔다. 소령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었지만, 데려갈 수는 없었다. 사도천의 본부에는 고수들 천지니 아무리 존재감을 숨긴들, 금방 들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호남의 남부, 광동의 복부. 이 경계선에 사도천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사파의 중심이니만큼 크고 넓다. “하오문에서 장로가 왔습니다.” “장로? 별일이군.” 상천십좌. 사파의 지도자, 사도천주가 미간을 좁혔다. 하오문의 수뇌는 모습을 안 보이는 걸로 유명하다. 몇 번이나 불쾌한 심경을 보여도 그들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어차피 흑도의 무리니 딱히 이렇다 할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겁이 많은 게 특성이지 않나. “얼마 전에 하오문의 권좌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랬지. 인독종이라 했나.” 흑도에선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할지 몰라도, 무림 전체를 보면 아니다. 잡배의 두목에 불과했다. “예. 전대에게서 권좌를 빼앗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방식이 여러모로 다른 듯 싶습니다.” “이제야 제 주제를 아는군. 전대는 겁도 많고 건방졌지. 마음에 들어. 적당히 지낼 곳은 내주도록.” 정보 자체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의뢰했던 정파와의 분쟁 지역에 대한 정보였다. 새로운 하오문주가 인사 겸 신뢰를 얻으려고 주요 인사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리고 이 소식은 아비를 적대하기 시작한 아들에게도 전해졌다. “하오문의 장로라……” 담리백이 흐응, 하고 턱을 매만졌다. “이건 기회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슥 나타나 말했다. “기회라면?” “그대의 아비는 전부는 아니나 상당 부분의 정보를 하오문을 통해 얻고 있소. 그들을 회유하거나 혹은 협박한다면 눈은 몰라도 귀 정도는 가릴 수 있을 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흑도의 방파 따위가 그 정도 역할을 하겠나?” 담리백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흑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 정도의 인식밖에 되지 않았다. “하오문을 업신여기지 마시오. 확실히 그들 개개인은 별것 아니오. 그러나 정보력만큼은 다르지. 사내란 응당 술과 여자 앞에선 약해지는 법이니까. 거지들보다 정보의 양은 부족해도, 질은 상당히 좋소.” “흠……” 담리백은 그다지 귀담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사도천주가 되면 자주 이용할 곳. 미리 만나서 충성을 받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 담리백이 어깨를 으쓱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안광이 핏빛으로 불타올랐다. “그것보다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 다녀와야겠군. 오늘은 어떤 걸로 입가심할까?” 음산한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칼날 바람이 불었다. 입김이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의 추위였다. 머리를 위로 드니 한낮인데도 어두웠다. 잿빛으로 물든 구름이 몰려와 중원 전체를 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눈송이가 보였다. 열아홉 살에 보는 첫눈이었다. 사도천에 잠입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대접 자체는 나쁘진 않았지만, 비웃는 눈초리는 잔뜩 받았다. 장로라 해도 하오문이니 당연한 취급이었다. “우리의 주인이 그대를 만나길 원하오.” “주인……?” 처음에는 사도천주인가 싶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의 인물이 만남을 요청했다. ‘담리백?’ 안 그래도 만나서 의중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 머리를 굴려 보니 답이 금방 나왔다. ‘과연 , 사도천주에게서 하오문을 떨어뜨릴 셈인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다만 그 광오한 난봉꾼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의문이었다. ‘하오문이라면 흑도라고 신경도 쓰지 않을 터인데, 개인 면담까지 하다니…… 적어도 그놈 생각은 아니야.’ 분명 누군가 담리백의 곁에 붙어 있을 것이다. ‘좋아, 일단 가 보자.’ 상대가 사도팔문일지 암천회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정체를 제대로 숨겨야 하고, 대화를 이끌어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한 뒤, 머리 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면서 역사의 인물인 담리백을 만나러 갔다. “어서 와라.”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려한 의자에 앉은 담리백이 보였다. 다만 예상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옷차림을 보면 남자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담리백. 얼굴은 멀쩡하군.’ 현생도 마찬가지지만, 전생에서도 온갖 악명을 달고 살아서 마두처럼 생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목구비는 선명하고 곧게 뻗은 짙은 눈썹은 인상에서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천하백대고수. 소천주(小川主) 담리백! “만나서 반갑다. 본좌가 담리백이다.” ‘본좌? 지랄을 하네.’ 피식하고 웃으려던 걸 참았다. 담리백은 마치 무림이 손안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눈빛이나 말투 하나하나에서 오만함이 묻어났다. 등허리는 등받이에 딱 붙이고, 턱은 살짝 들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의자도 계단 위에 있었다. 보아하니 담리백의 집무실인 모양이었는데, 이렇게 꾸민 걸 보니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고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짜증이 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소천주께 감히 이름을 댈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하오문의 장로로 기억해 주십시오.” “소천주? 됐다. 담 어르신이라 불러라.” 과거에는 별호를 자랑스러워했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그의 욕망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않았다. ‘가지가지 하네.’ 이제 막 마흔 살 밖에 되지 않은 주제에 어르신이라니, 지랄도 정도껏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은 인내해야할 때였다. 비위를 적당히 맞춰 주면서 대화에 임해야 했다. 호칭을 정정하려고 머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