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73)
이 사이로 바람 소리를 내면서 신음을 흘렸다. 오격권자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부님께 사죄해라.” “서천아, 난 이제 됐다.” 보다 못한 유정목이 나서서 주서천을 말렸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불초제자가 사부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주서천은 스승이 다가오자마자 허리를 낮춰 인사했다. ‘제자였어? 그러면 화낼 만하군.’ ‘잠깐, 소유검 의 제자라고?’ ‘설마……?’ 유정목은 소유검이라는 별호로 불리며 무인으로서도 나름대로 명망이 있으나, 중원 전체에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달랐다. “주서천!” “매화정검, 주서천이닷!” 천하백대고수! 영웅은 언제나 관심이 따르는 법. 매화정검의 스승이 소유검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뭣? 주서천이라고?” “정파의 영웅?” “소문대로 화경이었구나!” 그제야 사람들의 의문이 풀렸다. 다들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화산의 명예를 드높인 장본인이 아닌가. 이 중에는 어떻게든 그에게 딸을 이어 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쯧쯧쯧!” “아무래도 오격권자가 사람을 잘못 만났구먼.” “소유검의 제자가 매화정검이란 걸 몰랐던 모양이군.” 주변의 분위기나 말이 확 바뀌었다. 태세 변환도 이 정도면 천하백대고수급이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오격권자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쓰러진 등곽우를 불쌍하게 여겼다. ‘으으으’ 등곽우는 동정 어린 시선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성이라도 내뱉어서 닥치게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주서천이 아직 버티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이게 뭔 꼴이더냐!’ 어쩐지 약관치곤 강하다 싶었는데 주서천이었다. 운이 지지리도 안 좋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그보다, 오격권자. 괜찮으십니까?” 유정목이 등곽우에게 다가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 고운 마음씨에 주변 사람들이 감동했다. ‘과연, 소유검.’ ‘그 마음이 비단보다 곱다고 하더니, 정말이로구나.’ ‘암, 저래야 영웅을 가르친 스승이지.’ ‘이렇게 된 거 내 아들을 소유검에게 맡겨 볼까?’ 주서천이야 아직 제자를 받을 시기가 아니라서 불가하지만, 유정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그러한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속가제자라도 영웅과 사형제 간이면 더할 나위 없다. “소, 소유검 대협. 죄,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한다.’ 등곽우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머리가 차가워지니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아무리 무림맹 소속 고수라 할지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화가 나서 그걸 넘어 버렸다. 남의 문파 앞에서 소란을 일으킨 건 그렇다 쳐도, 제지를 무시하고 그 제자를 죽이려고 했다. 주서천의 엄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도 사죄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 다. 잠시 흥분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지요. 저야말로 혹여나 제 제자가 손속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어 죄송하군요.” “손속이 과했던 것을 사죄드립니다, 오격권자.” 주서천이 유정목을 따라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네놈이 사죄하지 않았더라면 죽기 직전까지 됐을 것이다.’ 하마터면 속마음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많이 다치셨군요. 누가 이분을 영장로님께 데려다주지 않겠느냐?” “저희가 하겠습니다.”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화산 제자들이 나섰다. ‘쌤통이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린 것처럼 속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문이 대놓고 무시 받은 게 열받았는데, 주서천이 나타나 그 이상의 복수를 해 줘서 기뺐다. “오늘 일어난 소란 탓에 혹여나 불쾌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불만이 있으시거나 피해를 입으셨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누구도 유정목의 말에 토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방금 일어난 소란을 보고해야 하는지라,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정목이 부드럽게 미소 짓곤 목례했다. 과연 소유검. 미소를 보자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 * * 유정목온 주서천과의 재회를 기뻐하기도 전에, 방금 전 일어난 소란에 대해 보고했다. 처음에는 무림맹 소속 고수의 뺨을 후려쳤다는 소식에 질겁했다가, 자세한 사정을 듣고 안도했다. 절차상 장본인에게도 사정을 들어야 해서 화산오장로 지검옹 학송이 등곽우를 찾아서 물어봤다. 등곽우는 당한 일을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유정목의 보고대로라고 솔직히 고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잘못한 것을 알기에 잡설을 덧붙이지 않았다. ‘제기랄, 얼른 화산을 떠나야겠군.’ 얼굴이 왕밤처럼 부어서 어딜 돌아다닐 수도 없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굴욕까지 보이지 않았는가. 얼른 치료를 받고 무림맹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한편, 주서천은 유정목과의 재회를 느긋이 보내고 있었다. “어째 매해 보는 느낌이로구나.” 유정목이 후후,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주서천이 면목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수선행이란 건 하산한 뒤 몇 년 동안 강호를 유람하다 돌아오는 건데, 어째 자신은 툭하면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뭐라 하진 않았다. 워낙 세운 실적이라거나 경험이 남들의 십 년 정도로 많고 뛰어 났으니까. “뭐, 이렇게 가끔씩 쉬러 오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장문인께서도 허가했으니 괜찮단다. 마음 편히 있다 가거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정말 안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그런가요?” 키라도 컸나 싶어 머리를 문지르며 확인해 본다. 유정목은 제자의 그 모습이 귀여운지 쿡쿡 하고 옅게 웃더니만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정말 여러 업적을 세우지 않았느냐. 가끔씩 나가던 친목회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요즘 날 찾는 사람들이 많단다. 주로 너의 이야기를 하더구나.” 유정목은 제자의 성장에 자랑스러워 했다. “청출어람이라 하더니만, 네가 나보다 낫구나. 하기야, 어릴 적부터 그랬지.” “아닙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제가 있었겠습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 유정목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꾀죄죄한 얼굴. 흙투성이인 피부. 경계와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이 자신을 올려다봤다. 어린 주서천이다. 그 어린아이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다.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정파의 영웅으로 불렸다. 자랑스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 눈물을 흘렸다. “장하다, 내 제자.” 얼마 뒤 십이월이 지나 일월이 됐다. 주서천도 약관, 스무 살이 됐다. 화산에 오자마자 장 사형제와 낙소월을 만나 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매화검수가 되기 위한 폐관 수련으로 당분간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오격권자 등곽우는 치료를 받고 무림맹으로 되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유정목에게 찾아가 사죄를 했다. 유정목은 언제나처럼 선하게 미소지으며 괜찮다고 용서해 주었고, 등곽우는 안도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무례를 용서해 주지 않았더라면 여러 곤란한 일이 있었을 테니까. “주인님, 주서천이 화산에 있다고 합니다.” “뭐하나! 당장 떠날 채비 하지 않고!” 매화정검 주서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이제 없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화산에 몰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많은데, 이젠 아예 포화 상태였다. 볼일 하나 보려면 이틀은 기다려야 했다. 손님이 많아지니 그만큼 인력도 많이 들었다. 아예 근처 마을에서 사용인 공고를 올려 잔뜩 고용했다. 식비라거나 그 외의 비용도 많이 들었다. 화산의 재력이 풍부하지 않았다면 진작 거덜 났다. 손님들의 공양도 있어서 어찌어찌 손해는 보지 않았다. “주 대협을 만나 뵈려면 어찌해야하오?” “내 매화정검께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 “일전에 매화정검께 도움을 받은 태원장주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소.” 방문 목적에 ‘주서천’이라는 석 자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세 자릿수는 됐다. 한두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리 많으니 주서천도 기겁하면서 수련을 핑계로 전부 거절했다. “주 대협을 어떻게 뵐 수 없을까요? 부탁드릴게요.” “아, 안 됩니다!” 미인계까지 동원돼서 젊은 제자들만 고생했다. ‘부럽구나.’ ‘여인들에게 이리도 인기가 많다니!’ ‘허, 하나같이 예쁘장한데, 전부 주 사제에게 시집을 갈 목적으로 왔다는 것이 정말인가. 대단하군.’ 상가건 무가건 간에 어지간한 명가에선 아직 약혼을 올리지 않은 여아들을 화산으로 보냈다. 혹시라도 호감을 보이면 좋지 않겠나. 그를 사위로 얻는 건 천군만마를 등에 업는 것과 다를 것 없었다. “화산에 미녀들이 모인다는데?” “그래? 사내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꽃에는 곤충이 찾아오는 법. 그 소식을 들은 사내들이 화산을 방문했다. 졸지에 화산이 만남의 장, 혹은 관광지로 변모한 덕에 인근의 마을도 대박을 맞았다.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레 시장이 활성화하고, 또 장사를 위해 상인들의 방문도 잦아졌다. 이의채는 이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전부터 객잔이나 전장 등 여러 사업체를 세워 돈을 쓸어 담았다. 한편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주서천은 연무장을 찾아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음, 유명해진 건 좋지만 나쁜 점도 있군.’ 주변에서 보내오는 존경의 눈길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이 많은 건 확실히 성가신 일이었다. 공용 연무장을 찾으면 구경꾼이 절로 모여드니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수련할 만한 곳이 없나 찾아 스승과 절벽 등반을 했던 곳을 방문했다. 주서천은 대성한 무공을 제외하고 정리해 보았다. 자하신공과 자하검결은 여전히 변동 사항이 없다. 각각 팔성과 제삼식에 머물러 있다. 일월신궁은 사성이고, 녹안만독공은 삼성이다. 유은비도와 유령보가 사성. 그리고 신행백변이 천권과의 결전에서 칠성으로 올랐다. ‘그리고 만중검이 사성.’ 사도천 행에 큰 도움이 됐던 무공이다. 그러나 이번에 전력을 내면서 한 가지 흠을 발견했다. ‘육체가 무게를 버텨야 해서 내력의 소모가 크다.’ 만중검은 양날의 검이다. 무게를 늘려 파괴력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몸에 부담이 온다. 자칫 잘못하면 근육이 파열될 수도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내공을 소모해서 대신 막아 줘야 했다. 검법을 펼치고 몸을 움직이는 데만 해도 내공이 소모되는데, 거기에 무게를 지탱하느라 더 든다. 과소비도 이런 과소비가 없고,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다른 무공을 찾아 배우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 흠을 고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만중검과 함께 습득했던 철포삼이 떠올랐다. 철포삼은 외공 무공으로 마치 철갑을 두른 것처럼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효능을 지녔다. 이 힘이라면 내공의 소모 없이도 만중검의 무게를 버티리라. 그래서 당분간 철포삼 위주로 수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련 방법 참 무식하기 짝이 없구나.” 외공답게 수련은 지극히 간단명료했다. 내공을 쓰지 않고 단단한 물체를 두드린다. 이게 끝이다. 그 이상 그 이하의 것도 없었다. 단계가 나뉘어져 있었으나 강도의 차이였다. 예를 들어 나무부터 시작해서 돌을 친다거나 하는 수준이었다. 저잣거리에서나 나오는 수련법이다. “하라는 대로 해야지.” 시험 삼아 나무를 후려쳐 봤다. 쿵! “이런” 생각해 보니 환골탈태를 했던 걸 잊어 먹었다. 환골탈태는 근육이나 골격을 바꿔 주면서, 동시에 피부의 단단함 정도도 조금은 올려 준다. 괜히 신체 개조가 아니다. 그래도 덕분에 수련 과정을 넘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