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79)
“당가!” “다행이군!” “살았어!” 당가를 확인한 점창파의 안색이 환해졌다. 한편 사원의 꼭대기. 대리석으로 된 제단 앞에 선 사제는 아래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공포가 아니다. 한계를 넘어선 분노로 인해 몸이 저절로 떨렸다. 혈압이 올라가며 눈이 벌게졌다. 뿌드득.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지팡이에 금이 갔다. 목에 걸린 뼈 목걸이도 파르르 떨면서 소리를 냈다. “감히……” 사제의 분노는 용암처럼 부글부글 들끓었다. 노기에 반응하듯 시커먼 아지랑이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바닥을 기었다. ‘큰일이다.’ ‘사제께서 분노하셨다.’ 호위전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쓸모없는 것들!” 사제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위엄 어린 목소리가 남만의 대수림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의 분노에 전사들이 곧장 반응했다. 몸을 움찔 떨고, 두려운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감히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게 내버려 둔 것도 모자라서 먹이까지 놓쳐? 이 버러지들아!” 머리에 열이 뻗어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악을 쓰듯이 욕설을 내뱉으며 전사들의 무능을 지적했다. 그러나 식인 부족의 어떠한 전사들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는커녕 두려워했다. “됐다! 내 직접 지휘하겠다!” 사제의 눈에서 녹색의 광채가 흘러나왔다. “중원의 무림인들이여! 남만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똑똑히 알려 주도록 하마!” 사제가 오른손에 쥔 뼈로 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무려 육 척이나 되는 길이였는데, 소재가 전부 사람의 뼈였다. 신기한 것은 그 색이 전부 검었다. 굳이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만 봐도 기분이 나빠졌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솟아서 무척 꺼림칙했다. 파앗! 지팡이의 끝, 두개골에서 불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점점 퍼지더니 사원 전체를 뒤덮었다. “크, 아, 앗!” “캬하아앗!” “우오옷!” 남만의 전사, 식인 부족이 빛에 반응을 했다. 정확히 말해선 피부 위의 문양이었다. 시커먼 빛이 닿자마자 문자인지 그림인지도 모를 문신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는데 무척 기이했다. “크아아아아!” “크아앗!” 아까 전의 묘한 괴성은 없었다. 그 대신 이성을 상실한 것처럼, 잔뜩 흥분한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우르르르! 천지가 뒤흔들렸다. 지진이 일어난 게 아니다. 정확히는 땅이 아닌 대기가 흔들리는 게 맞았다. 사원을 감싸 안 듯 퍼지던 불길한 빛은 백오십 가량의 식인 부족에게 스며들어서야 확산을 멈췄다. 사원의 아래, 이상 현상을 목격한 중원인들이 동요했다. “허어! 기괴하구나!” 사람의 힘으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염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했다. ‘과연, 남만의 주술.’ 주서천도 조금 놀라기는 했다. 그러나 전란의 시대 암천회가 주술까지 동원한 적이 있어 익숙했다. 물론 이 정도 규모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제의 주술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조심하십시오! 감정이 마비되어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겁니다!” 남만의 책을 읽다 보면 식인 부족처럼 주요 부족들에 대해서는 제법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중에는 단연 주술에 대해서도 있었다. “아마 고통도 모를 것이니, 동귀어진의 기세로 덤벼들 거요. 그러니 주의하고, 또 주의하시오!” “당신, 실은 남만인 아니야?” 당혜가 산공독의 해독을 막 끝내고 어이없어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다양한 책을 읽도록 하자.” 주서천이 당혜의 말을 받아치며 백오십의 식인 부족과 마주 봤다. 그에 비해 이쪽의 전력은 열세였다. “고맙소, 독봉.” 단하성의 눈이 예리해졌다. 그 뒤로 해독을 끝낸 점창파의 무인들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끌어 올렸다. ‘점창의 전력이 보통이 아니라고는 들었지만……’ 당염이 단하성을 비롯한 점창파의 무인들을 보고 감탄을 흘렸다. 여태껏 산공독으로 제한이 걸렸다면 감각이 둔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데 전혀 그리 보이지 않았다. “적, 백오십.” 단하성이 당가의 무사에게 철검을 건네받았다. “아군, 육십.” 주서천이 검을 고쳐 잡곤 살짝 웃었다. “적구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주서천과 단하성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적이.” 당가, 이십칠. 점창파, 삼십이. 오십하고도 구, 그리고 주서천까지 합해 육십 백오십의 식인 부족 전사들과 대치한 수색대였으나 그 사기가 낮기는커녕 높기만 했다. “야만족 놈들!” “뭔 사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없다!” 점창파는 감금된 것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각자 당가에게 건네받은 검을 들고 적의를 내보였다. 몇몇은 이곳에 오기 전 임시 진지에서 습격을 받아 사형제를 잃기라도 한 것인지 복수로 활활 타올랐다. “수색대를 셋으로 나눕니다! 이십!” 주서천이 앞장서서 지휘에 나섰다. 당가와 점창파가 군말 없이 명령에 따랐다. 세 개의 조로 나눠 각각 주서천, 당혜, 단하성이 조장을 맡았다. “목표, 정상!” 주서천이 사원을 가득 메운 불길한 기운에 대응하듯, 기세를 맹렬하게 불태웠다. “가자!” 두두두두! 육십의 무인들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 많은 숫자가 움직이는데도 보법 탓에 발걸음 소리는 적었다. “크아앗!” 식인 부족 측에서 괴성이 터졌다. 살육과 광기에 뒤섞인 목소리였다. 그들의 이성은 더 이상 남지 않았다. 백오십에 이르는 전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사원의 위와 옆에서 덤벼 오는 것은 장관이었다. “어딜!” 당혜가 왼팔을 쭉 뻗으면서 비단검을 날렸다. 손목에 걸린 얇은 줄이 직선을 그리면서 식인 부족의 목을 노렸다. 단검이 푹 하고 정확히 목에 명중했다. “캬르륵!” 그러나 식인 부족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의 정맥을 끊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멧돼지처럼 돌격해 왔다. 당혜는 미간을 찌푸리곤, 손목을 틀어 줄을 빙글 돌려 식인 부족의 목을 감아 힘을 줬다. 숭덩. 보통의 줄이었다면 끊어졌겠지만, 어지간한 인간의 힘으로는 끊거나 잘라 낼 수 없다는 천잠사(天蠶絲)다. 끊어지기는커녕 전해져 오는 힘을 튕겨 낼 정도의 튼튼함을 지녔다. 식인 부족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이제 겨우 하나를 죽였다. 아직 적은 수두록했다. 당혜가 비단검을 회수한 사이에 식인 부족이 달려들었다. “아가씨!” 호위 무사인 원대식이 얼른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당혜는 그에게 오지 말라는 손짓을 한 뒤,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날아오는 밀림도를 최소한의 움직임 만으로 간단히 피해 냈다. “크룩!” 전사에게 이성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전투에 의한 판단력은 평소의 단련 덕에 잔존해 있었다. 비록 본능밖에 남지 않았어도 적이 자신의 공격을 피한 뒤 어떻게 공격을 이을지 알고 있었다. 전사가 몸을 휙 돌려 밀림도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확실히 주술의 영향인지 힘의 세기나 속도가 올라갔다. 그러나 당혜는 당황하지 않고 일장을 날렸다. 퍼억! 식인 부족 전사가 복부에 손바닥을 맞고 멈췄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무적은 아니다. 당가의 자랑인 적련독장이 침투해 근육과 신경을 마비시켰다. 그 독이 이윽고 혈맥을 타고 뇌와 심장까지 번지면서 목숨을 끊어 버렸다. “난 됐으니까.” 당혜가 턱짓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호위 무사로서 신경 쓰이는지, 그다지 멀리 가지 않고 당혜의 근방에서 식인 부족을 상대했다. “점창의 힘을 보여 줘라!” 단하성이 흐릿해졌다가 나타났다. 순간적인 움직임만큼은 제일이라는 탄현신법(彈鉉身法)이었다. 식인 부족의 밀림도가 애꿎은 허공만 벤다. 그리고 점창칠공자의 손에서 사일검법(射日劍法)이 펼쳐졌다. ‘일수초현(日輸初現)’ 식인 부족의 시야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사람의 육신이 아니라, 검날이었다. 푸욱! 도저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빠르기. 이름답게 쏘아진 검은 무시무시한 찌르기를 보였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사혈을 노리는 정확함이었다. 식인 부족의 전사가 혈을 찔려 즉사했다. “캬아앗!” “죽어!” 그사이에 셋이나 되는 식인 부족이 덤벼들었다. 단하성은 또다시 탄현신법을 펼쳐 잔상을 남기고 사라진 뒤, 사일검의 초식을 이어 찌르기를 쏘았다. 파바바밧! 눈부신 빛줄기가 쏘아졌다. 광기 어린 기세로 돌진하던 전사들이 연이은 찌르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죽어랏!” “정창의 힘을 보여 주마!” 활약하는 건 단하성만이 아니었다. 점창의 다른 제자들 역시 무공이 뛰어났다. 장문인 직전 제자에게만 허락된 절기인 사일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혀를 내두르는 쾌검이었다. “당가! 고개 숙이시오!” “흐억!” 그리고 세 개의 조로 나뉘면서 당가와 점창이 뒤섞이자 즉흥적이지만 서로 합을 맞춰 도왔다. ‘점창이 괜히 실전 무학으로 이름이 높은 게 아니구나.’ ‘즉흥적이지만 이렇게 맞춰 줄 수 있다니!’ ‘ 대단하군.’ 당가의 무사들은 점창의 제자들의 움직임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과연, 점창파.’ 주서천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란의 시대를 떠올리면서 전장을 누빈 점창파를 떠올렸다. 점창의 명성은 무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전장 그 자체에 있다. ‘그리고 안 본 사이 그도 강해졌구나.’ 주서천이 식인 부족을 넷이나 거뜬하게 처리하면서 단하성을 힐끗 쳐다봤다. ‘화경을 코앞에 둔 초절정인가. 독혈곡에서 구해 준 보람이 있었네. 이렇게 도움도 되고 다행이야.’ 어째서인지 볼 때마다 위기에 빠져있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도움이 됐다. ‘좋아. 이 정도면 믿고 맡겨도 되겠다.’ 굳이 다른 조를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졌다. 당혜와 단하성은 생각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었다. “속도를 올릴 테니, 바짝 따라오시오!” 주서천이 지면을 미끄러지듯이 돌파했다. 피- 융! 마치 사일검의 묘리처럼 그의 육신은 화살이 되어 쏘아졌다. 주서천이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이 됐다. 눈을 까뒤집고 달려든 식인 부족은 접근하기도 전에 화산의 검에 숭덩 잘려 간단하게 쓰러졌다. 한편 주서천의 조에 편성된 수색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여기서 더 빨라지겠다고?’ ‘괜히 매화정검이 아니군!’ ‘모든 걸 정리할 생각인가!’ 식인 부족의 전사는 결코 약하지 않다. 중원 기준으로도 하수는 없었다. 대부분이 이류나 일류였다. 간간히 고수에 속하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도 있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술로 강화되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눈앞의 괴물, 화산파의 영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앞을 가로막는 걸 가볍게 처리해 나갔다. 그뿐이랴, 검강이나 검기도 줄기차게 사용했다. 도대체 지닌 내공이 얼마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주서천 조의 수색대원들은 이 무시무시한 속도를 겨우 따라잡느라 입이 바싹 말랐다. 잠깐 쉬려고 해도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조금만 느려져도 주서천이 저 멀리 가버려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뒤쳐져 버릴 것 같아 힘을 쥐어 짜냈다. 그러다 보니 세 개로 나누어진 조끼리 차이가 생겼다. 당혜와 단하성의 조는 아직 사원의 위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천천히 전진하고 있는 반면 주서천의 조는 벌써 계단의 중턱까지 올라 쾌속 진격했다.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내 지금 중원인을 끌고 와서 네놈 머리통을 날려 버릴 테니까!” 경사진 사원이었으나 방해는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평평한 땅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쿠오오오-!” 위로 올라갈수록 전사들의 수준도 높아져만 갔다. 이류는 물론이고 일류도 없었다. 대부분이 절정, 혹은 초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