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89)
이 년 전, 칠검전쟁에서 마도의 주력 부대로 참전했던 소살대(燒殺隊)다. 천하백대고수로도 이름이 알려진 마두, 염화살마가 이끄는 그들은 불꽃까지 내뿜는 마공을 익혔다. 그들은 악명이 알려진 만큼 대처하는 법도 잘 알려져 있었는데 그 방안이란 게 실로 간단했다. “열기를 내뿜을 수 있는 건 한쪽 방향 뿐이오!” 주서천은 연합군이 들을 수 있도록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최소 셋에서 넷이 짝을 지어 합격한다!” 덧붙인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해했다. 열기를 낼 수 있는 건 오직 한곳 뿐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 외의 방향은 틈이 생긴다는 의미다. 요컨대, 미끼가 되어 정면을 봉인하면서 그 외의 방향으로 동시에 공격을 하면 된다. “……?” 방금 전까지 의기양양했던 여족장의 얼굴이 굳었다. “열기에 지레 겁먹지만 않는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적은 신의 후예가 아니다! 야만족일 뿐이다!” “저 입을 막아라!” 여족장이 주서천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파바밧! 근처의 구희 부족 전사가 여덟 명이나 뛰쳐나갔다. 그들의 힘은 열기만이 아니다. 신체 능력도 뛰어나다. 몸놀림은 야수 부족 못지않게 재빨랐다. 퇴로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순식간에 포위망을 형성해 그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주서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감각에 의지했다.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구희 부족 전사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여덟 명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는 것도, 손에 쥔 밀림도를 어떻게 움직이려는지도 느꼈다. 후끈! 여덟 개의 밀림도가 불에 달군 것처럼 벌갛게 달아올랐다. 도신이 시뻘게지며 극열을 뿜어냈다. 대기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머리 위의 태양이 가까워지는 게 아니다. 밀림의 기후는 변화가 없다. 열기의 정체는 팔방(八方). 약간의 틈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일종의 합격진이다. ‘과연’ 발열의 방향은 일직선이다. 옆도 뒤도 아닌 앞.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를 늘리고 포위를 택했다. 더더욱 무시무시한 점은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한곳에 모이면서 확산되어 위로 향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위로도 뛸 수도 없다. 몸이 녹아내릴 정도의 열기가 모이면서 그를 압박하리라. 그러나…… “음. 뜨뜻하군.” 주서천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포근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로 편안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 회전하면서 열의 회오리를 만들어내던 여덟 명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할지라도, 이 열기의 회오리 앞에선 화상을 입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주서천은 화상은커녕 땀도 흘리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기분이 좋다는 듯이 웃기까지 했다. “미안하다. 나 사실 한서불침이다.” 더위나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건, 열기나 냉기에 면역이라는 의미다.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사제의 불꽃이나 열기처럼 반칙적인 힘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주서천은 여덟 명의 전사가 경악어린 표정을 짓기도 전에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러 원을 그렸다. 슈슈슛. 검에서 흘러나온 기의 자락. 검기가 열기를 갈라내면서 깔끔하게 없애 버렸다. “뭐, 뭣……?” 부족 내에서도 나름대로 이름 높은 전사들이 당황했다. 여덟 명 이 막아내려고 급히 밀림도를 세웠다. 파바밧! “끄아아악!” 그러나 적수가 안 좋아도 너무 안좋았다. 피하려고 해도 너무 가까워진 게 흠이었다. 심지어 틈을 안 주려고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걸 놓칠 주서천이 아니다. 밀집된 걸 노려서 여덟 명이나 되는 전사를 일검으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 끌지 말고 금방 끝내자.” 주서천이 여족장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구희 부족은 천적(天敵)을 만났다. “막아랏!” 감히 누구에게 덤비려는 것이냐!” 십수 명의 구희 부족 전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주서천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열둘.’ 하나같이 최소 일류에 이르는 전사들이다. 심지어 대부분이 절정에 이르는 고수들뿐이었다. 몸놀림 역시 재빠르지만,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의 비무 상대인 소령에 비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주서천이 그 사이로 몸을 날렸다. 화아아악! 안면을 덮치는 열기. 원래라면 피부가 달아올라야겠지만,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십수 명이 동시에 뿜어낸 열풍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고, 달려드는 전사들에게 검격을 쏟아 냈다. “아아악!” 터져 나오는 비명. 두말할 것도 없이 구희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열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거냐!’ 구희 부족은 부모의 이름을 말할 무렵부터 열을 발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예외는 하나도 없다. 이 강력한 힘 덕에 주요 부족에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근원이 통하지 않는다니. “하압!” 주서천이 잔상을 남기면서 재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의 손에서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졌다.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더니, 나머지 인원도 버티지 못하고 쉽게 쓰러졌다. ‘생각대로 수비에는 약하군.’ 구희 부족의 싸움법은 극단적일 정도로 공격에 치중되어 있다. 열기를 방출하면서 접근을 하지 못하게 만드니, 굳이 방어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공격을 중심으로 발달됐다. 유일하게 방어의 역할을 하는 열기가 통하지 않으니, 팔을 벌린 채 공격을 받아들이는 거나 다름없다. 열기를 제외하면 동수의 공격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데, 하물며 적이 고수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화산의 검이 번찍일 때마다 구희 부족의 전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죽어 나갔다. 벌써 이십여 명이나 넘게 쓰러졌다. 그것도 나름 정예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비켜라!” 여족장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며 드디어 움직였다. 격렬하게 흘러가는 전황 속에서도 눈에 돋보이는 미모였다. 역시 눈에 띄는 건 붉은 머리카락. 중원에서는 보기 드문 단발이었다. 눈은 적갈색이었고, 불을 담은 것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가 인상을 사납고 강인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연령을 보면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들어갈 때는 들어가고, 나올 때는 나온 육감적인 몸매였다. 기후가 기후라서 그런지 천의 면적이 좁았는데, 태양에 잘 그을린 피부와 일자형 복근이 훤히 보였다. “쓸모없는 것들!” 여족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녀 주변을 호위하듯 지키고 있던 전사들이 머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중원에서 온 무림인이라고 했느냐. 검 솜씨가 제법이로구나. 좋다, 이름을 말해 보아라.” “주서천.” 남만에서 온 이후로 처음으로 이름을 대는 것 같았다. “그 이름, 기억해 줄 테니 기뻐하도록 하여라. 자비를 베풀어 비석 정도는 세워 주겠니라. 또한, 본 녀의 이름을 들을 영광을 내리도록 하마. 본 녀의 이름은 구요(姬妖)이니라.” “그래?” 타앗! 주서천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뛰쳐나갔다. 한가하게 잡담 떨 생각은 없었다. “건방진 것!” 구요가 노성을 내뱉으면서 칼을 세웠다. 화르륵! 도신이 시뻘갛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이윽고 화염이 넘실거리면서 칼을 휘감았다. 열기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눈에 확연히 보이는 불꽃을 만들어 낸 것이 더 대단했다. 채앵-! 주서천의 검과 구요의 굽은 칼이 부딪쳤다. 금속음이 길게 늘어짐과 동시, 그 충격의 여파가 파도가 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으!” 근처에 있던 전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복부 아래가 욱신거릴 정도로 그 여파의 세기가 대단했다. ‘도강인가.’ 주서천이 입술을 혀로 적셨다. 눈동자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불꽃을 휘감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붉은 기가 도신을 둘러싸 중첩된 게 보였다. 주요 부족의 족장은 곧 부족 내의 최강자이다. 강기를 쓸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아아앗!” 구요가 소리 높여 기합을 내뱉음과 동시에 열기, 아니 화염을 뿜어냈다. 도신의 불꽃이 커졌다. ‘과연. 최소 화경의 고수라는 건가.’ 주서천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서불침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열기. 바닥에 자란 잡초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게 보였다. 쐐애액! 한가하게 잡초 따위를 볼 때가 아니었다. 불꽃을 휘감은 칼날이 뒤로 빠졌다가 앞으로 수직을 그었다. 꿈틀거리는 불꽃과 다르게 직선을 그려 내는 칼. 그 위력도 속도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대단하다. 야수 부족의 검은 물소도 강기를 실을 수 있는 화경이었지만, 힘만 앞선 짐승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구요에게는 검은 물소에게는 없는 기교가 있었다. 채애앵! 중원의 검과 남만의 칼이 부딪치면서 불꽃을 토해 낸다. 약간의 불씨가 아니다. 구희 부족의 불이다. 구요는 불처럼 맹렬한 기세로 칼을 휘둘러 왔다. 숨을 쉴 틈은 있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격렬했다. 챙! 채앵!째애애앵-! 길게 늘어지는 마찰음. 그러나 곧바로 고막을 후려치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구요의 칼이 곳곳을 노려온다. 주서천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구요가 화려하고 맹렬하게 퍼붓는 도격을 막는 데 집중했다. 만약, 전장이 아니라 비무 대회였다면 막는 데만 급급하여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봤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밀어붙이고 있는 측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피하는 게 아니라, 전부 받아치고 있다고?’ 여인이라고 힘이 아닌 기교 위주의 칼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그녀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남만을 뒤져 봐도 이 칼을 받아친 자는 검은 물소를 제외하곤 없다.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디, 이것도 잘 받아 내는지 보겠느니라!” 구요의 위엄 어린 목소리가 우레처럼 터져 나왔다. “하아아앗-!” 도병을 쥔 손에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도신을 휘감은 불꽃이 일순간 폭발하며 흘러넘쳤다. 일순간이지만 화염에 휩싸이면서 길이가 늘어났다. 뿜어져 나오던 열기도 비교도 안될 만큼 커졌다. “과연!” 주서천도 놀라운 눈초리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신행백변 덕에 태세의 전환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몸놀림조차도 재빠르다. 마라의 혀처럼 넘실거리던 불조차 주서천에게 닿지 못했다. “피, 피해?” 구요가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여태까지 피하는 모습, 아니 그 시늉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고 최대의 일격을 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강직하게 받아 내던 모습은 어디다 팔았는지 순식간에 돌변해선 몸까지 날려 피했다. “본 녀를 감히 능멸하다니!” 구요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 주서천이 뭔 개소리를 하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피하지 않고 받아 내지 않았느냐!” “하?” “내 그 점을 높이 사 경의를 담아일도를 날렸거늘, 어찌하여 받아치지 않았느냐!” “뭔 헛소리야? 위험하면 피해야지!” 주서천이 코웃음 치며 구요에게 접근했다. “본 녀의 경의를 무시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구요에게 수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주서천이 공세를 퍼붓기 전에 한 발 앞서 공격을 쏟아 냈다. 우측 위에서부터 좌측 아래를 향하는 대각선. 대기를 둘로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공기까지 태웠다. “후웁!” 주서천이 숨을 들이쉬며 멈췄다. 힘을 팍 주자 힘줄이 도드라졌다. 맥박이 빨라졌다. 한 걸음, 아니 열 걸음 전진. 일순간 무게를 가볍게 해 구요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 구요가 하마터면 호흡을 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