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91)
진홍도 장군이 누군가를 위해서 부대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게 너희냐?” “……!” 진홍도는 독과 전염병을 전쟁에 쓰려고 독마를 지원했다. 그리고 그 지원에 독자 부대도 창설됐다. 아마 일부는 독마를 따라 중원에 갔을 것이다. 아무리 독마라 할지라도 혼자 광활한 중원을 조사하는 건 불가능하니, 수족이 될 자들이 필요했겠지. 그렇다면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부대의 창설 목적에 따라 진홍도의 밑에서 독과 전염병을 이용해 전쟁에 참여했을 게 뻔했다. 다행히 독마가 남긴 것을 비롯하여 그들의 힘으로 원의 침략을 막는 데 성공하나, 어이없게도 원이 명에게 망했고, 대월 역시 명에게 파국을 맞이한다. “설마하니 백 년도 더 된 부대가 남아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 정확히는 그 후예인가?” 대월과 왕조가 망하면서, 군부(軍部) 역시 폐지됐다. 부대 역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그들이 설마하니 살아서 그 명맥을 야만족으로서 이으며 살아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좋다, 충왕. 제안을 하나 하지.” 주서천이 검을 거두고 검지를 들었다. “그따위 망발을 하다니, 겁을 상실했구나.” 충왕은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수천 마리의 벌레에게서 독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지금 그 제안으로 엿 먹은 것 같아 기분이 말로 형용할 수 없거늘, 또다시 제안이라고?” “그야 그건 네놈이 누군지도 모를 중원인에게 속아서 그런 거고, 난 진짜니까.” “네놈 역시 누군지도 모를 중원인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나?” “아니, 그건 좀 다르지. 아무래도 독마의 유품이라도 보고 속아 넘어간 것 같은데, 난 아니니까.” “……” 눈앞의 중원인이 누군지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녹안만독공과 독마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독마의 신원이나 그 부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후예인 자신들을 제외하곤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부대의 여러 기밀성 때문에 당시 군부의 관계자나 지도자만 알고 있었는데 , 대월과 함께 전부 사라졌다. 그렇다면 분명히 독마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관계가 있을 터. 중원 무림에서의 활동이 제법 길었으니, 수긍하지 않는 건 아니다. “독충 부족, 항복하고 날 따라와라. 그러면 그 대가로 이 자리에서 녹안만독공의 구결 반을 알려 주마.” “충왕!” 구요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머지는?” “설마 그걸 아무런 도움 없이 달라는 건 아닐 거야. 방금 전까지 서로 검 끝을 겨누지 않았었나?” 지금 이 상황에서 독충 부족의 항복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구희 부족, 아니 주요 부족의 패배가 확실시되는 동시에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 대항할 힘을 얻음과 동시에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다. ‘있다.’ 그들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앞에 드러나지 않고, 누군가의 뒤에서 존재했다. 중원을, 천하를 위에서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암천회가. 화타의 재림이라고도 칭해지는 명의, 신의. 신의가 어떠한 제안을 받은 건 시간을 되돌려, 아직 중원에 있을 적이었다. 어느 심야, 창을 통해 어떠한 인물이 찾아왔다. “나는 죽는 겐가?” 신의는 소리도 지르지 않고, 겁을 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눈을 뜨고 복면인을 맞이했다. “과연, 신의. 무인도 아니거늘 배짱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대화할 자세는 갖추었으니, 선물을 주마.” “이건……” “공청석유(空淸石乳)다. 입구를 열어도 상관없지만, 한 방울 밖에 없으니 떨어뜨렸다간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귀한 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신의다. 대가건 뭐건 간에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병을 열어 확인했다. 우유빛으로 반짝이는 액체. 일반인과 다른 후각 기관을 지닌 신의가 코끝을 움직여 확인했다. “정말로 공청석유로군!” 공청석유는 전설에서나 나오는 영약이다. 천지간의 조화가 서린 동굴에서 백 년에 한 번씩 고이게 되는 액체인데, 한 방울이라도 마시게 되면 무림인은 막대한 내공을 얻게 되고, 일반인은 무병장수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록이 워낙 오래되고, 만년하수오만큼 보기가 힘들어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신의는 입맛을 다시며 공청석유를 복면인에게 건네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만의 신단에 대해서 혹시 알고 있나?” “신단?” “그래. 구희라는 부족에 전해져 오는 연단술로 제조할 수 있는 불로불사의 약이기도 하다.” “구희…… 제래의 딸인 불사의 요정을 말하는가?” “호오, 알고 있군.” “원래 영약, 그것도 자연산의 위치는 전설이나 설화, 고대 신화와 관계된 것이 많네.”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에 살이 붙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관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적긴 하지만 관련된 걸 조사하다가 영약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 사례도 존재했다. “정말로 불로불사의 약인지는 의아하나, 흥미가 생기는군.”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원망(願望)의 집합체. 늙지 않으며 , 죽지 않는다. 진시황조차 손에 넣지 못한 꿈의약, 역대 황제는 물론이고 옆 나라의 왕까지 원했던 가공의 물질. 신의도 과거 황제의 곁에 있을 때 라거나, 개인적인 호기심에 찾아도 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인제 와서 불로불사라거나 하는 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전해져 올 정도로, 효능이 뛰어난 약이라고 생각하여 신단을 꼭 제조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복면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호위 무사로 삼아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만까지 왔다. 복면인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관심 있는 것이라곤 남만의 신단이고, 그것만 보고 제조를 해주게 한다면 큰 불만은 없었다. 신의가 세간에서 괜히 괴의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 성격이 워낙 괴팍해 사고방식 자체가 남달랐다. 운남을 지나서 남만에 도착한 뒤, 복면인은 호위 무사를 몇몇 남기고 기다리라며 종적을 감췄다. 남만에서만 볼 수 있는 약초라거나 독초 탓에 기다리는 건 지루하지 않았다. 호위 무사를 대동한 채 , 청화 지방이라거나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료도 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원으로 서신을 마지막으로 보낸 뒤, 복면인이 돌아와 준비를 끝냈다고 말했다. “앞으로 주요 부족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웬만하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당분간은 그들을 무상으로 치료해 주며 신뢰를 쌓아라.” “그리하겠네.” 남만의 주요 부족은 폐쇄적이다. 외부인이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신의는 신뢰를 위해서 여러 사람을 진료해 주었다. 얼마 뒤, 그의 놀라운 솜씨에 주요 부족은 감탄올 금치 못했고 신의에게 경의와 고마움을 표했다. 참고로 만독지 근방의 주요 부족에 오기 전, 복면인은 주요 부족을 순회하며 교섭을 본 모양이었다. 각 부족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을 주고, 특히 독충 부족, 구희 부족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고 들었다. 여하튼, 협력 관계가 되면서 구희 부족에게는 연단술을 전수받았고 독충 부족에게는 만독지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재료를 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목숨을 걸고 고생을 한 끝에 독정을 비롯한 재료들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고 신단의 제조에 들어갔다. 호위 무사로 변장한 복면인이 곁에서 여러 가지를 도와줘서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제조 도중 주변이 무언가 시끄러웠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신단의 제조였다. 그리고 해가 저물며 황혼이 찾아올 무렵. “완성했다.” 신의가 땀방울을 훔치며 흡족하게 웃었다. 주름진 눈살 사이에 숨겨진 눈동자에 붉은 단이 비쳤다. 겨우 두 마디밖에 되지 않은 크기. 그 표면은 미끄러울 정도로 매끈매끈하고, 타오를 듯이 붉었다. 실제로 불을 담은 것처럼 뜨거웠는데 주변에만 가도 기온이 올라가 대장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완성했나!” 복면인 , 아니 복면을 벗은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 눈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걸 본 신의가 신기한 듯 긴 흰수염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자네는 언제 봐도 이상하군그래.” “흐흐흐, 무얼 말이냐?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내 특별히 들어 주겠다.” “그야, 신단을 원하는 건 분명한데 그에 대한 탐욕이 존재하지 않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신단을 제조하면서 호기심을 충족하니, 그동안 제쳐 두었던 궁금증 같은 것이 솟아났다. 처음에는 무인으로서 내공의 증진이라거나, 혹은 불로불사를 노리는가 싶었다. 그런데 함께 지내다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저절로 알게 됐다. 이 남자는 신단을 원하나, 그건 본인이 복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 늙은이를 죽일 거라면, 적어도 궁금증은 풀어 주고 가지 않겠는가?” “괜한 걱정할 것 없다, 신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마.” “호오, 기밀을 위해 입을 막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남만의 신단이다. 소림사 대환단 이상의 가치를 하는 영약이다.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보물이라는 것은 피를 부르는 법이니까. 신단의 제조가 끝난 뒤 인멸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구더기 이하라면 모를까, 괜한 저항을 하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신의, 따라와라.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과도 안녕이다. 귀한 약재를 구경시켜 주마.” “생각한 대로 배신하는군그래. 좋네.” 신단이 완성되면 구희의 여족장에게 넘긴다고 약조했다. 그러나 그걸 지킬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들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걸세. 괜찮겠나?” “그깟 야만족 따위 방해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그들은 연합군을 막느라 정신이 없을 터.” 남자가 히죽 웃으며 손을 올렸다. “크아악!” “아악!” 수풀 속에서 신의의 일행을 감시 중이던 주요 부족의 전사들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물든 옷차림을 한 복면 무인들이 나타났다. 전원이 남만에 합류하기 전 따라왔다가, 도중에 사라졌던 수하들이었다. “간다.” 그 숫자는 고작 삼십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고수들뿐이었다. 전부 절정, 초절정이다. 특히냐 이들을 이끄는 남자의 무공이 대단했는데, 대수림임에도 고강한 무력을 자랑하였다. 신의는 남자의 뒤를 따라 미리 알아둔 샛길로 빠져나갔다. “잘 들어라, 신의.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결코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아니 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입을 뻥긋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흘흘흘.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 목숨에는 미련이 없네. 그러나 아직 보지 못한 의서나 약들이 마음에 걸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알겠네.” “좋다. 네놈이 아직까지 살 수 있는 건, 의술이 아닌 그 현명함 때문이라는 걸 명심해라. 그러나 후회할 건 없도다. 그 덕에 무림, 아니 중원을 손바닥 위에 둔 본 회에 들어올 수 있는 거니까.” “본 회……?” 남자가 스산하게 웃으며, 길을 막는 커다란 잎사귀를 슥슥 베어 넘겼다. 빽빽하게 늘어져 있는 나무도 조금씩 줄어들며, 입구 근처까지 왔다. 지긋지긋하던 독물도 이젠 끝이다. “그렇다. 무림은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이세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다.” 남자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