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99)
두말할 것도 없으며, 비록 신분이 도사이나 화산파의 고위 직책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혼례도 가능했다. 아무리 세력이 작은 곳이라도 주서천만 잡으면 가문의 영광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본인은 볼 수 없었다. “대협께서는 수련에 들어가셔서 뵐 수 없습니다.” “바쁘신 분이라서 저희도 며칠 동안 못 뵈었습니다.” 신분이 높건 낮건 간에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몇몇 지체 높은 이는 건방지다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주서천이 ‘깨달음을 얻을 것 같다.’ 라는 말을 남기고 무림맹에 마련된 지하 연무장에 틀어박히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연무장. 문이라곤 계단에 연결된 하나 밖에 없었고, 바람 소리 하나 없었다. 직사각형으로 된 대리석 바닥 위, 그 정중앙에 주서천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 놓여 있는 건 타오를 듯이 붉은빛을 띠는 단약, 구희의 신단이었다. ‘이 앞은 미지의 영역이다.’ 전생과 현생을 포함해 도달한 영역은 어디까지나 ‘화경’이다. 삶을 마감하기 전에 화경에 겨우 올랐고, 두 번째 삶에선 약속된 기연을 이용해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리고 불로불사의 효능을 지녔다는 구희의 신단을 복용하면 어떤 게 기다릴지는 주서천도 모른다. ‘이 앞을 넘으면 무엇이 있지?’ 두근두근. 모험을 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고양감이 솟는다. 자고로 무인이라면, 벽을 넘어서 다음 경지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는 법. 가슴이 벌써부터 떨려 왔다. ‘진정하자. 괜히 초 칠라.’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는 깨달음을 승화시킬 수 없다. 실패라도 부른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다. 언제나 다음 경지로 넘어가려는 ‘도전’은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탓이다. 특히, 구희의 신단처럼 어마어마한 영기를 내포한 것을 흡수하는 중이라면 역류할 위험이 높았다. 주서천은 자하신공으로 내기를 순환해 들뜬 마음을 진정시킨 뒤, 구희의 신단을 들었다. ‘생명의 원천으로도 불리는 극양(極陽)의 신단’ 자고로 영약이란 그 성질을 조금이라도 알고 복용해야 한다. 극으로 치닫는 것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만약 극양의 신단을 아무런 지식없이 복용할 경우 신체의 음양의 균형이 무너져 주화입마에 빠진다. 지하 연무장에 들어오기 전, 신의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신단의 배합을 보면 극양의 성질을 지닌 게 분명하네. 그러니 양기에 특화된 내공심법으로 운기하거나 혹은 그에 상반되는 극옴(極陰)의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하네만…… 이걸로도 해결할 수 있을 걸세.” 신의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병을 건냈다. ‘공청석유!’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일반인은 무병장수하고, 무림인이라면 일 갑자에 이르는 내공을 얻는다는 영약. 그 기록이 워낙 오래되고 더 이상 볼 수 없어 전설로 취급됐지만, 도감부장을 통해 신의에게 전달됐다. “공청석유가 극음의 약이었습니까?” “아니네. 그 대신, 공청석유는 천지 간의 조화가 서린 동굴에서 고인 만큼 ‘조화’라는 힘을 지녔네.” “그 말씀은……” “극양의 약인 구희의 신단을 복용한다 해도, 그 힘이 문제없이 조화롭게 흡수되도록 도와준다는 걸세.” 괜히 전설의 영약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혹시 해서 말하지만 이 공청석유를 ‘조화’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내공은 얻을 수 없을 걸세.” “아쉽군요.” 사람의 욕심이란 끝도 없는 법. 본연의 내공의 양이 일찍이 상식에서 벗어난 수준이고, 구희의 신단을 복용할 예정인데도 무언가를 더 원하는 주서천이다. “금으로 오십 냥일세.” “예?” 동전 천 문이 일 관이다. 그리고 일 관이 곧 은자 일 냥인데, 쌀이 두 석이 된다. 그 은자가 열 냥이 있어야 금으로 한 냥. 오십 냥이나 되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게나. 혹시 이 늙은이가 자선이라도 할 줄 알았나? 구희의 신단이야 원래부터 그 암천회인가 뭔가 하는 놈이 가져갈 것이었지만, 이 공청석유는 그놈에게 정당하게 받은 걸세.” 신의가 손바닥을 내밀며 음흉하게 웃었다. “신의께선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야, 그리 말하지 않으면 온갖 귀찮은 것들이 엮이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리고 의학이란 게 생각보다 돈이 정말로 많이 들어서 말일세. 이해해 주게나.” 과장이 아니다. 기존에 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발달을 위한 연구의 영역이 되면 드는 돈이 적지 않다. 특히 새로운 약의 제조라거나 불치병의 치료 등에는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소비된다. 화인의원의 진료비가 괜히 일반 백성들이 꿈에도 못 꿀 정도로 비싼 게 아니었다. “……금의전장의 전표입니다.” “금의전장은 신뢰할 만한 곳이지. 고맙네.” 극음의 영약을 구하러 다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쉬운 것이 아니라서 편한 법을 택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니, 돈을 좀 써도 신의의 보증을 고르는 게 나았다. 평소에는 금은커녕 개인 자산이 아닌 무림맹 등에서 지급되는 돈을 사용했는데 단번에 이리 나가다니. 공청석유는 부르는 게 값이라 어떻게 홍정할 수도 없었다. 한 방울이 일 갑자에 가까우면, 그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다. 금자 오십 냥이면 싼값일 수도 있었다. ‘괴팍한 영감탱이, 아니기만 해 봐라.’ 신의에 대한 악감정을 옆으로 밀어낸 다음, 구희의 신단을 들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 우유빛 액체 한 방울을 맛을 보기도 전에 집어삼키고, 병을 멀리 치워 낸 뒤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온다!’ 먹자마자 곧장 반응이 왔다. 괜히 신단이 아니었다. 부글부글. ‘크흣!’ 식도가 무언가에 쓸린 것처 럼 뜨거웠다. 그 뜨거움은 순식간에 퍼지더니 몸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속이 용암처럼 끓는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극양기(極陽氣)가 심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체의 중심부로 횡격막을 뚫고 내려가 소장을 돌았다. 두 갈래로 갈라진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 중 하나는 심장에서 목을 끼고 올라가 눈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하나는 심장에서 폐로 빠져나가 겨드랑이 밑의 극천혈(極泉穴)을 지나 팔의 뒤 안쪽과 손목관절, 새끼손가락 안쪽을 거쳐 손톱 밑에서 끝났다. 그리고 다시 새끼손가락에서 시작되어 손의 뒤쪽 아랫부분을 지나 손목의 척골(尺骨)을 걸쳐 신경구와 상박 바깥쪽 뒤쪽 아랫부분 등을 지나쳤다. 이후 견갑골(肩胛骨)을 돌아, 대추혈(大椎穴)에 가서 엇바뀐 다음 쇄골상와(鎖骨上腐)로 향한다. 여기서도 둘로 나누어지는데 , 하나는 가슴속의 심장에 연계되어 횡격막을 지나 소장에 속했다. 다른 가지는 목과 뺨을 지나 눈초리에 오르는데, 여기서도 또 다른 가지를 쳤다. 방향을 틀지 않고 나아가던 것은 귓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최후의 가지는 관골(顧骨) 부위로 내려와 눈구석에서 방광경(勝腕經)에 연계되어 끝났다. 이러한 통로를 수태양소장경 (手太陽小腸經)이라 한다. 수소음심경과 수태양소장경은 십이정경(十二正經)에 속하며 신체의 오행 중 화(火)에 해당하였다. 극양기는 마치 짝을 찾듯, 신체에서 양기와 관련된 곳에 관심을 보이며 찔렀다. 십이정경 외에도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삼초. 즉, 육부(六開)를 건드렸다. ‘뜨거워!’ 혈도에 한계를 넘어선 극양기가 주입되자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지르며 문제를 일으켰다. 한서불침 이후 처음으로 고통스러울 정도의 뜨거움을 느꼈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반응을 보였다. 낯빛은 붉어지고, 눈은 충혈되었다가 노래졌다. 목은 아파 오고 명치 밑이 특히 아팠다. 혀는 메마른 사막처럼 쩍쩍 갈라졌고, 턱 아래가 심히 부어올랐다. ‘크아아아악!’ 약은 잘못 쓰면 독이 되는 법이다. 지금이 그랬다. 구희의 신단이라는 희대의 영약을 먹었으나 내포된 양기의 양 탓에 여기저기서 이상 현상이 벌어졌다. 이 여러 일들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지다 보니 어찌할 틈도 없어서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정신 차려!’ 입을 조금이라도 열었다간 그걸로 끝이다. 호흡이 잘못되어 육부가 파열됨과 동시에 단전도 망가진다. 화경이라고 해도 주화입마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도리어 그 반동이 보다 컸다. ‘와라! 공청석유!’ 사람의 몸을 색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자신의 신체는 분명 붉은색으로 물들었으리라. 그리고 그 시뻘건 불길을 꿰뚫고 내려오는 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유빛의 선이었다. ‘끄으으윽!’ 구희의 신단과 공청석유. 하나같이 무림에 나오면 피바람을 부를 영약을 하나도 아닌 둘을 삼켰으니, 그 양이 실로 막대했다. 콰과과과과! 자하신공, 중도만공, 만중검, 일월신궁 등 지금까지 내기를 자유롭게 다루었던 심법들이 소용이 없었다. 극양기와 조화기(調和氣)를 다루려고 해도, 그 기세가 질풍노도와 같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신의! 도대체 뭘 만들어 낸 거요!’ 한 방울만으로도 일 갑자나 되는 양을 지닌 공청석유도 보통이 아니지만, 구희의 신단도 무지막지했다. ‘구희의 후예란 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화경의 고수조차 감히 잡아 둘 수 없는 막대한 기운. 육십 년 내공이라거나 수치를 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이른 연단술이었다. 무림의 영약과 내단의 소재를 전부 알고 있다는 암천회의 도감부장이 괜히 남만까지 온 게 아니었다. 구희 부족의 연단술은 상상 이상이었으며, 온갖 희귀한 재료와 신의의 기술까지 합해 극의를 이뤘다. ‘무리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어떻게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이딴 걸 버텨 내라고?’ 울컥!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이러한 고통은 난생처음이었다. 환골탈태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얼굴 위로 핏줄이 도드라지고, 시뻘게진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세였다. 그래도, 공청석유의 조화의 기운 덕인지 육신이 용케 터지지 않고 조금씩 온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웃기지 마!’ 그 속도가 늦어도 너무 늦다.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인내하는 건 더 이상 무리였다. 한 시진은커녕 일각, 아니 그 이하의 시간도 힘들었다. 아아악! 결국 꿈인지도 현실인지도 모를 정도로 의식이 멀어진 순간,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게 정말로 입으로 낸 것인지 , 아니면 머릿속으로 울린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모든 걸 토해 냈다. 퍼엉! 비명을 내자마자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 눈이 떠졌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 눈에 비친 건 갈기갈기 찢겨진 살점 사이로 보이는 뼛조각과 사라져 버린 양팔이었다. 사람의 몸으로 담아낼 수 없는 극양기. 끝내 몸이 버티지 못하고 팔이 터져 버렸다. ‘이대로 끝인가?’ 고통으로 인한 비명도 없었다. 검수로서 죽음을 의미하는 팔의 손실로 인한 충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전부 끝났구나 하고 생각하며 체념했다. -사람이 담을 수 없는 것인가. -불의 화신이자, 불사의 요정인 구희의 정수가 담긴 거였구나.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주서천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든 해 보려던 운기법도 이어지지 않았다. 팔을 잃어버린 채로,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웃, 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