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04)
제일 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선인이라고도 존경받는 우일문은 과시욕 같은 건 초탈해서 아닐 것이라 장담했다. 하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주서천이 의아한 눈길로 우일문을 쳐다보자, 화산의 장문인은 수염을 매만지며 살짝 미소 지었다. “자존(自尊)일 수도 있고, 자존(自存)일 수도 있느니라. 무엇이 되었든 정말로 중요한 건 자신( 自信)이다.” ‘자신!’ 남궁위무의 조언과는 완전히 같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라는 말은 동일했다. “화경이란 게 무인이 쌓아 올린 무학(武學)의 극의라면, 현경이란 미지의 영역을 향한 도약이자 모험이며, 동시에 창조이니라.” 그리고 의미 모를 말이란 것도 공통됐다.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네가 어떤 존재인지 천하에 자랑하고, 알리고, 빛내 보거라. 하나 그렇다고 거기에 고집했다간 영영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조차 집착하게 된다면 역시 답을 구하진 못할 것이니.” ‘뭔 개소립니까?’ 하마터면 장문인 앞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면 도리어 방해가 될 것 같으니 그만하도록 하마.” “불초가 몹시 아둔하고 부족하여, 장문인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이해할 것이니 조급해할 필요 없다. 어쩌면, 네가 자하에 뜻을 두었다면 신공이 그 ‘과정’이 될 수도 있겠구나.” ‘미치고 팔짝 뛰겠군!’ 자하에 뜻 같은 걸 둔 적은 없다. 자하신공에 대한 건 전생에 관한 걸 이야기할 수 없어서 그럴싸하게 포장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여기 와서 ‘전부 거짓말입니다. 그러니 그냥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십시오.’ 라고 할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이 상태를 보아하니 솔직하게 고한다고 해도, 현경에 확실히 오를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물어봐도 의미 모를 답변만 돌아오고, 본인도 마음엔 두지 말라 했으니 포기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문제로구나.” 이번에는 우일문에게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하신공은 그 특색이 워낙 강하여,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세를 방출하는 것 정도는 괜찮으나, 강기를 내보인다면 장님이 아닌 이상 알아볼 게다.” 기의 유형화, 그것도 자색인 것은 오로지 하나뿐. 자하신공 외에는 없다. 이에 대한 특성이 워낙 잘 알려져 있기에 무림인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까지 아는 정도였다. “본 문의 제자가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좋으나,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아쉽구나.” 우일문이 골치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 * 며칠 뒤, 화산파 수뇌는 발칵 뒤집혔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조무양이 목소리를 높였다. “으음.” 학송도 신음을 흘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영진과 심옥련의 반용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일대신공, 자하신공의 수련자가 등장했다. 소식 자체는 나쁘지 않다. 도리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계승자’. 현 장문인인 검선 우일문의 제자일 경우에 한한다. 그게 아닐 경우,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지금이 그랬다. “장문인께선 그 아이를 언제 제자로 두신 겁니까?” 공사에는 누구보다 확실한 심옥련이 따지듯 물었다. “제자로 둔 게 아니요.” “죄송하오나, 장문인. 이 장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영 이해가 안 가는 구려.” 나머지 장로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우일문은 장로들이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러나 현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우일문과는 다르게, 화산오장로들은 그리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설사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다음이 문제입니다. 주서천 그 아이를 차기 장문인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심옥련이 현재 최대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문인의 자격 요건 중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이 자하신공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하신공의 수련자가 곧 차기 장문인으로 추대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주서천은 차기 화산파의 장문인인가? 사람됨은 문제가 없다. 무공의 자질 여부야 두말할 것도 없고, 인성이나 평가도 세간에서 무척 좋았다. 게다가 화산파를 당대 전성기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아닌가. 추대받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정말로 컸다. “장문인께선 제자를 두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자하신공은 난해하다. 십수 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진작 제자를 들여 열심히 가르쳤다. 차기에 장문인으로 추대될 제자가 기존에 있는 상황이었고, 또 그 말을 번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파에서 관례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 약속을 깨게 된다면 훗날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 이 일을 들먹이면서 잘못될지도 몰랐다. “일단, 후계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없을 거요. 주서천, 그 아이가 장문인의 자리에는 어떠한 욕심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소.” “그게 문제가 아니란 걸 장문인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사 그 아이가 장문인의 자리에 욕심이 없다 할지라도, 장문제자인 정휘련은 어떻게 해야 한답니까?” 심옥련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정휘련. 우일문이 늦게 들인 제자다. 연령적으로는 사대제자. 그중에서도 막내인데, 현 장문인의 제자이다 보니 항렬은 삼대제자였다. “주서천은 뛰어나도 너무 뛰어납니다. 무력만으로도 본 문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데다가, 수많은 이들의 존경까지 받는 와중에 자하신공까지 전수받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심 장로의 말대로, 그 아이가 중압감을 못 이겨 낼 가능성이 크다오.” 학송이 심옥련의 말을 보충했다. 전수를 받지 않고 스스로 깨우쳤다고 해도, 워낙 터무니없는 말이라 안 믿을 게 뻔했다. 사람들은 분명 ‘아, 주서천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검선이 무공을 전수하고 장문인으로 만드려나 보다.’ 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우일문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 낯빛은 몹시 어두웠다. “정휘련은 어립니다. 질투라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나이 다 먹은 노인네도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인데, 그런 어린아이가 해낼 리가 있나.” 영진도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너무 위험합니다.” 명수악이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경고했다. “전부 맞는 말이오.” 우일문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합니다.” 심옥련이 눈을 매섭게 뜬 채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서천, 그 아이는 교우 관계가 좁지만 사대제자들이 알게 모르게 그를 동경하여 따르고 있습니다.” 정파의 영웅이다. 처음엔 질투 어린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 실적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앞으로 화산을 이끌 젊은이들이 차기 장문인이 아닌 주서천을 따르게 되면 그건 큰 문제입니다. 최악, 저희의 사후 화산이 둘로 갈라질 수도 있지요.” “서천이는 장문인에 뜻이 없으니……” “뜻이 없던 말건 상관없습니다. 주변의 추대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휘련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정통성이 인정되는 후계자, 정휘련. 본인 입장에선 주서천은 눈엣가시 이상이었다. “장문인. 혹시 제자의 앞에서 주서천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말이야 꺼내 본 적 있소만……” 우일문이 말꼬리를 흐리며 눈을 감았다. “……이름을 듣자마자 몸을 부들부들 떨더군.” “허어!” 화산오장로들이 혀를 차며 머리를 숙였다. ‘이름만 들어도 치가 다 떨릴 정도란 말인가?’ 정휘련이 주서천을 보고 죽이겠다면 어쩌지?’ ‘큰일이야. 화산의 미래가 걱정이로다!’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됐다. “정휘련이 주서천을 만나는 걸 저지해야 합니다.” 주서천은 얼음처럼 굳었다.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앞에 서 있었다. ‘정휘련 장문인……!’ 그에 대한 건 잘 모른다. 차기 장문인, 정휘련. 그러나 중년이 되기도 전에 전란에 휘말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게 된다. 알고 있는 건 동년배의 남자라는 것 정도다. “주서천……” 정휘련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만난 건 우연에 불과했다. 상궁 회의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몸이라도 풀어 볼 겸 연무장에 나왔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선객이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다 싶더니만 정휘련이란 걸 깨달았다. 전생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 떠올릴 수 있었다. ‘망했다. 분명 날 싫어할 거다.’ 주서천도 정휘련과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그동안 암천회라거나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보니 여태껏 밀어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깜빡 잊고 있었다가, 자하신공의 일로 떠올리게 되면서 어쩌나 하고 고민했다. “주서처어어언!” 주서천이 바짝 긴장했다. 자리를 피할까 싶어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사혀어엉!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휘련이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주서천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정휘련이 허리를 곧게 세우면서 눈을 반짝이면서 감탄했다. “캬아! 진짜 실물이잖아!” 그는 감동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곤 갑작스레 입고 있는 도복 상의를 벗어 보였다. “여기에 검으로 성함 좀 써 주셨으면 합니다!” 매화정검, 주서천.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이다. 예닐곱 살조차도 무공의 초식은 몰라도 주서천은 안다. 장문제자인 정휘련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주서천의 이름을 질릴 정도로 들으며 자라 왔다. 정파의 영웅! 무림에서 그의 활약을 모르는 자는 없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정휘련은 보통의 소년, 소녀들처럼 영웅을 선망하고, 동경하게 됐다. 존경하는 사람은 대스승, 우일문. 동경의 대상은 영웅, 주서천. 그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떨려 오고, 콧대가 세워지며, 누군가 욕하면 괜스레 짜증과 화가 솟구쳤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동경의 대상을 직접 보니 상상 이상으로 감동이었다. “흑흑, 감사합니다.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사형.” 정휘련이 주서천이라는 석 자가 새겨진 상의를 소중하게 안으며 감동한 듯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전 사형이 아니라, 사질입니다.” 주서천이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했다. 입문 시기가 늦다고는 하지만, 장문인의 제자인 만큼 항렬로는 삼대제자라 사숙에 속한다. “규율 탓에 사형을 사형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정휘련이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슬퍼했다. ‘정휘련 장문인이 이런 사람이었나?’ 어딘가 모르게 머리 한구석이 고장난 것 같았다. “장문인이 될 사람이 모범이 되지 않으면 문제지요. 알겠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사질로 부르겠습니다.” 정휘련이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주서천 사질은 제 마음속의 영원한 사형으로 여길 테니, 이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진심인가?’ 혹시나 무슨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됐을 정도로, 정휘련의 행동은 특이했다. “주서천 사질,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악수 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숙, 말을 편히 해 주십시오.” 주서천이 곤란한 듯이 말하면서도 손을 건냈다. 정휘련은 주서천의 손을 꽈악 붙잡곤,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면서 거절했다. “그것만큼은 봐주십시오. 사질께선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보다 손을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안 씻을게요.” ‘황당하군.’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정휘련이 ‘방심하게 해 두고, 나중을 기약해 죽여 버리겠다.’ 라는 의도는 아닌지 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