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17)
움직인 것을 보고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러나!” 무언가가 잘못됐다. 시급한 마음에 경칭까지 생략하며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혈마의 안광에서 섬뜩한 빛이 뿜어졌다. “쿨럭!” 돌연, 호덕창이 피를 토해 냈다. 눈을 부릅뜨고 팔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얼굴이 붓기 시작하더니만 곧 터질 것처럼 커졌다. “커혹, 컥!” 입은 물론이고 코와 귓구멍에서도 피가 주르륵 흘렀다.흰자위도 벌겋게 물들더니 피눈물을 흘렸다. ”끅!” 상체의 근육과 지방까지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그 전에 호덕창의 호흡이 끊겼다. 맥박도 멈추었다. 호덕창은 마지막에 가슴을 쥐어뜯듯이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즉사했다. ‘인룡이…… 죽었다고?’ 주서천은 충격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룡삼봉, 인룡은 여기에서 죽을 인재가 아니다. 한참 뒤에 종남파의 고수로서 암천회와 싸울 영웅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기혈마공(氣血魔功)……” 제갈수란이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혈교의 대사제이자 교주인 혈마의 독문마공이었다. 기혈마공은 기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그 범위는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도 포함된다. 특히 혈류(血流)의 조작에 능하여 방금 전처럼 피를 역류시키는 행위도 가능했다. 본래 사람의 신체에는 혈액의 역류를 막아 주는 판막(辯膜)이라는 것이 있다. 설사 무슨 문제가 나 피가 역류한다고 해도, 이 기관과 압력이 거꾸로 솟는 피를 막아내 원래대로 되돌리니 몸에 문제가 생겨서 목숨까지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나 기혈마공은 이 판막을 무시했다. 정확히 말해선, 기혈을 조종해 더한 압력으로 판막을 찢는다. 그러면 더 이상 역류하는 혈류를 막아낼 수 없고, 혈관이 파괴되며 심장까지도 문제가 생겨 죽는다. “십수 년만 더 지났다면 이 다 쓰러져 가는 몸으론 버텨 내진 못했을게다. 한동안 등골이 쓰리겠군.” 나름대로 적수를 향한 칭찬이었다. 혈마는 사음장을 들지 않은 손을 들었다. 검지와 중지를 제외하고 세 손가락을 접었다. 부웅. 호덕창의 시신이 공중에 천천히 떠올랐다. 허공섭물(虛空攝物)로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기혈마공으로 혈류를 움직여, 공중에 떠오르게 했다. 파스슷. 굳어 가는 핏방울이 하나둘씩 떠오르더니만, 이윽고 호덕창의 몸에서 혈액이 뽑혀 나왔다. 마치 핏빛을 뿜어내는 기의 아지랑이처럼, 피가 몇 줄기로 나뉘어서 공중에 뭉쳤다. “네 이노옴! 혈마!” 홍고가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 권압이 대단했으나, 혈마는 시선을 돌린 것만으로 무형의 얇은 막을 펼쳐 막아 냈다. 호신강기였다. “고것 참 아까부터 시끄럽구나. 역시 중이 방해로다. 도움도 안 될 거 네놈부터 처리해 주마.” 혈마가 이번엔 엄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을 쫙 폈다. 공중에 떠오른 호덕창이 떨어졌다. 그의 몸은 마치 수분을 전부 빨린 것처럼 뼈와 가죽만 남았다. ‘안 돼!’ 주서천이 다급해졌다. 신권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는 차후 암천회와의 전면전에서 필요한 인재다. 다행히 시간이 좀 남았다. 지면을 박차 몸을 날려, 홍고의 앞을 막아섰다. “용기가 가상하구나.” 호덕창의 시신 위, 혈마의 눈앞에 핏덩어리가 어린아이 머리만 한 크기로 모여 혈구(血球)가 됐다. “그렇지만 어리석도다.” 혈마가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그러자 혈구의 일부분이 떼어지면서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워낙 순식간이라 눈으로 좇을 수없는 속도였다. 그러나 직감이 이성보다 빨리 반응했다. 주서천이 검을 눈부신 속도로 휘둘러 혈구를 베어 갈랐다. ‘제기랄!’ 주서천이 이를 악물었다. 혈구는 베어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몸집이 둘로 나뉜다. 하나는 다행히 궤도를 벗어났으나, 나머지 하나는 어깨에 구멍을 내고 지나갔다. ‘크읏!’ 하필이면 검을 쥐고 있던 팔이었다. 검을 놓지는 않았지만,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용한 것.” 혈마가 칭찬하며 손가락을 다시 튕겼다. 긴 궤적을 그려 낸 혈구가 반대쪽 어깨와 다리에도 구멍을 냈다. ‘이럴 수가……’ 혈마의 강함은 진짜배기 였다. 방심하진 않았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격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기문동진으로 일각은 끌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밀려났다. 그 뒤로 별동대 중에서 주요 전력이 한꺼번에 덤벼, 공격까지 성공했는데 별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상황이 너무나도 안 좋다. “마음에 드는구나. 네놈은 다음에 처리하마.” 혈마가 손가락을 다시 모았다. “도망쳐!” 주서천이 처절하게 외쳤으나, 홍고도 제갈수란도 꼼짝하지 못했다. 맹수 앞의 초식 동물과 같았다. “다 함께 저승에서 만날 것이니 걱정할 것 없……” 혈마의 안색이 변했다. 쐐액! 어디선가 섬광이 날아왔다. “흡!” 혈마가 손을 바꿔 검지와 중지를 모아 움직였다. 혈구가 순간 넓게 퍼지며 막을 형성해 앞을 막았다. 째애앵! 금속음이 터졌다. 귀가 앵앵 울린다. 주서천은 그 소리가 선계의 연주음처럼 느껴졌다. 우우웅. “드디어 납시셨나.” 혈마가 혈막을 거두며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섬뜩하게 타오르는 안광이 바라보고 있는 건, 두둥실 떠오르는 검을 곁에 두고 뒷짐을 쥔 노인이었다. “검선, 우일문.” 상천십좌 간에 서열은 없다. 절대고수 정도 되는 경지에 오르면 만날 일이 없어서다. 대부분이 각 세력의 대표 격이다보니, 정말 큰일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는다. 평소에도 싸울 일이 거의 없는데 , 그것이 상천십좌끼리의 싸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시간에…… 맞춘 건가……’ 주서천이 우일문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우일문의 시선이 호덕창에게로 향했다. 입에서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무림의 미래를 짊어진 인재가 죽지는 않았을 터인데……”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사람이란 게 원래 언젠간 죽는 게 아니겠나.” 혈마가 여유 가득히 웃었다. 검선의 등장에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나타날 걸 예상한 겐가?” “내 눈이 없어도, 못 보는 것이 아니다. 귀도 다 떨어져 가지만,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 혈마는 무인이자 주술사, 그리고 지도자다. “동일한 마도라고 해도, 마교처럼 머리가 비어 있진 않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죽는 것은 사양하지.” “아가야, 아무래도 우리가 읽힌 모양이구나.” 우일문이 제갈수란을 힐끗 바라보았다. 탓하는 것이 아니다. 수를 읽혔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상천십좌는 상천십좌가 아니라면 이기는 것이 불가능할 터. 그걸 모르지 않는 이상 이런 희생을 낼 리가 없지. 어지간히 골이 비어 있다면 모를까.” “수다는 그만하면 됐네.” “대화를 길게 끄는 동안, 사문의 기대주를 내빼는 건 끝냈나. 나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잘됐군.” 홍고가 부상을 입은 주서천을 데리고 제갈수란이 있는 쪽까지 물러났다. “자아, 그러면 검선의 실력좀 볼까.” 혈마가 손가락을 튕겼다. 퓨퓻! 호덕창의 몸에서 뽑아낸 혈구가 전부 쏟아졌다. 그야말로 피의 비 였다. 혈선이 쭉쭉 그어졌다. 우일문도 뒷짐을 쥔 오른손을 꺼내 손가락을 튕겼다. 자색의 빛줄기가 번쩍였다. 자하지(紫霞指)다. 파바밧! 허공에서 자선(紫線)과 혈선(血線)이 부딪쳤다. 그 숫자가 동일했다. 격돌한 순간 주변 공기를 집어삼키면서 폭발한다. 그 안에 깃든 공력이 보통이 아니다. 펑! 퍼퍼펑!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각자의 장기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위력이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강했다. 검선도 혈마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당연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가벼운 탐색전으로 보이나 강기를 줄기차게 쏘아 냈다. 그 위력에 주변의 소란과 싸움이 잠시 멈추었다. “크으윽!” 여기저기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상천십좌끼리의 생사결이다. 평생은 물론이고 후대까지 자랑할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어쩌면 보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의 대결이었다. 하나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주변의 적들 탓이 아니다. 대기까지 떨려 오는 충격파 때문이었다. 화경과 화경의 고수의 공력이 격돌해도 내력이 약한 자는 내상을 입을 수 있다. 상천십좌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류나 일류는 물론이고, 절정에 이르는 고수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사이에 우일문이 혈마에게 근접한다. 우일문은 손을 쭉 뻗었다. 공중에 떠 있던 검이 날아와 잡혔다. 쐐애액! 자하검결의 제일식과 제이식이 동시에 펼쳐진다. 무섭게 회전하면서 앞으로 쏘아지는 검 주서천이었다면 자색으로 빛났겠지만, 우일문은 아니었다. 무형강기의 영향 탓인지 주변의 대기만 진동할 뿐, 무색이었다. 평소의 화려함은 없었다. 쏘아진 검이 부챗살처럼 펴진다. 수십 개로 나누어진 검이 한꺼번에 쏘아졌다. “헛!” 혈마의 몸이 활처럼 휘어 탄력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몸을 튕겨 순식간에 움직였다. 경신법이 최고 상승에 올라야 운용할 수 있는 궁신탄영(弓身彈影)이었다. 콰아아앙! 방금 전까지 혈마가 있던 자리에 제이식, 화우선형의 공세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상상 이상의 위력이다. 위력도, 속도도,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니었다. 화경의 고수의 전력이 담겨 있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였다. “자하검결을 보니 생각난 것인데, 저놈은 무엇인가? 규율을 중시하는 도사가 깰 리도 없고……” 촤르륵! 사음장이 주렁주렁 달린 고리를 흔들면서 쭉 뻗어 간다. 정확히 우일문의 척추를 노렸다. 부웅! 그러나 애꿎은 허공을 찔렀다. 우일문은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신법의 경지가 최고 상승에 오르면 사용할 수 있는 이형환위(移形換位)였다. 궁신탄영과 이형환위! 범인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경신법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보는 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수준이 너무 높아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었다. 삼류의 눈으로 보면 뭐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혈교주가 이리도 호기심이 많을 줄은 몰랐네.” 우일문이 흰 수염을 휘날리면서 화산의 절기를 펼쳤다. 혈 향에 묻혔던 매화 향이 다시금 짙어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화산의 장문인답게, 그리고 검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검술의 수준이 달랐다. 주서천도 주서천이지만 우일문의 손에서 펼쳐지자 위력이 확연히 변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린아이와 어른이 똑같은 걸 다른 힘으로 펼치는 것과 같았다. 파바밧! 매화의 꽃잎이 떨어지면서 너울거린다. 그 사이로 검 줄기가 번쩍이면서 수십 개의 검초가 쏟아졌다. 화려하고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여러 묘리가 뒤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위력도 품고 있다. 혈마도 비처럼 쏟아지는 검격을 보곤 감탄했다. 한가하게 놀라고 있지만 않고, 사음장을 연달아 내질러 막아 냈다. 채채챙! 검선과 혈마가 마주 본 채로 공방을 수백 번씩 교환했다. 어찌나 빠른지 시야에 잡히는 건 잔상뿐이었다. 쿵! 쿠웅! 한 번 격돌할 때마다 굉음과 폭음이 터졌다. 고비 사막의 지반에 균열이 가고, 암석이 부서졌다. 무언가 터질 때마다 바닥의 모래가 소용돌이쳤다가 흩어지는 걸 반복했다. 도저히 사람끼리의 싸움으로 보이지 않는다. 설화 속의 신선이나 요괴가 떠올랐다. 주변인들은 싸우는 것도 잊은 채, 그저 충격파에 내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켜만 보았다. “괜찮으세요?” 그사이에 제갈수란이 주서천에게 다가가 물었다. “모사께선 전장에서 눈을 떨어뜨릴 수 없지 않습니까.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서천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었다. “……” 제갈수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소매 안에서 손바닥만한 직사각형의 비단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