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24)
열고, 그 안에 핏방울을 넣어서 섞이기 쉽게 흔들었다. 그리고 북서 방향으로 뚜껑을 열자, 피 특유의 비릿한 향이 넓게 퍼지면서 바람에 날아갔다. “이대로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올 거예요. 저희는 그동안 부상자를 치료하고 재정비를 하죠.” 피를 보는 것 외에도 냄새만 맡아도 흥분하는 혈교도의 습성을 잘 이용한 전략이었다. 물론 한두 방울로는 부족하겠지만, 워낙 흐른 피가 많다 보니 충분히 통할 만한 방법이었다. “허어 , 그게…… 정말이오……?” 한편, 재정비를 위해 모인 무림맹 수뇌부는 전황에 대해서 전해 들으면서 큰 충격에 잠긴다. 그중에서도 화산파의 매화검장, 위지결의 충격이 특히 컸다. “장문인께서……” 설마 했던…… 검선, 우일문의 죽움. 그것도 천명이 다해 우화등선에 든 것이 아니라, 혈마에게 끝을 맞이한 것이기에 충격이 더 컸다. 원수인 혈마가 죽은 것을 먼저 듣지 않았더라면, 복수하겠다며 눈을 붉혔으리라. “서천이는 어떻게 됐소?” “조금 지쳐 있긴 하나, 멀쩡하답니다. 걱정마십시오.” 정혈대전의 큰 공로자인 만큼 대우도 극진했다. 더불어 화인의원에서 보내온 의원들 중 셋이나 주서천에게 붙어 진료했는데, 도중에 잠에서 깬 주서천이 괜찮다면서 의원들을 쫓아내듯 내보냈다 한다. “매화정검이 정말로 큰일을 해 주었네.” 운학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동감일세.” 일지광도 동의했다. “목숨 걸고 혈마를 끌어낸 별동대도 대단하나, 그래도 그가 없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걸세.” “……그건 좀 과장이 아닌지요.” 여태껏 입을 가만히 닫고 있던 항산파의 수경이 불만인 듯 중얼거렸다. “외람되오나, 그 자리엔 정파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분들께서 계시지않았습니까. 굳이 그가 아니었더라도, 혈마의 목숨을 충분히 취할 수있었을 겁니다. 또한, 당시 혈마는 검선께 부상을 입어……” “그건 아니오.” 운학이 정색하며 수경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만약, 그 자리에 계셨다면 그 말이 나오지 않았을 거요. 혈마를 본 순간, 왜 그가 상천십좌 중 일좌에 있는지 몸으로 느끼게 됐소.” 황급히 달려와 도움을 요청한 제갈수란을 따라 혈마 앞에 선 순간,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싸워 보려 했으나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주서천이 기적적으로 일어나서 우일문의 복수를 하듯 혈마의 목숨을 끊었다. “……” 수경은 운학이 꾸짖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상했으나, 별다른 이견을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주서천이 마음에 들지는 않긴 하지만, 그래도 그 활약을 모르는 것이 아닌지라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소. 오늘밤의 경계는 맡기고 이만 쉬도록 하시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피곤한 얼굴이었다. 하루 종일 전장에 있었으니, 지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최후에 온 지원 병력이 불침번과 경계를 서기로 했고, 그 책임자는 위지결이 맡았다. 사실 좀 더 물어볼 것이나 할 이야기는 많았다. 검선과 혈마의 대결의 좀 더 자세한 경위와 피로 된 창검에 맞고도 멀쩡했던 주서천이 대표적이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시간도 늦고, 낮아진 기온에 맞춰 바람도 불기 시작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화인의원에서 의원들을 보내준 덕분일까, 부상자의 치료가 무사히 끝났다. 다만 그중에서도 위중한 이들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난주는 쌓여진 시신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다시 급습해 온 혈교도와 싸우게 된다. 재정비나 치료는 무사히 끝났으나, 휴식을 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채 습격해와 정신없이 싸웠다. 확향산의 효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밤중에 공격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눈을 뜨고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있었다. 그렇게 약 사흘 밤낮을 고생하면서 싸운 끝에 최초이자 최후의 침공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혈교도의 백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고, 그 외에는 전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무림맹은 사망자 칠백여 명, 부상자 삼백여 명 정도의 피해를 끝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드디어, 끝났나.” 주서천이 막사 밖의 함성을 듣고 안도했다. ‘몸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다.’ 사실, 피곤이나 부상은 이틀 전에 전부 나았다. 몸이 훨훨 날아갈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회복한 뒤에도 전장에 참여하진 않았다. ‘정말로 다 나은 것인지 모르니까.’ 무수한 창검이 꼬챙이처럼 날아와 몸에 박혔다.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치명상이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무엇보다 현경에 오르면서 새로이 얻은 깨달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한동안은 운기조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심상구현, 회귀.’ 새롭고 특별한 힘이었다. 일평생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한 건 없다. 전생이었다면 모를까 현생은 회귀가 아니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다. 설사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심상을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어떠한 삶을 살아온다 한들, 그 근원은 회귀에 있었다. ‘그 능력은, 회복하는 것, 돌아가는 것.’ 얼핏 보면 환골탈태의 세 번째 효능인 완전 재생처럼 보이나, 전혀 다르다. 보다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부상을 입기 전으로 돌아간다.’ 바로, 일종의 회귀. 육체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 법칙을 무시하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로 터무니없었다. 다만 능력이 능력인 만큼 제한이나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라왔다. 범위는 살이나 피, 뼈나 손상된 내장. 그것도 내 몸에서 한해서다. ‘그 외에는 불가능하다.’ 흰골탈태의 완전 재생은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이 만들어 재구성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회귀는 말 그대로 돌아가는 것 부상을 입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한정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야. 하루에 한 번 정도이고, 쓴 직후에는 체력과 기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극심한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버티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아무리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전장 한가운데서 정신을 잃었으니 보통이 아니었다.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즉사하면 통하지 않는다.’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나 뇌가 파괴되는 건 불가능하다. 법칙을 무시하는 힘에도 원리가 있었다. 신체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니, 붙어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머리가 돌아가면 몸이 없어 죽고, 신체가 돌아가면 머리가 없어 죽는다. ‘그리고…… 음, 좋아. 이건 나중에확인해 보자.’ 중원 무림에 폭풍, 아니 혈풍이 불었다. 정혈대전의 시작부터 그 과정까지 전황 하나하나가 중원 곳곳에 퍼졌다. 혈교의 침공이 흔한 것은 아니니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전 무림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무림을 경악게 하는 소식이 강타했다. “검선과 혈마가 죽어?” “허! 동귀어진이라도 한 건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딜 가던 그 이야기뿐이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정사마를 막론하고 무인의 정점이었던 자들이 죽었다.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상천십좌, 아니 이젠 상천팔좌였다. 특히나 화산파의 경우 그 충격은 헤아릴 수 없었다. 놀란 걸 넘어 혼란에 잠겼다. 문파의 수장, 장문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화산파는 어떠한가?” “어떻긴 어떻겠나. 청천벽력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난리일 걸세.” “하기야, 검선이라면 역대 장문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대고수가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겠지.” ”쯧쯧쯧. 앞으로가 큰일이군그래. 장문제자인 정휘련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아이가 아닌가. 스승 곁에서 한참 보고, 들으며 배워야 할때에……” “그것도 화산의 장문인에게 일인전승 되는 자하신공은 스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가?” “그러게 말일세. 어쩌면, 최전성기인 화산파가 가까운 시일 내에 몰락할지도 모르겠어……” 현 무림에서 영향력이 큰 문파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화산파를 말할 것이다. 우일문도 우일문이지만 향후에도 없을 고금 제일의 천재이자 영웅, 주서천을 배출한 덕이었다. 후기지수를 가뿐히 넘어 천하백대고수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데다가 협의로 민초들을 구하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장기화될 칠검전쟁을 하루 만에 정 리했고, 반야신공을소림사에 돌려줬으며 , 녹림도를 토벌해 적립십팔채의 약탈을 잠재웠다. 그 덕분에 화산파는 명예를 드높여 미래가 밝은 듯 싶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장문제자가 장문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기도 전에, 장문인을 잃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졌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크다.’ 주서천의 걱정도 짙어졌다. ‘역사가 뒤바뀌면서 무림의 미래도 불투명해지더니, 화산파라고 피할 수는 없구나. 정해졌다면, 정해진 미래인데…… 전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전란의 시대, 전날 승리로 이끈 영웅이 이튿날 시체로 발견되는 일은 잦았다. 오십 년도 되지 않아 장문인이 전사하는 경우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태는 화산파도 피할 수 없었으며 자하신공의 특성 탓에 구결을 전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장문제자가 스물이 되기도 전에 전대가 죽는 일은 없었다. ‘골치 아픈 일이 늘어났군.’ 한편, 그 밖의 여러 소식도 넓게 퍼졌다. “전에 월아천문주, 유효풍이 날뛰었던 건 미쳐서가 아니라, 당시에 활강시라서 그랬다고 하네.” “그랬나? 뭐, 지금에 와서야 별 상관없는 일이지. 그것보다, 공동의 복마검이 죽었다던데……” “오룡삼봉, 종남의 인룡 호덕창이 죽었네. 무림을 이끌어 갈 인재였는데, 참으로 안타까워.” “아이고, 아이고! 왕구야! 무림맹무사가 됐다면서 기뻐하더니만, 죽어서 그게 다 뭔 소용이더냐!” “난주의 백성들이 혈 향에 미칠 지경이라는데……” 전쟁이란 비극이며 파멸이다. 승자건 패자건 간에, 그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승자라 할지라도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면 기뻐할 수가 없다. 당사자에게 때로는 패전보다 최악이었다. 동원된 무림맹 소속 무사,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소 문파 등에서 희생자가 나왔으니 마냥 기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아직,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 참, 그래도 희소식이 없는 건 아닐세.” “뭐가 있나?” “화산파가 그래도 악운에는 강한 듯 허이. 검선과 혈마의 생사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솔직히, 그렇게까지 많이는 알고 있지 않네. 동귀어진을 했다는 정도……?” “어허. 이 사람. 아무것도 모르고있구먼. 나도 들은 것이지만, 사실 최후에 혈마의 목숨을 끊은 것은 검선이 아니라 매화정검이라 하더군!” “으응? 아니, 그게 뭔 소린가?” 당시 전장은 정신 차리기도 힘들 정도로 난장판이었으나 그래도 운명을 건 승부를 놓치진 않았다. 검선과 혈마가 격돌할 때마다 그 충격파는 주변에 있는 무인들이 싸움을 멈출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졸지에 내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그 생사결을 비교적 자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주서천이 끼어든 것부터 시작해서 혈마가 죽었다가 되살아나, 우일문의 몸을 빼앗은 경위도 알려졌다. “허허허, 예끼! 이 사람아! 사람이 어떻게 되살아나나?” 그러나 하나같이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구르면서 껄껄 웃으며, 너무 막나간 거 아니냐면서 조롱했다. 워낙 허황되어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고 무림인조차도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