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25)
“아무리 상천십좌, 상천십좌 하지만은 사람이 신도 아닌데 어찌 그리될 수 있겠는가.” “무언가 잘못 본 것이 분명하네.”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사실 나도 그러네. 전장에 있었으니 피도 좀 흘리고, 지쳐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할 걸세. 아니면 무슨 진법이나 사술에 걸려서 헛것을 본 거겠지!” “요컨대 혈마가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 있었던 탓에 뒤를 당했단 것 아니겠나.” “강호의 소문이란 건 으례 과장되는 법이라던데 그 말이 딱 맞구먼.” “흠, 그렇다면…… 아! 드디어 어떻게 된 줄 알겠구먼. 매화정검은 장문인이 눈앞에서 살해당한 걸 보고 원수에게 덤벼들었고, 마침 혈마는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으니 피하지 못하고 당한 거군그래!” 전황이 워낙 허황되게 느껴졌을 탓이었을까, 아무도 믿지 않다 보니 각자 그럴싸한 추측을 내놓았다. 그렇다 보니 주서천의 활약상이 줄어든 감이 있었다. 사람이란 직접 보지 않으면 잘 믿지 않는 의심의 동물이며, 또한 상식에서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 벌어지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기 마련이다. 주서천 역시 이에 대한 소문을 듣긴 들었으나 굳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혹은 진실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이게 낫다.’ 어차피 진실을 말해도 잘 믿지 않는다. 아무리 영웅이다 뭐다 추앙을 받는다 할지라도, 고작 약관에 상천십좌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승리하려면 심상구현의 단계, 즉 현경이자 절대고수의 경지라는 의미인데 그걸 누가 믿겠는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치명상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일문 덕에 약화된 건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본신의 무위가 어떤 정도인지 천기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다.’ 아무리 천기라고 해도 약관에 현경의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최악의 수까지 가정하에 머리를 쓰는 자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한편 , 안휘의 합비. “신강 밖은 여전히 조용한가?” “예. 개방도가 예의 주시하고 있으나,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습니다. 조용합니다.” “흐으음, 설마하니 선발대가 본대였던 건가?” 옥문관을 순식간에 통과한 혈교의군세는 오천이었다. 명색이 중원 침공이니 선발대만으로 끝내지는 않았을 터. 그러나 잔당이 보이지 않으니 수상찍었다. 혹시라도 이쪽은 미끼고 다른 곳에서 침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전역을 주시했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지켜보는 게좋겠습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섣부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주의 전력을 복귀시키지않고 당분간 대기하여 주변을 경계하고 감시하도록 했다. 승리라면 승리인데, 상천십좌 우일문을 비롯해 여러 인재들을 제법 잃어 손실도 적잖게 있었다. “경계령을 내리도록.” 회의 끝에 난주의 전력은 당분간 철수시키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동안 난주의 관리나 백성들의 반감을 사지 않도록 시신을 대신 치우는 등 정리를 맡아야 했다. 대기 명령이 떨어진 직후, 난주 지부는 대대적인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유족들에게 돌려보낸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의 대문파는 본산이나 본가에서 직접 찾아왔고, 그 외에는 무림맹이 수행했다. 다만 숫자가 워낙 많아서 시간이 제법 걸리는 듯 싶었다. “이럴 때야말로, 강시술이 필요한 것을……” 운학이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강시술이란 사실 주술이 아닌 도술에 속했다. 그 근원은 도교가 막 뿌리를 내릴 때까지 올라가는데, 원래는 이번처럼 전쟁터나 혹은 객지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고향으로 옮겨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의도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의도가 변질되고, 사자를 모욕한다거나 병기로 이용되어 여러 의견 충돌 끝에 사이한 주술로 분류됐다. 최종적으로는 마교와 혈교로 흘러들어가, 그 근본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도록 사라져 버렸다. 어쨌거나 난주의 대기령은 생각보다 제법 걸렸다.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해, 중원 밖에서 들려온 소문이나 정보를 알아보며 혈교의 움직임을 조사했다. 강시술의 실험체와 마공의 제물로 교도가 무분별하게 제물로 받쳐져 인구난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막 들 무렵이었다. 정혈대전이 막을 내렸다. 퍼억! 내장이 뒤흔들리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천기는 입을 꾹 다문 채,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뒤로 날아가려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가로막아 신체를 붙잡았다. “천기여.” “죽여 주시옵소서!” 천기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사죄했다. 그 목소리에는 공포 이상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동공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리고, 입가에선 피가 주르륵 흘렀다. 눈을 꽉 감고 있다. “슬슬 이 몸은 의문이 드는구나. 혹시나, 천기 그대가 일부러 지고있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다, 당치도 않는 말이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까,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그저 덜덜 떨면서 부정할 뿐이었다. “그러하면 어찌하여 이리도 실패하느냐. 그대는 무림, 아니 천하의 둘도 없는 천재이지 않은가.” 암천회주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다. “그 능력이 어떤지는 이 몸이, 그리고 본 회가 알고 있다. 제갈세가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 지략을 지녔으며, 오만에 빠져 실수하지 않는 겸손함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세세함까지 지니고 있지 않느냐.” 천기는 그저 머리를 숙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태껏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았던 암천의 두뇌가 이리도 지속된 실패를 겪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떠올릴 수 있는 건 그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천기는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했다. 머리카락은 산발이고, 이마는 찢어져 피가 흘러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체투지를 하듯 사죄를 올렸다. “……후우.” 암천회주가 짜증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천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여태껏 천하를 손에 쥐고 있다 하며, 여유를 잃지 않던 암천회주에게서 부정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죽는 것보다 더한 형벌을 받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됐다. 죽이지는 않으마. 그렇지 않아도 회에 인재가 부족한데 그대까지 죽는다면 어찌 되겠느냐. 네 부탁에 보고(寶庫)에서 흑관을 꺼내느라 조금 고생한 것을 떠올리면 괘씸하나, 그래도 검선이 죽어 화산파의 미래가 불투명해졌으니, 그걸 감안해 사면해 주마.” 원래의 예상대로라면 정혈대전이 장기화되었어야 한다. 최소 삼 년 이상은 지속됐어야 할 계획이었다.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했어야 했고, 기나긴 전쟁으로 백성들의 인심을 잃게 만들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조기에 끝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검선의 죽음으로 화산파가 위기에 빠졌고, 무림맹은 인재들을 잃어 타격을 입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 실적도 없었다면 목숨은 부지하지 못했다. ‘주서천! 주서천!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 천기가 머리를 숙인 채 분노로 들끓었다. 오해를 받을까 봐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지도 못했다. 속으로 어떻게든 삭혀 보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다. 그 훼방꾼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혈압이 올랐다. 그래서 듣지 않으려고 과한 수까지 동원했다. 혈교에 과한 힘을 내주고 싶진 않았지만, 확실히 끝내기 위해 흑관까지 꺼내 전달해 줬다. 심지어 전달하면서 경각심을 가지도록 주의를 주고 몇 차례나 강조까지 했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다고 이리도 훼방을 놓느냐는 말이냐!’ 정혈대전은 전에 세운 계획과는 조금 달랐다. 이 중에서 삼 할이 주서천의 사살이었다. 너무 과한 반응이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주서천 탓에 수틀린 일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오고, 짜증이 났으며 판단에 해를 끼쳤다. 그걸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회에 대해서 적지 않게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척살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죽이려고 온갖 수를 준비해 봤는데, 박살 났다. 죽이지 못했다. 실패했다. “이 못나고 어리석은 자를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를 올립니다.” 천기는 머리를 다시 바닥에 찧어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눈을 번뜩였다. 그 눈빛은 차갑게 불타올랐다. “그래도, 득이 없지는 않습니다. 정혈대전의 소란을 틈타 천권성의 첩자들이 늘어났으며 특히 천추는 행동 반경과 권한이 늘어나 정보의 질 역시 보다 좋아졌습니다.” 비록 최근에는 잇단 실패를 겪은 천기이지만 그 실력은 진짜배기다. 정혈대전처럼 심혈을 기울인 계획이 실패했으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최대한 이득을 취하려 한다. 준비한 수가 뒤틀리거나 망가져도, 필사적으로 다른 수를 떠올려서 실패를 어떻게든 메우려 한다. 그게 또 그저 어떻게든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수작이 아니라는 점이 더 대단했다. “절 믿어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증오와 분노를 믿어주십시오.” 알록달록한 단풍이 떨어졌다. 더위가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중원에만 통용되는 날씨였다. 감숙의 고비 사막은 여전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사막도 안녕이군.” 주서천이 기지개를 쫙 켜며 중얼거렸다. 상천십좌가 상천팔좌가 된 지도 어언 두 달이 되어 간다. 무림맹에서 내린 대기 명령이 드디어 해제됐다. “원래라면 진작 돌려보냈어야 했는데, 이제야 보내는 걸 용서해 주게.” 우일문을 대신해 난주 지부의 총지휘를 맡게 된 일지광이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사정이 있지 않았습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우일문을 잃은 화산파의 제자들은 전부 다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혈교가 다시 옥문관을 통과해 이차 침공을 행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그 탓에 주요 전력을 빼기가 부담스러웠다. 무림맹도 미안해하며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리고 처음의 무례는 용서해 주게나.” 첫 만남 때는 그토록 복수에 불타있었으나, 지금은 그 모습을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서천이 살짝 웃으면서 부담되지 않도록 농을 건냈다. 총지휘를 맡게 된 것도 단순히 감숙의 대문파로서가 아니라, 우수한 판단력과 무공이나 명성 덕이었다. 실제로 정혈대전에서도 여러 활약을 해서, 영향력도 제법 있었다. “그동안 정말 신세를 졌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내일 바로 출발하도록 하게나. 고생 많았네.” 시종일관 웃지 않았던 일지광도 옅게 웃었다. “그러면 내일 출발할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수속은 끝났으니 편할 때 떠나게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서천은 집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수고하십니다!” 나오자마자 경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이 절도 있게 경례했다. 그 눈에는 존경이 실려 있었다. “수고하세요.” 주서천이 조금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인사에 답했다.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사형.” “아, 낙 사매.” 고요한 밤. 은은한 불빛 사이에 선녀가 서 있었다.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어?” “어쩌다 보니 깼네요. 그러고 보니, 사형은……” “무림맹에서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는 걸 막 듣고 온 참이야.” “정말요?” 낙소월의 낯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