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35)
알려드리리라. 용서가 될지 모르겠으나, 부디 이 노마의 잘못을 받아 주시오.” 혜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철권마가 과거에 저지른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당시에 사제의 몸을 붙들고, 절규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사십 년이 흐른 지금, 정마대전이라는 중대한 사태를 앞에 두고도 복수를 위해 이곳까지 왔다. “방장 사형.” “잘못을 저지르고 뉘우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사부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훌륭한 일이며, 잘못을 비는 자를 용서해 주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잡아함경(雜阿含經)에 기록된 가르침이다. “남양호법 아니 방불통 공.” 혜만이 방불통을 향해 합장했다. “이 노승은 그대를 용서하겠소. 그러나 소림이 전부 용서를 한 건 아니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도 찾아가 용서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선승……!” 방불통이 눈시울을 붉혔다. “허어!” “방장 사형!” “나무아미타불……” 소림사에서 여러 가지 반응이 튀어나왔다. 불만의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놀라움이나 체념 혹은 분노가 있었다. 어떠한 이는 그저 염불 소리만 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불통을 잡아죽일 생각이었는데, 소림의 방장이 저리 나오니 주저함이 생겼다. 현 방장이자 신승의 영향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번뇌, 번뇌로다……” 부처의 가르침대로라면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만, 사십 년 전의 원한이 원한이다 보니 쉽게 그럴 수 없다. “소림의 땡중들 아니랄까 봐 말은 더럽게도 많구나! 실컷 떠들어라!” 금도마가 공간을 접듯이 이동했다. 도신을 감싼 도기는 중첩되면서 굳더니, 강기를 만들어 냈다. 금빛으로 휘황찬란한 도강은 대기를 둘로 갈라 방불통의 머리를 쪼갤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어허!” 혜만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째앵! 금도마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 손에 꽉 쥔 칼이 목표를 공격하지 못하고 도중에 막혔다. 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는 방불통 앞에 선 신승, 혜만이었다. ‘사대호법의 배교?’ 한편, 주서천도 놀라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일행은 경공술을 극성으로 펼쳐 달려 온 덕분에, 소림사를 뒤따라와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마교의 부대가 방불통과 합류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죽이려 든다. 목표였던 대마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소림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 살다 살다 마교도, 그것도 사대호법이 소림의 승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볼 줄은 몰랐다.” 몽각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다들 놀라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마교에서는 힘이 곧 진리다. 힘만 있다면 황제만큼은 아니어도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남자건 여자건 간에 맘껏 범할 수 있고, 재산을 빼앗는 것도 묵인된다. 살인도 포함된다. 누가 봐도 잘못되고 미친 사상이지만, 마교 내에선 이를 지적해 봤자 비웃음당할 뿐이었다. 마성에 물들어 사람으로서의 도덕심을 버린 마인들 입장에선 무릉도원이나 마찬가지인 사회였다. 교주에게 송곳니를 드러내 패배하고 도망쳐도, 겁쟁이나 약자로 불리지 배교자로는 안 불린다. 첩자의 경우는 배교한 게 아니니 그리 불리지 않았다. 마교도면서 배교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마교도가 개심해서 배교할 테니 받아 달라 한들 이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데 누구보다 마교의 사상에 감화되고 온갖 권세를 부리고 있는 사대호법이 배교했다니 놀랄 수밖에. “일단,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낙소월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 “저리 두었다간 소림사가 뒤통수를 맞겠구나. 도와줘야겠다.” 일행이 뛰어들었다. “와아아!” “죽여랏!” 서패호법, 금도마를 시작으로 마교도가 움직였다. “조심하시오! 저들은 마교의 풍마대(風魔隊)요!” 방불통이 경고했다. 풍마대라면 악명이 자자한 마교의 추격 부대다. 추격 부대답게 경신술이 교 내부에서도 손꼽히며, 개개인의 무위 또한 최소 절정 수준이다. 특히 대주의 경우 화경, 극마지경의 초고수였다. 아무래도 배교자가 사대호법인 만큼, 마교에서도 확실히 끝내기 위해 큰 마음 먹고 보낸 모양이었다. “방장 사형을 도와라!” 혜만 다음으로 소림의 어른인 혜법이 외쳤다. 그 외침에 십팔나한들을 선두로 소림의 무승들이 오십에 이르는 풍마대와 격돌했다. “크읏!” “악!” “어딜!”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격전이었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설 정도의 살의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 누구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소림사도 오늘 예정이었던 복수를 끝내기 위해서 실력자들을 데려왔고, 마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수준이 비슷해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항산파와 산서의 중소 문파 연합원들도 도왔으나, 그리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중소 문파 연합의 경우 괜히 훼방을 놓을 것 같아 접근 자체를 잘 못했고, 항산파는 인원이 몇 없었다. 원래부터 이 대마두의 척살을 소림사가 대대적으로 맡겠다고 해서 그런지 구 할이 소림사였다. 한편 격전이 치러지는 정중앙을 살펴보는 이들이 있었다. 척 봐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적들이었다. 그 인원이 무려 백에 이르렀는데 정중앙의 풍마대원들 만큼은 아니어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겼다. 그들은 소리나 기척을 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조심스레 전진했다. “컥!” 그러나 누군가가 거품을 물며 몸을 뒤틀기 시작해 얼마 가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독이다!” “누구냐!” 어떤 독인지는 모르나 중독됐다. 발각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더 이상 숨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급습을 노렸는데 도로 아미타불이 됐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아까워하면서도 주변을 급히 둘러봤다. “반갑다, 풍은대(風隱隊).” 적은 숨기는커녕 여기 있다고 광고하듯 나타났다. “……” 풍은대주는 두 가지 의미로 놀랐다. 하나는 교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대의 이름이 밝혀진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적의 정체였다. “검룡, 주서천!” 정파의 영웅에 관한 소문은 중원 밖 새외까지 널리 알려졌다. 몇 년 전, 혈근경을 두고 일어난 칠검전쟁이 너무나도 어이없게 정리되어 알려진 탓도 있었다. “교에서도 아는 자가 몇 없는 풍은대에 대해 알다니…… 정파에서 심어 둔 첩자가 깊숙히 침투했구나.” 풍은대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풍은대에 대해서 알려지는 건 좀 더 나중이다.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전생에서 싸워 본 적 있어서였다. 풍마대가 폭풍이라면, 풍은대는 폭풍 속에 숨어든 보이지 않는 칼날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초장부터 거리를 둔 채 은둔해 있다가, 급습을 통해 적들의 뒤통수를 쳤다. 폭풍에 눈을 빼앗긴 이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죽는다. 낙소월이 발견해 줘서 뒤늦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흔넷, 아흔다섯…… 아흔다섯.” 독으로 다섯 명을 저승으로 보낸 당혜가 풍은대가 몇 명인지 세어 본다. 백 명이었으니 숫자는 맞았다. 그에 비해 풍은대와 대치하고 있는 일행은 몹시 적었다. “하하하하!” 풍은대주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오만하다곤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설마 고작 여섯 명으로 풍은대와 싸우겠다는 게냐?” ‘아니, 일곱이다.’ 그임자 속에 소령이 숨어 있다. 그러나 굳이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 여섯이나 일곱 명이나 적은 건 매한가지다. 설사 알려 줬다고 해도 조롱 섞인 반응은 별반 다를 것 없었으리라. “일류에서 절정 정도로구나. 저 대주란 자는 초절정인 듯 싶으니, 주의해야 한다.” 몽각이 검을 돌려 잡고 경고했다. “삼재검진을 준비해라.” 담향은 일행 중에서 검진의 지휘에 능숙하다. 몽각과 낙소월은 호흡을 맞춰 준비했다. “으으음. 정말로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독룡, 당명인이 되물었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백여 명의 마인들은 부담스럽다. 정확히는 아흔하고도 다섯 명.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큰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또한 풍마대 역시 코앞에 있으니, 그들과 싸울 생각을 한다면 소비될 힘이 걱정됐다. “풍은대도 풍은대지만, 풍마대는 마교의 정예입니다. 소림사에선 도와줄 겨를도 없을 거고, 그 외의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나 껴든다면 움직이는 데 불편할 겁니다.” 주서천 정도 되는 경지에 오르면 복잡한 전장 속에서도 아군을 요리조리 피해 적만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방해가 된다. 차라리 혼자 싸우는 게 편했다. ‘자아, 그럼. 이 힘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 현경에 오른 뒤 홀로 검을 휘둘러 수련은 해 봤어도, 혈마 외의 타인에게 힘을 시험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무위를 시험해 보기에 딱 좋았다. “미리 말하마.” 주서천이 몸을 풀 듯 발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나는 강하다.” “미친놈!” 풍은대주가 코웃음 쳤다. “운 좋게 어부지리로 혈마를 죽인 것에 불과하거늘, 그걸 자기 힘인 것처럼 착각하는구나!” 검선에게 치명상을 입은 혈마가 주서천의 손에 의해 죽은 건 무림에서 모두가 아는 일화다. 풍은대주 역시 그리 생각했다. 천하백대고수에 드는 화경이라는 건 인정하나, 그것뿐이다. 그래 봤자 이제 막 약관을 넘어선 애송이일 뿐. 저리 오만에 잠겨 있으니 눈감고 싸워도 이긴다. “좋다! 그리 뒈지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마!” 풍은대주의 입가가 씰룩였다. 마성이 짙은 안광이 시커멓게 불타올랐다. 평소에는 들키지 않도록 숨까지 죽이고 있으나, 정면으로 싸울 때는 마교도답게 포악한 모습을 보였다. “주서……” 퍼억! 풍은대주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번쩍이더니만, 자색의 선이 긴 궤적을 남기고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대신 뒤편에 서 있던 풍은대원의 고개가 뒤로 젖혔다. 돌팔매질에 당한 것처럼, 머리가 수박처럼 깨졌다. 육신도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천……?” 풍은대주가 끊었던 이름을 이었다. ‘방금, 무엇이 지나간 거지?’ 분명히 자색이 번쩍이는 건 보았다. 그러나 그다음 어떤 일이 벌어진 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빛줄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수하의 머리를 박살 냈다. 황급히 앞을 살펴보니 엄지와 중지를 말고 있는 화산의 괴물이 있었다. 손가락 끝에 자색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을 보고 어떤 수를 쓴지 알 수 있었다. “자하지!” 화산파의 상승 지공, 그중에서도 장문인에게만 허락된 자하신공에 포함되는 무공이었다.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정말일 줄이야……” 풍은대주 대신 당명인이 말했다. 화산의 전대 장문인, 검선 우일문 진인이 우화등선을 앞에 두어 자하신공을 전수했다 들었다. 화산오장로를 비롯하여 검룡 주서천이 그 힘을 대신 이어받았다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대단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낙소월이 질린 듯이 말했다. 정작 화산파 제자들도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자하지가 극상의 지공이란 건 익히 들어 안다. 역시나, 하고 수긍이 가는 위력이었다. 그러나 그 기반이 난해하기로 소문난 자하신공인 만큼 이렇게 직접 응용하는 건 어려웠다. 실제로 화산오장로 역시 전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