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4)
순간 가슴속에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안쪽에서 이제 막 성년이 되었을 법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허미, 설마 양동일 줄은 몰랐네.” 소년, 주서천이 땅을 박차고 높이 도약해 망루 위에 올랐다. 무사들이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흠, 대충 세어 보면 백 정도. 고수가 있을 수도 었겠지만, 사백께서 전장에 계시니 그럴 리가 없겠지.” 주서천이 팔짱을 끼고 고심에 잠겼다. 그런 주서천을 보고 망루 밑에 있던 무사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화산파의 제자가 있었잖아! 그것도 연화각원이라고! 우린 살았어!” “멍청아, 저 꼬맹이는 저렇게 보여도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엥?” 처음에 두 팔을 뻗어 기뻐하던 무사는 열두 살이라는 말을 듣더니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이 워낙 또래 아이들보다 큰 것도 있지만, 풍기는 분위기 또한 성숙했기 때문이었다. “흐흐흑! 너 대체 얼마나 소식이 느린 거야? 저 꼬맹이는 내화외빈이라고. 내공만 무식하게 많을 뿐인, 그 외의 것은 전부 비어 있는 무능한 놈이란 말이다!” 다른 삼류 무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절망했다. “우린 이제 다 죽었어 !”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 줄까?” “아까 보니까 제갈세가의 천재들도 왔다며? 그런데 왜 양동을 생각하지 못한 건데!” 무사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절규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빠지니 듣기 민망한 저급한 욕설도 나왔다. 주서천은 망루에서 혼돈과 절망으로 가득 찬 무사들을 내려다보면서 피식, 하고 웃었다. 전란의 시대 때, 이렇게 양동에 걸렸을 경우 거점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도주하는 데 방해된다며 부상자와 아녀자들을 내버려 두고 도망친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이곳의 삼류 무사들은 욕하고 운명을 저주할지언정 도망치지는 않았다. “무공이 삼류라고 그 마음까지 삼류라는 건, 역시 편견이란 말이지 . 저렇게 훌륭한데 말이야. 하, 그나저나 운도 지지리도 없지.” 주서천은 웃음을 거두고 눈썹을 험악하게 구부렸다. 무사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으나,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전력에 넣을 수 있는 건 이류 무사 한 명, 삼류무사 이십 명. 적다.’ 적이 어떠한 전력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전력 그것도 사기가 최하인 상태에서는 싸우기가 힘들었다. ‘그 천재들이라면 아마 양동이라는 걸 눈치챌지도 몰라. 분명 지원 병력을 보내겠지. 그러면, 그 전까지만 버티면 된다.’ 주서천이 망루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오늘 죽을 것이라면서 절망하고 있었다. ‘아마도…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 곳은 양동에 걸려 전멸했거나, 인질로 잡혔을 거다.’ 원래 주서천이라는 인간은 여기에 없었다. 연화각원이 아니 었으니 당연했다. 제갈승계도 마찬가지다. 원래라면 여기에 었어서는 안 됐다. 출전할 당시만 해도 제갈삭은 제갈승계에게 전장을 보여 주기만 하려 했다. 하지만 제갈상이 나서면서 ‘숙부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두고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주 소협도 있지 않습니까?’ 라며 말렸다. 비록 내공만 무식하게 많지만, 제갈상이 보기에 주서천은 제갈승계보다는 정상이었다. 나이 또래에 비해 충분히 개념이 똑바로 박힌 것 같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보아하니 아까 소란을 듣고 숨은 것 같은데 ,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싸우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제갈승계는 무공을 못 한다. 내공심법을 익히긴 했지만 그것도 고작 이 성이다. 그걸로 어떻게 싸우라고 하겠는가. 일반인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가 의문. 어차피 방해밖에 되지 않으니 차라리 발광하지 않고 얌전히 숨어있는 편이 좋았다. “자,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나.” 스르릉. 주서천이 검을 빼 들었다. 옹안 지부의 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문으로 사도천의 무사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려 하고 있다. “꺄아악!”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의녀(醫女)들이 비명을 질렀다. 피를 보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크하하하! 이리 오거라!”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도천의 무사가 소리쳤다. 산적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이 특징이었다. “나는 귀주의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막원갑…… 으응? 뭐냐, 이 꼬맹이는?” 막원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정면을 주시했다. 장원 안, 이제 막 성년이 된 듯한 주서천이 서서 검을 늘어뜨린 재 침입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놈에게 댈 이름은 없다.” 주서천이 검을 세워서 자세를 잡았다. “뭐라고? 크하하하!” 막원갑이 주서천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함 반, 비웃음 반이었다. “꼬맹아, 설마하니 혼자서 우리를 상대할 생각이냐?” “아니. 혼자는 아니다.” 주서천이 왼손을 들었다. 그러자 이십 명의 삼류 무사들이 나와 부서진 대문 근처를 둘러쌌다. ‘이런.’ 막원갑이 아차 했다. 아직 대문을 넘지도 못하고 뒤에서 따라오는 무사들이 많았다. 옹안 지부에 싸울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다들 여유를 부렸다. 대문 근처에서 빠져나온 자들이 겨우 십오 명. 다들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 공간도 별로 없었다. “수비식” 주서천의 명령에 삼류 무사들이 자세를 바꿨다. 다들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대문을 이용할 생각은 칭찬할 만하다만, 그렇다고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막원갑은 정말 찰나라 말할 정도의 순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옹안 지부에 고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꼬맹이, 네놈이 너무 당당하다 보니 조금 당황했다. 우리를 우습게본 죄, 이 칼로 똑똑히 묻도록 하마!” 막원갑이 칼끝으로 주서천을 가리켰다. “쳐라!” “와아아아아!” 사도천의 무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문에 몰려 있던 무사들이 위협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옹안 지부의 무사들은 주춤거렸지만, 이내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필사적으로 검을 부딪쳤다. “꼬맹이, 뭘 믿고 그렇게 나서는지 궁금하구나!” 사도천 무사들 중에서 제일 덩치가 산만 한 자가 포위를 뚫으면서 멧돼지처럼 돌격했다. 멧돼지의 송곳니는 없었으나, 그 대신에 흉악한 칼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죽어라!” 칼이 날아온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깨끗할 정도로 일직선을 그려 내는 도법이었다. 대단한 휘두름은 아니었다. 고작 삼류의 수준에 불과했다. “ ……” 눈이 감긴다. 세상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주변의 소리가 고막을 지나 뇌를 울렸다. 와아아아아! 찰나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순간. 그 짧은 순간에 과거의 기억이 범람하여 주변에 영향을 줬다. 전란의 시대 싸움밖에 모르던 시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형성했다. 정신을 차리니 그곳에 서 있었다. 도복은 누군가의 피인지도 모를 정도로 새빨갛게 변색되어 있었다. 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고, 다리는 떨렸다. 정면에는 누군가의 등이 보였다. 영웅의 등이었다. ‘항상 등을 보았다.’ 누군가의, 듬직한 등을 보았다. 남자도 여자도인지도 모를 등이다. 노인인지도 아이인지도 성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건 그 등이 그 누구보다 태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주서천이 검에 힘을 주었다. “하하, 겁을 먹고 오줌 지렸구나!” 덩치 큰 무사가 가만히 있는 주서천을 보고 웃었다. “내가……” 하단전에서부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매화에서 얻은 내공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배꼽 아래 하복부 쪽에서 시작된 내기는 튼튼하게 다져진 기맥을 타고 온몸을 돌아 손과 연결된 검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매화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등이다.” 서-걱! “어?” 검이 바람 소리를 내면서 선을 그렸다. 한 일(一) 자를 세로로 세운, 흔들림 하나 없는 선이었다. 그 선은 새하얗게 빛났으나, 이윽고 붉은빛으로 타오르며 혈선(血線)으로 변했다. 덩치 큰 무사의 칼이 공중에서 멈춰 섰다.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수리 부분이 쩍, 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정수리를 시작으로 가랑이까지 혈선이 새겨졌다. 뚜욱. 가랑이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새빨간 피였다. 보기 흉한 가슴 위로 피가 흘러나왔다. “말도 안……”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쩌억! 덩치 큰 그 몸뚱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 몸은 장작처럼 둘로 갈라져 버리며 쓰러졌다. “ ……” 순간 정적이 전장을 가득 메웠다. 사도천 무사들을 포위하면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옹안 지부의 무사도, 그 적들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화가 길가에 있다(梅花路傍).” 주서천이 여전히 미동하지 않는, 수비식을 취한 채 읊조렸다. “매화와 나비처럼 춤춘다(梅花蝶舞).” 파앗! 주서천의 몸이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진 건 아니다. 삼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주서천은 정면의 사도천 무사들에게 파고들어 유려한 몸놀림으로 빙글 돌았다. “매화가 염기를 뱉어 낸다(梅花吐聽).” 주서천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들이 일렁이며 주변을 슥 훑었다. 주변에 둔 사도천의 무사는 셋. “매화가 피어나 날카롭게 이끈다(梅開利導).” 그리고 그 기운이 안에서 만개하며 매서운 기운들을 토해 냈다. 어떠한 무언가가 그들을 푸욱 찔렀다. “캬아아악!” 사도천 무사 셋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쓰러졌다. 자세히 보면 가슴 등의 사혈에 구멍이 났다. “뭐, 뭐냐.” 막원갑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기에있는 그 누구도 상승의 검법이 어떠한 것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뭐냐고!” 막원갑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주서천이 검을 털어 묻은 피를 닦았다. 옹안 지부의 무사들이 주서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작지만, 또 커다란 등이었다. “지나가던……” 주서천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화산의 검수다!” 주서천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몸을 재차 날렸다. 목표는 막원갑이었다. “뭐, 뭣들 하고 있어!” 막원갑이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쳤다. 처음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의 패기는 없었다. “저놈부터 처리해!” 꼬맹이에서 호칭이 바뀌었다. “혀, 형님. 화산의 검수라는데요?” 덩치의 사망으로 제일 앞이 된 무사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산파. 그 이름은 사도천의 하수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게, 게다가 아직 약관이 되지 않는 거 보면……” “연화각원이 틀림없습니다!” 약관이 되지 않았는데도 강호에 나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기의 모두가 알고 있다. “연화각을 건들게 되면……”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연화각원은 화산파에서도 특히나 신경 쓰는 인재. 보복이 두려워 섣불리 건들기가 힘들었다. “이 머저리들아!” 막원갑이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목에 핏대를 세웠는지 퍼런 핏줄이 튀어 올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철수할 생각이야? 여기에 부상자들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데, 도망친다면 온갖 비웃음은 물론이고 우리의 목은 끝이다!” 양동을 위해서 백 명의 무사를 따로 빼냈다. 그만큼 본대의 피해도 커지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든 여기를 뚫어 정복한 다음, 옹안 지부의 식구들을 죄다 인질로 잡아야 했다. “그리고 화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