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41)
부딪쳐 전부 사라졌다. 주서천은 금도마의 쓸데없는 짓을막기 위해 칼을 쥔 오른팔을 잘랐다. 서걱! “아악!” 금도마가 팔을 붙잡고 비명을 내지른다. 웬만한 무인들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대마두를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해, 남은 팔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자, 말해 봐라. 도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거지?” 못 움직이게 한 다음, 입 안에 천조각을 넣기 전 물었다. “크, 큭……” 금도마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눈매 또한 기분 나쁘게 휘었다. “너희…… 정파인은…… 항상 그런 식이지……” 팔을 잃고, 나머지 팔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잘만 말했다. “마도인이…… 반성, 하고…… 개심한 것을 믿지 않아…… 무슨 말을 했건, 조금도…… 믿지 않는다. 흐흐흐…… 어차피 어떤 말을 하건 소용없겠지. 너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 테니까……” 금도마가 큭큭 하고 웃었다. 주서천은 어쩔 수 없이 금도마의 수혈을 짚었다. “한숨 푹 자라, 서패호법.”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교의 사대호법보다는 소림이 신경 쓰였다. “그러니 제발 별일 없어라!” 괜한 불안감에 입으로 옮겼다. 그사이에 또 이동한 모양이었다. 수풀을 통해서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움직였다. 벼랑 끝까지 물린 방불통과 그 앞에 서서 보호하려는 듯 앞을 막아선 소림의 방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제자가 대면한 채로 이를 갈고 있었다. “지금 막 서패호법을 처리하고 왔습니다. 백보권승께서는 진정하십시오.” 주서천은 홍고의 등을 보고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소림의 사정이니 끼어들지 말아주시오!” 홍고가 고개만 살짝 돌리고 경고했다. 번뜩 뜬 눈에는 불도를 걷는 사람과 거리가 먼 살의가 보였다. “만약, 또다시 방해한다면……” ‘큰일 났다.’ 아무래도 혈근경 때의 한이 완전하게 해소되지 못한 듯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았다. 말리면 철천지원수가 될 분위기였다. “네가 정말 내 제자가 맞느냐?” 제자의 눈을 본 스승이 물었다. 탓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의심도 아니었다. 신승의 눈에는 걱정과 슬픔이 묻어났다. “홍고야…… 무엇이냐. 무엇이 널그리 몰아 넣었느냐?” “무엇이 그리 몰아 넣었냐고?” 홍고는 그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아무도 절 몰아넣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훗날 신권이라 불릴 절대고수가 답했다. 그 목소리는 북풍한설이 부는 것처럼 차가웠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입니다.” 사십 년 전의 복수.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전진이었다. “불법을 소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과한 수도 얼마든지 쓰겠습니다. 후에 불초 제자가 끼친 무례는 얼마든지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앞에서 비켜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무형수를 거둔 혜만이 합장했다. 늙은 중의 몸은 빈틈투성이였다. “부처님께서 ‘성내지 말라. 누가 너에게 성내어도 성냄으로 갚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또한 ‘누가 와서 그대의 팔을 자르더라도 원망하지 말라. 치료를 해 주어도 반가운 마음을 내지 말라.’ 고도 하셨다.” 잡아함경의 가르침이다. “복수심과 증오심으로는 화해가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임을 너역시 알고 있지 않느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진실된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말입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거짓을 고하는 자의 말인데, 어찌 믿으란 말입니까?” 마치 윤회처럼 말이 돌고 있었다. 스승은 원수의 반성을 받아들이고 자비를 베풀라 하지만, 제자는 그 반성에 진의가 있는지 의심했다. 그러니 일단 소림으로 데려가 판단하라고 했지만, 이 역시 함정일지 모른다며 거부한다. ‘이를 어찌할꼬……’ 신승은 애가 탔다. 여기에서 양보할 수는 없었다. 말싸움이나 방식의 차이라면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방불통의 경우는 달랐다.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을 돌보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수용하게 된다면, 소림은 앞으로 수라도의 길을 걸으리라. “만약, 만약의 일입니다.” 홍고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림은 지금 소림이 복수를 위해 움직인 걸 알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으나, 이대로 놓아주고, 누군가에게 철권마가 죽는다면 소림을 이제 어찌 보겠습니까?” “그 또한 명예욕이 아니겠느냐. 탐욕을 버리거라. 탐욕은 진에와 우치를 비롯한 번뇌를 부른다.” “정말로 답답하십니다!” 홍고가 가슴을 두드리며 성냈다. “그러면 소림이 욕먹는 걸 가만히지켜보고 있으란 겁니까? 쇠락해 가는 걸 보고만 있으라니요!” 소림을 낮잡아 보는 것이 싫었다. 무시하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았다. 실제로 세간에선 예전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열불이 터졌다. “방장이선 사부님께서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북두에 소림 대신 화산이 들어가야 하지 않냐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현 무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건 화산파다. 비록 얼마 전에 장문인을 잃어 최대의 위기에 빠졌으나, 검룡의 적절한 지혜 덕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상천십좌와 더불어 정파의 최고 영웅을 배출한 덕에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 보려고 재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창고가 터질 지경이었다. 손님이 오면 대접해야 하기에 그만큼 돈이 소비됐지만, 그걸 감안해도 돈은 충분히 남았다. 화산파는 남은 돈으로 구휼을 시작했다. 명색의 도가 문파이니 돈이 남는다고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후계 양성, 수련동이나 거처의 수리, 약품 등 필요 비용을 제외하곤 백성을 도왔다. 화산파의 이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원 전역에 퍼지면서 무림인 할 것 없이 사람들에게 칭송받았다. 위인의 배출부터 시작해 매화검수를 비롯한 정예를 길러 내고 약자를 도우니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소림은 이렇다 할 실적없이 떨어지는 중이라 그 입지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소림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화산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겁니다.” 머릿속으로 정혈대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둔한 녀석!” 혜만이 홍고에게 소리쳤다. “화산의 검이 드높아지고, 보다 많은 사람을 도와 구할 수 있다면 그건 무림의 홍복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남을 질시하는 것은 좋지 않느니라.” 질투. 그 말이 어떠한 검보다 날카롭고 뼈아팠다. 홍고는 등 뒤에서 바라볼 화산의 영웅이 고비 사막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떠올리며 이를 깨물었다. ‘그래. 질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개인의 질투는 아니었다. 홍고는 소림을 사랑했다.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며 존경을 받는 소림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주서천이 반야신공을 돌려주려고 소림에 와서 비무를 했을 때 홍고는 소림이 제일이란 마음을 버렸을까? 아니다. 승복했으나 그 마음을 전부 버리지는 않았다. 스승 앞에서 아닌 척 했던 것뿐이었다. “소승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보다 완벽한 소림을 만들기 위해서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노력한 덕분일까 제법 큰 성취가 있었다. 화경을 넘어서 다음 경지의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개인으로서는 패배했으나 이를 반면교사 삼아 노력한다면 최후에는 소림이 웃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 반년 전, 정혈대전 때의 일로 그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화산에는 괴물이 있다.’ 천재가 아니다. 상식을 넘어선 괴물이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매화만리향을 보았을 때의 일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코끝에 매화 향이 남아 있다. 그 짙은 매향에 취할 뻔했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각심이 홍고의 정신을 깨우쳤다. “이대로 뒀다간…… 소림은 도태됩니다.” 태산북두 천년소림의 역사도 끝이다. 그 불안은 주서천과 혈마의 결전으로 극의에 닿았다. 홍고는 중원에서 주서천의 무위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었다. 감탄은 하되 반기지 않았다. 도리어 초조해져 불안에 떨었다. “……” 주서천은 홍고와 마주 보고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입을 통해서 진심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충격에 빠졌다. ‘나 때문이라고?’ 역사가 미래와 달라진 건 진작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일그러질 줄은 몰랐다. 알고 있는 미래에도 신승과 신권이 방식의 차이로 종종 말다툼을 했다 하지만 토론의 수준 정도였다. 결코 이렇게 감정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일로 그는 방장이 될 수 없을지 모르고, 심상에 문제가 생겨 현경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이 됐다. ‘고쳐야 한다!’ 잘못을 저질렀으니 어떻게든 수정해 봐야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좌절에 빠지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다른 수 하나라도 떠올리는 게 나았다. “네가 정녕 그리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혜만이 오른손만 들어 반장했다. “절 힘으로 제압하시려는 겁니까?” “아니.” 혜만은 그 대신 눈을 감았다. 오른손으로는 손목에 감은 염주를 쥐곤 염불을 작게 외웠다. “정녕 네 뜻을 이뤄야겠다면, 이노승을 죽이고 가거라. 방 시주께서는 제 뒤에서 벗어나지 마시오.”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소.” 뒤로는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척봐도 위태로웠다. 까마득한 높이 아래로는 바위를 깎아내는 거센 물줄기가 사나운 짐승처럼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탓에 그 아래는 한낮인데도 무저갱처럼 시커먼 암흑으로 가려져 있었다. “사부님……” 홍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파고들어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주서천은 어떻게든 말리기 위해서 설득에 나섰다. “주 시주께서는 상관하지 마시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상관하지 말라는 겁니까!” 주서천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시간에도 전장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홍고가 몸을 돌려 주서천을 바라보았다. “그깟 복수가 중요해? 그게 그리 중요해서 수십 명의 승려들을 죽게 만들고 있냐고!” 주서천은 홍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원수를 어떻게 구워 삶을지는 알아서 해!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 가고 있는 사람부터 구하라고! 사형제잖아! 가족이잖아!” “……” 혜만도 홍고도 몸을 흠칫 떨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홍고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대의 말대로다. 화산의 영웅이여.” 홍고의 눈빛이 변했다. 승려치곤 너무나도 급진적이고, 성정이 과한 백보권승은 몸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앞으로 향했다. 스승은 제자가 오는 걸 막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소림을 위해서, 결말을 맺어야 할 듯 싶습니다.” 쐐액! 홍고가 말이 끝나자마자 주먹을 휘둘렀다. 방불통으로 향하는 길, 그 앞에는 혜만이 있었다. 신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권풍이 쏟아졌음에도 석상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툭. 훗날 신권이라 불릴 주먹이 코앞에서 멈췄다. “어째서 막으시지 않았습니까?” 홍고가 물었다. “어떠한 적의도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혜만이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며 답했다. 그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 슬퍼하지 말려무나. 홍고야.” 앞날을 내다보는 듯한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건, 굳게 다문 입 옆으로 흐르는 눈물이었다.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알고 있습니다.”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다오.” “알고…… 있습니다.” “걱정이로…… 구나……” “편히 주무십시오, 사부님.” 퍼억.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