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42)
돼!” 주서천이 온갖 감정이 뒤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쿨럭!” 혜만이 피를 울컥 토해 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명치 부근에서부터 복부에 구멍이 생겼다. 눈에 맺힌 빛도 서서히 꺼져 갔다. 그 뒤로는 매미처럼 붙어 있던 방불통도 있었다. 소림 방장 혜만. 활불이라 일컬어지며 수많은 무인들에게 존경을 받은 승려는 천천히, 느릿하게 뒤로 쓰러졌다. 손목에 쥔 염주는 과한 힘이 들어갔는지 끊어졌고, 딸린 염주 알들이 비산했다. 혜만은 절벽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까지도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풍덩.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절벽 아래와는 달리 그 위는 정적으로 가득찼다. 신권, 아니 홍고는 등만 보인 채 침묵을 지켰다. “이…… 미친…… 놈아!” 주서천이 분노로 가득한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놈! 미친놈! 이 미친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욕만 나왔다. 제자가 스승을 죽였다. 그것도 불학을 공부하는 승려다. 승려가 스승을 제 손으로 죽였다. 입적한 뒤로도 여러 무림인들에게 존경받는 위인, 신승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제자에게 죽었다. “검룡 대협! 도대체 무슨 일이오!” 뒤편에서 누군가가 소란을 듣고 찾아왔다. 나이에 맞지 않은 노안, 독룡 당명인이었다. “백보권승, 홍고는 더 이상 승려가 아니오!” 웅웅웅. 주서천이 쥔 검이 분노에 떨 듯 울어 댔다. “복수에 눈이 멀어, 미쳐 버려, 지 스승을 살해한 파계승입니다! 저자를 상대할 테니 지원을 요청하십시오!” “……” “어서……?” 주서천이 말을 하다 말았다. “이상하군.” 당명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독지체라는 걸 감안했는데도 무형지독(無形至毒)의 중독이 늦는군. 그래, 설마하니 만독지체인가?” 뻐끔뻐끔. 주서천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목소리를 내려 했다가 몸 내부에 생긴 문제를 치유하려고 그만뒀다. “만나서 반갑네.” 당명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천추(天樞)라 하네.”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온갖 의문들이 떠오르며 꼬리를 물었다. ‘왜?’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당명인은 흑영부다. 흑영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지만, 알 사람들에게는 최우선으로 의심받는다. 그리 눈에 띄는 사람을 천추로 삼았을 리 없다. 조금만 의심받아도 행동에 제한이 생긴다. 그리고 바보도 아니고 천기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뻔히 들킬 계획을 세우겠는가. 그러니 시선을 돌리기 위한 눈속임이라고 생각했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남궁위무와 제갈상도 그리 생각했다. “천기의 전달일세.” 당명인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조금 지친 얼굴로 무감정한 목소리를 냈다. “책략에 있어, 적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쉬운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랬다.” “……!” 허를 찔렀다. 천기에게 수를 읽혀 버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금방 들킬 일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확신 탓에 패배해 버렸다. “참으로 무서운 자야.” 당면인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가까이 왔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는 몰라도 해독이 쉽지가 않았다. 녹안만독공의 구결을 떠올리며 운기 했으나 해독이 중독을 따라가지를 못했다.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장기를 두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졌다. “이해 못 할 정도의 철저함 또한 무서운 점이지.” 항상 경계했는데도 졌다. “나 같으면, 십이 시진 동안 감시하면서 회에 대해 어찌 알았는지 정보의 출처를 토해 내도록 했을 걸세.” 최초의 패배였으나, 그 패배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하더군.” 당명인은 성난 소처럼 거세게 날뛰는 심장의 위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짚었다. “솔직히, 욕심이 없는 건 아닐세.” 천독지체의 몸이 흔한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 회를 생각해 보면 자네를 죽이는 것보단 생포해 두는 것이 이득이야.” 암천회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뭘 알 건, 알지 말아야 할 걸 알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세워 온 대계의 실패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자야. 그 누구보다 증오할 터인데,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한다면서 위험하니 사살하라니.” 당명인이 가슴 위를 짚은 손을 밀어냈다. 치이익. 손가락 끝에서 극독의 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아무런 빛깔도 없었고, 냄새도 없었지만 독이 분명했다. 손가락이 닿은 천이 파도처럼 울렁이더니, 불에 탄 재처럼 흩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 아래의 피부도 잿빛으로 변하면서 이윽고 썩기 시작했다. 흉부를 보호하는 갈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고, 뼈 역시 흩어지면서 끝내 심장까지 보였다. “말이 길어져서 미안하네. 그리고……” 푸욱. 당명인이 오른팔을 쭉 뻗었다. 손끝이 심장을 짓뭉개면서 등 뒤로 튀어나왔다. “잘 가게나.” “크……히억……!” 주서천은 깊은 숨을 토해 내며, 뒤로 쓰러졌다. ‘천기……’ 천추의 뒷모습에 얼굴도 모르는 암천의 지혜가 보였다.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가 웃는 게 떠올랐다. “자, 그러면 목을……” 심장이 조각났는데도 목을 잘라 확인하려 한다. 그 철저함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당명인이 주서천이 쥔 검을 대신 집었다. 그 와중에 지문이 남지 않도록 소매로 잡는 걸 잊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나려는 순간. 파바밧! 뒤에서부터 그림자가 덮쳐 왔다. 당명인이 놀라 후위를 향해 태아를 휘둘렀으나, 애꿎은 허공만을 갈랐다. “이런!” 아차 싶어서 허리를 원래 위치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지면에 누워 있던 주서천이 없었다. 눈을 돌려 보니 어깨에 둘러멘 여인이 보였다. “ ……누구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여인이었다. 무감정하면서도 남자의 시선을 이끄는 미녀였다. 다만 정파의 여인은 아닌지 옷차림이 무척 엄했다. 흑의를 입었으나 천의 면적이 몹시 좁았다. 피부 위로는 불길한 빛을 은은히 내뿜는 문신이 보였다. 기괴한 도형이나 혹은 고문자가 섞여 있어서 무척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마교……?” 겉만 보면 마도의 주술을 사용하는 듯했다. 실제로 그 기색이 비슷했다. “……” 탓! 하지만 그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정체를 가늠기도 전에 그녀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급히 따라가 보니, 수면 아래로 떨어져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왜 막지 않았…… 됐다.” 당명인은 홍고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태산을 담을 것처럼 보였던 그 등이 작아 보였다. ‘번뇌에 사로잡혀 미친 게냐, 홍고여. 혹은 주화입마에 빠져 심마라도 생긴 것이냐.’ 소림의 기대주, 백보권승이 언제 이리 미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화산파나 주서천에 대한 질투인지, 아니면 스승과의 반목이 계속되면서 정신이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소림의 유일한 기둥이자, 지 스승을 스스로 무너뜨리다니.’ 상천팔좌의 빈자리는 누가 채운단 말인가. 무엇보다 신승은 늙었다. 굳이 살해하지 않아도, 방장의 자리는 거저 얻을 예정이지 않았는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리 소중해서 스승을 죽였느냐. 소림의 명예와 힘이 중요했었나, 쇠락과 도태가 두려웠나.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그런…… 그야말로 파계승이로다.’ 당명인은 고개를 절례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중으로 보기도 힘들군. 저자야말로 불교에서 마라라 불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수한 혐오를 담은 눈길로 홍고를 쳐다봤다가, 주서천이 떨어진 절벽을 살폈다. ‘심장을 조각냈다. 혹여나 심장의 위치가 다를지 몰라 가슴을 열어 직접 확인해 구멍을 냈다. 게다가 무형지독까지 중독됐으니,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살리지 못하겠지.’ 비록 누군가가 데려가긴 했지만,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 주변의 물살은 강하고 빠른 데다가 지형 역시 좋지 않아 몸 성히 떨어져도 살아남기가 힘들다. 적림십팔채의 수적들조차도 얼씬하지 않는 곳이다. “슬슬 가세나.” 당명인이 홍고를 불렀다. “소림 방장.” * * * 무림이 들썩였다. 정마대전을 앞에 둔 중원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상천팔좌가 아니라 상천칠좌라니!” 신승의 입적. 아니, 정확히는 살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객잔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신강이나 청해의 사정보다, 소림의 신승으로 가득했다. “신승께서 그만 마교의 함정에 당하고 말았네.” “술은 내가 살 테니 얼른 좀 말해보게나!” “마교의 남양호법, 대마두 방불통이 그동안의 악행을 반성한다면서 중원에 온 건 알고 있나?” “알고는 있네만, 그게 정말이었나? 마교에서 배교자를 처형하려고 서패호법과 풍마대를 보냈다고는 들었지만…… 그, 대마두가 아닌가. 믿음이 가야지.” “그 말대로일세. 순 거짓말이었더군. 서패호법과 풍마대는 함정을 취한 초석에 불과했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소림의 전(前) 방장, 신승께서는 당시 고심한 끝에 용서를 구하는 방불통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했네.” “방금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거짓말이었어! 신승께서 선의의 마음으로 보호하자, 그 대마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뒤를 쳤지!” “에이잇, 이런 개자식이 있나!” 신승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소립의 방장이었던 그는 누구보다 구휼에 힘써 왔다. 과거에도 죄를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고, 도리어 불법을 전도하며 자비를 베풀기도 해 존경을 받았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행동 덕에 신승이라 불렸다. 비록 소림이 최근 약세라 하지만, 그래도 중원인 중에서 신승을 우습게 보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도(佛徒)는 대마두를 끝까지 보살피려 했던 신승의 최후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칭송했다. 반면 방불통의 악명은 끝없이 늘어나, 마교의 교주에 견줄 정도까지됐다. 만약, 그 대마두가 스승을 잃은 슬픔에 분노한 제자의 주먹에 죽지 않았다면 다들 분개했으리라. “허어, 화산의 장문인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흉사가 끊이질 않는구나.” “소림은 후계야 정해져 있으니 걱정할 것 없네. 그것보다 정말로 문제는 화산파지.” “정파. 아니 무림의 영웅이 그리 가버릴 줄이야!” 화산파에 복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 이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터졌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단연 정파 무림의 미래를 짊어졌다고 평가되는 주서천의 생사불명 소식이었다. “정말로 그 주서천이 죽었다는 건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일세. 신승께서 돌아가신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군. 서패호법과 풍마대주에게 합공을 당해 치명상을 입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더군.” “허어! 서패호법과 풍마대주라면 마교의 탈마, 천하백대고수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은 게 사실이라면, 사실상 생사불명이 아니라 죽은 거잖나.” “그렇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이대로 가다간 중원 무림에 마도의 깃발이 꽂히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군. 짐을 싸야겠어.”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야……” 사도천. “하하하!” 사도천주가 무릎을 탁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술을 가져와라! 내 오늘 연회를 열어야겠구나!” 선승과 검룡의 사망 소식이 무림 전역에 퍼졌다. 당연히 사도천에게도 잘 전해졌다. “하늘이 사도천의 반절을 가져갔지만 모든 걸 주려는구나!” 암천회의 내막을 모르는 사도천주는 이번 사태로 가장 이득을 본 건 사파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산파 그놈들이 잘나가는 게 꼴 보기 싫었는데, 아주 잘 됐구나. 정파의 영웅까지 잃었으니 그들에게 향한 민심 또한 되돌아올 것이다. 사람이란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