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44)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미미하게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등을 돌렸다. “혹시, 아직도 검룡의 생사가 신경쓰이시는 거요?” 남궁선유가 제갈수란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물었다. 움찔. 제갈수란이 미세한 반응을 보였다. “역시나……” 남궁선유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청해에 정파가 집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승과 검룡의 생사불명 소식이 전해졌다. 아니, 말이 생사불명이지 사망 소식이었다. 전쟁을 앞둔 전선이다 보니 소문에 더 민감하다. 아직까지도 그 화제로 떠들썩했다. 당시 전투 편성을 위해 회의 도중이었는데 당시 그 냉정 침착의 모사가 말을 잃고 충격에 잠겼었다. 그 이후로도 제갈수란은 이렇게 가끔씩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리셔야 하오, 제갈 소저. 검룡이 어찌 됐는지는 모사인 소저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소.” “……네.” 제갈수란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로 유감이오, 제갈 소저. 나역시 오룡삼봉으로서 그를 만나 보고 싶었소. 고인의 명복을 비오.” 남궁선유가 합장 대신 포권으로 인사했다. * * *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썅!” 주서천이 눈물을 흘리며 눈을 번쩍떴다. “소령아 나 정신 차렸……” 짜악! “쌰앙!” 멀쩡히 살아 있다. “썅.” 아직도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류에 떠밀려서 온 것은 분명한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어디 보자……’ 일단 몸부터 멀쩡한지 확인해 봤다. 구멍이 뚫렸던 심장 부근부터 확인해 봤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옷은 멀쩡하지 않지만, 몸은 괜찮다. 바람이 휑휑 불고 지나갔던 구멍은 없었다. 조각난 심장도 멀쩡하게 뛰었고, 피와 살도 다치기 전으로 돌아왔다. 심상구현, 회귀가 제대로 발동했다. “끔찍한 악몽인 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현실이구나.” 당한 걸 생각하니 열불이 터졌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신권이라 불릴 홍고가 끝내 미쳐버려 파계를 저질렀고, 스승을 살해했다. 그를 벌하려던 찰나, 뒤에서부터 당명인이 나타나더니 배신했다. “천추!” 으드득! 그동안 최대의 적을 믿고 동행한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멍청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당한 건 또 거의 처음인가.’ 잡다한 실수나 패배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컸던 적은 없었다. 최초의 실패인데 그게 치명적이었다. “이 능력이 없었다면 죽었을 거야……” 심장이 찢어지고 가슴에 구명이 생겼을 때 꺼져 가는 의식을 겨우 바로 잡으며 회귀를 사용했다. 두 번째라서 잘 될지 몰랐는데, 무사히 성공했다. ‘도대체 무슨 독을 쓴 거지?’ 당명인의 뒤통수에 정신이 나간 것이 크기도 했지만, 무형지독을 어떻게 해독할 수가 없었다. 곧바로 회귀를 사용해 볼까 싶었으나, 이 역시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중독된 순간 뇌나 정신에까지 문제가 생긴 듯 싶었다. 당시에 사고조차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아서 무척 곤란했다. ‘이 경지까지 왔는데도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하다니…… 이 세상 독을 끌어모으기라도 한…… 아니, 불가능한 건 아닌가.’ 독지는 물론이고 남만까지 제집처럼 돌아다니던 도감부장이 떠올랐다. “소령. 내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됐지?” 팔 번쩍 형(刑)에 처한 소령에게 물었다. “사흘.” 소령이 팔을 든 채로 무감정하게 답했다. “사흘씩이나? 그리고 팔 내려도 좋아.” 하루 이틀 정도 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됐다. 심상이 불안정하게 구현돼서 그런 듯했다. “일단은 몸부터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소령에게 호법을 부탁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소주천으로 훑어봤는데 딱히 문제는 없었다. 정말로 다치기 전으로 돌아갔는데, 그 시기가 한참 싸우던 와중이어서 그런지 내공을 소모한 상태였다. 어차피 내공이야 무식하게 많으니 상관없다. 운기를 끝내고 반사적으로 검을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혹시 하는마음으로 옷을 뒤적거렸으나 전낭은 물론이고 비상약과 영약도 없어졌다. 돈이나 비상약은 별다른 타격이 없었으나, 영약을 잃은 것이 조금 컸다. ‘후우, 정말로 여러 가지를 잃었구나.’ 신권, 홍고. 정파의 구심점이 되는 사람을 뽑으라 한다면 신권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다. 천기의 계략에 패배한 사실보다 더 타격이 컸다. 당명인의 배신조차도 덜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진작 신경 썼어야 한다.’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치달을지 몰랐다. 게다가 신승이라는 스승도 있지 않았는가. 문제가 생겨도 바로잡아 줄거라 굳게 믿었다. 무엇보다 향후 무림사에 영향을 끼칠 인물이라 괜히 잘못 참견해서 잘못될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해야 했다. 알고 있는 역사와는 이미 너무나도 멀어졌다. ‘암천회와 결탁했느냐, 홍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하고 또 충격적인 건 그가 최소한 암천회와 손을 잡은 것이었다. 아직까지 확신은 아니다. 그러나 정황상 그럴 확률이 높았다. 당시 당명인과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반성하자.’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자기혐오까지 늘어났다. 자책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해 있을 수는 없다.’ 적은 그 무시무시한 암천회다. 전력을 다해도 부족한데,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다간 모든 걸 빼앗기고 만다. 그렇기에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포기하지 마. 앉아 있지 마. 한숨 쉴 시간에 머리를 굴려라.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주서천의 눈이 차가워졌다. ‘암천회 다음으로 너희가 위기가 된 이상,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방심하지 마라. 조금만 실수해도이 꼴이다. 주서천, 이 멍청한 놈아. 반성해라. 머저리 같은 놈.’ * * * 산동, 금의상단. “아이고, 아이고!” 화려한 건물에서 누군가의 곡소리가 났다. 돼지 멱 따는 소리와 흡사했다. “아이고, 이렇게 가시면 어찌합니까! 대협!” 이의채는 진심으로 슬프듯이 엉엉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장원 밖까지 빠져나갔다. “이 근처에서 잔치라도 열리나? 돼지 잡는 소리가 들리는데.” “쉿! 말조심하게. 금의상단주의 목소리일세.” “허억, 큰일 날 뻔했군. 그런데 왜 우는 거지?” “금의상단주가 검룡과 그럭저럭 친분이 있지 않았나.” “허, 내 그동안 금의상단주를 잘못봤던 모양일세. 돈 외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리 남의 죽음에 구슬프게 우니 말이야.” “무림의 영웅께서 허무하게 떠나지 않았나. 아무래도 상단주가 나름대로 무림의 미래를 걱정했나 보군.” 바닥을 기던 금의상단주에 대한 평가가 조금 나아졌다. “으휴, 내 딸이 다 생각나는군.” “왜 자네 딸이 생각나? 혹시 이의채 저놈이랑 목소리가 닮은 건 아니겠지?” “딸내미가 검룡을 무척 좋아했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믿지 않더니, 얼마 전부터 툭하면 울면서 밥까지 안 먹기 시작했어.” “쯧쯧쯧.” 검룡의 소식이 알려지고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중원 무림에 있어서 그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애도의 물결이 여기저기서 퍼졌다. 그만큼 영웅의 빈자리는 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주서천의 빈자리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후에 그 이름은 더 빛났다. 많은 이들은 정파의 희망을 잃었다면서 슬퍼했다. 몇몇의 극성적인 사람들은 반쯤 미쳐서 날뛰기도 했다. 정파 무림의 사기도 전과 달리 많이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마교를 향한 적의가 늘었다. “아이고~ 아이고~!” “뭐가 이리 시끄러워!”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차며 뛰쳐나왔다. ‘어떤 미친 새끼야?’ 조용히 할 일을 하던 하인들이 깜짝 놀랐다. 지금 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저러는가. 누구보다 상왕에 가깝다는 대상인 이의채였다. 그런 사람에게 시끄럽다고 소리치다니. 미친놈이 아닌 이상 저리 말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걱정된 하인들은 이 미친놈을 잡아서 자신의 주인 앞에 대령하려 했다. “헛, 승계 도련님!” 그러나 별종이긴 해도 미친놈은 아니었다. 금의상단을 창단하는 데 도움이 된 투자자. 내부에서 상단주만큼 영향력을 끼치는 제갈승계였다. 그러나 평소에는 별채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아 얼굴을 보기가 정말 힘들다. 상단에 고용된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제갈승계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래도 워낙 잘생긴 덕에 얼굴을 몰라도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구야? 누가 이렇게 돼지처럼 울어?” “그, 그게…… 상단주님이십니다.” 근처의 하녀가 쭈뼛거리며 답했다. 조심스레 답하면서도 눈으로는 제갈승계의 얼굴을 쫓기 바빴다. 제갈승계는 공부 도중에 방해를 받은 것이 짜증 났는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당을 성큼성큼 걸어가 이의채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만세!’ ‘제발 저 곡소리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내심 듣기 괴로웠던 사람들이 속으로 응원했다. “상단주.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우십니까?” 제갈승계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의채에게 다가갔다. “학 천상천하 유아독존 천뇌제갈이신 제갈승계 님 아니십니까. 어서오십시오.” 이의채가 허리를 숙이며 손바닥을 비볐다. “……” 여전히 차마 말이 안 나오는 아부였다. “금의상단주 얼마나 잃으셨습니까?” “예? 얼마나 잃었다니요?” “작년처럼 바지에 구멍 난 줄 모르고 전낭 잃어버리셔서 대성통곡한거 아니십니까?” 이의채는 돈이면 환장하는 인간이다. 전충(錢蟲)이라는 별호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수전노는 아니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손해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돈의 소비를 두려워하면 돈을 벌수 없다는 게 평소 그만의 지론이었다. 실제로 당장 손해가 있다 할지라도, 후에는 더 큰 이득이 되어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의채도 죽도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의미 없는 손해였다. 특히나 실수로 돈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투자한 사람이 자살하거나 무림의 일에 휘말려 풍비박산 나면 하루 종일 안타까워하거나 종종 우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소협. 전 그저 지금의 절 만들어 주신 사람을 잃어 슬픔에 잠겨 있을 뿐이지요.” “저, 혹시…… 부모님이……?” 제갈승계가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리가요. 절 낳아 주신 부모님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 런,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이의채가 제갈승계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소식이라니요?” “하기야, 소협께서는 공부에 임하시느라 별채에서 잘 나오시지 않으셨으니 모를 만도 합니다. 진정하시고 잘 들어 주십시오.” 이의채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주서천 대협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예?” 제갈승계는 두 귀를 의심했다.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만, 여러 곳에서 정보를 사서 확인한 결과 정말인 모양입니다.” “그게 뭔 헛소리십니까? 형님이 죽어요?” 제갈승계가 황당무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소협.” 이의채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입니까?” 제갈승계가 피식 웃었다. “그 괴물 아니 형님이 죽으신 거라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소협…… 손을 지질 준비를 할까요?” 이의채가 안타까워했다. “절 깜짝 놀라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형님께서 작전을 세우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믿습니다.” “흑흑흑.”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