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50)
볼까 했는데, 네가 날 개심시켰다.” “개심?” “그래. 어차피 암천회의 힘으로 무림을 뒤집어 봤자 이름이 알려지는 건 소음문이 아니라 암천회다.” 그 말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원래의 역사에도 암천회의 이름만이 남았다. “옥형(玉衡)이 아닌, 이 음신이 무림을 뒤집는다.” 소류금은 입회하고 옥형성을 맡았다. 암살이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 음공의 사용자인 소류금이 제격이었다. ‘옥형이라고?’ 주서천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암천회일 가능성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수뇌부, 그것도 옥형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새삼 암천회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상천칠좌, 음신을 끌어들인 건 보통이 아니다. “자아, 천하제일인이 될 이 음신이 제안하마. 나와 손을 잡자. 궁공 역시 무림에서 핍박받지 않는가. 그 마음과 괴로움, 분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소류금이 문무현금에서 손을 떨어뜨리고 악수를 하듯 손을 건넨다. “너와 나 사이에서 누가 위고 밑이라는 관계는 없다. 대등한 관계다. 음공이나 궁공처럼 비주류의 무공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무림을 만들어 보지 않겠는가.” ‘……’ 주서천은 머리를 굴렸다. ‘기회다.’ 옥형성, 소류금은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일단, 궁귀검수란 건 가짜 신분이다. 따지자면 궁신의 전인은 맞기는 한데 완전하지는 않았다. 중도만공 특성상 대성을 이루는 게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의 고향은 사문인 화산파지 궁신이 아니었다. 분함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오. 신궁의 무공이잖아. 익혀두면 쓸 만하지 않을까? 하하.’ 라는 가벼운 마음 밖에 없었다. ‘좋아. 그러면 이 상황을 이용한다.’ 소류금을 통해서 암천회의 정보를 얻기로 했다. 요광이 들키지 않도록 도지휘사의 암살을 부탁한 모양이니, 옥형이라면 요광에 대해서 알고 있을 터. 무엇보다 그 외에도 천기라거나 개양, 암천회주에 관련된 정체도 얻어낼 기회였다. 주서천은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 내고 소류금이 건넨 손을 잡으려 했다. “알았다. 이 썩어 빠진 무림을……” “그런데.” 소류금이 손을 내뺐다. “어찌하여 활을 놓고 왔는가?” “…………잃어버렸다.” 주서천의 침묵이 유난히 길었다. “크흐……” 소류금이 진득한 웃음을 흘렸다. “결국은 네놈도 별반 다를 건 없는 놈이구나. 아니, 더한 놈이로다. 궁신의 전인을 자처하는 주제에 활을 잃어버렸다고?” 그 가느다란 손가락이 다시 문무현금을 잡았다. “헛소리. 기본적인 자긍심조차 없구나. 애초에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검을 쓰지 말아야 했다.” “아, 젠장.” 주서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됐다.” 웅웅웅. 소류금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퍼졌다. 덜그럭덜그럭! 다시 음식을 담은 그릇들이 마구 떨어 댔다. 당장 튀어 나갈 것 같이 들썩였다. 음식이 마구 튄다. 띵. 소류금이 문무현금의 줄을 조심스레 튕겼다. 다행히 또 벽이 뚫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고운 음색을 담은 선율이 흘렀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음신의 연주를 들으면 귀로 마약을 하는 것 같다는 표현이 있는데, 직접 들어 보니 이해가 갔다. 줄을 튕기는 음이 시냇물을 흐르듯 부드럽게 퍼졌다. 방 내를 감돌면서 가득 메웠다. 산뜻한 날씨에 꽃밭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풍류를 즐기기 딱 좋은 소리였다. 입이 절로 씰룩이고 어깨도 들썩였다. “등왕각. 높은 누각이 강가에 있는데, 옥 소리, 방울 소리, 가무가 사라졌네.” 등왕고각임강저(滕王高閣臨江猪). 패옥명란파가무(個玉鳴緊龍歌舞). “아침에는 단청한 마룻대에 남포구름이 끼이고, 저녁에는 주렴 걷고 서산의 비를 보노라.” 화동조비남포운(畫棟朝飛南浦雲). 주렴모권서산우(朱廉暮抱西山雨). “떠도는 구름 물에 비쳐 언제나 한가롭고, 세상 바뀌고 세월 흘러 몇 해나 지났던가.” 한운담영일유유(閑雲潭影日悠悠).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移度幾秋). “이 누각 속 주인 지금 어디 있는고, 난간 밖 장강 물만 부질없이 흘러가네.” 각중제자금하재(閣 中帝子今何在). 함외장강공자류(艦外長江空 自流). “초당의 시인, 왕발의 ‘등왕각’을 섭혼음(攝魂音)으로 풀어 보았다.” 섭혼음은 연주로 듣는 이의 심령을 뒤흔들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음공이다. 신선박이 몸을 마비시키면, 섭혼음은 정신을 마비시켰다. “그래?” 주서천의 눈이 흐릿해졌다가 되돌아갔다. “……” 소류금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사실, 음공의 취급이 박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섭혼음의 경우, 결국은 내가중수법이기에 내가고수일 경우는 잘 통하지 않는다. 하수에게라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겠으나 사용자보다 고수나 동수에겐 잘 닿지 못했다. 특히나 정파인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섭혼음은 정선을 흐리게 만드는 것인데, 정파의 무공은 정신 수양을 중시해 내성이 기본적으로 높았다. 만약 섭혼음 같은 음공이 적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당하니 선호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활 좀 잃어버렸다고 너무 뭐라 하지 마라. 거참, 깜빡할 수도 있지. 상천칠좌치고는 째째하네.” 주서천이 태아 대신 평범한 철검을 뽑았다. “이노오옴!” 소류금이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 “노오오오옴!” 음신이 부르짖었다. 그냥 부르짖은 것이 아니다. 공력을 담았다. 얼핏 보면 사자후 같지만 전혀 달랐다. 사자후라면 청명하면서도 위엄이 있어야 했는데, 음신의 부르짖음은 소름 끼치고 기분 나쁜 외침이었다. “소음문의 소명후(縣鳴吼)!” 주서천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오냐, 이것도 막나 보자.” 소류금은 음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주서천이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내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가녀린 손가락이 문무현금의 줄을 힘껏 튕겼다. 타앙! 방금 전 들려준 음색과는 달랐다. 듣는 순간 뇌가 흔들리고, 소름이 끼치는 소음(甄音)이었다. 마치 공기가 찢겨 나가는 소리. 문무현금이란 발음체에 의해 파동이 생긴다. 곧 음파가 요동치면서 정면의 적을 집어삼키려 쏟아졌다. 키아아앙! 천잠사로 된 문무현금의 위력이 여기서 발동된다. 평범한 금의 줄은 내력을 일정 이상 담으면 끊어져 버린다. 위력도 크게 줄어 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음인들의 보물은 다르다. 음신의 심후한 내력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 낸다. 가공할 공력으로 전환되어 음파를 증폭시켰다. “아, 좀!” 주서천이 불만을 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형태가 없는 강기가 넓게 퍼졌다. 검에 실린 것이 아니라, 몸의 정면에서부터 생겨나 둘러쌌다. 호신강기를 무형으로 펼쳐내서 층을 내듯 겹겹이 쌓았다. 그리고 문무현금에서 발산된 음파가 호신강기와 충돌한 순간, 폭발이 일어나며 충격파가 쏟아졌다. 하나 무슨 영문인지 어떠한 소리도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내공으로 감각을 높여도 한계가 존재한다. 즉, 그 영역에서 벗어난 소리를 듣게 되면 도리어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아 이상함을 느꼈을 무렵 그 의문이 무색하게 음파 공격이 주서천을 밀어냈다. 콰아아앙! 주서천은 듣지 못했지만, 등왕각의 내부에 숨죽이고 있던 문도들이나 밖의 구경꾼들은 달랐다. 삼 층에서 터져 나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친 거냐며 위를 올려다봤다. “사람이다!” “뭐, 뭐여!” 구경꾼들이 위를 보고 외쳤다. 사람이 날고 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과연, 음신인가……!’ 공중에 붕 떠오른 주서천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전력을 다해서 호신강기를 펼쳤다. 부딪친 순간 내공의 상당 부분이 소모됐다. 그만큼 음파에 깃든 공력이 많았다. 무형강기로 이루어진 막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물리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났다. 뒤에 벽 대신 있던 문은 손쉽게 박살이 났고, 그대로 삼 층의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뭔 위력이 이래?’ 주서천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특히나 좁아터진 방에서 음파가 사방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면에 집중되자, 터무니없는 위력을 냈다. 만약에 호신강기를 겹겹이 쌓지 않았더라면 천하의 주서천이라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궁, 귀, 검, 수!” 음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엄마야!” 남창의 백성들이 놀랐다. 등왕각 주변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들었다. 괜히 절대고수가 아니었다. 상식에서 벗어난 힘을 지녔다. ‘일단은 자세부터 제대로 잡는……’ 주서천이 허우적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썅! 뭔 원수라도 졌어?” 소류금도 삼 층에서부터 몸을 날렸다. 마치 공중을 달리듯이 발을 열심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허공답보(虛空踏步)! 경공술 최상승의 경지. 허공을 걷어차며 순간적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러나 내공의 소비가 워낙 극심하고 그 거리도 한정되어 있어서 잘 사용되지는 않는다. “죽어라!” 심지어 문무현금을 품에 안고 날았다. 소류금은 천잠사로 된 줄을 튕겼다. 콰아아아아. 검이나 도라면 무형강기를 써도 보이긴 보인다. 그러나 소리에 형태가 어디 있겠는가. 설사 보인다 할지라도 음속이니 듣는 것만으로 결과가 나온다. 삼 층에서 밖으로 나가떨어졌던 공격이 후폭풍으로 몰아친다. 거대한 음압(音壓)이 위에서부터 내려왔다. 주서천은 소류금이 줄을 튕기는 걸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호신강기를 겹겹이 싸서 온몸을 보호했다. 쾅! 어찌어찌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간단하지는 않았다. 무형강기로 된 막이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착지를 위해서 균형을 잡았는데 무의미했다. 위에서 짓누른 음압을 받아들이며 아래로 떨어진다. 쿠아앙! “꺄아악!” “으악!”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근처를 지나던 행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주서천이 떨어진 곳에 사람 모양으로 구멍이 생겼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밑바닥에서 바위가 솟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미줄이 그어진 것처럼 균열이 갔다. 음신, 소류금이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보았느냐, 무림이여. 이것이 음공……” “아래로 처박히는 게 좋은 기분은 아니네.” 주서천이 벌떡 일어났다. “……” 깊숙이 파인 구덩이에서 주서천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자, 소류금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동공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처럼 흔들렸다. “어떻…… 게……?” 소류금의 음파는 그냥 음파가 아니다. 검수가 검에 강기를 싣는 것처럼, 소류금 역시 소리에 강기를 싣는다. 현경의 성취를 이루기 전에는 빛깔이 좀 들긴 했지만, 그 위의 단계로 오르자마자 무형강기를 응용했다. 설사 막았다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다쳤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생채기 하나 없었다. “좀 아프더라.” 주서천이 옷을 두드리며 흙먼지를 털었다. ‘휴.’ 조금 위험하기는 했다. 이번 음파에 실린 공력이 크기는 했다. 그래서 호신강기도 보다 겹겹이 쌓았다. 마지막에 대부분 부서졌지만, 방어 무공 덕분에 살았다. 철포삼(鐵布杉). 맹강에게서 획득한 외공이다. “누, 누구야?” “소음문주다! 음신이야!” 남창에서 소류금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류금이 얼굴을 보이는 걸 즐겨서가 아니다. 도리어 그는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소류금을 단번에 알아보는 이유는 남녀 할 것 없이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그 빼어난 미모 때문이었다. “그러면 저자는 누구지?” “음신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다니……” 사람들은 방금 전 광경을 잊지 않았다. 등왕각에서 굉음이 터지더니, 삼 층에서 둘이 떨어졌다. 그중 뒤늦게 내려온 자가 공격을 퍼부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뒤늦게 소류금을 알아보고 경악했다. “궁귀검수요!” 사람들이 혼란스러 워하는 와중, 등왕각 정문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먼지투성이가 된 김팔이었다. “대혀어어어어어어어영!” 김팔이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울듯이 외쳤다. “허……” 주서천이 감탄했다. 하마터면 잃어버린 동생이 있었는데,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