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56)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천마가 누군가. 십만대산의 주인이자, 마두의 우두머리이며 그 누구보다 포악하고 사악한 괴물이다. 그런 자에게 짐승이라고 말하는건, 나 죽여 달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것 없었다. “본좌, 아니 우리가 할 말이다.” 천마는 분노 대신 소름 끼치는 웃음을 보였다. “무림(武林)의 무(武)는 어차피 힘이 아닌가. 힘으로 증명하는 사회이거늘, 가치를 힘에 두는 게 뭐가 이상한가?” 천마가 하하하, 웃으며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 “본좌 역시 힘에 굴복했기에 여기에 있도다.” * * * 패신군, 아니 주서천은 호북에서부터 암향표를 대성으로 펼쳐 전력을 다해 달렸다. 도중에 소령이 쫓아오지 못하자, 후에 만남을 기약하고 혼자만 달렸다. ‘일 차 격돌에서 패배……’ 정마대전의 소식은 유령과 탈주령, 그리고 금의상단과 하오문을 통해서 듣고 있었다. 그 덕에 정보는 정말로 빨랐다. 정보 단체를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사용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호북에서 청해까지는 끝과 끝은 아니어도 제법 멀다. 하루나 이틀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고수라고 해도, 신이 아닌 이상 물리적인 한계는 존재했다. 호북을 지나 섬서, 감숙, 청해까지 가야 하는데 정말로 멀었다.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서 휴식 시간까지 제외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미래가 불확실하다.’ 정마대전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모른다. 미래에도 정마대전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에는 마도전쟁 이후라 세력이 약화됐었는지라, 규모가 이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천마가 나선 건가?’ 이십 대 후반 정도의 미남자가 떠올랐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얼굴이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다. 다만, 마교 교주답게 그 무위는 진짜배기였다. 그 손에 목숨을 잃은 정파의 고수는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화산이 걱정이다.’ 부디 복수에 정신을 잃고 무리만 하지 않았으면 했다. 최악의 일만은 제지해야만 했다. “조금만 기다리……!” 몸이 붕 떴다가 지면에 내려앉으려는 순간, 무언가가 느껴졌다. 주서천은 공중에 뜬 채로 몸을 틀어 반회전했다. 파바밧! 좌우로 날아온 비수가 허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쳤다. 미세하게 독향이 맡아졌다. ‘자객?’ 정면도 아니고 측면에서 암기를 날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로 별짓을 다 하며 훼방을 놓는구나.” 주서천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대협님이 좀 바쁘시다. 그리고 기분도 안 좋다. 지금이라면 그냥놓아줄 테니 가던 길 가라.” “패신군. 오만하구나.” 스스슥.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대충 세어 봐도 서른 명이다. “후우……” 한숨이 나왔다. 갈 길도 먼데 운도 안좋다. 사도천에서 추적자가 붙었지만, 전력을 다해 달리니 금방 떨어뜨릴 수 있어서 안도했었다. 그런데 언제 또 추적해 왔는지 귀찮은 것들이 걸렸다. “밥 먹고 경공만 배웠냐. 날 어떻게 쫓은 거지?” “네가 아무리 빨라도 한낱 사람이거늘 새보다 빠르겠느냐.” “……과연.” 대충 예상은 갔다. 추격자가 도중에 지쳐 포기하고, 방향을 대충 예상한 뒤에 전서구를 미리 보낸다면 가능하다. 지점마다 사람이 서 있을 테니 기다렸다가 목표를 확인하면 예상 지점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그곳으로 다른 지역의 자객을 불러 대기시키면 그만인 일. 머리 좀 썼다. ‘평소라면 인적이 드물고 추적하기 힘든 곳을 가로질러 갈 텐데, 마음이 급해 신경 못 썼다.’ 자업자득이었다. “소음문에서 보냈나?” 주서천이 아니라 패신군을 불렀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자객방에 의뢰할 만한 용의자가 몇 없다. “아니……” 순간 소음문이라 생각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상천칠좌가 표적이면 너무 위험하다. “암천회냐.” “……!” 흑의인 칠성사병들이 몸을 살짝 떨었다. 잠깐이었지만 주서천은 그찰나의 동요도 놓치지 않았다. “뭐하는 놈이냐.” “옥형성, 소류금.” “포획해라!” 터무니없는 명령이 떨어졌다. 상천칠좌의 포획. 가능할 리 없다. 동요가 느껴지자 우두머리가 명령을 바꿨다. “그냥 죽여!” “존명!” 죽이지 않고 살릴 기세로 덤비면 성공하지 못한다. 어차피 위험한 거 필사의 각오로 바꾸게 했다. 서른에 이르는 자객이 주변을 포위했다. 눈 부위를 제외하곤 복면으로 감추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후웁!” 숨을 크게 들이쉬며 폐 깊숙이 빨아들였다. 하단전에서부터 심후한 내력을 끌어 올렸다. 음공의 고수들이 일반적인 무인들보다 내가고수인 이유가 있다. 내공이 상당히 요구된다. “크아아아아아!” 용후! 오성이나 그 성량은 높았다. 사람의 성대에서 낼 수 없는 소리였다. 용의 포효가 적들을 덮쳤다. “……!” 패신군이 비주류인 음공을 쓸 줄 몰랐는지, 칠성사병 몇몇이 조금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가 암천회 아니랄까 봐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원래대로 돌아왔다. 서른 중 열이 몸이 멈칫했지만, 스물은 금세 충격에서 벗어나 덤벼들었다. “오냐.” 스르룽! 용연이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검신이 햇빛에 비치면서 번쩍였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주서천은 그 짧은 시간에 예의 동작을 펼쳤다. 엄지와 중지를 구부렸다가 피며, 검신을 후려쳤다. 째애앵! 상당한 공력이 실린 손가락 튕기기. 검신이 위아래로 파도처럼 출렁였다. 탄검음. 검의 진동에서 발산된 파동은 수십 개로 나누어지고 겹쳐져, 사방으로 퍼지며 슥 훑었다. “커헉!” “컥!” 몸을 날렸던 칠성사병 중 여섯 명이 피를 울컥 토해 내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머지 네 명도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내력이 약해 입가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텨 내며 공격을 멈추지 않으려는 게 대단했다. “죽어라!” 입가에 피를 머금은 칠성사병이 공격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중간 길이의 검이 목을 노려 왔다. 주서천은 머리를 옆으로 까딱여서 검을 가볍게 피해 낸 다음, 펴진 손가락을 다시 구부렸다 폈다. 파앗! 손가락에서 자색의 빛이 번쩍였다. 검을 앞으로 쭉 내밀었던 칠성사병의 이마에 구멍이 생겼다. “방금 그건……” 지척에서 접근 중이던 셋의 칠성사병이 경악했다. 자색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눈도 좋네.” 주서천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이좋게 보내 주마.” 손에 쥔 검을 번개같이 출수했다. 분명히 늦게 발했는데도 어째서인지 더 빨라 보였다. 어깨와 흉부, 옆구리를 노리던 검들이 튕겨져 나갔다.괴물 같은 공력이 손목으로 전해져 왔다. 안 그래도 내상을 입은 칠성사병의 얼굴빛이 흙빛이 됐고, 뒤로 쓰러져바닥에 뒤통수를 박았다. “살(殺)!” 칠성사병의 우두머리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순식간에 열이 죽었다. 과연 상천칠좌다. 위험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기에 얼른 처리해야만 했다. 열 개의 검이 중앙을 노리고 찔러 왔다. ‘막지는 못할 것이다!’ ‘오랜 경공으로 분명 지쳐 있을터!’ 아무 생각 없이 덮친 건 아니었다. 보고서에 의하면 사도천 본부에서부터 끝없이 경공을 펼쳤다 한다. 아무리 절대고수라고 해도 몇 날 며칠을 달렸으니 체력도 떨어졌을테고, 그만큼 내력도 소진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오판(誤判)은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어딜!” 주서천이 어림없다는 듯 발을 굴렀다. 콰앙! 천근추로 바닥을 박살 내지는 않았다. 그 대신, 발밑에서부터 강기의 막을 펼쳐 전방위를 막아 냈다. 채채채챙! 아무리 한곳을 노렸다곤 해도, 열개의 검기로는 화경도 아닌 현경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다. 검극이 과한 마찰력에 의해 구부러지더니, 마치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부러졌다. “열.” 사형의 선고. 주서천이 지면을 살포시 밟고 몸을 회전시켜 원을 그려 냈다. 당연히 손에 쥔 검도 돌았다. 서걱! 열이나 되는 칠성사병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상반선과 하반신이 분리되며 피를 흩뿌렸다. “대, 대체……” 용후에 멈칫했던 열 명이 경직됐다. 무공이 약한 것이 도리어 운으로 적용됐다. 서른 중 스물이 순식간에 당했다. 잘난 듯이 떠들던 우두머리 역시 둘로 갈라져 바닥을 기었다. 주서천은 피로 고인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굳어 있는 칠성사병들에게 접근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를 잡아 족치고 정보를 캐내고 싶다.” 움찔. 신위에 압도된 것일까. 칠성사병이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게 꽤나 어려운 일이란 걸 나도 알아. 괜한 시간 소비할 생각 없다.” 칠성사병들은 기본적으로 고문에 대한 내성이 높다. 설사 고문해도그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다. 주서천은 검을 집어넣고, 양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전부 모으듯이 구부려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니, 편안하게 해 주마.” 파바바밧! 십지(十指)를 동시에 튕겼다. 물기를 털려고 튕긴 게 아니다. 자하지가 열 손가락으로 전개됐다. 자색의 선이 가지처럼 손에서 뻗어져 나와 열 명 밖에 남지 않은 칠성사병들의 머리와 심장을 꿰뚫었다. “끅!” 외마디 비명을 흘리며 쓰러지는 칠성사병. 주서천은 그들을 지나쳐,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 * * 일 차 격돌의 패배. 중앙 본대는 덮쳐 오는 일만의 마교도를 버텨 내지 못하고 청해호에서 퇴군한다. 다행히도 퇴로를 미리 준비해 둔 덕분에 썰물 빠지듯이 물러났다. 그사이 좌군과 우군은 퇴군을 도우며, 옆에서 마교도와 격전에 들어섰다. “화산파다!” 마교도 중 누군가가 한곳을 가리 켰다. 이천에 달하는 좌군 병력. 무림맹 예하로 여러 깃발이 올라왔는데, 그중 앞장선 건 화산파였다. 매화검장 위지결을 선두로 화산파의 검수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마교도를 살려 두지 마라.” 위지결이 검극으로 마교도를 가리켰다. “화산의 검을 보여 줘라!” “예!” 화산파의 제자들이 동시에 뛰쳐나가는 건 장관이었다. 그 뒤로 공동파, 청성파, 개방도가 따랐다. 전력의 분배는 화산파가 천삼백, 공동파 삼백, 청성파 삼백, 개방도 백을 더해 이천이었다. 화산파가 마교도에게 갖게 된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숫자였다. “캬하핫! 이것 참, 무더기로 나왔구나!” 개미 떼처럼 우글거리는 무리 중, 피부가 시체처럼 핏기가 없고 희끗하게 질린 머리카락을 뒤로 휘날리는 장신의 무인이 보였다. 얼굴은 사람의 뼈로 된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눈 정도만 보였다. 북사호법(北死護法)! 엄구유!” 인상착의를 보자 별호와 이름이 바로 나왔다. 마교의 사대호법 이면서 악명 높은 대마두다. 위지결은 엄구유를 보자마자 검을 쥐고 몸을 날렸다.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르면서 검압이 쁨어졌다. 쐐애애액! 앞으로 쭉 뻗어 가며 그어지는 직선. 엄구유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검이 코앞에 오자 잡았다. 위지결의 검이 엄구유의 손바닥을 간단하게 꿰뚫고, 손목에서부터 시작되어 팔을 둘로 갈랐다. 그대로 팔을 날려 버릴 속셈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검이 기세를 낮추다가 도중에 멈춰 버렸다. “으하하!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엄구유의 입가에 광기 어린 웃음이 맺혔다. 북사호법의 마공은 불마공(不魔功)이라는 것이었는데, 뇌가 파괴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 무공이었다. 설사 심장이 파괴되어도 순식간에 복구시키는 재생력을 지녔는데, 검이 들어오면 피와 살을 융화시켜서 지금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능력만 보자면 신공에 견줄 정도이나, 마성이 심하고 식인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마공이 대부분 그렇듯, 경지의 벽을 넘는 데도 한계가 심하다.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