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61)
세워지고, 손에 풀렸던 힘이 들어갔다. ‘그래, 할 수 있다.’ ‘어차피 무뇌아들 밖에 없는 마교도다.’ ‘저 잔혹한 놈들을 이대로 보낸다면, 내 가족과 친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정파에겐 의협심이 있지 않은가. 약자를 돕고, 신의를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도리이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했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허물어졌던 신념이 다시 굳어졌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 중원의 평화를 짓밟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파인들은 하나같이 결사의 각오를 하고, 입으로 함성을 내지르려고 했다. “무립맹의 동포여! 강호의 동도여!” 천지가 뒤흔들 정도의 그러한 함성. 수천 명이 한꺼번에 내미는 결사의 외침을 힘으로 전환하려 한다. “가……” 무림맹은 새로운 영웅, 창룡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말은 굉음에 묻혀 듣지 못했다. 콰아아아앙―! 사람들은 지금 일어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치 투석기가 떨어진 듯, 무언가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처박히더니만 폭음을 냈다. 누런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더니, 안개가 되어 주변의 시야를 가렸다. 무엇이 떨어진 것인지는 보지 못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정체보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림인들의 가슴을 들끓게 했던 남궁선유였다. 검룡의 뒤를 이어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될 검성의 손자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 의문은 곧바로 이어지는 외침에 해소됐다. 좋지 않은 쪽으로. “그것 참 말 많구나.” 머리가 웅웅 울릴 만한 목소리. 무언가가 등골을 훑고 지나가 소름이 다 끼쳤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먼지의 안개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것은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미남자였다. 탁한 잿빛을 띠는 머리카락에 시커멓게 물든 흰 자, 그리고 섬뜩하게 번뜩이는 붉은 눈이 보인다. 그가 나타나자 하늘도 놀란 것일까, 잘만 내리쬐던 햇빛이 사라지고 시커먼 구름이 대신 가득 메웠다. “……어째……서 ……” 제갈수란은 입술에 피가 나도록 세게 깨물었다. 그녀만이 아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분명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천칠좌의 대결은 한 끗 차이로 승부가 난다. 확실치는 않으나 고수들끼리의 대결은 언제나 그러하니까. 그러니 상식대로라면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실제로도 여태껏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힘을 비축하느라 일부러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마교의 이름 없는 군사의 전략인가? 아니 틀렸다. 으드득. 천기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래서, 마교란 것들이 싫단 말이다……!” 천기는 암천회주가 이 자리에 있기를 빌었다. 천마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회주 밖에 없었다. “하하하, 미안하군. 그러나 그대도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적이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쉬운 것이 없다.’ 라고!” 천마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다. 태극검이 언제 올지 모를 상황. 만약 도중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또 하나의 대계가 무너진다. “천, 마, 아……!” 군사의 존재야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저리 대놓고 말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정말 못 해 먹겠다. “하나 저들이 본좌를 이리도 거슬리게 하는데 어찌하겠는가.” 천마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발을 휘둘렀다. 퍼억! 상천칠좌의 등장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잊고 있었던 새로운 희망이 바닥을 어이 없이 굴렀다. “……” “차, 창룡!” 남궁 대협! 무림맹 측에서 경악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망연자실한 얼굴로 절망에 빠져 손에 쥐었던 힘을 풀었다. 창룡, 남궁선유의 몸은 더 이상 회생불능으로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범벅이었고, 관절은 꺾였는지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검도 전부 부서졌다. 얼굴은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들으라!” 천마가 발을 굴렀다. 콰앙! 반경 오 장의 지반이 뒤집어지고 무너졌다. 바닥에 널려 있던 시체들이 빨려들거나 튕겨져 나갔다. “대화가 먼저가 아니다! 폭력이 먼저다!” 갈라진 균열 사이에서 시커먼 아지랑이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싶더니, 격렬하게 움직였다. “뭐, 뭔……” 내공이 어찌나 심후한지, 겉으로 새어나오는 기운이 눈에 확연히 보였다. 다들 그 기운에 압도됐다. “설득이 먼저가 아니다! 굴복이 우선이다!” 자갈이나 모래가 세계의 법칙을 무시했다. 시커먼 아지랑이에 맞춰서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자고로 말이란 건 승자는 말하고, 패자는 듣는 것! 지금 누가 승자인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지껄이는 게 말이나 되느냐!” 천마는 광소를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크하하하! 들어라! 난 딱히 마도를 증명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복수하거나 혹은 정복하러 오지도 않았다! 복잡한 철학이건 사상이건 그따위 것은 잘 모른다!” 마교의 절대고수의 머리카락이 공중에 떠오른다. 그의 뒤론 수많은 악귀들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싸우러 왔다!” 무림인, 아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천마(天魔)라 부른다. 천마는 강하다. 이에 대해서는 거짓도 과장도 없다. 애초에 힘이 곧 진리라는 정신 나간 교리가 전부인 동네이다. 안 강할 리가 없었다. 마교의 교주 역시 대대적으로 최고수가 맡았다. 시대에 따라 가지각색의 이름을 지닌 상천칠좌에 이르는 절대고수에 빠지지 않는 이름일 정도다. “겁먹지 마라!” 곡야인이 외쳐 정적을 깨뜨렸다. “현 마교 교주, 천마는 순수한 무위로 교주의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다!” 마교의 교주가 되려면 ‘힘’이 필요하다. 다만 이 힘이라는 것이 순수한 마공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독살은 기본이요, 미인계나 온갖 약 등이 사용되는 암살도 포함되어 있다. 변소나 침실을 기습하기도 한다. 역대 교주들 중에선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천마가 된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마도 외에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수단이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선 잘만 통했다. 괜히 상식에서 벗어난 마도라 배척받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환경이다. 현재의 천마 역시 순수한 무력만으로 교주에 오른 건 아니었다. 전대의 교주는 여타 마교처럼 중원을 침공했다가, 그만 치명상을 입고 대패해 물러났다. 그 탓에 십만대산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그 뒷자리를 차지하려 여러 마인들이 혈전을 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 싸움의 끝은 어이없게도, 허무하게 자멸하는 것으로 그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당시 그 바로 밑의 고수였던 한 마인이 어부지리로 교주가 됐고, 마교의 독문마공인 천마신공을 수련하여 강해졌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천마다. “설사, 태극검께서 안 계셔도……” “흠, 뭐 맞는 말이다.” “……!” 곡야인이 숨을 흡 하고 삼켰다. ‘언…… 제……?’ 남궁선유는 앞에 나서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곡야인의 경우에는 부대의 측면에 있어 거리가 있었다. 헌데 이게 웬일. 눈을 껌뻑인 사이에 천마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코앞에 나타났다. 경악한 것은 곡야인만이 아니다. 그 외의 무림맹의 고수들 또한 제 눈을 의심했다. “겨우 그 정도인가.” 천마가 대놓고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말이 번지르르하기에 모처럼 실력이 어떤가 싶어 나서 봤는데,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 “천마잠형술(天魔潛形術)……!” 곤륜파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마교의 교주인 천마인 만큼, 그 무공도 유명하다.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기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신법이다.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쁜 마기이나, 대성에 이르면 그조차 희미해져 기감이 낮다면 파악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한둘로는 날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군.” 천마가 손이 근질거리는지 조금씩 움직였다. “한꺼번에 와라!” 천마가 발을 힘껏 굴렀다. 쿠아앙! 발이 지면에 부딪친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용천혈에서 솟구친 마기가 바닥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균열 사이로 피어오르던 마기가 성난 소처럼 마구 날뛰면서 줄기차게 뛰쳐나왔다. “후으웁!” 숨을 들이쉬는 천마. 하복부에 힘을 주고, 오른팔을 뒤로 크게 젖혔다가 쫙 편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탄(彈)!’ 손바닥 앞에 순간적으로 모인 마기가, 팔을 앞으로 뻗는 순간 원형으로 커졌다가 앞으로 쏘아졌다. 콰지지지직! 과연 사람이 맞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에서 뿜어진 장력만으로 그앞의 지면이 크게 흔들렸고, 모래알과 함께 사람의 몸이 떠올랐다. “크……흐어억……!” 곡야인을 필두로, 그 뒤에 선 개방도들이 장압(掌壓)에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숫자가무려 오십이었고, 뒤에 있던 오십도 휘말렸다. “으아악!” 어이쿠! “케헥!” 정파인들은 죽어도 바닥을 구르지 않는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음을 고를 정도로 싫어한다. 헌데 천마 앞에선 그따위 고집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다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몇몇은 버티려다가 끝내 내상을 입고 피를 울컥 토해내곤 정신을 잃었다. 일장(一掌). 고작 일장에 백여 명이 쓰러졌다. 경천동지할 위력에 무림인들이 대경했다. “파천수라장(破天修羅掌)!” 교주의 독문마공은 아니지만,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절세의 마공으로 꼽힌다. 세 초식으로 나눠져 있는데, 하나하나가 절세의 신공이라 불릴 정도였다. “천마를 포위해라!” 은하노사가 황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각 문파의 고수들이 뛰쳐 나갔다. 은하노사부터 시작해 화산의 위지걸, 소림의 홍고와 홍진, 청성파의 백궁자, 공동의 지일광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로부터 매화검수나 십팔나한 등 정예 부대들이 모였다. 전력이 이렇게 한 곳에 집중된다면 위험하나, 적이 적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십팔나한이나 매화검수 등의 정예들은 마교의 고수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주변을 경계했다. 그 안으로는 무림맹 최고수들이 천마를 둘러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심심풀이가 되지 않겠느냐.” “오만하시구려, 천마!” 홍진이 불쾌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쫑알거리겠지. 무림맹, 아니 정파인들은 말이 많아서 탈이도다.” 천마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팔을 수평으로 들었다. 스르릉! 이 장 밖에서부터 검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허! 무슨 허공섭물이……’ ‘굉장한 흡입력이구나.’ 무림맹 고수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허공섭물이야 내공만 받쳐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름 거리가 있는 곳에서, 순식간에 끌어올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은 고난이도다. “자아, 가마.” 마교 교주의 눈이 시뻘겋게 번뜩였다. “내 친히 초식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천마가 손잡이를 꽈악 쥔 순간, 여태껏 보지 못했던 시커먼 마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천마삼검(天魔三劍) 제일식(第一式).” 잿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바람에 거칠게 흔들렸고, 주변의 무림맹 고수들은 바짝 긴장했다. “천마현신(天魔現身).” 스윽. 더 이상 눈 뜨기 힘들 정도의 압력이었으나, 어느 순간 뚝 하고 멈추더니만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림맹 고수들이 의아한 눈을 뜨는순간, 천마가 획, 하고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섬(閃).” 그러나 그 검의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번쩍! 어둡고 시커멓지만, 그것은 빛이었다. 암흑이 번쩍였다는 것을 뇌에서 인식한 순간 검압에 짓눌렸다. 쿠와아아아앙! 바람이 불었다. 돌풍을 넘어선 폭풍이었다. 불길할 정도로 시커먼 검은 아지랑이는 대자연 속에 녹아들었고,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모조리 박살내고 파괴했다. ‘맙소사!’ ‘무슨 이딴……!’ ‘크흐읏!’ 지반은 뒤집어지고, 흙먼지는 회오리처럼 솟아올랐다. 무림맹 고수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