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63)
멈추지 않고 오고 있다면, 아마 한 시진에서 두 시진 정도……설마……?” 제갈수란이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크게 떴다. “시간을 끌겠소.” 지일광이 앞이 아닌 뒤를 보며 몸울돌렸다. “일검칠살!” 은하노사가 주름 가득한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방법 밖에는 없소. 전부 가진 못하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사이, 최대한 달려 무당파를 도우시오.” “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이란 것은 모사가 더더욱 알고 있지 않소. 아마 나보다 먼저 생각했을 거요. 다르오?” 제갈수란은 부정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그 외에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무당파가 지척에 있었더라면 함께 버텨보기라도 했겠지만, 도박성이 너무 짙다. 제갈수란은 계산에는 철저하고 냉정하다. 그만큼 무당파의 위치를 거의 오차 없이 파악할 수 있었다. “승낙한 걸로 알고 있겠소.” 지일광이 검을 높이 들며 외쳤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하겠다!” 좌중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복마검의 사제, 지일광!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이 자리에서 한몸 불태워 보려 한다!”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토 달지 않았다. “하나, 나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죽을 것은 뻔히 아는 영웅들 중, 혹 누가 도와주지 않겠나!”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여기에서 남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괜한 말은 하지 않겠다! 희생이란 오로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으며, 강요로 할 수 없는 행위다!” 지일광은 일부러 사문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적은 사형제들을 휘말리게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서지 않는다고 욕하지 않겠다! 원망하지 않겠다! 부끄럽게 여길 것도 없다! 이곳에 남는 것은바보천치인 것이니 죄책감을 갖지 말게나! 정파의 동도들이여!” 지일광은 일부러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등을 보였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말재주는 없고 시간도 없다! 그러니,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가라! 이상!” 챙! 지일광이 머리 위로 든 검을 지면에 박았다. “……” 어떠한 말소리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그대의…… 희생을 잊지 않겠네, 일검칠살.” 은하노사는 혈기 대신 지혜가 있었다. 이곳에 모두가 남을 수는 없다. 특히나 필요한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했다. “살 일도 별로 없는 늙은이가 남아야 하거늘……” “최후에 남을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하노사까지 빠진다면 본대의 주요 전력이 너무나도 비어버린다. 이곳이 뚫리면 막아야 했다. “소림의 무승들이 도와줄 거요.” 홍고가 말하자, 백팔나한 중 이 할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정의심이 투철한 무승들이 좀 더 나서려고 했지만, 홍고가 이를 칼날같이 제지했다. ‘활약이야 아까 전에 확실히 했고, 도와도 남는 것이 별로 없으니 차라리 나중에 무당파와 합류해서 천마를 무찌르고 정마대전을 끝내는 것이 명예를 높이는 데 더 이득이다.’ 홍고의 눈은 승려답지 않게 음험하게 빛났다. 그 뒤로 반 이상의 움직임이 있었다. 다들 서두르려는 듯, 경공술을 펼쳐 떠나갔다. 지일광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빠져나갈 사람들은 빠져 나갔을 때쯤 몸을 돌려 뒤를 확인했다. “허어……” 지일광은 무심코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리 많이 남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죽을 줄 알면서 남겠는가. 부상자만 남지 않는다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 뭐 이리 머저리들이 많나.” 대충 세어 봐도 수백여 명. 거의 천에 가까웠다. 부상자가 없지는 않았다. 반대로 중상자까지 포함되어 상당히 많았다. “어차피 우리들은 살날이 별로 남지 않았소.” “우리 탓에 속도가 늦어진다면 문제이지.” “차라리 방해가 되느니 영웅으로 남는 게 낫지.” 부상자들이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웃었다. “그리고…… 으음, 앞날이 창창한 후기지수께선 왜 남는 거요?” “괜한 멋진 척할 시간에, 차라리 여력이라도 만들 겸 심호흡이라도 하고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일 수 있을 테니까.” 당혜가 눈길 하나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독기가 흐르는 그 눈 너머에는 증오심이 보였다. “말씀은 이렇게 하셔도, 악의는 없으셔요. 반대로 나름대로 걱정해 주시는 편인걸요.” 낙소월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살짝 웃었다. 섬서제일미녀의 웃음에 주변의 남자들이 좋지 않은 상황인 와중에도 얼굴을 붉혔다. “매화검수까지 남아주다니, 무척 든든하군.” 열넷의 매화검수 중 다섯 명만 남았다. 전력 중 제일 무력이 낮은 막내 셋과 그럭저럭 도움 되는 중간 항렬이었다. “사제의 복수를 해야지.” 장서은이 눈시울을 붉혔다. 장홍은 말없이 머리만을 흔들었다. “내기할까?” “누가 이길지 뻔할 텐데.” 몽각과 담향이 무표정인 채로 대화를 나눴다. 반이 부상자였고, 반은 하수와 고수가 적절히 섞였다. 그러나 이름있는 고수는 몇 없었다. 사실상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예정이니 정말로 도움 되는 이들은 놓고 갈 수가 없었다. 제갈수란은 낙소월이나 당혜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들이 워낙 강고해 막을 수 없었다. “오는군.” 잔존한 천여 명의 기세가 확연하게 변했다. 잡담과 웃음이 끊기고, 죽음을 각오한 결사의 기세가 요동쳤다. 두두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흔들렸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나타난 건 삼천의 마교도. 마교도가 흥분으로 인해 눈이 벌게져 남은 이들을 덮치려는 순간, 앞장 선 천마가 그 앞을 막아섰다. “오호.” 가늘게 떠진 눈매 사이로 기분 나쁜 안광이 타오르듯이 흘러나왔다. 섬뜩한 검붉은 빛이었다. 천마는 잔뜩 흥분한 마교도를 제지한 뒤, 손에 쥔 철검을 들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본좌의 앞을 가로막기에는 충분한 자격이로다.” 상천칠좌의 가공한 기세는 진짜배기였다. 정면으로 마주한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 그러나 남겨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살의 등등한 기세로 마주봤다. “하하하하!” 천마는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남겨진 이들을 보고 대소를 터뜨렸다. “최대한 한 마리라도 더 죽이고, 시간을 끈다.” 지일광의 최후의 명령이 떨어졌다. “좋아! 와라!” 십만대산의 대마두가 검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그 검 위로 불길한 구름이 모여들더니, 시커먼 기운이 줄기차게 날뛰면서 대기의 압력을 높였다. ‘태극검만이 희망이다.’ ‘은하노사와 백보권승께서도 계시고……’ ‘가족들이 걱정이다.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결코 쉽지가 않은데……’ ‘모사라면 분명 성공하실 것이다.’ ‘내가 사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검장께서 무사하셔야 할 텐데……’ ‘으휴. 검을 잡기도 힘들구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보상금이 제대로 전해져야 할 텐데……’ ‘창룡은 무림의 미래를 이끌 거야.’ ‘천마는커녕 부교주나 사대호법은 이길 수 있을지…… 후우!’ 천여 명의 무인들이 가진 생각은 비슷했다. 그저 미래와 희망을 믿고 뒤를 맡긴다. 그것뿐이었다. “천마삼검!” 검은 빛이 전장을 뒤덮는 순간. “자하개벽!” 암흑을 꿰뚫고 자색의 빛이 당도한다. 콰아아앙! “크흐읏!” 양 측 진영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천마조차 의아한 눈초리를 보였다. 천마삼검 제일식을 위해 검을 휘두르려고 하자 주변에 들끓는 마기를 없애버리는 검 줄기가 쏟아졌다. 마치 유성이 날아와 떨어진 것처럼 천마의 검을 후려치자 충격파가 형성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콜록, 콜록!”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이한 무림인들은 먼지구름에 헛기침을 토해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천마의 동공에 흥미 어린 빛이 떠올랐다. “웃……기……지 마……” 후방에서의 누군가의 목소리. 그목소리는, 필시 천기의 것이리라.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웃기지 말란 말이다아아아-!”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 “콜록콜록. 아니, 어르신께서 왜 여기에 계십니까?” “상단주께서 거래처가 박살나면 곤란하다고 좀 도우라 보냈소. 은공께서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라고…… 좀 늦었나?” “좀 더 빠르셨다면 좋았겠지만, 별수 없죠. 참 나, 그보다 그 돈벌레 재주 한번 좋네. 어떻게 이렇게 맞춰서 보내는지……” 안개처럼 앞을 가리는 먼지구름이 걷히면서 신형이 나타났다. 다만,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누구냐.” 천마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물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럭저럭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칠 척에 가까운 신장을 지녔으며, 오른쪽 눈 부근에 일자로 된 흉터에 눈매가 매섭고 갓 오십이 된 중년인이었다. “화산파.” 청년이 말했고, “금의상단.” 중년이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답한다. “주서천.” “무곡.” 주서천과 무곡이 좌우로 나란히 섰다. 침묵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눈앞에 벌여진 광경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천마가 최초에 모습을 드러내, 무림맹 주요 고수들을 박살 내고 쑥대밭으로 만든 것보다 더했다. 일검칠살, 지일광도 방금 전의 기세는 어디다가 팔고 왔는지 입을 뻐끔뻐끔 열면서 제 눈을 의심했다. “우……”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마교도의 것이 아니었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잠겨, 그저 죽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무림맹의.함성 소리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지축이 뒤흔들릴 정도로의 함성. 부상자가 반이나 있는데도 그 크기는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컸다. 몇몇의 무인들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사형……?” 낙소월은 죽은 줄 알았던 사형의 등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입가에는 자그마한 미소가 번졌다.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당장 뒤에서부터 껴안아 얼굴을 묻고 펑펑 울고, 또 웃지 않았을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나 어떻게든 자중하면서 주서천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 옆에 선 당혜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껌뻑였다. “재회의 기쁨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주서천이 고개만 뒤로 돌려 낯익은 얼굴들에게 인사한 뒤, 다시 원위치로 옮겨 전방을 주시했다. “쳇. 참, 많기도 하군.” 마교도 삼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부교주나 북사호법과 동환호법까지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웠다. “어르신께서 와주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주서천이 검마, 무곡을 힐끗 보고 안도했다. 천마까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그 외까지 신경 쓰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감이 있었는데 잘됐다. “천마 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겠소?” “충분합니다.” 무곡이 옆으로 빠졌다. “이것 참 흥미롭군.” 천마가 잠시 검을 거두고 웃음을 지었다. “그 소문으로만 듣던 정파의 영웅이 멀쩡히 살아 있을 줄이야…… 죽은 게 아니었나?” “죽는데 순서 없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앞날이 창창한 스물한 살인데 이승을 떠나기에는 이르지.” “하하하! 참으로 재미있구나!” 천마는 유쾌한 목소리로 대소를 터뜨렸다. “운 좋게 혈승의 비급을 취하게 되면서 이름을 알린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그것도 아니군.” 혈마 이상으로 섬뜩한 안광이 고요하게 빛난다. “요 얼마 되지 않은 싸움 탓으로 흥분해서 그런지, 아니면 본좌의 눈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대의 무위가 참으로 흥미롭구나. 만약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면, 굳이 태극검을 기다릴 필요도 없겠군.” 천마가 입술을 혀로 적시면서 씩 웃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쿠구구구! “가마.” 콰앙! 마치, 폭풍을 쏟아낸 것처럼 보였다. 무어라 말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