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65)
마찬가지. 하물며 그게 동수, 현경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신행백변이 공격 중 전환에도 능숙하다 해도 그 속도를 쫓아갈 수는 없었다. ‘피한다!’ 무형강기의 특징은 형태만 없는 게 아니다. 밀도 역시 보다 짙기에 강기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방어를 포기하고 회피를 선택했다. ‘움직여라! 움직여!’ 신체의 능력을 전부 한계 이상으로끌어올렸다. ‘유령보!’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을 얻어야 한다. 영혼의 무게까지 버린다는 생각으로 몸을 날렸다. 생각이 닿기도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회피에 집중할 생각으로 호신강기조차 펼치지 않았다. 조금만 늦어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 천마의 검이 스윽 하고 몸을 훑으며 지나간다. 스걱! 겉옷이 깨끗하게 잘려나간다. 그 너머의 피부까지 얇게 베이면서, 피가 튀었다. 좌측 가슴 위에서부터 우측 옆구리까지 선이 이어졌으나 천만다행으로 쩍 벌어지며 내장이 튀어나오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무형검강이 스쳐 지나가면서 피부만 베어 갈랐다. 쓰러지듯이 뒤로 넘어가는 몸. 주서천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몸을 그대로 뒤집어 바닥을 손으로 짚고, 몇 바퀴 회전하고 화려히 착지했다. “하아, 하아……” 천하의 주서천도 정신적으로 지쳤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정말로 대단하도다, 주서천.” 천마가 짐짓 감탄을 흘렸다. “반사신경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판단력이나 움직임하며, 마지 산전수전을 겪은 노고수 같군.” 천마삼검의 제이식은 그럭저럭 알려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제일식에서 제이식으로 확 펼칠 수 있는 자는 역대 교주 중에서도 몇 없었다. 있다 해도 워낙 옛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이 급변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것도 아니니, 섬에서 변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즉, 직접 대면하게 되면 이 변화를 예상하지 못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서천은 아무렇지 않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냈다. 그것이 천마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의 격전에서부터 상상 이상의 것을 봤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경험이 느껴졌다. “정말로 사람인가?” 천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비꼴 의도는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애초에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는데 심상구현을 이루고 현경의 성취를 얻어냈다는 게 말도 안 됐다. 상식을 너무나도 벗어났다. 여러모로 반칙적인 마공이나 육대금공을 떠올려도 이 정도는 불가능하다. “사람이다, 이 마귀야.” 주서천이 혈도를 짚고 지혈하며 답했다. 미간은 찡그려져 있었다. ‘강해.’ 혈마의 경우는 전 장문인, 우일문이 힘을 깎아뒀었고 음신의 경우는 상성 면으로 유리한 편이었다. 상천이라는 절대지경에 든 고수와 제대로 싸운 것을 따지자면 천마가 처음이었는데 손이 다 떨렸다. 마공의 무식한 위력부터 시작해 그 외에 전체적인 능력이나 경험 면에서도 무시무시했다. ‘이 천마를 팔다리 자르지 않고 이긴 회주는 얼마나 괴물일지 상상이안 가는구나. 어휴.’ 암천회주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오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기야, 전생에서도 상천십좌가 몇 명이나 붙었다. 앞으로의 싸움을 생각하니 짜증과 걱정이 솟구쳤다. “천기가 왜 네놈을 그토록 신경 쓰고 경계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겠다.” 천마가 피식 웃으면서 이가 다 빠진 철검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본좌는 힘의 증명을 본 것이 아니라면, 쉬이 믿지 않는다. 솔직히, 네놈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파의 영웅 또는 매화정검. 혈근경을 불태운 몹쓸 놈. 그 정도였다. 그러나 명성이 알려지면서 흥미가 생겼고, 암천회의 개양이 된 이후로는 그 행적을 보고 궁금해했다. 그리고 오늘날 얼굴을 맞댄 순간, 몸에 조금이지만 전율이 흘렀다. “몸 풀이도 여기까지다.” 남들이 들었다면 입을 떡 벌리고도 남을 말이다. 여태껏 보여준 무공만으로도 도저히 사람으로 느껴 지지 않았다. 여파만 해도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것이 고작 몸 풀이에 불과하다니. 다행히 지금까지 피운 난리 탓에 거리를 벌려둬서 듣지 못했지, 들었다면 놀라 까무러쳤을지도 모른다. “자아, 현경답게 서로의 무를 증명해 보자.” 통제를 할 생각조차 보이지 않았던 마기가 천마의 육신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흡수되어 사라졌다. 주서천은 천마의 기세가 순식간에 가라앉자, 바짝 긴장하면서 언제든지 반격할 태세를 잡았다. “와라.” 주서천이 천마를 도발하듯이 까딱인다. “천마.” “하하하하!” 천마가 주서천의 도발에 소리 높여 웃었다. “좋다! 본좌, 아니!” 그가 힘껏 발을 굴렀다. 콰아앙! 한 발을 그저 조금 힘차게 굴린 것에 불과한데, 지면이 부서지면서 가라앉았다.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공기가 터지고, 거대한 압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나의 모든 걸 보여주마!” 콰르르롱! 마른하늘에 우레가 쳤다. 머리 위 불길한 구름들이 더 시커멓게 변색됐다. “주, 서, 천-!” 마귀의 목소리가 천하에 울려 퍼졌다. 천지가 뒤흔드는 착각이 들 정도의 크기였다. 가히 음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목소리. 딱히 어떤 공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생명체들이 목을 움츠렸다. 콰앙! 천마가 지면에 발을 떨어뜨린 순간, 그 몸은 유성이 됐다. ‘타앗’ 같은 소리가 아니라 쾅 소리가 났다. 잿빛과 시커먼 색이 뒤섞인 광채가 뿜어져 나왔는데, 실린 내공이 어찌나 많던지 대기가 요동쳤다. ‘천마지체!’ 천마신공은 심법부터 시작해 검, 권, 각, 창, 도 등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다. 그중에서 원천이 되는 심법을 대성하게 되면 그 육체는 환골탈태를 겪으면서 천마지체를 손에 넣게 된다. 누구보다 마공에 적합한 육체가 되며, 부작용인 마성을 제어할 수 있게 해주고, 몸에 걸리는 부담 역시 최소화한다. 그 외에도 ‘사람’이라는 한계를 깨뜨릴 뿐만 아니라, 생물을 초월하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우오오오오!” 최초로 내뱉는 천마의 고함. 쿵! 쿵! 쿵!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땅이 크게 흔들렸다. ‘파천수라장, 흡(翕)!’ 파천수라장도 천마삼검 처럼 셋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쏘아내는 탄이요, 두 번째는 흡이다. 두 번째는 세 번째를 위한 준비로써 손바닥에 한꺼번에 마기를 모은다. 주서천 역시 검을 쥐고 최대한의 반격에 나섰다. ‘자하개벽, 화우선형!’ 천둥소리를 내뱉으며 회전하는 강기를 쏘아내는 검. 곧바로 부챗살처럼 펴져 한꺼번에 쏘아졌다. ‘적하매장!’ 줄기처럼 뻗어나가던 검이 한데 모였다가, 직각으로 꺾이면서 아래를 향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無)!’ 천마는 머리 위로 자색의 무언가가 쏟아졌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팔을 쭉 내밀어 일장을 날렸다. 자하검결과 파천수라장의 절초가 서로 피하지 않고 올곧게 뻗어가 부딪쳤다. 스윽. ‘무슨!’ 이변이 벌어졌다. 적하매장을 쓴 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검신은 무형검강으로 둘러 파천수라장과 충돌시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자색의 광채를 뿜어내는 강기는 물론이고 검에 실린 무형강기까지 부서지듯 깨졌다. 놀라운 건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얇은 도자기 그릇을 떨어뜨린 것처럼 손쉽게 분쇄됐다는 점이다. ‘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의문과 가능성. 그중 가장 그럴싸한 걸 찾아서 해답을 찾아낸다. ‘심상……구현.…!’ 본래 동일한 힘이 부딪치면 상쇄되어야 한다. 무형강기 역시 이 법칙에 통용됐다. 이 절대적인 법칙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 의지로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심상구현 뿐이었다. “위험……!” 무심코 목소리가 입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퍼억! “컥!” 주서천은 흉부에 파천수라장을 맞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면서, 비명을 토해냈다. 육신은 천근추로 지탱해 버텨내기도 전에 일정한 영역을 넘어선 손바닥에 후려 맞아 날아가 버렸다. ‘크다.’ 가슴 정중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 구석구석을 찔렀다. 바늘 수천 개로 찌르는 느낌으로 시작되어 어떠한 것으로도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변했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다!’ 갈비뼈가 부러져 내장을 찔렀고, 기맥도 뒤틀렸다.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회귀도 아직 쓰기에는 이르다. ‘적어도 장법이 주류 무공은 아니구나.’ 강기를 실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 할지라도, 그 매개체가 아무거나 상관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무공이란 하나만 깊게 파도 극의를 이룰지 모르는 것이니까. 일반적인 경우로는 주 무공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천마가 무형검강을 응용했던 건, 곧 검공이 주 무공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파천수라장은 자신의 무형검강을 상쇄하지 않고, 심상구현으로 분쇄시켰다. 그 말은 즉 장법의 위력이 검법보다 못하다는 것. 그리고 치명상을주기에는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정신 차려!’ 찰나의 순간 동안 생각은 끝났다. 몸에 힘을 불어 넣고, 힘껏 뒤집는다. 공중에서 방향을 틀려고 하자 우드득 하고 뼈에서 소리가 났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끝까지 놓지 않은 검에 힘을 잔뜩 주었다. 기혈이 삐걱거렸지만 괜찮다. 운기에 장애가 있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태세를 재정비하려 했다. 그러나 십만대산의 대마두는 그걸 내버려두지 않았다. 휘리릭! 잿빛으로 물든 머리칼을 흩날리는 마귀. 천마가 붉은 빛으로 번뜩이는 안광을 내뿜으며 접근했다. “이……!” 주서천이 질린 듯이 소리 질렀다. “괴물 자식!” “누가 할 소리를!” 광소로 대답하는 천마. 그가 공중에서부터 쫓아와 코앞에 나타났다. 워낙 빨라 공간을 자르고 붙인 것처럼 보였다. 주서천은 내공을 황급히 끌어 올려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콰과과과과! 대기가 요동쳤다. 대자연의 기가 불길하게 들끓었다. 초목이 꺼멓게 죽더니, 잿빛으로 바스러졌다. 죽음이 펼쳐지고, 현세에 지옥이 도래했다. 주변 일대의 생명체가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꽁지 빠지게 숨었다. 머리 위의 태양은 불길한 먹구름에 가려졌다. ‘천마삼검, 제삼식!’ 천마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졌다. 필사적인 무언가의 감정이 담겼다. “막아볼 수 있다면 막아 보거라!” 팔은 시커렇게 변색되고 피부 위로는 힘줄이 도드라져 토룡처럼 꿈틀거렸다. 근육도 부풀어 올랐다. 기맥은 타오를 것처럼 뜨거웠고, 뇌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쿵쿵거렸다. “파(破)!” 검은자위에선 핏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혈관에 압력이 과해져 이상현상이 벌어졌다. 마공의 부담감을 낮춰주는 천마지체도 더 이상 버텨내지를 못한다. “천(天)!”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눈앞의 적을 끝낼 생각으로전력을 다했다. “황(皇)!” 챙-! 천마삼검의 마지막은 이름 그대로 파천이었다. 바깥으로 표출된 마기가 기둥처럼 솟구쳤다. 머리 위를 가득 메웠던 먹구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천마삼검 제삼식이 도래한 장소는 모조리 박살이 났다. 초목도 흙도 생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커멓고 잿빛으로 뒤섞인 암광이 공기는 물론이고 대기에 실린 대자연의 기까지 지워버렸다. 주서천이 무슨 소리를 내기도 전, 무형검강이나 호신강기조차 파천황에 휘말려 부서지고, 소멸했다. 그의 몸은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지면을 튕겨져 나가 몇 장 밖의 언덕 중턱에 처박혔다. 콰아앙! 쿠우우우웅. 지축을 뒤흔들리는 굉음과 눈을 가리는 암광. 그리고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폭음은 멸망과 같았다. 이윽고 불길한 빛이 사라지면서 지워졌던 소리 역시 다시 돌아왔다. 먼저 침묵을 깨드린 건 다름 아닌 천마의 숨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