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71)
소문이 한둘이었나.난 예전부터 예견했네.” “칠검전쟁, 사문반란, 정혈대전, 정마대전! 무림의 사대세력이 전부 한곳에 놀아났다는 게 정말인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무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로 인해 받은 충격은 실로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이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무림은 격변을 겪는다. * * * 시간이 장강의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왔다. 나뭇가지 위의 초록 잎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계절이다. 안휘, 무림맹.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남궁위무가 인자하게 웃으며 주서천을 반겼다. “사문을 들르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주서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제자가 살아 돌아왔으니, 당연히 얼굴을 비추고 와야 하지 않겠느냐.” 종전 후 무림맹 본부에서 부름을 받았다. 주서천의 생존과 더불어 상천이 된 것을 축하하는 한편,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수면 위로 부상한 암천회, 그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자문을 구하려면 의견이 필요했다. 주서천도 마침 할 말이 있어 승낙했으나, 그 전에 화산파로 되돌아가야 해서 바로 갈 수는 없었다. 무림의 안위도 신경이 쓰이지만 그동안 괜한 걱정을 끼친 스승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서신으로 양해를 구한 다음 화산에 들렀다 오느라 불가피하게도 시일이 걸렸다. “무림맹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구나.” 남궁위무가 진지한 얼굴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림맹주, 그것도 상천칠좌의 절대고수다. 주서천도 적잖게 당황하며 손사래 쳤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최초의 격돌에서 패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목이 절로 움츠러들더군. 그 주서천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맹주라는 체면도 잊고 방방 뛰었네.” 농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최초의 격돌 때 패퇴한 것도 모자라 무림맹 주요 고수가 전멸하다시피 중상을 입었다. 특히나 상명진인의 사망소식을 확인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당분간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무림맹주로서, 그리고 정파의 한 사람으로서 검신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네. 그대는 영웅일세.” 남궁위무가 극진한 예우를 표했다. “낯 간지럽게 왜 그러십니까. 적당히 좀 해 주십시오.” 주서천이 팔을 벅벅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파의 영웅, 그것도 검신께서 이리도 당황하시다니, 제법 회귀한 광경을 본 것 같습니다.” 제갈상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두 분 다 한 사람을 괴롭히니 재미있습니까?” “결코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진심이니까요. 그 증거로……” “아까 집무실로 안내하시는 동안 실컷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마음은 알았으니 좀 봐주십시오.” 주서천이 질린 듯이 손사래를 쳤다. “영웅께서 그러라면 그리해야지.” 남궁위무가 머리를 들고 능구렁이같이 웃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제갈상이 입가에 웃음을 지우고 간략히 설명했다. “정마대전의 뒷정리는 딱히 문제없이 끝났고, 암천회의 공표 또한 수월했습니다. 솔직히, 훼방이 들어올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문제가 없더군요.” “무림맹과 사도천, 그리고 흑도의 하오문이 작정하고 존재를 끄집어냈으니까요. 천기라면 아마 제지가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겁니다.” “말 나온 김에 묻는 것이지만, 도대체 무슨 수로 사도천주의 마음을 움직인 건가?” 서로 공표 시기가 맞물렸다. 물론, 그 전에 소문이 있었으니 겹치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는 않다. “이 늙은이의 눈에는 사도천도 우리처럼 암천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치 예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느껴졌네. 또한, 전에 보내온 서신에 사도천이 협력할 것이라 말하지 않았나.” 남궁위무만이 아니라 제갈상도 이점을 궁금해했다. 우연치곤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아…… 패신군과 좀 아는 사이입니다.” 사실을 밝혔다간 귀찮아질 것 같아서 대충 말했다. “패신군이라면 그 패신군 말입니까?” 제갈상이 눈을 크게 떴다. 사파의 영웅, 그리고 음신에게서 상천의 자리를 빼앗은 패신군은 무림에서도 장막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친분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내부와 외부로 협력자가 존재한다고 말했지요?” “듣긴 들었네만, 설마 그 패신군이었을 줄은 몰랐네. 놀랄 노자로군.” 남궁위무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뭐, 그런 겁니다. 다음 보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위무와 제갈상이 패신군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주서천이 재촉하니 물을 수 없었다. 또한 본론 역시 중요하다 보니 나중을 기약해야 했다. “독룡…… 당명인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언제부터입니까?” “종전 다음 날…… 그러니까, 주대협께서 생존한 소식이 전해진 날입니다.” 예상한 대로였다. 반대로 아직까지 무림맹에 남아 있더라면 무슨 함정인가 하고 의심했다. “당명인이 무림맹의 배신자, 천추입니다.” “후우……” 남궁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상의 표정도 별로 좋지 못했다. “예상한 대로군……”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다. 주서천의 최후를 목격하고 보고한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이 생존 소식을 듣자마자 사라졌다. 바보라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안다. “그래서 어찌된 영문인지 조사했는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 하나 없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그와 무슨 일이 있었지?” 남궁위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다른 목격자였던, 홍고 역시 입적했으니 이제는 장본인에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독룡이 배신자였고, 당시 바보 같았던 제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지요. 그보다, 말 나온 김에…… 저 역시 할 말이 있습니다.” 남궁위무와 제갈상의 시선이 주서천에게 고정됐다. “암천회가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칠성사의 요광과 천기와, 암천회주에 관해서입니다.” 머릿속으로 천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정말인가?” 남궁위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드디어 알아내셨군요.” 암천회. 수뇌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구성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곳. 무림정복이라는 목적 외에는 제대로 밝혀진 것 하나 없다. 무림맹 외에도 여러 무림단체에서 조사해 봤지만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예. 개양…… 천마에게 들은 정보이니 틀림없습니다.” 천마는 힘에 굴복한다. 그래서 암천회주에게 머리를 숙이고 개양이 됐고, 주서천에게 사실을 전달했다. 비록 그 심정은 사악하나, 마교의 사상이자 신념을 끝까지 관철했다. “그 천마조차 암천회의 수뇌에 불과하다니, 다시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군.” 남궁위무가 감탄사를 뒤섞어 말했다. 옆의 제갈상도 동의하듯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놀라움도 놀라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대세력 중 마교의 수장을 밑으로 둔 그의 저력이 두려웠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요광은 황궁에 있습니다. 또한, 암천회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지 놀랄 것도 없군. 옥문관을 누군가의 개입 없이 열고, 혈교의 군세를 보냈으니 말이야. 그만한 일을 요광 혼자할 수 있을리 없을 노릇이니……” “그리고…… 암천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뿌리는 황궁에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홍무제(洪武帝) 시절의 관료들이지요.” “홍무제? 홍무제라면 명의 태조(太祖)가 아닌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군요.” 제갈상이 예상외라는 듯이 놀란 표정을 했다. 홍무제가 숨을 거둔 지 약 이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초대 황제의 재위 기간이 삼십 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길어 봤자 오십 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오십 년이라면 짧은 시간은 아니네만, 그리 긴 시간도 아니로군.” 남궁위무가 등을 기대며 수염을 매만졌다. “무림맹과 사도천, 마교와 혈교…… 무림의 사대세력을 비롯하여 중원의 각 단체를 농락하고, 상계를 휘어잡았으며 오호도독부의 관료까지 움직일 정도의 힘을 쌓아 올린 이들치곤 짧다고 생각됩니다.” 제갈상이 동의하듯 의견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그들이 축적한 힘에 비해서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편입니다.” 혈근경이나 뇌계의 무공부터 시작해 각종 법보나 무공 비급, 그리고 도감부의 영약과 영물 관리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외부로 유출되면 피바람을 불게 할 보물들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손실된 절대자의 무공비급이나 영약은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십 년이 짧지는 않다고 하지만, 솔직히 이 모든 걸 쌓아올릴 정도는 되지 않는다. 세간에선 암천회가 백 년 혹은 이백 년 동안 무림 정복을 위해서 준비했다거나, 혹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신선이 개입한 것은 아닐까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주서천 역시 암천회가 창설한 시기를 전해 듣고 의구심을 품었으나, 내막을 알게 되면서 수긍했다. “홍무제의 행적 중 건국 외의 유명한 것을 꼽으라 하면, 어떠한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숙청입니다.” 명태조 홍무제와 숙청은 빼놓을 수 없는 관계다. 홍무제는 중앙집권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는데, 이를 훼손하지 않고 유지 및 강화를 위해서 숙청을 가했다. 이 과정의 규모가 상당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건국되기 전 동고동락한 측근은 물론이요 심지어 개국공신까지 가리지 않았으며 권신들과 일가족을 포함해 무려 삼만 명에 이르렀다. “삼만?” 남궁위무가 깜짝 놀랐다. 홍무제의 숙청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무림과 관부는 상호 간에 관여하지 않는 주의다 보니 세세한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홍무제는 신하를 불신했습니다. 개국공신이나 혁혁한 공을 세운 노장조차도 숙청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이에 관료들은 공포에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숙청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우선, 홍무제는 왕족이 아닌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 온갖 고생을 다 했다. 그 당시 나라는 워낙 막장으로 치달아 있었는데, 그는 그 내막인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를 혐오했다. 황제가 된 이후로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처벌에 임하는 데 적극적으로 힘썼고, 그 덕에 부정부패가 없다시피 사라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처럼 출신이나 재산 등이 미천하다 보니 우습게 보일 여지가 많아 숙청을 통해 황제로서의 권위를 보여줘야만 했다.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왕조라 해도, 공신 탓에 제대로 된 힘 하나쓰지 못하고 신하에 의해 좌지우지 당하다 멸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를 경계했다. “명이 세워진 이후 크고 작은 수많은 숙청이 홍무제가 재위하는 동안이루어졌습니다. 몇몇은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이나 은거하려 했으나, 홍무제는 이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홍무제는 백성과 신하는 오직 황제를 위해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황명을 내렸는데, 신하의 경우 나라, 곧 황제를 위한 일을 대충 하거나 관두면 장본인을 포함한 집안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허, 홍무제가 백성에겐 명군이요. 신하에겐 폭군이라 칭해진다더만……” 남궁위무가 신음을 흘렸다. “아, 혹시……!” 제갈상이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떴다. “암천회란, 당시 홍무제의 숙청을 두려워한 신하들의 모임이었습니까?” “맞습니다.” 암천회(暗天會)! 무림을 농락한 이 비밀스런 단체의 뿌리는 사실 무림이 아니었다. 도리어 관여하지 않는 관부에 있었다. 암천이란 그 당시 신하들에게 펼쳐질 미래였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비해 살아보려고 손을 잡기 위해 모임을 갖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암천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