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74)
않으면 구현의 성립이 불가한 원리였다. ‘그러나 그 조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구현은 가능하다. 구희의 신단 덕에 살았다.’ 구희의 신단을 복용하고 얻은 재생능력. 그 덕분인지 심장이 조각났지만, 어떻게든 혈관과 붙어서 재생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소령에게 업혀서 절벽 밑으로 떨어질 때, 끊어지는 의식 속에서 회귀를 발현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어쨌거나, 이젠 방심하지 않고 경계한다 할지라도 그 이름 모를 무형지독의 대비가 필요했다. “당명인은 천추이니 단연 암천회의 지원을 받았겠지만, 그 기초가 되는 건 사천당가입니다.” 녹안만독공을 수련했지만, 독에 관련된 지식은 당가를 이겨낼 수 없다. 자문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잘됐군요. 마침, 당가의 조사도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당가의 소가주가 암천회의 수뇌였다. 조사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다. “또한 독룡의 행방이 묘연하여 당가의 독왕이 설명을 요구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설명을 대신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끙, 알겠습니다.” “사전에 서신을 보내 대략적인 설명을 해둘 예정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머릿속으로 당혜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을 듣게 되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조금 걱정됐다. * * * 사천. 쨍그랑. “이, 이 천인공노할……” 당가의 가주, 독왕 당유기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은 산산조각 났다. 깨진 조각과 찻물이 손에서 피와 뒤섞여 뚝뚝 떨어졌다. “명인이가 암천회, 그것도 수뇌라고?” 당명인이 어디 그냥 평범한 아들인가. 오룡삼봉이면서 흑영부 소속에, 가문을 이끌어나갈 소가주였다. 헌데 얼마 전부터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문이 돌더니만, 결국 행방불명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무림맹에게 문의했더니 무림맹을 배신하고 주서천을 함정에 빠뜨려 죽일 뻔했다는 서신이 돌아왔다. “이 개 같은!” 당유기가 분노의 일같을 터뜨렸다. 무의식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기 때문일까, 독기가 새어나왔다. 미세하게 흘러나온 독기는 햇볕을 잘 쬐도록 창 앞에 둔 화초를 집어삼켜 뿌리까지 썩게 만들었다. “웃기지 말란 말이다!” 아들이 저지른 죄를 부정하는 것이었을까? “어떻게 이어온 가문이거늘, 그걸 망쳐? 이 배신자노옴!” 아니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조금도 믿고 있지 않았다. 도리어 그 배신행위에 누구보다 진노하고 있었다. “당가의 소가주로서 권리는 실컷 누리더니, 이제 와서 의무는 내팽개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여태껏 희생해 온 당가의 노력을 하루아침에 짓밟다니!” “힉!” 바깥에서 가신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당가가 독왕의 분노에 몸서리쳤다. “여봐라!” “예, 예! 가주!” “검신이 근시일 내로 당가에 방문한다고 하니, 맞이할 준비를 해라.” “맡겨만 주십시오!” “그리고, 미혼에 얼굴이 반반한 여아를 준비하도록 해라.” “예……?” ‘검신, 주서천이 아무리 무공광이라 하지만 사내인 이상 미인계 앞에선 맥을 못 추릴 것이 분명하다.’ ‘주서천을 사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전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천독지체가 탐이 났지만, 나이와 사문이 걸려서 아쉬워하면서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무슨 수를써서라도 데릴사위로 삼아야만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가주가 배신했으니 무림맹의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정파의 영웅, 검신을 사위로 받아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가는 발이 좁은 주서천과 나름대로의 연이 있었다. 특히 같은 오룡삼봉인 독봉, 당혜와 연인사이라는 소문도 있으니 그야말로 호기다. “당혜 그 아이부터 불러와라.” 주서천은 소령을 대동하고 사천의 당가로 향했다. 무림맹에서 임무 수행을 돕기 위해서 무사를 붙여준다고 했지만, 도리어 방해가 될 것 같아 거절했다. “소령, 또 너랑 여행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답답하구나. 벙어리가 된 기분이야.” “……” “낙 사매가 보고 싶다……” 종전 후 화산까지 동행했지만, 무림맹까지 함께하지는 못했다. ‘매화검수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현재 검장인 위지결이 중상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그래서 아쉬워하면서도 나중을 기약하고 잠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화산에서 시간을 보냈다. “최근 사형을 보면 위기감이 느껴져요.” “위기감? 무슨 위기감?” “예전에는 얼굴도 그냥저냥이고 친구도 별로 없는 내향성 외톨이셔서 여자가 꼬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은근슬쩍 심한 말 하고 있지 않아?” 오룡삼봉 중 일룡에 정파의 영웅, 그리고 상천칠좌인 검신이다. 남자에겐 선망이자 동경의 대상이요, 여자에겐 왕자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무후무한 신랑감이었다. 설사 못생겼다 할지라도 여인들이 줄을 설 정도로 능력이 좋았다. “사형도 무공이나 검이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낙소월이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렸던 게 떠올랐다. 참고로 그때 너무 귀여워서 쓰러질 뻔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무림의 혼령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건 무공의 수련 때문이지 않나요?” 무림인 대다수는 명가에 태어나 정략혼을 했거나, 혹은 낭인이나 삼류가 아닌 이상 혼기가 늦은 편이었다. 특히 대문파의 경우 사랑보다는 무공 수련과 높은 경지의 성취를 우선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정에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대로 해이해져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존재하다 보니 멀리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주서천은 이미 극의에 해당하는 화경도 모자라 시대를 풍미할 현경의 성취까지 이루지 않았나. “아직 구해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스스로 말하고도 낯간지러웠지만 그래도 멋졌다. 대신 지금 생각하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이불을 찰 정도로 부끄러운 대사였다. “사형……” 낙소월도 조금 답이 없는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노려지게 할 수는 없다.’ 사랑은 곧 약점이 된다. 전생에서도 연인이 노려져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영웅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천기라면 그 약점을 이용하고도 남는다. ‘친분 교류는 최소화해야 한다.’ 친한 사람이 많을수록 약점이 늘어진다. 주서천이 사람을 사귀지 않은 건 원래 외톨이 기질이 있던 것도 있었으나, 암천회에게 노려질 것을 우려해서다. 암천회에 끝까지 정체를 숨기려던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갈승계나 이의채도 실제로 알게 모르게 노려졌지만, 검마나 금의상단, 유령의 호위 덕에 살아남았다. 암천회 외에도 각종 적대 세력에게 위협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당혜나 제갈수란은 개개인의 무력도 있으나 오대세가나 무림맹에서 붙여준 비밀 호위가 존재했다. 더불어 각 지방에서 몰래 뒤따르는 유령도 곁을 지키기도 했다. ‘친구가 별로 없는 건, 어쩔 수 없어서다! 그럼!’ 영웅은 고독한 법이라며 위로 했지만, 전생에서도 친구가 없었던 사실을 깨닫지 못한 주서천이었다. * * * 사천, 당가. “어서 오시오, 검신.” 주서천은 환대를 받으며 당가에 입성했다. 과거 원수 취급을 받았을 때와는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설마하니 가주인 독왕이 직접 마중을 나왔을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독왕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주서천도 포권으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검신이다……” “정파의 영웅이 아닌가.” “히야, 무공이 얼마나 대단하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거지?” “무슨 일로 온 거지?” “아가씨를 뵈러 온 게 아닌가?” “설마하니 검신을 보게 될 줄이야……” 한때 봉추라는 조롱 섞인 별호로 불리던 그였으나, 그 흔적은 이제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가의 주점을 통해서 원한을 해소했을 뿐더러 천독불침이라는 걸 증명해 일등신랑감 후보가 됐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주서천이 누구인가. 정파 무림을 구한 영웅이며 오룡삼봉 중 검룡, 그리고 상천칠좌인 검신이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며 무인이라면 열에 다섯 이상은 입에 담는 존경하는 위인이었다. 주서천의 방문 소식은 당가뿐만이 아니라 사천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검신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약간의 선물을 들고 당가를 방문하게 됐어요.” “방문 목적이요? 음…… 그냥 주서천 대협을 뵈러 온 걸로 해주세요.” “무공도 고강하시고 대문파의 제자에……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금의상단의 투자자라서 돈도 많다며?” “주색을 밝히기는커녕, 멀리한다고 하더라.” “멋있어……” 사랑에 빠진 소녀들은 주서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꺄르르 웃거나 혹은 몽롱한 눈빛으로 넋을 잃었다. “주서천이 사천에 가 있다며?” “뭣이? 당장 짐 싸고 그리로 가게나!” “주 대협께서는 중원제일의 중매자가 아니겠는가! 끌끌끌!” “어허, 이 사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 대협의 명성에 누가 될 표현은 삼가게나.” 주서천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여인, 특히나 미녀들이 따라왔다. 천운이 닿아 눈이 맞는다면 가문의 영광이요, 약간의 인연만 만들어 두어도 대박이지 않겠는가. 또한, 사내란 미녀를 좋아하는 법. 이 기현상에 방방곳곳의 노총각 및 남정네 무리가 따라다니게 됐다. 게다가 이렇게 유동 인구가 증가하다 보니 장사를 위해 상인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상권이 형성됐다. 혼자서 지역 경제에 영향까지 끼치는 주서천이었다. 당가의 가주에게 대접받는 차는 일품이었다. 독이나 약을 다루다 보면 식물 전체에 일가견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 말대로였다. ‘음, 일을 마치면 챙겨달라고 해야겠군.’ “오랜만에 뵙소, 검신.” 당유기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만…… 부디 가주님께서는 말을 편히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대세가의 가주이시고 강호의 대선배이신 독왕이신데, 후배가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말투도 전과는 달랐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당가의 가주이며 강호에서 배분이 높다고 하지만, 눈앞에 앉은 자는 무림의 정점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소. 후배, 아니 검신께선 상천칠좌이자 정파의 영웅이지 않소. 설사 아들이나 손자뻘이라 할지라도, 검신에게 그만한 예우를 갖추지 않는다면 당가는 강호의 손가락질을 받을 거외다.” “어쩔 수 없군요.” 차에 대한 칭찬 등의 인사를 섞어 몇 마디를 나누다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제갈상이 사전에 말한 대로 이야기를 대강 해 둔 덕분에 당유기의 놀라움이나 분노는 덜했다. “협력하겠소.” 당유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약간의 주저함도 없는 답변이었다.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주서천이 다시 한번 물었다. 당명인은 소가주다.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세가에서 기대와 지원을 받으며 자라온 장남이 아니던가. “의중을 살피려고 괜한 말할 필요없소, 검신.” 당가의 가주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무림맹에서 보내온 서신에 의하면, 검신께서는 본가와 흑영부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 들었소만, 맞소?” “예.”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겠구려.” 당유기의 주름살 가득한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에 진득한 살의가 비춰졌다. “본가는 어느 순간부터 힘이 부족하여 오대세가에서 빠질 정도로 도태되기 시작했소. 어떻게든 쇠락을 피하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지만, 제일 중요한 절대고수의 배출은커녕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 그래서 택한 것이 무림맹의 그림자, 흑영부요.” 당가는 무공이 무공이다 보니 전부터 흑영부에 일시적으로 소속되거나, 혹은 도움을 주고는 했다. 그러나 본격적은 아니었다. 당가역시 정파의 오대세가인 만큼, 치부인 흑영부의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역대 무림맹주나 흑영부장, 혹은 군사가 사정사정하여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아 수행하는 정도였다. 흑영부 소속으로 배속되는 경우도 방계거나 세가 내에서 밉보인 인물, 그도 아니면 범죄자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실은 본가 내에서도 극소수에게만 전해져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