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77)
식은땀으로 끈적끈적했다. 등골은 오싹해서 북해의 땅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흑영부가, 전부는 아니다……” 당유기의 얼굴도 평소의 지치고 공허한 것으로 돌아왔다. “애석하게도 그 외의 것은 불가능하네, 검신.” 당가의 가주는 쇠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흑영부를 후대가 잇지 못하면 쌓아 올린 것을 잃고,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 * * 인면지주의 탐색행이 결정됐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당가 내에서도 임무는 기밀로 붙여졌고, 합류하는 인원도 소수의 고수로 정해졌다. 당혜를 비롯하여 절정 및 초절정 경지가 열 명이었다. 한편, 주서천은 그사이 무림맹 본부와 화산파, 금의상단 순으로 서신을 보내 이 사실을 보고한다. “인면지주?” “황당하군.” 무림맹 수뇌부의 반응은 미묘했다. “정말로 있기는 하나?” 인면지주는 전설에서나 나오는 영물이다. 기록이나 목격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워낙 오래된 탓에 불확실했다. 단순한 미신의 경우일 수도 있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칠각사의 사례를 생각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독혈곡의 왕이자 영물인 칠각사. 몇 년 전, 단하성은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인정받았다. “아무리 검신이라지만, 쓸데없는…… 어흠, 확실치도 않은 일에 인력을 투입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 검신이 결정한 것이라면 분명 무언가 있겠지요. 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미파의 경인사태가 주서천을 지지했다. 그 외의 장로들 또한 대부분이 협력 의사를 보였다. 무림맹은 지난 전쟁에서 대패할 뻔했으나, 검신 덕에 희생을 최소화하고 승리를 취할 수 있었다. 소림사나 아미파처럼 마도와 척을지닌 세력은 물론이고 정파 대부분이 주서천에게 구은을 입어 호의를 보이면서 그의 행동에 지지를 보였다. 설사 빚을 지지 않았다고 해도, 정파의 영웅이며 상천칠좌나 되는 인물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람을 모으도록 하시오.” 남궁위무가 장로진의 의사를 확인하고 명령을 내렸다. 인면지주 탐색대 모집은 은밀하게 진행됐다. 또한, 생각보다 상당한 고수가 모이게 됐다. 화산파의 경우는 매화검수까지 동원했다. 너무 과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에는 타당한 연유가 있었다. “주 사질이 보내온 서신에 의하면,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함정?” “인면지주의 소재에 대해서는 천추, 당명인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무형지독을 저지하려는 걸 예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기를, 약점을 공략하라 했다. 주서천에게 있어 무형지독은 이 약점에 해당했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한들,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괜히 대처하려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황천 앞까지 가서 그 너머에 있을 염라대왕과 대면할 뻔했으니 경계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암천회, 천기라면 이 사실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을 터. 그래서 만약을 위해 고수의 도움을 요청했다. * * * 장강의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협(三峽)이 나온다. 삼협은 험준하기로 소문난 장소이며 동시에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곳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최초의 구당협(麗塘峽)을 지나면 한 폭의 명화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협(巫峽)이 나왔다. 그리고 이 두 곳을 지나면, 둘과 달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기괴한 서룽협(西陵峽)에 들어선다. 양쪽으로 늘어선 가파른 절벽 탓에 해를 가려 대낮임에도 어둡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울창한 수풀에서는 원숭이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또한, 강물은 혼탁하여 수면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물살은 어찌나 거세고 빠른지 난폭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당혜의 호위 무사, 원대식이 환하게 웃었다. 주변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탐색대의 합류 지점을 찾아오느라 정말 온갖 고생을 다 했다.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삼협의 물살이 격랑이라 익히 들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이야……’ ‘발을 잘못 딛기라도 했으면 끝장이었을 거다.’ ‘으으으,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군.’ 구당협의 산만 한 돌덩이, 염여퇴(溫源推)를 볼 때는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좁아진 강폭을 포함해 유속이 빠르다 보니 노련한 선주가 모는 튼튼한 선박조차 안심할 수가 없었다. 엄여퇴에 부딪쳐 배가 박살이 나거나, 혹은 뒤집힌다는 일화를 들었을때는 소름이 다 끼쳤다. 아무리 명문지파의 무림인이라고 한들, 수공을 수련하지 않은 이상이 거센 물결에 빠지면 답도 없다. 도중에 약간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봐도 정말 신묘하군.” “여기가 아직 서룽협 안이라고?” “도저히 같은 곳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아.” 일행은 아직 서릉협을 빠져 나오지 않았다. 나오기는커녕 위치상 한가운데에 있다. 사천의 금사강(金沙江)에서부터 일행을 태우고 온 선박은 서릉협의 굽어진 절벽 앞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정박한 장소의 수면은 삼협답지 않게 고요했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기문진이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사실일 줄이야……” 주서천도 선박 아래의 수면을 보고 감탄했다. 삼협이 새벽 시간대에 접어들면, 운무에 젖으며 천지조화가 일어나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삼협의 경관이 그만큼 몽환적이고, 절경인가 보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구당협, 무협, 서릉협. 장강의 삼협은 하나의 거대한 기문진이었다. 당가의 선조는 우연찮게 이 기문진 안에 숨겨진 장소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인면지주를 찾았다고 한다. “돛이 바람에 내려지지 않도록 잘 고정하고, 정(碇 :닻)도 꼼꼼히 확인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당혜의 지엄한 명령에 당가의 무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 다음, 계단처럼 되어 있는 절벽 면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일행 전부 최소 절정 이상 되는 고수다 보니 딱히 문제는 없었다. 수면 위보다는 차라리 절벽이 나았다. 보기만 해도 위태로운 절벽 면을 등반하고 위로 올라오자 울창한 수풀이 나왔는데, 무척 어두웠다. 남만을 절로 연상시키는 광경이긴 했는데, 분위기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음험하고 기분 나빴다. 이각 정도를 걷자 수풀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 당혜가 고개를 휙 돌려 주서천을 쳐다봤다. “금속음.” 주서천이 질문에 답하듯이 중얼거리곤 뛰쳐나갔다. 그 몸놀림이 가히 번개와 같았다. “크아아악!” 수풀을 헤치자마자 피가 튀었다. 주서천은 가슴이 꿰뚫린 무사의 뒷덜미를 잡아서 뒤로 뺀 다음, 반대쪽 손으로 검을 출수했다. 키에엑! ‘키에엑?’ 짐승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눈앞에 나타난 건 정말 짐승이었다. 머리가슴과 배로 구분되는 몸집이 보였다. 머리에는 여섯 개나 되는 눈이 달려 있었는데, 붉게 빛났다. 또한, 일곱 마디로 된 다리는 머리가슴에 붙어 있었으며 도합 여덟 개였다. 거미였다. 그것도 그냥 거미가 아니라, 무려 오 척이나 되는 키를 지닌 거미였다. ‘거미라고?’ 거미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다. 서장에서 넘어온 회귀한 거미조차 커봤자 손바닥만 한 정도다. 어린아이보다 큰 거미라니, 그런건 들어본 적 없었다. ‘아니, 놀라는 건 나중이다.’ 주서천은 경악과 불신을 잠시 옆으로 내려놓고, 손을 움직여 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아무리 괴물 같은 거미라고 한들, 검신의 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검격 몇 번에 몸이 조각났다. ‘화산파의 주서천이오!” 주서천이 외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서천?” “검신!” “주서천 대협이다!” 여기저기서 환성이 들렸다. 주서천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거미의 형상을 한 괴생물체 무리와 대적하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은공!”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왕일!” 금의검문의 질풍십객 중 필두, 질풍검 왕일이었다. 주서천은 왕일에게 달려가 그를 괴롭히고 있던 거미를 일검에 양단했다. “허어!” 왕일은 주서천의 등장에 기뻐하면서도, 비교조차 불가능한 검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도착했나?” 참고로, 탐색대는 결성된 후 집결한 적이 없었다. 각 세력에서 고수를 동원한 건 성공적이었으나, 서로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장소하고 있었다. 게다가 서룽협이 최적의 합류 지점인지라 그냥 목적지에서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기문진 내부의 출입 방법은 무립맹의 개편된 암호문을 이용하여 사전에 전달해 두었다. 그러나 금의검문 외의 세력이 보이지 않았다. “은공 일행 외에 전원이 집결했으나, 지금은 헤어졌습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 하앗!” 왕일은 검마나 유령을 제외하곤 금의검문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영약도 지원을 받아서 실력이 좋았다. 주서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력을 가하면 거미의 다리를 두 번에서 세 번 만에 자를 수 있었다. “보통 거미가 아닙니다!” 금의검문의 무사가 질린 듯이 소리쳤다. 크기도 크기지만, 단단함도 보통이 아니었다. “컥, 컥!” 그사이에 금의검문의 무사 하나가 목을 붙잡고 괴로워했다.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중독된 중세였다. “해독!” 예!” 주서천의 뒤를 따라온 당혜도 눈앞의 광경에 어이없어 했지만,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도움을 주었다. 당가 소속 무사들이 금의검문과 화합을 맞췄다. 중독된 부상자를 보호해 해독에 신경 쓰거나, 혹은 암기를 이용하여 뒤에서부터 보조했다. “흥.” 당혜가 평범한 아낙네였다면 혐오스럽게 생긴 거미, 그것도 오 척이나 되는 크기에 비명을 지르면서 혼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림에서도 소문난 여장부, 그것도 온갖 독충으로 가득한 당가의 여인이 아닌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상대했다. 거미가 펄럭이는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암기를 맞고 몸을 마구 뒤틀며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겁하기는커녕 침착하게 옆으로 피해서 제압하거나 심지어 손바닥으로 후려쳐 쓰러뜨리기도 했다. 키리릭! 케륵! 한편, 거미 무리는 사람의 등장에 달갑지 않은 듯, 사납게 울부짖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붉게 번뜩이는 눈빛은 섬뜩했다. 하나둘씩 늘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이 주변 일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아졌다. “전원! 귀를 보호해라!” 주서천은 경고를 날린 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를 통해서 들이쉬었던 공기가 내부에서 순환하며 변화했다. 내공이밀어낸 공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쿠오오오오오오-!” 주서천은 이 주변은 물론이고 삼협을 울릴 정도의 성량으로 용후를 사용했다. 쿠오오오오오! 울창한 숲 너머 삼협에 메아리 칠 정도로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릭! 키리릭! 키잇!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만 같았던 기세의 거미 무리가 멈칫했다. 하나같이 주춤하는 반응을 보였다. “호오, 안 물러난다고?” 웬만한 무인도 전의를 잃을 정도로 내력을 담았다. 내쫓을 생각으로 용후를 사용했거늘, 경계하거나 멈출 뿐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전부 영물이란 말이지?” 주서천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어디, 내단 좀 있나 보자!” 가지고 놀 생각은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하니 빨리 끝낼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주서천은 대해와 같은 내공을 끌어올려 검기도 아닌 강기로 검신을 두른 다음 화려하게 휘둘렀다. 파바바바밧! 굳이 초식을 펼칠 것도 필요 없었다. 아무리 영물이라고 해도 그건 너무 과하다. 주서천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거미 무리의 사이를 누비며 검을 움직였다. 서걱! 도끼로 쪼갠 것처럼 양단되는 거미의 몸뚱어리. 어찌나 깔끔히 잘렸는지 피 한 방울도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