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83)
아군의 것은 아니었다. 전원 칠성사병의 입을 통해 나왔다. ‘……’ 주서천도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거미!’ 난리의 원인은 제어에서 풀려난 거미였다. 스스스슥!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서 괴생물체가 기어온다.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거미가 점차 늘어났다. 장서은이 기겁하는 비명이 들렸다. 굳이 뒤편을 볼 것도 없이 주변에 거미의 무리가 까맣게 몰려들었다. “……사람……의…… 아이야……” 방금 전까지 일행을 농락했던 목소리.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여기저기서 경악과 불신 어린 외침이 터졌다. “혈독노인?” 목소리의 정체는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혈독노인이었다. 여전히 이마는 비수에 꽂힌 채였다. 다른 게 있다면 등이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었는데, 등 위로 거미의 다리가 보였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배 위의 무늬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초대형 거미, 인면지주가 있었다. “가증, 스러운, 노마에게, 서, 구해준, 것을, 고맙게, 여기마.” 무인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기지 않지만 정황상 인면지주가 혈독노인의 발성기관을 빌려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 아무리 영물이라도, 거미가 사람의 신체를 빌려 사람의 말을 한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그, 답례, 로……” “내단을 내놔라.” 주서천이 검신에 강기를 실었다. “큭큭큭, 괜한 반항 하지 않고 내단만 내준다면 너와 네 자식들의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정파의 영웅이 아니라 마도의 마두 같았다. 인성파탄자로 불려도 할 말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인면지주가 사람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이 워낙 커서 유야무야 넘길 수 있었다. “그리, 어렵, 지, 않은, 일, 이다.” “협상은 결렬인가. 할 수 없…… 응?” “나의, 것은, 무리지, 만은……” 끼기긱_인면지주의 배 아래로 열댓 마리의 거미 무리가 무언가를 들고 기어 나왔다. “본녀, 와, 같은, 종, 의, 수컷이다.” 거미 중에선 짝짓기 중 암컷이 수컷을 먹잇감이나 위협으로 착각해 죽이는 경우가 존재한다. 인면지주의 경우가 그랬다. 그녀에게 수컷이란 번식을 위한 개체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배가 부르고 귀찮으면 내버려 두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짝짓기를 하려 근처에 오면 가차 없이 죽인다. 그중에는 그녀처럼 영물로 태어나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 동족도 존재했다. 이 내단의 주인도 그랬다. ‘흐응.’ 주서천이 거미에게서 내단을 건네받아 확인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둥근 공의 모습이었다. ‘가짜는 아닌 것 같고……’ 손에서 전해지는 기의 흐름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직 복용하기도 전인데 이 정도의 느낌이라면 그 효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진짜배기가 틀림없었다. ‘이 정도의 지성이라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면지주.” “말, 해라.” “거래하지 않겠나?” “거, 래?” 주서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믿을지 말지 자유지만, 이 서식지밖에는 너희를 노리는 무리가 존재한다. 그들은 너희의 내단뿐만 아니라 거미줄 등을 노리고 있다.” “알고, 있다. 기억이, 나는, 군.” 인면지주의 영험함이나 오성은 보통이 아니다. 혈어술법의 지배하에 있었음에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을 기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녀를 괴롭혔던 건 거미줄부터 시작해 독이나 피를 억지를 뽑아내던 광경이었다. 혈독노인이 독공에도 조예가 있다보니, 독이나 피를 뽑아서 만혈독 등의 제조에 실험재료로 사용했다. “그 무리를 처리해 주마.” “흐, 응.” 외부의 적이야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전례의 피해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인면지주는 삼십 년을 넘게 암천회에 지배당해 가축처럼 살아왔다. 그 고통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아이들의 경우는 지성이 낮아 잘 모르거나, 아예 인식조차 못 하지만 높은 지성의 소유자인 그녀는 달랐다. 괜히 후에 중상을 입을 경우를 대비하여 숨겨둔 동족의 내단을 시원스레 내준 것이 아니다. “그대, 가, 원하는, 것은, 무엇, 인가?” “정기적인 독과 거미줄의 제공.” 혈독노인에 연결된 다리가 꿈틀거렸다. 만약, 은혜가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찢어발겼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무리가 안 가는 선에 한할 거니 오해하지 마라. 너무 작지만 않으면 그 양은 네가 정한다.” “인간의, 욕심, 은, 끝이, 없다.” 인면지주가 무얼 걱정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독이나 거미줄은 그렇다 쳐도, 영물의 내단은 무림인에게 있어 돈으로 결코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이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눈을시뻘겋게 붉히며 달려들 게 뻔한 일이었다. “이곳의 위치를 아는 건 극소수이니 걱정할 것 없다. 앞으로도 그럴거고.” 이 주변은 난해하고 무시무시한 기문진으로 감춰져 있다. 일반인은커녕 무림인도 쉬이 접근할 수 없었다. “만약, 이후에 숲에 열 명 이상이 출입할 경우 판단 하에 죽여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서식지에 방문할 이들은 정해져 있다. 당가의 적통 정도다. 서식지의 출입구이자 기문진의 생문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참고로 서룽협에 오기 전, 탐색대원에게 기밀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당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인지라, 당유기가요구했다. ‘일반적인 무림문파는 몰라도 당가에게 독과 거미줄, 내단 중 선택하라 하면 당연히 전자다.’ 독인에게 있어서 극독이란 내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녹안만독공을 수련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최소 천 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온 영물, 인면지주의 내단의 가치는 천고의 보물에 해당한다. 단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최고는 인면지주다. 하나, 장기적으로 생각한다면 무형지독의 재료인 거미줄과 상급의 독의 정기적인 제공이 최우(最秀)였다. “……” 인면지주는 고민에 잠긴 것인지 침목에 잠겼다. 기분 나쁠 정도의 고요함. 그 고요함이 주서천을 포함한 일행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만약 여기에서 거절한다면 어찌 될지는 뻔하다.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다. 표정이라도 살피면 좋겠지만, 거미의 얼굴 따위 자세히 봐도 알아볼 리 없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받아, 들, 이지.” “정말인가?” “괜찮, 은, 조건, 이다. 그리, 고, 어, 차피, 선택권, 은, 없으니까.” ‘대단하군.’ 더 이상 영물치곤 똑똑하다 뭐다하며 왈가왈부할 수준이 아나었다.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고 있으며 이해득실에 관해서 생각하고 답변을 내놓았다. 여기서 제안이 거절되면 사냥을 당할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주서천!”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급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몸을 휙 돌렸다. “두 사람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담향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보였다. 주서천의 몸이 흐릿해졌다가 낙소월과 당혜 앞으로 나타났다. ‘……’ 근처에 다가가자 역한 냄새가 풍겼다. ‘검은 땀.’ 악취의 정체는 검은 땀이었다. 독을 땀으로 배출하고 있다는 뜻이니 나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괴로운 듯 잔뜩 찡그리고 있었고, 낯빛도 좋지 못했다. 당혜까지 목 위로 피부색이 점차 변하고 있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위험하다.’ 정상적인 해독이라면 이렇게 괴로워하거나, 피부색이 안 좋을 리 없다. 낙소월만 그랬으면 모를까, 당혜까지 동일한 현상을 보이는 걸 보면 중독이 옮았을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하지?’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도 주저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낙소월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미 당혜가 접촉하고 있으니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사람의 신체 내부에 타인의 기가 들어올 경우, 의도가 좋다 할지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할 경우, 기가 뒤엉켜 제어를 잃고 폭주해 기혈을 망가뜨릴 수 있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나 되는 의지가 개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흐읏!” ‘……!’ 낙소월의 신음소리를 들은 순간, 홍수처럼 범람하던 주저함이나 고민이 싹 사라졌다. “호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서천은 낙소월과 그 등을 짚고 앉은 당혜의 옆에 앉아 삼각형이 만들어지도록 자리 잡았다. “들릴지 안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미리 말해 둘게. 지금부터 내가 개입할 거야.”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섣불리 입을 연다는 건 자살행위다. “자, 간다.” 주서천은 손을 옮기기 전, 품 안에서 인면지주의 내단을 꺼내 입 안에 넣었다. 으득! 몇 번 씹기도 전에 물처럼 녹아내리면서 목 너머로 넘겼다. 위에서부터 녹아내린 영기가 몸 전체에 골고루 퍼지기도 전,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손을 얼른 올렸다. ‘……’ 자하진기가 침투한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기맥을 타고 훑어볼 필요도 없었다. ‘역시, 대강 예상한 대로다!’ 아무 생각 없이 도움을 주겠다고 한 게 아니다. 나름대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추측해 봤다. 독을 땀으로 배출한다는 건 해독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중독현상이 지속된다는 건, 해독의 속도가 중독을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요컨대,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만혈독. 독혈곡이자 지옥으로 일컬어지는 애뇌산의 독물이 재료이니 그 위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당혜가 아무리 독의 대가이며, 후기지수로서 심후한 내공을 지녔다고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수십 년 이상을 살아온 노마두가 심혈을 기울인 만혈독에는 이겨내지 못했다. ‘다행히 문제가 복잡하진 않으니 힘만 보태면 돼. 단, 이 경우에는영기(靈氣)로 한한다.’ 무림에는 벌모세수(伐毛洗懿)라는게 있다. 절세고수가 내공으로 신체에 축적된 노폐물을 제거하고, 임맥이나 독맥 등의 기맥을 뚫어주는 걸 말한다. 이럴 경우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의 육체가 된다. 대부분 내공의 소비가 극심하여 잘 회복되지도 않고, 난이도도 상당해 그리 자주 사용되진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생명이 얼마 남지 않거나 혹은 일인전승 문파에서 주로 사용됐다. 어쨌거나, 이 벌모세수란 것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효능만큼 조건도 까다로웠다. 바로 어떠한 내공심법도 익히지 말아야 할 것 즉, 무공을 수련하지 않은 자가 대상이었다. 타인의 기를 주입하는 건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시전자의 진기가 주입될 경우, 기존의 진기와 충돌하여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설사 동일한 심법을 수련했다 해도마찬가지다. 사람의 육체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괜히 도가에서 소우주로 표현하는 게 아니었다. 강으로 생각하면 쉽다. 그 시작점은 같다 할지라도 누군가 돌을 던지거나, 혹은 물고기의 생태계나 주변의 지형 등으로 그 흐름이나 성질은 바뀌기 마련이다. 무인의 진기 또한 성별이나 연령을 비롯해 깨달음 등으로 성질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이렇다 보니 벌모세수의 대상은 기의 그릇, 단전이 생성되기도 전의 깨끗한 상태여야 했다. 이처럼 대신 힘을 보태려면 영약이나 내단처럼 비교적 중립을 띠는 영기로 해결해야 했다. 무림인이 성질이 좀 달라도 내단이나 영약을 복용하고 내공증진이 가능한 것은 영기 덕분이었다. 물론 너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독으로 적용될 수는 있으나, 어떤 것은 그저 효력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만으로 끝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