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84)
그만큼 범용성이 좋다. ‘독기를 나에게 옮겨 대신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기맥이 상할 대로 상했는지라, 자칫 잘못하면 통로가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다.’ 당혜가 선택한 수법이 이것이었다. 독기가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절반 정도를 부담해서 스스로 해독하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절반으로 나눠도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서 이 사달이 나버렸지만 말이다. ‘조절을 잘해야 해.’ 인면지주의 영기의 양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 양과 질은 만년화리에 걸맞을 정도다. 두 사람이 평소의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독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독기만으로 벅찬데 영기까지 쏟아진다면 신체의 균형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이 점을 유의해서 배분 또한 세심하게 나눠서 전달했다. ‘임맥과 독맥을 노리고 영기를 보낸다. 임독맥 중 하나라도 타통한다면 해독에 큰 도움이 될 거야.’ 부디, 그동안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수많은 세월을 보내온 인면지주. 그의 내단은 일평생 동안 쌓아온 기운의 집합체였던 만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대단했다. 주서천의 미세한 조정으로 인해 영기는 정확히 세 등분으로 나뉘어 그녀들에게 스며들었다. ‘만혈독.’ 어깨 부근 쇄골 상단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 결분혈(缺盆穴)으로 들어가니 독기와 마주한다. 오물에 닿은 듯한 기분 나쁨, 질척함으로 가득 찬 부정(不淨)의 힘이 기혈에서 날뛴다. 주서천은 영기를 등을 떠밀 듯이 밀어 넣었다. 굳이 쑤셔 넣는다거나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다. 추진력을 불어 넣기 위해 살짝 미는 것으로 끝났다. 그 후부터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손을 떨어뜨리진 않았다. 몇 걸음 물러서서 지켜봤다. 콰아아. 영물에서부터 생성된 기운은 두 차례 분배됐음에도 그 기세는 여전히 폭발적이었다. 폭포수처럼 굵은 줄기는 기의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독기와 노폐물을 파도처럼 집어 삼켰다. ‘아……!’ 낙소월과 당혜가 속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독기에 침식되어 점차 흐릿해지던 의식이 깨어났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절벽에서 거미 무리가 기어 나와 그녀들을 가로질러 위협을 몰아냈다. ‘지금이야!’ 이 호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기를 제어했다. 외부에서 주입된 영기와 녹아들 듯 하나가 됐다. 여태껏 발버둥 치면서 지쳐버린 힘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전보다 몇 배 늘어났다. 그녀들이 처한 상황은 주서천이 추측한 대로였다. 최초에는 독기를 내공으로 태워 없애려 했다. 그러나 힘이 부족해 분해한 다음 땀샘으로 분출했다. 문제는 그 과정조차도 그녀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독이 중독을 따라가지 못했고,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내기의 제어도 힘들어졌다. 결국 중간부터는 해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위험하던 찰나, 주서천이 알맞은 순간에 영기를 주입했다. 그 덕에 부족한 힘을 채우는 게 가능했다. 애뇌산의 독물에게서 모아온 독혈이 사나운 독니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독물조차 대자연에는 이기지 못했다. 영기의 급류에 휩쓸려 사라졌다. 어찌어찌 운 좋게 빠져나가도 소용없었다. 그 앞에는 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있었다. 마치 소용돌이로 빨려드는 것처럼 흡수되어 양분으로 전환했다. ‘아!’ ‘낯빛이……’ 노심초사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며 가슴이 타들어 가던 화산파나 당가 모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샛노랗거나 푸르게 반복적으로 바뀌던 얼굴빛이 원래의 색을 찾았다.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원래부터 기의 조절, 운기능력은 천재답게 탁월했던 두 사람이다. 영기가 보충해 주자 해독이 빨라졌다.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덕분에 최악의 사태를 면하고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 임독맥을 뚫고 완전한 해독과 상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직접적으로 움직이진 않는 대신, 경로를 정해 줬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눈치챌 수 있도록 영기에서 잔가지를 만들어내 툭툭 건드렸다. 펑! 마침 벽에 미세하게 남아 있던 노폐물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통로가 뻥 뚫리자 순환이 보다 빨라졌다. ‘눈치챘다. 역시 두 사람이야.’ 재능만 보자면 결코 이 둘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또 무슨 의도로 잔가지를 쳤는지 금세 눈치채고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최초 결분혈에서 시작된 흐름은 몸 곳곳을 돌아 독기와 노폐물을 씻어내고 단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단전에서 나온 영기는 척추를 따라 올라가 회음(會陰)을 시점으로 개통을 시작했다. 꼬리뼈인 미려(尾間)를 지나 척추의 중간 지점인 협척과 더불어 대추를 찍고, 머리 뒷부분의 옥침(玉沈)을 지난 뒤 백회(百會)와 머리 정수리와 양미간의 인당(印堂穴)을 타고 내려갔다. 목 앞의 정중선의 천돌(天突)에서 미끄러져 가슴의 정중앙인 단중(膳中)을 돌파해 위가 자리한 중완(中脘)을 거쳐 다시 단전으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가 흡 하고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만약, 눈앞의 광경이 예의 그것이라면 목소리를 낸 것만으로 불구대천지수 취급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놀란 목소리를 낼 때쯤 두 사람이 이미 눈을 떴다는 점이었다. “사형!” 낙소월은 바로 옆 사형의 손을 빼앗아, 양손으로 잡으며 후광이 비칠 정도로 환한 미소를 보였다. “전부 사형 덕이에요!” 낙소월은 답지 않게 흥분한 듯, 주서천의 손을 꼬옥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으, 응?” 주서천이 낙소월의 기세에 목을 움츠렸다. “사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사형이 인도해 준 덕분에 깨달음을 얻고 화경에 오를 수 있었는 걸요.” “……” “독기만이 아니라 탁기를 배출하게 되면서 머릿속이 깨끗해져 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직접적으로 도와주시지 않고 길만 안내해 주신 것도, 제가 스스로 깨우치길 바란 거죠?” “…………응.” 이참에 내단 좀 먹었으니 잘 흡수하라고 알려줬다. 절세의 미녀가 코앞에서 손을 붙잡고 미소 지어 주니 끝내주게 기분이 좋아야 정상인데, 그럴 수 없었다. 경지의 벽을 부수고 상승에 올랐다는 사실로 환희에 차 있는 사매의 기분을 깨뜨리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왜 화경에 올라?’ 인면지주의 내단의 힘이 대단하긴 하지만, 쪼개서 나누어 준 만큼 약해져 양맥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전에 해독을 비롯해 노폐물 제거 및 탁기 배출에 힘썼으니 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불가능했다. 노력이 보태 주면 하나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서 유도해 줬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결과를 냈다. ‘도중에 깨달음을 얻어 자의로 뚫었다. 영약의 기운은 약간의 보조만 했을 뿐, 화경에 오르면서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뚫은 거야.’ 촉각을 다루던 만혈독과의 싸움이 끝난 후,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 육신을 돌아본 모양이었다. 그 후 영약의 기운이 치솟으면서 기력을 채우고, 임독양맥을 연 다음 소주천해 화경에 들었다. ‘스물에 화경?’ 스물아홉 살인 파검봉보다 낮은 나이다. 보통 업적이 아니었다. ‘뭔……’ 너무 어이없어서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전생의 매화검봉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형에 비해선 부족하지만요.” 물론, 스물하나에 심상구현을 성공시켜 현경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오른 주서천에 비할 건 아니다. ‘아닌데.’ 하나 그걸 감안해서라도 보통 업적이 아니었다. 아니, 더 대단했다. ‘나야 회귀해서 이 정도까지 온 거고.’ 인생을 이(二)회차 보내지 않았는가. 게다가 과거의 기억을 이용해서 각종 기연을 쓸어 담았었다. “대단하네.” 경악하고 있는 와중,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당혜가 부러운 듯,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낙소월이 아차 하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저, 저기……” “나한테 미안해할 이유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부족했던 것뿐이니까.” 당혜 역시 재능만으로는 결코 낮지 않다. 그러나 낙소월의 역량이 한 수 위였다. 화경이란 게 내공이 따라준다고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에 맞는 깨달음과 천운이 필요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대부분 죽을 때까지 모른다. 천운이 닿아 봤자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을 때다. 주서천이 이 경우에 해당했다. 낙소월과 달리 당혜는 재능도 천운도 부족했다. “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만혈독 덕에 독을 좀 더 다룰 수 있게 됐으니까.” 내단의 기운으로 상당량의 내공도 얻었으나, 독인에게 있어선 부수적인 것에 해당했다. 당혜는 낙소월과 달리 만혈독을 전부 해독하지는 않았다. 독인에게 있어서 독기는 내공이자 곧 힘. 그래서 완전히 해소하진 않고 도리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원래라면 아버지인 당가의 가주조차 부담스러워 할 수준이었지만, 영기의 도움 덕에 가능했다. “그보다, 당신이 왜 그런 눈깔로 쳐다보는지 궁금하네. 소름 끼치니까 그만해줬으면 해.” 당혜는 자신을 뻔히 쳐다보는 주서천을 기분 나쁜 듯이 흘겨 봤다. “아니, 뭐…… 의외라서.” “의외? 뭐가?” “지금쯤 자존심이 잔뜩 상해서 ‘저만 화경에 올라서 미안해요, 라니. 같잖은 동정하는 거야? 그런 기만은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충고할게.’ 라면서 인성 터진 독설을 낙 사매에게 퍼부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자존심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다면 당혜는 우스갯소리로 상천칠좌에 들수 있다. 그 정도로 드세다. 동일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누구는 화경의 올랐으니, 그녀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그런 게 아니니까요……!” 낙소월이 주서천의 말을 듣고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이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흥.” 당혜는 기분 나쁜 듯 눈살을 찌푸렸다가, 콧방귀만 끼고 몸을 휙 돌렸다. ‘보는 눈이 많으니 내가 혼자 있을 때 죽여 버리겠다는 뜻인가? 밥 먹을 때 조심해야겠군.’ 콧방귀의 의미를 해석하던 도중, 손일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할 말이라면 정말로 많으나, 하나만 묻겠소. 다 끝난 거요?” “이런, 죄송합니다.” 그제야 사람의 시선을 눈치챈 주서천이었다. “호법을 서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만, 수고스럽게도 한 번만 더 호법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정도야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니 얼마든지 해주겠소만…… 누구의 호법을 말이오?” “접니다.” 주서천 역시 신체 내부에 영기가 감돌고 있었다. 두 사람을 돕느라 흡수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다. “허, 설마 그만한 걸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거요?” 손일산이 놀라는 것도 이상한 건아니었다. 보통, 인면지주 정도 되는 영물의 내단을 복용할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자기 것으로 갈무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단의 기운을 날숨으로 소실하거나, 체내에서 폭주해 신체를 망가뜨리기 때문이었다. “상천칠좌가 그것도 못하면 비웃음 당합니다.” 무공의 극의를 넘어선 단계, 현경 정도 되면 내가진기의 운용이 자유로워진다. 영약이나 내단을 복용하여 외부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기운 또한 마찬가지라서, 딱히 문제되지 않는다. 날숨으로 영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기맥이나 단전에 저장해 두는 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인면지주.” 인면지주로 향하는 주서천의 시선이 좀 바뀌었다. 아무리 협상을 체결했다곤 하지만, 섣불리 믿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