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85)
수는 없었다. 틈을 보이면 배신할 것 같아 경계했다. 만약 낙소월과 당혜가 위급하지만 않았더라면 장소를 바꿔서 해독했을것이다. 도중에 훼방이라도 놓았다면 주화입마를 초래했을지도 모르니 당연했다.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서 도왔으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네 독이 필요하다.” 주서천이 인면지주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위험, 한, 일을, 생각하는, 군.” “눈치챘어?” 거미의 위턱과 아래턱 사이, 엄니 바로 밑으로 손을 내밀었다. “주 대협!” “검신!” 주서천!” 곳곳에서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그렇지, 배고픈 맹수의 아가리 안에 머리를 집어넣는 격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끌어내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해서 인면지주가 흥분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호법을 서되 제 근처로는 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나름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통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시끄러운 걸 뒤로 하고 진행했다. “역시, 인간이란, 욕심, 의, 생물, 이로구나. 그 용맹, 함에, 경의를, 표한다.” 뚝. 독니에 맺힌 시커먼 물방울이 손바닥 위로 떨어지자마자, 몸 내부에 그 독을 전부 흡수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동안 사람들은 주서천이 말한 대로 근처에 가지 못하고, 그 주변을 감돌면서 노심초사하게 지켜봤다. 혹시라도 방해가 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 시진 뒤. 주서천이 미소를 지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생각한 대로다.’ 왼쪽 눈이 녹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만독불침(萬毒不侵)에 올랐다.’ 백독불침, 천독불침의 상위 경지. 만 가지 독도 침범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정말로 정확히 만 가지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실상 그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 전설 상의 경지였다. 약 백여 년 전의 절대고수, 녹안만독공을 창공한 독마가 이 만독불침의 경지였다. 이론상 녹안만독공을 대성할 때쯤에 만독불침에 든다곤 했으나, 중도만공의 제한에 가로 막혔다. 현경의 절대고수인 데다가 천독불침이라면 웬만한 독은 통하지 않지만, 무형지독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갖은 수단을 찾아보고 독왕에게도 물어봤지만, 존재하지 않아 체념했다. 차선책으로 인면지주의 거미줄을 얻지 못하도록 보급을 끊는 걸 택했었다. 그러나 인면지주를 본 순간,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인면지주의 기운을 전부 독으로 전환한다.’ 독의 내성이란 건, 결국 면역력이다. 술을 마시면 늘듯이 독 역시 단계별로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게 된다. 독공의 수련이 여기에 해당한다. 어릴 적부터 약한 독부터 먹여가며 독기를 저장할 수 있도록 한다. 목숨이 위험할지는 몰라도 무척 효과적이었다. 주서천도 이 방법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복용한다. 그리고 그 영기를 인면지주의 독으로 자극한 다음 전부 독기로 전환한다. 독공 중 신공의 반열에 드는 녹안만독공이 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 누군가가 특히 독공을 수련한 이가 이 속내를 듣는다면 미쳤다고 기겁할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럴싸 하지만, 미친소리였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인면지주는 영물 중의 영물이며, 독물 중의 독물이기도 하다. 만혈독만큼은 아니어도 극독에 이르렀다. 헌데 그 극독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영기로 융화한 뒤 중폭까지 시켰다. 아무리 나누었다곤 하지만 인면지주씩이나 되는 영기를 전부 독기로 전환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의 면역력이란 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무림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독공이라 해도 한계는 있다. ‘녹안만독공, 천독불침, 중도만공.’ 그러나 갖가지 요건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녹안만독공으로 독의 제어는 문제없었다. 조금 버겁기는 해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영기가 인면지주의 극독에 녹아들면서 전부 독으로 전환되자, 천하의 주서천도 조금 버겁기는 했다. 천독불침이 아니었더라면 사태가 위중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는 중도만공이 큰 역할을 했다. 중도만공은 무공심법의 고유의 성질에 상관없이 다수의 무공이 공존할 수 있게 해 준다. 음양이기는 물론이고 마도의 기운조차 조화(調和)를 이루게 하는 게 그 원리였다. 이 원리를 응용하여 홍수처럼 범람한 독기가 체내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거부감을 최소화했다. 그 결과 성공적으로 만독불침에 오를 수 있었다. “인간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고는, 생각,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유일하게 주서천의 생각을 눈치챘던 인면지주가 믿기지 않는 듯, 놀라운 감정을 드러냈다. “사형!” 낙소월이 새처럼 날아오듯이 다가왔다. 상승의 벽을 허물고 화경의 고수가 된 만큼 움직임도 남달라졌다. 남들에게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으세요?” 낙소월이 주서천을 올려다봤다. 걱정스러운 듯,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 절로 애처로운 느낌이 난다. ‘아니.’ 심장이 영 좋지 않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몸짓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은은하게 감도는 매향은 후각은 물론이고 뇌까지 자극했다. “혹시 아직 편찮으신 건가요?” 사형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낙소월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둥둥 굴렸다. “어흐흠, 괜찮으니까 걱정 마.” “정말로요? 절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죠? 그런 거라면 저, 화낼 거니까요.” 쌍심지를 켜며 엄한 표정을 짓는 것조차 예뺐다. “봐봐, 피부색도 이렇게 멀쩡하잖아.” 주서천이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낙소월은 팔 외에도 목이나 낯빛 등을 한참이나 이리저리 살펴보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이내 눈썹을 찌푸리면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정말이지, 사형과 지내다 보면 간이 콩알만 해지는 것 같다니까요. 이게 몇 번째인지 아세요?” 행방불명은 기본이요, 어디 멀리나가면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여태까지의 행보를 보면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실력이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걱정이 들었다. “하하하.” “웃을 일이 아니에요.” 낙소월이 불만인 듯 볼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네.’ 팔불출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사실이다. 토라진 모습조차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화를 어떻게 가라앉혀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할 때쯤,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악!” “괴, 괴물!” “이, 인면지주다!” 일행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수풀을 헤치고 나은 건 반으로 갈라졌었던 탐색대였다. “꽤나 놀랍네요.” 파검봉, 단리화에게서 미성(美聲)이 흘러나왔다. 점혈법은 도중에 구출한 탐색대에게 도움을 받은 그녀였다. “웅권협은 왜 저 모양인가?” 손일산의 시선이 이출에게로 향했다. 정신을 잃은 채 죄인처럼 나무줄기로 포박된 채였다. “아무래도 서로 해줄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요?” 단리화가 앵두 같은 입술을 검지로 꾹 누르며 웃었다. 긴 속눈썹 아래의 눈동자에는 흥미가 감돌았다. “양측의 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건 한 사람밖에 없은데, 맞나요?”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단연 주서천이었다. 주서천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설명에 나섰다. 서릉협에 들어온 이후부터 요점만 뽑아 설명했다. 이출의 이름이 나올 때는 대부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거미 무리가 움찔 떨 정도로 살기가 들끓었다. “예상은 했으나 함정에 이리도 쉽게 걸려들 줄이야. 부끄럽군.” 몽각이 혀를 차며 자책했다. 혈독노인이 등장한 후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웅권협.” 손일산이 어느덧 정신을 차린 이출을 바라보았다. “어찌하여 자네 정도 되는 사람이 정파를 배신한 겐가.” 웅권협이라면 천하백대고수에 들기전부터 약자를 돕고, 신의를 지키는 협객으로 유명했다. 젊었을 적부터 사리를 분별했으며 넘치던 혈기는 사람을 돕고 악인을 처벌하는 데 사용했다. 비록 역사에 남을 정도로의 위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백성들을 비롯한 정파인에게 존경을 받았다. 괜히 이번 여정에서 부대주로 추천받은 게 아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누구보다 믿을만한 협객이었다. 그 중거로 무림맹 출신 소속 무사들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하여 배신했냐고 물었소?” 적의 가득한 눈초리가 손일산으로 향한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무얼 말하는 거요? 근본도 없는 무공으로 어쩌다 운이 좋았던 무인?” 이출은 비꼬듯이 물으며 코웃음 쳤다. “웅권협……” “위선 떨지 마시오, 금주봉개. 역겨우니까.” 이출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성난 곰과 같았다. “명문지파의 무인으로서 태어나거나, 거두어진 당신네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내 심정을 모를 거요.” 고아 출신이 응당 그렇듯, 이출 역시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한적한 촌에서 살다가 도적 떼에 습격당해 일가친척을 모두 잃었다. 이출은 노비로 팔려나갈 뻔했다가, 운 좋게 도망치는 데 성공하여 중원 전역을 떠돌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소문파의 문주의 눈에 들어 제자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웅권문(熊拳門)이다. 웅권문은 그리 대단하진 않은 곳이었다. 문도도 이출을 포함해 여섯 명이었고, 문파 수준도 이류였다. 그래도 스승이자 웅권문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곰의 형상을 참조한 권법을 열심히 수련했다. 이출은 무공에 그럭저럭 소질이 있어 날이 갈수록 강해지긴 했으나, 호사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강호에 잠시 출두해 있던 웅권문주가 불의의 사고로 그의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후 이출은 평소 정의롭고 협의를 중요시했던 웅권문주의 뜻을 이어 강호에 출두해 사람을 도왔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러 싸움을 겪으면서 상승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었고, 자랑스러운 별호도 얻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뒤에 무림맹에서 제의가 왔다. ‘그래. 무림맹이라면 내 뜻을 펼칠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스승은 항상 사문의 재건보다는 의협을 중시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무림맹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집을 잃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어린아이를 구원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무림맹은 썩었다.” 무림맹이 오욕칠정에 휘둘리는 막장 집단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내부에선 정도와 어긋난 것이 존재했다. 바로 차별이었다. “몇십 년 동안 노력해서 일군 무위로 협의를 이루어도 대문파가 아니라면 우습게 보이는 것이, 지금의 무림맹이다.” 오대세가인 당가도 은연 중에 무시받는 곳이 무림맹이다. 중소문파 출신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웅권협은 충분히 존경받는 무인임에도, 무림맹 내부에서의 취급은 참으로 미묘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강호를 떠돌던 시절에도 정파의 철부지들이 명문지파라는 인맥만 믿고 거들먹거리던 걸 제법 봤다. 몇몇은 나이 먹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자존심만 드세 별별 추한 짓을 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정파의 중심인 무림맹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중소문파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무시를 당했다. “정파 연합? 헛소리!” 이출은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무림맹은 정파 연합이 아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이루어진 명문지파 집단일 뿐이지!” 언제는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다. 무림맹에 신설부대가 생겼다. 이 신설부대의 대주로 두 후보가 추천됐다. 첫 번째는 후보는 이출이 아끼던 수하였다. 비록 삼류문파 출신이었으나,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절정 고수였다. 부하들에게 인망도 두터웠다. 두 번째 후보는 구파일방 출신의무인이었다. 무공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았다. 이제 겨우 절정에 오른 새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