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88)
게지?” “그래.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금충, 아니. 상왕이 밤마다 금전이 진짜인지 이로 깨물어보는 소리 아닐까?” “그게 뭔……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 다행히도 그 소리가 사람들의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몇몇 예민한 이가 관아에 호소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이의채의 뇌물 덕분이었다. 깡깡깡. 드드드.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소리나 흔들림에 익숙해졌고, 귀신의 소행이라는 괴소문 정도만 남았다. “오, 주 대장.” 산동지부의 정문을 넘어서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초련.” 질풍십객의 홍일점이자 왕일 다음가는 고수, 초련이 씩 웃으면서 다가왔다. “잘 지냈나?” “하하하, 나야 별일 있겠소? 돈이야 꼬맹이와 상단주 곁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버는 중이지.” “자식들은?” “너무 건강해서 탈이오. 화인의원의 명의분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주니, 조금도 아플 일이 없더군.” 자식 이야기를 하니 환하게 웃는 초련이었다. “자,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시구려.” 주서천은 초련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 그녀를 뒤따라 도착한 장소는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제갈승계의 공방이었다. “허, 안 본 사이에 여러 가지도 만들었구나.” 공방 내부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 장치의 조각으로 가득했다. 신기해서 만져볼까 했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하곤 그만두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초련은 공방 한구석에 나열한 책장 앞에 갔다. 그리곤 몇 권의 책을 비스듬하게 빼놓았다. 덜컥! 쿠구구. 책장 앞의 바닥이 열리면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왔다. 두 사람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벽에 드문드문 걸린 횃불이 앞을 비춘다. “어디보자……” 초련은 내려가던 도중, 벽의 일부분을 매만졌다. 달칵! “아, 됐군.” 벽돌 하나하나가 쑥 들어가더니 벽이 둘로 갈라지며 공간이 나왔다. 한 사람 정도 통과할 수 있는 크기다. 초련이 따라오라는 듯 턱짓했고, 주서천은 감탄의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들어갔다. 약 일각 정도를 걸어 도착한 곳은 몇십여 명을 충분히 수용할 크기의 석실이었다. 석실 내부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아니, 유령으로 가득했다. “그건 그쪽이 아니야!” 그 가운데에선 제갈승계가 손짓하며 외쳤다. 그 말에 수십에 이르는 유령들이 자재를 들고 움직였다. 명색이 무림제일의 자객이란 이들이 광부처럼 일하고 있으니 삼안신투가 저승에서 개탄할 노릇이었다. “그걸 저곳으로…… 응?” 제갈승계가 새로운 인기척에 눈을 크게 떴다. “형님!” 주서천은 웃으며 손을 드는 걸로 인사에 답했다. “그래.” 금의상단 산동지부의 지하. 이 석실의 정체는 바로 하나의 기관이었다. 아니, 이 석실을 포함하여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그 밖의 지하 공간 전부가 거대한 기관이자 함정이었다. 주서천은 암천회와의 정면승부에 대비하여 몇 가지를 준비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관이었다. 암천회와 대대적으로 싸우려면 공격만이 아니라 수비에서도 신경 써야 한다. 주서천 장본인이나 혹은 화산파야 괜찮으나, 그 주변 사람은 문제였다. 금의상단이 대표적이었다. 아무리 현경의 고수인 검마가 버티고 있다곤 해도, 혼자서 전부를 지켜내는 건 불가능하다. 금의검문도 있으나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금의상단의 재산을 보호할 겸, 산동지부에 대대적인 기관을 설치해 요새화하기로 했다. 또한, 이곳만이 아니다. 산동지부처럼 요새화할 필요는 없으나, 나중을 위해 무림 전역에 몇가지의 함정을 설치하는 중이다. 건축 자재야 상왕의 금력이 있으니 문제없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해 아무나 쓸 수도 없었다. 마침 기밀 유지도 완벽하며 힘이 조금 센 것보다 훨씬 나은 최고의 인력이 있었다. 바로 유령이다. “무림 고수를 인부처럼 부리다니……” 최소 무위만 해도 일류이며 초절정까지 있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었다. 일반무인이라면 치욕이라며 욕하겠지만, 유령이니 그럴 걱정은 없다. 육체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 한해서 적절한 휴식을 취하며 인력을 대체하기로 했다. 산동의 괴음의 정체는 바로 기관장치의 설치였다. “일의 진행에는 별 문제 없고?” “있습니다.” “그래, 네가 하는 일이니……응? 뭐라고?” 주서천이 두 귀를 의심했다. “문제? 네가?” 다른 것도 아니고 기관이다. 그리고 그 기관의 설치자가 만각이천 제갈승계다. 삼안신투의 보고도, 흉마의 무덤도 그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 어떠한 문제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훗날 무림에서 금기시될 병장기조차 그의 손에서 탄생하지 않았는가. 기관에 대해선 그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정점이자 대천재에게서 나온 말이라곤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야 야금술은 제 영역 밖이니까요.” “야금술? 문제가 뭔데?” “한철로 된 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제 솜씨로는 무리입니다.” 제갈승계는 기관의 천재다. 그리고 이 기관이란 건 생각 이상으로 복합적인 기술이다. 기본적인 설계부터 시작해 석공이나 야금술이 요구됐다. 기관장치를 제조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승계 역시 기초가 되는 기술은 알고 있었으나, 설계나 구조 파악, 배치, 해체 등 근본적인 걸 계외하곤 그 분야의 천재적인 장인을 따라가진 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설 속의 금속인 만년한철을 제외하고 사실상 최고의 금속인 한철의 제련이었다. 과거에 주서천이 뱃속에 넣어준 영약이 체력이나 근력을 대신해 줬으나,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러면 한철 말고 백련정강이나 현철을 쓰면 되잖아?” 백련정강이나 현철도 나쁘진 않다. 한철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 것뿐이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갈승계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눈을 부릅떴다. 그 눈에서 살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모처럼 만드는 것인데 완벽하게 해야지요! 미완성을 만드느니 차라리 안 만드는 게 좋습니다!” ‘하여간……’ 주서천이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다른 걸로 대체하라면 전 못 합니다!” 제갈승계가 배 째라는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로?” 주서천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 제갈승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싶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무, 무, 물로로론이지요!”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지만 완강히 거부했다. 그게 또 제갈승계다웠다. “……하아.” 주서천은 주먹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승계에겐 신세를 많이 졌다. 또한,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해 핍박받지 않았는가. 의동생에게 또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설사 억지로 강행한다라고 해도, 제갈승계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것이다. 만약 그게 가능했더라면, 그는 진작 제갈세가에서 진법을 공부했으리라. ‘솜씨 좋은 야장(治匠)이 필요하다는 건데……’ 한철을 다룰 수 있는 야장을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주서천은 야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전생하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끙!’ 떠오를 듯 말 듯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온 것도 십 년은 더 된 이야기다. 상승의 경지에 오르면서 깨달음을 얻고, 기억력 등의 오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었다. 기억해야 할 건 너무 많았고, 그중에서 사소한 건 배제됐다. 머리를 굴려봤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기억하지 못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주서천과 제갈승계는 이의채를 찾아가 물었다. “야장 말입니까?” 이의채가 돈을 세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여러 분야에서 사업을 하시고 계시는 상단주라면 아실 거라 믿고 찾아왔습니다.” 금의상단은 명실공히 중원 최고의 대상단이다. 쌀로 시작했던 그 자그마한 상단이 이제는 상계를 주름잡는 권력자가 됐다. 그의 황금은 귀신도 부린다. “한철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의 야장이라면,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그냥 다루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갈승계가 혹시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누가 천재 아니랄까 봐 기준 참 높다. “그러면 네 명 정도 있습니다.” “오, 생각보다 많군요.”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의채가 골치 아픈 듯 앓는 소리를 냈다. “문제요?” “예. 그중 둘은 황궁에 있습니다.” “……끙. 그 사람들은 빼주십시오.” 상식적으로 황궁의 야장에게 무언가 만들어 달라곤 할 수 없다. 어떤 돈을 써도 그건 불가능하다. “그 외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실력이 넷 중에서도 뒤처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원에서는 이름난 명장인지라 의뢰를 맡기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게 흠입니다. 또한, 술버릇도 제법 고약하다 보니 솔직히, 기밀을 지킬 것 같진 않은지라……그리 권장하진 않습니다.” 이의채의 사람 보는 눈은 의심할 것 없다. 그 눈으로 금의상단을 천하제일상단으로 키웠다. “그러면 남은 한 사람밖에 없겠군요……” “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주서천이 이의채의 쓴웃음을 보고 물었다. “그게…… 소재지가 해남도(海南島)입니다.” “해남도? 허, 멀리도 있군.” 해남도라면 중원의 최남단, 아니, 아예 밖에 있다. 바다를 건너야 나오는 섬이니 중원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그래도 명의 관할 지역이기는 했다. 대신, 워낙 오지에 있는 만큼 그 영향력이 그리 닿지는 못하는 곳이기도 했다.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혹시, 해남검파(海南劍派) 사람입니까?” 해남검파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정도는 아니나, 그래도 명문지파에 속하는 문파다. 정도이냐, 사도이냐, 마도이냐 묻는다면 대답을 쉬이 할 수는 없었다. 해남검파의 무공은 정도의 일반적인 검과 상이하기도 하고 음독한 면 또한 있었다. 검을 휘두르면 반드시 상대의 몸에 상처를 내는 살검으로도 유명하다. 그래도 그 사상만은 정도에 가까운지라 일단은 정파에 속하기는 했다. “그것이, 불확실합니다.” “불확실하다?” “해남도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하나, 알다시피 해남도가 워낙 오지이지 않습니까.” 특히나 해남도의 경우,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오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의채의 성격상 해남도에서 무리하면서까지 장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영향력을 두지 않았다. “어쩔까요? 좀 불안하긴 하지만, 역시 다른 사람을……” “아니오. 해남도로 갑니다.” “예? 정말입니까?” “실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입을 잘못 놀려서 천기에게 알려지는 것보단 낫지요.” 주서천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남해의 바다까지 건너야 한다. 거리상으로도 멀고, 시간이 제법 걸릴지도 모른다. 그사이에 암천회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조금 걱정이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형님.” “뭔 소리냐? 너도 간다.” “예? 거짓말이죠?” 제갈승계가 농담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남해는 대체적으로 외부의 침입이 힘들다. 신비문파 보타문처럼 기문진 혹은 기관에 보호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이요?” “그래.” “해남도는 제 두 번째 고향입니다.” 제갈승계가 눈을 반짝였다. “배를 준비하도록 하지요.” “두 분,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 이의채가 배를 두드리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뭔 소리요? 상단주도 갑니다.” “예?” “야장이 고집이라도 부리면서 안 따라오면 곤란합니다.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빠르게 다녀오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단주의 힘이 필요합니다.” “천하제일 미공자 검신 주서천 대협, 농담도 과하시군요. 전 여기서 상단을 운……” “상단주께서 각 지점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뽑아놓고, 후계까지 기른걸 알고 있습니다. 잔말 말고 따라오십시오.” “하하하. 농담치곤 재미있군요.” 이의채가 정색했다. “싫으시면 저와 승계 지분만큼 돈을 가져가야겠군요.” “남해의 상계여, 기다려라! 상왕이 간다!” 이의채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화산파의 주서천. 제갈세가의 제갈승계. 금의상단의 이의채. 세 사람이 다시 모였다. 해남도행이 결정됐다. 주서천은 무림맹과 사문에만, 그것도 수뇌부에게만 해남도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달했다. 어차피 알려질 사항이긴 하지만, 출발도 전에 암천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