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289)
귀에 들어간다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지 몰라서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쉴 틈이 없군요.” 제갈상이 소식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서천은 이제 검신이라는 이름의 억제기다. 영웅이 중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올라가고, 치안이 유지될 정도다. 없다는 걸 숨겨야만 했다. 중원에 없다는 걸 비밀로 하고, 또한 정보 조작으로 있는 척한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군사인 제갈상에게는 계획을 사전에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추후에 함정을 전두지휘 할 사람이다. 제갈상은 줄곧 세가에서 바보 취급받던 제갈승계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남동생이 겨우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활약할 때가 왔다 하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서신을 보내 주십시오. 사도천에게 허가를 받아 운남과 광서, 광동에서 얼마든지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무림맹과 사도천은 암천회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협력 관계이니,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은 일이다. “그리고, 제 여동생과 함께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모사와 말입니까?” 주서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해남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대대로 관(官)의 유배지이며 해남검파가 있다는 정도입니다.” 전생에서 그 난리가 있었음에도 해남검파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해남검파의 문도가 참전했다는 걸 들은 적 있긴 한데, 사실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 “해남도는 들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나오는 것은 더더욱 힘든 곳입니다.” “남해의 섬은 대부분 기관진법에 보호되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걸 말하는 거군요.” 제갈승계에게 해준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다. “맞습니다. 해남도와 주산군도의 보타산이 대표적이지요. 실제로 이 두 곳은 상당한 규모의 기관진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습니다.” 괜히 관부의 유배지로 대대로 선택된 게 아니었다. 유배된 황실의 핏줄이나, 혹 좌천된 관료가 반역의 구심점이 되지 않도록 출입을 제한시켰다. “해남도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그리 문제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기관진법의 적용을 그다지 받지 않기 때문이지요. 힘들다는 건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라더군요. 태풍이 불경우에도 검신을 비롯한 고수들이 따라갈 테니 그리 걱정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빠지려고 하면 고수들이 지탱하고 있으면 된다.돛의 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올 때 큰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주서천은 재갈상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천군사가 된 지룡은 결코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괜히 훗날 전란의 시대에서 주요 인물이 된 게 아니다. “기관진법이 나갈 시에 크게 적용되는 겁니까? 하지만, 나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요. 해남도와는 그리 잦지는 않으나 그럭저럭 교류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로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더라면, 해남도는 미지의 땅으로 교류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해남검파는 신비문파도 아닐뿐더러, 조금 폐쇄적이긴 해도 봉문된 것처럼 활동이 전무한 건 아니다. 짧으면 십 년, 길면 몇십 년이긴하지만 가끔씩 중원 무림에 출두하여 활약했다. “확실히 그 말씀대로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마 기관 쪽은 수월하겠지만, 진법은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제갈상은 주서천이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정파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부디 수란이와 승계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최근 전쟁 탓인지 아니면 암천회의 정보 교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남검파와 연락이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점 유의하시기를 바라며, 조심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끼룩끼룩. 고개를 들어보니 창공에 뜬 백구(白賜 : 갈매기) 떼가 보였다. 무리를 지은 백구가 선박 위를 비행했다. “우웩.” 평생 동안 바다를 나와 본 적 없는 무사들의 낯빛은 대부분 새하얗게 질렸다. 여기저기서 우웨엑 하고 토악질 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 죽겠다……” 질풍십객 중 일인, 화벽승이 난간에 몸을 걸친 채 어제 먹은 저녁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근성이 부족하구나!” 초련이 화벽승의 등을 퍽퍽 치면서 웃어댔다. “누, 누님! 그, 그러시면…… 우웨에에엑!” 화벽승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위장을 비웠다. “자, 봐라. 제 스스로 걸을 수는 있는지 의아한 돈 돼지 상단주는 물론이고 저 빈약한 우리 꼬맹이까지 멀쩡하지 않느냐.” “누가 꼬맹이입니까, 누가!” 제갈승계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항의했다. 이의채는 아랫배를 내려다보고 부정하지 못했다. “그뿐만이랴, 모사님께서도 저리 멀쩡하시고.” 초련의 시선이 바람을 쐬러 온 제갈수란에게로 향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수평선을 보고 있었다. ‘이게 정말로 근성 문제인가? 미치겠네.’ 화벽승은 초련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류는 물론이고 절정의 무인들조차 계속되는 뱃멀미에 고생 중이거늘, 무인과 거리가 먼 이들이 멀쩡하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태풍을 겪었을 때는 농담이 아니라 바다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 정도로 멀미가 끔찍했다. “상단주야 젊었을 적부터 장강을 돌아다니면서 장사했으니 배야 이골이 났고, 승계야 배의 흔들림보다 더한 걸 기관을 통해 겪었으니까.” 주서천이 화벽승의 맥을 짚어주며 답했다. “주, 주 대장……” 화벽승이 이제야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제갈 소저도 비슷한 이유시고.” 기문진 내부에선 천지의 조화가 벌어진다. 땅이 멋대로 흔들리는 건 물론이며, 그보다 더한 상황에 놓인 적도 여러 번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화벽승은 심장이 절로 떨려오는 목소리에 헉,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요염한 웃음과 더불어 은은하게 풍겨오는 색기를 지닌 여인이 있었다. 무림에서도 손꼽힌다는 미녀. 청성제일미, 파검봉 단리화였다. 단리화가 선상에 나타나자 화벽승처럼 멀미로 죽어 나가던 이들이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주서천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대충 넘겼다. ‘설마하니 파검봉과 함께할 줄이야.’ 해남도로 소수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적인 선박과 선장부터 시작해 숙수나 조선공(造船工) 등의 선원이 필요했다. 그 밖에도 제갈승계와 이의채처럼 비전투원을 호위할 이들도 필요했지만, 단리화를 상정 하에 둔 건 아니었다. 원래는 낙소월과 당혜였다. ‘때때로는 매화검수인 게 원망스럽네요.’ 낙소월은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남해도까지는 따라오지 못하고 화산파로 돌아갔다. ‘또 죽었다거나 실종됐다거나 한다면 당신을 묘지에서 꺼낸 다음 다시 한번 죽일 거야.’ 당혜의 경우에는 인면지주의 보고 겸 뒷정리를 위해 사천으로 돌아가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남자를 잘 타서 그런 걸까요?” 단리화가 손바닥 위에 주먹을 올리며 웃었다. “…… 커흠! 커흐흠!”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단리화의 음담패설은 언제 들어봐도 입이 떡 벌어진다. 너무 당당해서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나 그런 그녀의 태도에도 옳다구니 하면서 덤벼드는 남자는 한 명도 없는데, 이는 단리화의 날카로운 기도 탓이기도 하지만 괜히 헛소리를 지껄였다가 물고기 밥 신세가 될 뻔한 적이 있어서였다. “아닐세.” 좌중의 시선이 한 곳으로 돌아갔다. “동요병(動描病)이라 하는 멀미는 진동에 의한 자극이 자율신경계에 작용되며 일어나는 병적 반응일세. 주로 전정감각과 시각 자극의 불일치에 의해서 증세가 일어나지. 사람은 새로운 감각 정보를 얻을 때 뇌로 전달되는데, 이 정보는 평형기관이 과거에 겪은 경험과 비교되네. 하나 이 과거 경험에서 예상되는 것과 다르다면, 예를 들어, 경험하지 못한 신체의 가속을 겪어 감각이 하나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부딪혀 동요병을 만들어버리고……” “……그 정도면 됐어요, 신의 어르신.” 단리화가 질린 듯이 말했다. 주서천이나 그 외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원들의 경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라는 얼굴로 신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쯤 신의의 제자분들께서 다시 불안에 떨겠군.’ 무림맹을 떠날 무렵, 이 괴팍한 늙은이가 따라붙었다. “냄새가 나는구나. 미지의 약이 말이야.” 주서천은 이 미친, 아니 괴팍한 늙은이와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또 화인의원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신의는 화인의원이나 영약의 제공으로 제갈상을 협박했는지 주서천의 목적지를 듣고 동행하게 됐다. 해남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했지만 듣지 않았다. 애초에 구희의 신단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서 남만까지 다녀온 신의다. 두려워할 리 없었다. 주 대장, 이번 여정의 주제는 개성이오?” “닥쳐, 초련.” 주서천이 정색했다. 한편, 주서천이 바다를 건너고 있을 무렵에 이 소식은 암천회의 귀에도 들어갔다. 제갈상이 아무리 뛰어나다곤 하지만, 암천회에서 예의주시하는 인물들이 한꺼번에 떠났는데 모를 리 없었다. 정보 조작에 능하다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반대로 무림맹에서 떠날 때 알려지지 않은 게 용했다. “해남도에 가는 것 같다고?” “예. 몇 번 거치기는 했으나, 금의상단이 선박을 은밀하게 구해 해남도로 가는 광동의 항구에 준비한 걸보면 확실합니다.” 천기가 부복한 채로 답했다. “……흠.” 암천회주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주서천이 무슨 생각인 것 같으냐?” “본회와의 전쟁을 대비하여 해남검파의 지원을 받으러 가는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 해남도라……” 암천회주가 미간을 좁히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이 기회를 이용할 수 있겠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천기가 속으로 이를 으드득 같았다. 그 눈은 차가운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다. * * * 해남도가 중원의 최남단에 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를 건너는 데 몇날 며칠 걸리는 건 아니다. 최남단으로 가는 게 어렵지 바다를 건너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길어 봤자 이틀, 짧으면 하루다. 태풍을 만나면 날씨가 방향이 틀어지거나, 혹은 기문진의 생로를 찾아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었다. 일행의 배는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뒤의 새벽에 도착했다. 해남도의 성도인 해구(海口)였다. “이게, 무슨……”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바닷바람을 타고 온 것은 짙은 혈향(血香)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사장 앞으로 펼쳐진 건 바람에 춤추듯 움직이는 야자나무였다. 열대기후 지역인 해남도는 일 년 내내 사계절이 여름이다. 그러나 여유롭게 해남도의 여름을 만끽하면서 휴가를 보낼 수는 없었다. “대장, 어떻게 할 거요?” 초련이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며 물었다. “……음.” 무작정 해남도로 온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정파에 속하는 해남검파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모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서천이 제갈수란에게 질문을 돌렸다. 제갈수란은 주서천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을 내놓았다. “무슨 일인지 파악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고 해남도의 정세나, 주변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주서천이 고개를 끄덕이곤 지시를내렸다. “정찰은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박을 지켜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선원만으론 부족했다. 중원에서 데려온 금의상단 소속 무사들을 남겼다. 약 팔십여 명 정도 되는 수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가시죠.” * * * 흰 모래 위가 핏방울로 벌겋게 물든다. 녹색의 야자수림 군데군데에는 시신이 굴러다녔다. 해남도의 상쾌한 야자수 바람은 비릿한 향을 옮겨 후각을 찔렀다. “크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