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
주서천이란 인간을 아껴주고 곁에 있어줬던 건 스승 유정목이다. 그 손길이 그립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순간만큼은 원래의 나이도 잊은 채 유정목의 손길을 받으면서 기뻐했다. “오늘부터는 혼자 해야 할 게다. 힘들겠지만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유정목이 아쉬워했다. ‘드디어!’ 그에 반면 주서천은 유정목이 앞에 있어서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두 팔 벌려 환호했다. 요 일 년 동안, 유정목이 하루도 빠짐없이 내공심법을 도와주느라 무공의 다른 수련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이다. 이제 그동안 계획만 해 두고 미루었던 걸 실행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어.’ 매화기공을 일부러 조절해 가면서 느릿하게 연공하는 일은 지루했지만, 그 외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지긋지긋한 낙안지옥! 전생에서 온갖 전란을 겪은 주서천조차도 낙안지옥을 다시 겪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몸의 한계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죽기 직전까지 굴리는 교두들을 보면 절로 살의가 들끓었다. 이제 좀 살 만하다고 생각하면 교두가 단계를 올려서 또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그게 지금까지 반복됐다. 아무리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정말 낙안지옥 만큼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의 정리 이게 제일 중요했다. 앞으로 무림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것도 한평생을 전부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주서천은 잊지 않도록 매일 미래에 있을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되뇌었다. 마음 같아선 서적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그걸 누가 보고 기억이라도 한다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물론 누가 본다 해도 설마 진짜 미래겠어?라며 지나치겠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 주의하고 또 주의하면서, 필기를 한다 해도 흙바닥에 쓴 다음 곧바로 지워 버렸다. 주서천은 이 기억들을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공부한 것은 버릴 것이 없다 하더니만, 노년에 서고를 들락거렸던 것이 도움되는군.’ 화산오장로라는 지위는 무공 외에 지성도 중요시한다. 특히 전란의 시대가 끝난 직후라서 무림의 안위에 대해서 토론할 능력은 갖춰야만 했다. 안 그래도 어부지리로 얻은 화산오장로라고 평가받기가 싫어서 노쇠한 머리를 굴려 가며 많이 공부했다. “자아, 이제 기다림은 끝났다.” 기초 수련이 전부 끝난 건 아니다. 한동안은 여전히 낙안지옥을 겪으며 수련동에서 공동 수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공심법은 아니다. 매화기공을 대성하기 전까지 다른 내공심법을 배울 수 없지만 개인 수련을 한다. “일 년 동안 준비한 걸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미래, 오늘로부터 육십육 년 뒤에 있을 일이다. 당시 화산파의 후학 중에는 어릴 적부터 오성이 뛰어나고, 무공에 대한 재능도 넘치던 천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천재로부터 무공에 대한 한 가지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그 무공의 정체가 매화기공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했지.’ 매화기공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무공! 상승 무공을 배우려면 이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한다. 하나 어디까지나 그뿐, 그 외의 의미는 없다. 유구한 역사 동안 모두가 그렇기 생각했다. 매화기공은 그저 길을 다지기 위한 기초적인 것. 단지 지나가는 과정, 발판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화산의 이름이 알려지고, 정파의 대문파가 된 이 후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무언가 비밀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주서천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지나가던 과정, 그저 기초일 뿐이라 생각하고 다음 상승 무공을 원했다. 그래서 매화기공의 비밀이 밝혀졌을 당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처음엔 미심쩍어 했었다. “고정 관념이란 건 참으로 무섭지. 그것을 벗어나지 못해 진의를 봐도 깨닫지 못하고 부정하니까.” 매화기공은 강호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내공심법이며, 또한 화산파의 시작과 함께한 내공심법이지만 모두가 너무 무관심했다. 모두가 상승 무공에만 집중하여 지나갈 무렵 훗날 딱 한 사람만이 관심을 갖고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회상이 끝난 주서천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근처의 매화나무 앞에 앉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새하얀 백매(白梅)다. ‘평생을 함께해 왔다.’ 화산의 상징은 검과 매화. 꽃잎 추운 날씨에 핀다하여 동매(冬梅), 눈 속에도 펴서 설중매(雪中梅)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다. 무림이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도, 화산파가 위기에 빠졌을 때도, 항상 매화를 보고 자라 왔다. 어릴 적에도, 화산오장로가 됐을 때도, 심지어 죽음을 예감했을 때도 매화를 보았다. 이제, 그 매화의 비밀을 피워 보려 한다. ‘후우.’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턱은 정면을 향하고, 두 눈은 감는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는다. 스읍, 하아. 들숨과 날숨. 일정하게 조율을 이루면서 반복됐다. 단순하게 호흡만 쉬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적으나, 하단전에서부터 시작되는 따스한 기운을 움직이면서 운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매화기공이었으나, 중간부터 달라졌다. 훗날 미래에 밝혀진 비밀의 운기법이다. ‘매화생공(梅花生功)!’ 참고로 이 비밀은 밝혀지자마자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전수됐다. 당시에는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겨우 평화가 오긴 했으나, 이 평화란게 상당히 불안했다. 무림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전란으로 인해 수많은 피해를 입었고, 후유증에 시달렸다. 전성기와 비교하면 그 전력이 겨우 삼 할 정도 수준이었으며, 그건 화산파도 마찬가지었다. 이에 다시 안정을 찾기 위해서 후학들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때마침 매화생공이 발견됐다. 주서천의 경우엔 배우기보다는 이 매화생공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전수해주는 입장이라서 외워야만 했다. ‘미약하지만 들어온다.’ 입가에 진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매화의 생기가!’ 매화기공의 비밀, 훗날 생공이라 불리게 되는 이유. 그건 바로 매화에 담긴 생기에 있었다. 내공심법이란 건 대자연에서 떠돌아다니는 기를 특정한 호흡을 통해서 단전에 쌓는 방법을 말한다. 그게 정말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원리이다. 한데 매화기공은 그 기본적인 구조에서 좀 더 추가적인 것이 붙는데, 그게 바로 매화나무의 생기였다. 다른 나무는 불가능하지만, 매화나무 근처에서 특정한 구결을 외우며 운기행공하면 생기를 흡수한다. 자칫 잘못 보면 마공(魔功)으로 보이겠지만, 생명의 기운 그 자체를 빼앗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매화나무는 금세 삐쩍 말라져서 다시는 꽃을 피우지 못할 터 .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정공이라 부를 수 없다. 마공이다. ‘생기를 빼앗거나 빌리는 게 아니다. 나무와 같은 식물, 곧 매화가 내뱉는 걸 내가 호흡하는 거지.’ 기(氣)라는 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널려 있는 잡초에도 기가 있다. 또한 그게 생물(生物)일 경우, 호흡을 한다. 매화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매화생공은 그 내뱉은 생기를 대자연의 기와 함께 빨아들여 하단전에 천천히 쌓게 해 준다. ‘매화합일(梅花合一)’ 매화와 하나가 되어 호흡을 하며 먼 훗날 밝혀질 매화생공의 구결을 읊는다. ‘좀 미안한데.’ 원래 이 영광과 명성은 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학이 발견한 비밀을 먼저 파헤치니 도둑놈이 된 것처럼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이 매화생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 후학을 위해서 자신만 알고 있을 생각이었다. ‘좋아, 됐어.’ 매화기공이 지나가는 과정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축기 (築氣)에 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내공을 쌓는 속도만 보자면 강호에서 잘해 봤자 삼류 정도의 수준으로 느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것이 매화기공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비밀을 밝혀진 이후로는 아니었다. 신공절학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초일류의 심법이었다. 축기의 속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애초에 그 비밀을 밝히지 못해서 그랬던 것. 그걸 해결하니 완벽해졌다. ‘자하신공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상승의 내공심법과 비교해도 지지 않는 속도다.’ 여덟 살 때 단전을 형성하고 축기를 시작하여 아홉 살이 된 지금은 일 년 치 내공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매화생공을 이용한다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금세 모을 수 있다. 당분간은 스승도 진맥을 잡아 보지는 않을 테니 숨길 수도 있을 터 .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새로 밝혀진 비밀의 효능은 축기의 속도 증진, 단전의 총량 확대다. ‘무엇보다 가장 기분 좋은 건……’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답답해왔던 응어리를 모두 풀어내는 듯, 정신을 집중하여 단번에 매화기공을 진행시킨다. ‘이제 더 이상 막을 필요 없다는 거지!’ 일찍이 매화기공을 대성할 깨달음은 있었지만, 스승이 매일 진맥을 짚어서 억지로 억눌러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매화기공을 대성한다고 경지가 순식간에 오르지는 않기에, 교두나 다른 제자들이 직접 손대지 않는 이상 눈치챌 수 없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이 어린 제자를 진맥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건 오직 스승이다. 이상을 느끼면 먼저 스승에게 따로 말을 한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에 주서천은 안심하고 드디어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매화기공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사슬로 묶어 두었던 깨달음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와 정신과 육체에 융화된다. 기가 흐르는 통로를 탄 그 의지는 이내 단전에 도착하여 변화를 일으켰다. 오성이었던 매화기공은 단숨에 십성에 올랐다. 대성은 십이성이지만, 내공이 부족해서 다음 단계를 이루지 못했다. 하나 그것도 시간문제. 매화생공으로 빠르게 축기하여 대성하면 그만이다. ‘이제 겨우, 미래를 향하여 한 발자국 걸었다.’ 第三章매화우무(梅花友無) 수련동. “주서천!” “예 !” 화산파의 삼대제자이자 낙안지옥의 교두인 철웅(鐵雄)의 부름에 주서천은 힘찬 대답과 함께 나갔다. “어제 부로 매화기공을 오성 달성했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네놈도 오늘부터 권법수련에 동참한다.” 매화기공의 오성을 달성하기 전까지의 육체의 단련은 낙안지옥의 왕복과 마보(馬步) 정도로만 끝난다. 그리고 약 일 년에 걸쳐 매화기공의 오성을 달성할 때 즈음, 육체 수련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매화권(梅花拳)을 가르쳐 주겠다.” “예, 알겠습니다.” 화산의 자랑은 검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무공이 전무한 건 아니다. 검법만큼은 아니지만 있긴 하다. 대부분 난해하지 않고 간단한 편에 속하며, 검을 쓰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호위이며 기초기다. “강호에는 백일창(百日槍), 천일도(千日刀), 만일검(萬日劍)이라는 말이 있다.” 병기를 다루고 익힘에 있어 검을 익히는 것이 가장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든다는 걸 비유하는 말이다. “권법 또한 화산의 정수가 담겨 있으니, 검법을 배우는데 있어 좋은 기초가 될 게다. 그러니 불만하지 말고 따르도록!” 철웅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서천은 군소리하지 않고 권법 수련에 합류했다. ‘호, 보통은 화산의 검을 먼저 접하지 못한다며 실망하기 마련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