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06)
악인에게 우연찮은 기회로 얻은 겁니다.” 음신, 소류금에 대한 것도 대충이나마 설명했다. 주서천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최악의 경우, 다시 한번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시원했다. 평생을 안고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나 뒷감당의 걱정과는 다르게 남해용왕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무릎을 탁 쳤다. “하하하, 그러한 사정이 있을 줄이야. 하나 그리 미안해할 건 없도다. 확실히 그대가 간접적인 원인이긴 하지만,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남해용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모습이었다. 기색을 살폈지만 어떠한 노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무기를 조종하여 용궁을 들이받았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그리고 신도 아닌데 그러한 걸 의도할 수 있었겠나.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지. 남해의 지배자, 이 용왕은 그런 걸 따질 정도로 그릇이 작지 않도다.” 확실히 간접적인 원인 제공은 했다. 하지만 알고 있던 것도 아닌데 뭐라 추궁하기에는 미묘했다. “그런 걸 따져가면서 원한을 가질정도로 미친 건, 육지의 인간 정도지.”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중원이나 해남도 등 육지의 무림은 별거 아닌 것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원한을 가지기도 한다.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더라도 관련되어 있다면서 복수를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 무림에서야 당연한 일이었으나 남해용문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안 그래도 수가 적은 용궁은 금방 파멸하고 말리라. “남해용왕의 자애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주서천은 안도하며 진심을 다해 인사했다. “아, 그리고 용후는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 그건 반가운 소식이로군.” 남해용왕의 낯빛이 환해졌다. 사문의 실전된 무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내심 눈앞의 터무니없는 괴물, 주서천을 어떻게 설득해서 돌려받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후는 언제쯤 잃어버리신 겁니까?” 들은 바에 의하면 남해용문은 수백년 이상의 세월 동안 폐쇄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나갈 일도 없는데 용후가 외부에서 발견된 게 이상했다. 혹시 암천회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십여 년전 정도였나…… 인근 해역을 맴돌던 인간들과의 격전 도중에 용성(龍聲)이 당하면서 그 근맥을 잃게 되었지.” 남해용문은 폐쇄적이지만 수면 위로 나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용문의 위치가 발각될 것을 경계해 어선이나 해적선 등을 습격하고, 혹은 심해의 마물을 토벌했다. 당연히 먹고 살기 위해선 수중에서 물고기 떼도 사냥해야 했다. ‘왜구인가.’ 정황상 왜구밖에 없었다. 그들을 통해서 소류금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하여간 이곳저곳 안 쑤신 곳 없는 암천회였다. 정말 어딜 가나 그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그렇다면 언젠가 한 번 남해용문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남해의 용왕의 이름으로 약속하지. 남해용문은 화산파의 사대제자, 검신 주서천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돕기로 맹세하겠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딱히 뭘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간야자는…… “용구자주……는 됐고, 괜찮은 자재 있으면 내주시오.” “용궁의 보고에 한철이 있으니 그걸 내주지.” 한철이라는 말에 간야자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그 정도의 무위를 보일 줄이야, 참으로 대단하더군. 특히나 그 쾌검은 화산파라 말하지 않았더라면 응암동(鷹岩洞)의 검성(劍聖)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야.” “응암동의 검성……?”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모르나? 하기야, 그의 사문이 신비문이다 보니 모르기도 하겠군. 또한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야.” ‘나중에 조사해 봐야겠다.’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남해의 일도 이걸로 전부 정리됐다. ‘드디어 돌아간다.’ 그리운 곳, 고향 중원으로. 해남검파도 남해용문도 양측 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아직까지 그 증오나 원한이 남아 있긴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감정을 내려두기로 했다. 용궁이 육지, 해남도 아래 깊숙히 위치해 있는지라 어차피 이 일 이후로 서로 부딪칠 리도 없었다. 남해용문은 이상할 정도로 육지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바다가 전부였다. “사실, 저희에게 물 밖의 환경은 치명적이거든요. 용궁이야 수중동굴이니 상관없지만, 모래사장 정도가 아니라면 금세 지치고 호흡이 불안전해져요.” 남해용문의 주민은 전원이 무림인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용궁, 수중동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심법의 수련은 필수적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통해서 왜 남해용문도가 하나같이 머리가 푸르며 또한 늙은 자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인어청수공(人魚靑水攻). 주안법이며 수공에 속하는 기초무공 덕분이었다. 수기(水氣)를 품은 음(陰)의 성질에 영향을 받아 수련하면 용모가 미려해지고, 노화도 지극히 늦어진다. 부작용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머리가 물빛이나 푸르른 색으로 변하는 특징도 지녔다. 남부럽지 않은 무공이었으나, 타수공보다 더한 단점이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수분이 남아 있지 않으면 약해지는 건 물론이고 호흡에서조차 문제가 생긴다. 육지에 장시간 동안 물 없이 서 있으면 심할 경우 사망에 다다를 정도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래서 평화 협상의 경우도 해안에서 막사를 세우고 진행하기로 했다. 참고로 양측의 분위기는 불편했다. 원초적인 연유는 오해이기는 했으나, 문제는 그로 인해서 여러 피해자가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싸울 이유도 없는 데다가 평화를 깨뜨릴 수는 없으니 서로 참기로 했다. 해남도 주민들의 경우는 두 팔 벌려 환호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쟁에 지친 탓이었다. 무엇보다 다시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양측의 협상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육지에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는 항목을 자의적으로 작성한 남해용왕 덕분이었다. 해남검파를 비롯한 문파 또한 남해용문 인근의 해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항목을 작성해 진행했다. 중원 무림에 비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의 처리방식이었다. 불편함은 남아 있으나 증오 하나없이 이렇게 척척 해결해 가는 대인배적인 면모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전쟁 후로도 지속적으로 육지에 나타난다면 모를까, 나타나지 않는다면 문제없네. 사람이란 평화에 해이해지고 잊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 증거로 녹회문이나 그 밖의 문파 이름을 말하면 이를 가는 이들이 많았다. 남해용문이 해남도의 주민들에게 신성시되는 것도 한몫했다. 또한 협상의 경우 제갈수란과 이의채가 도와주어 큰 도움이 됐다. 순탄한 것도 두 사람 덕분이었다. * * * 기주는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신묘한 법보였다. 그 힘을 빌려 육지로 편히 올라왔다. 남해용문이 구해준 보답으로 이것저것 챙겨 주었는데, 그 양이 적지 않았다. 해안이 모래 대신 금은보화로 가득 메워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 대협!” 이의채가 금은보화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동안의 사정 등을 설명해 주긴 했는데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음에도 잘도 말했다. “그거 그만 보고, 이야기 좀 합시다.” “이야기?……아아! 혹시 이분이 남해만이 아니라 중원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천하제일의 야장, 간야자 님이 아니십니까?” 이의채가 간야자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댁은 누구요?” 아부도 과하면 좋지 않은 법. 간야자는 이 미친놈은 뭐지 하는 표정으로 이의채를 쳐다봤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금의상단의 상단주, 이의채라고 합니다.” “이의채? 그럼 댁이 그 상왕이란 말인가?” 금의상단이 비록 남해에선 활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름은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나 간야자 정도 되는 야장이라면 상계에 관련되어 있어 알 수밖에 없었다. 보다 어렵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그에 따른 귀하거나 좋은 자재를 손에 넣어야 한다. 남해에 없는 건 별수 없이 중원에서 구해 와야 하는데, 유통을 거치다 보면 금의상단이 껴 있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상왕, 이의채입니다.” 이의채가 두툼한 배를 두들기며 씩 웃었다. “흐, 흠흠. 반갑네. 간야자일세.” 이의채를 바라보는 간야자의 시선이 바뀌었다. 상왕에 대해서 알고 있음에도 태도가 변하지 않은 걸 보면, 경칭을 하지 않는 건 성격인 모양이었다. 후에 물어보니 남해용왕의 경우에는 왕이라 불러지기도 하였고, 노인장에 대한 예우라서 그렇다 했다. “자자, 일단 장소를 옮겨서 대화하지요. 지고의 야장께 걸맞는 술을 준비해 두었지요.” “지고의 야장이라니, 허흐흠! 어디, 술을 준비했다고?” 아닌 척하면서도 좋아하는 게 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좋아하긴커녕 불쾌해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주서천은 전에 이의채가 한 말을 떠올렸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칭찬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동네 파락호에게 칭찬 받는 것과 무림맹주에게 칭찬 받는 것과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나 야장처럼 자기 분야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에겐 누구에게 인정받느냐가 중요하죠. 어중이떠중이에게 인정받으면 뭘 알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비슷한 분야나 혹은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위인이 인정하면 다릅니다.’ 괜히 상왕이 아니었다. 예부터 알았지만 사람을 부리는 것은 기가 막혔다. 사람이라면 몰라도 상인으로서는 천하제일이었다. 이의채는 간야자와 주서천을 데리고 이동했다. 해안에 마련된 막사가 아니었다. 간야자의 거처인 대장간이었다. “아, 오셨어요?” 대장간에 도착하니 제갈승계가 반겨주었다. 모루의 열기 탓에 더운지 땀 범벅이었다. 여인들이 보면 요염하다면서 자지러졌을 정도의 잘생김이었다. “집에 오니 이제 좀 살겠군.” 평소엔 화기 가득한 장소에서 지내다가 수기 가득한 수중동굴에 지내게 되면서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 환경적인 요인은 생각보다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객점에서의 접대도 나쁘진 않지만, 한동안 거처를 떠나 있었으니 자택을 택한 것도 괜찮았다. “제갈 공자, 설계도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의채가 탁자 위에 술을 꺼내면서 요청했다. 제갈승계가 기다렸다는 듯이 설계도를 건냈다. “서론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니 마음에 드는군.” 간야자는 괜히 말을 돌려가면서 하는 것보단 이렇게 대놓고 본론부터 꺼내는 걸 좋아했다. “어디……” 술을 목 너머로 넘기곤 설계도를 본다. 그러나 설계도를 본 순간, 표정이 변했다. 술을 쥐고 있던 손도 설계도로 옮겨졌다. 숨도 쉬는 것도 잊은 채 설계도를 넘기며 확인했다. 첫 번째는 빠르게 보더니만 두 번째, 세 번째는 느릿하게 꼼꼼히 봤다. “이거, 설계한 자가 누구요?” 간야자가 설계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접니다.” 제갈승계가 허리에 손을 얹고 자랑스레 답했다. “제갈승계 공자라고 합니다. 기관분야의 천재이시지요. 그 실력은 상왕의 이름을 걸고 보장하지요.” 이의채의 소개에 간야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갈승계는 간야자가 형형한 눈빛을 번뜩이면서 다가오려 하자, 무심코 놀라 뒷걸음질 쳤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에 주서천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그 전에 간야자가 손을 건냈다. “만나서 반갑소. 인사가 늦어져서 대단히 미안하오. 남해에서 철 좀 만지는 간야자라 하외다.” “……!”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서천도 이의채도 놀랐다. 여태껏 검신이건 상왕이건 간에 시종일관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던 간야자였다. 그런데 설계도를 보자마자 예우를 갖췄다. “설계도에 대해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겠소?” “물어볼 거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겁먹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기관이 관련되자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