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11)
영향이 커져 버렸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 천기가 비웃는 게 보였다. “당장 합비로 간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일행을 내버려두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동행하고 싶어도 속도의 차이가 난다. 주요 일행과 떨어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인근의 무림맹 유령곡에 연락해 호위를 요청했다. 주서천은 경공을 극성으로 펼치며 사흘 밤낮을 수면도 식사도 거른 채 합비의 무림맹으로 향했다. 합비, 무림맹. 무림맹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무림맹은 진실을 밝혀라!” “흑영부에 납치 고문된 명부를 공개해라!” 정문과 담에서부터 삼 장 밖으로 무림 단체가 팻말을 들고 와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를 벌였다. 평소 무림맹 소속이란 걸 자랑스럽게 여기던 무사들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갈상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인사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쾡하고 눈 밑에는 검은 기미가 꼈다. “어서 와라.” 남궁위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제갈상이 쓰게 웃으며 물었다. “소문만 들었습니다.” 하오문이나 유령곡, 금의상단의 정보조차 이용하지 않고 곧장 달려왔다. 본인에게 듣는 게 확실하다. 제갈상이 사정을 설명하려 입을 열었으나, 남궁위무가 손으로 제지하곤 직접 이야기해 줬다. “……후우!”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권동제가 나타난 것이 최악이었다. “설득은 해 보셨습니까?” 흑영부는 필요악이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잘못되긴 잘못됐다. 그러나 그 잘못된 것으로 수많은 이들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득?” 남궁위무가 바람 소리를 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이러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게야.” “정말로…… 첩첩산중이로군요.” 암천회와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필이면 상천칠좌가 적으로 돌아섰다. 단순한 절대고수도 아니다. 권동제는 개인이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개인 따위가 아니었다. 무림맹주나 사도천주 이상으로 무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검신과 견줄 정도로 오래된 영웅이었다. ‘암천회가 아니란 걸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야겠구나.’ 하기야, 권동제가 암천회라면 권동제가 아니다. 애초에 이 정도의 영향을 끼칠 수도 없다. “이출이 생각나는군요.” 천재 군사의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웅권협, 이출. 중소문파 출신인 그는 정파 무림의 차별 및 위선에 질려 무림맹을 배신하고 암천회의 천추성이 됐다. “암천회의 끄나풀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출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의도는 그럴 듯해도 결국 대학살을 저지르고, 무림을 지옥으로 만든 암천회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권동제는 다르다. 그야말로 영웅. 어떠한 사사로운 이익도 바라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추대를 거절하고 은거했다. “무림인들은 무림맹에 실망할 것이고, 정도(正道)로 이어진 결속력은 약해질 것입니다. 깊숙하게 침투한 암천회의 끄나풀은 이 사태를 정사에서 철저히 이용하겠지요. 또한 암천회 외의 기회주의자들이 날뛰어 더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주서천이 침음을 흘렸다. “무림맹은…… 분열할지도 모릅니다.” 무림맹, 아니 정파의 위선이 권동제를 불렀다. “총체적 난관이로군요.” 제갈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서천이 지적한 대로였다. “애초에, 흑영부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권동제는 왜 이제와서 그 존재를 거론한 것이지요?” “정파의 어둠은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 다만 세대에 걸쳐 이름을 바꿔가며 사라지거나 나타나고, 혹은 숨어 있었을 뿐이지.” 약 오십년 전, 정백은 위선과 부패로 물든 몇몇의 상층부를 박살내면서 조직을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흑영부의 역할을 맡던 전 조직 역시 사라졌다. “그 잔재를 모아 이름을 바꾸고 되살린 것이 흑영부로군요.” 남궁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개편 당시 정백은 떠나기로 결정한 뒤였다. “선배께선 조직의 개편 등에는 나를 비롯한 몇몇의 사람들에게 더 제격이라면서 자리를 양보했다.” 무책임하게 책임만 넘긴 것만은 아니었다. 권동제 나름대로의 생각도 있었다. “왜 떠나시려는 겁니까?” “지치기도 지쳤지만, 무공 외에는 많이 서툴다는 것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 같은 사람이 앉아 봤자 허수아비일 뿐이다. 자격이 되지 않으면 괜한 폐 끼치지 말고 떠나야지.” “하지만……” “위무야, 아니 맹주여. 현재가 과거가 됐구나. 앞으로 미래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러니 넌 과거의 대표자로서 미래와 현재의 젊은이들을 위해 경험과 지식을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구나. 그러면 아무래도 부족한 내가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 권동제는 일찍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뒷일을 맡겼다. 또한 이대로 강호 무림에 남게 된다면 큰 명성 탓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은거를 결정했다. 애초에 큰 욕심도 없을뿐더러 많은 세월을 보냈기에 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 ‘현인이로다.’ 권동제, 정백의 현명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파의 썩은 뿌리를 뽑아낸 영웅이거늘,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도리어 미래를 위해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정백의 선택은 옳았다. 만약 아직까지 강호 무림에 남아 있었다면 추종 세력을 포함한 무림인들이 남궁위무의 자격을 계속 운운했을 것이다. ‘정작 그 믿고 맡긴 사람이 전보단 심하지 않지만, 고생해서 무너뜨린 걸 부활시켰으니……’ 마음으로는 그 심경을 이해할 순 있었다. ‘하지만……’ 그러나 머리론 이해하지 못했다. 무림맹주로서의 일임을 받은 남궁위무가 할 일은 한 번 부서진 무림맹을 개편하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다만 정공법으로서는 이 과정이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사파나 마도이세가 엉망이 된 무림맹을 호심탐탐 노리던 탓에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아야 했다. 무엇보다 혼란을 틈타 침투시킨 첩자를 찾아야 했고, 연루된 관계자를 찾으려면 고문이라는 방법도 써야했다. 그 외에도 기성세대의 위선과 부패의 잔재들 역시 찾아내서 처벌해야 했다. 문제는 이들이 눈치 빠르게 증거를 없앤 탓에 다른 수단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서 동원된 게 정파의 어둠, 흑영부였다. 필요악인 그들의 소멸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십 년 전의 사태가 다시 벌어질 겁니다. 그 대상은 맹주님을 포함한 장로진이 되겠지요.” 막을 수 없다. 설득도 불가능하다. 그러면 대비할 뿐이다. “다만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엔 그 누구도 그분을 막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제갈상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과거의 정백은 상천칠좌가 아니었다. 신세대에 어떠한 연고지도 없는 삼류 무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무림의 절대자이며 전 세대의 영웅인 동시에, 정의로운 집행자였다. 무위도 무위지만, 세간에 질서이자 정의로 알려진 이를 막아서다가는 위선자로 몰릴 수가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목숨보다 명예나 평가를 중요시하는 정파가 막아설지가 의문이었다. “암천회는 이 기회를 노릴 겁니다.” 주서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주 대협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무림맹이 분열하는 것만큼 좋은 기회도 없겠지요. 권동제 어르신의 방문 시기에 맞춰서 무림 침공을 진행할 겁니다.” 주서천과 제갈상이 남궁위무를 쳐다봤다. 남궁위무의 얼굴 가득 주름이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사천, 당가. “……” 당유기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흑영부, 아니 정파의 어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당가다. 단연 이번 사태에 큰 반응을 보였다. “왜 갑자기 과거의 망령 따위가 나타났느냔 말이다!” 오십 년 전, 무림맹의 개편 전의 일은 당가도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어디까지나 선대의 일이었다. 당유기는 겉모습은 노년처럼 보이나 중년이다. 오십 년 전이면 아직 진실을 알기도 전의 일이었다. 당시 가주는 조부였으며, 소가주인 부친이 무림맹에서 지내며 정파의 어둠으로 지냈던 시기였다. 또한, 당가 역시 무림맹의 정권교체의 중심에 있어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직집적인 원인제공이 된 조부의 경우 권동제가 시작한 정권교체에 휘말려서 끝내 목숨을 잃었다. 친부의 경우엔 조부에게 세뇌당한 것이라면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돕는 걸로 정상참작을 받았다. 얼마 뒤 신세대의 무림맹의 부름을 받고 다시 정파의 어둠이 되어 힘쓰게 됐지만 말이다. 사실, 흑영부의 소관 대부분이 당가에게 돌아간 것에는 오십 년 전의 일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알다시피 당가가 쇠락하기 전에는 무림맹의 다양한 세력이 분담해 가면서 흑영부를 도맡아 왔다. 사문의 범죄자나 혹은 당가처럼 개인이 대가에 걸맞은 보상을 원하여 자의로 맡곤했다. 물론 그 전에도 진작 쇠락한 당가 출신이 많아 실권을 잡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압도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십 년 전의 신세대, 그러니까 현재의 기성세대가 위선과 부패를 청산하겠다며 뒤엎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더러운’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이 죄다 죽어버렸고, 권동제가 떠난 뒤 흑영부를 부활시켰으나 사람이 부족했다. 신세대는 과거 기성세대의 위선과 부패에 질리거나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뿐이라, 권하기도 묘했다. 마침 정파의 어둠을 유구한 역사속에서 이어온 일족들이 건재했고, 그들이 바로 지금의 당가다. “쯧……” 당유기에게 있어서 권동제는 가문에게 막강한 실권을 주어준 사람인지라 딱히 원수로 느껴지지 않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만, 병신 같은 아들 하나 낳아선 궁지에 물리는구나.” 원수는 권동제가 아니라 아들, 당명인이었다. 당명인이 암천회에 몸을 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흑영부 논란 따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에 대한 원망이 짙어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데려와 몇날 며칠을 고문하고 싶었다. “당해 그 아이를 소가주로 임명했어야 한다. 나의 판단 실수로다.” 당유기에게 누가 장남이냐, 아니면 남자냐 여자냐 같은 건 시시콜콜한 사안이었다. 장남이 생각 이상으로 천재였으며, 또한 정신력이나 무공 자질이 대단하여 소가주로 임명했을 뿐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검신의 아이만 임신하면 좋으련만……” 설마하니 전설상의 영물, 인면지주를 만나고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더욱 놀라운 건 인면지주와 협상에 성공하여 정기적으로 독의 재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또한, 그것도 모자라 딸아이가 인면지주의 내단의 일부를 흡수하게 되어 높은 성취를 이룬 것이다. 비록 무공의 극의를 이루진 못했지먄 주변인들이 너무 괴물일 뿐이다. 결코 낮은 경지가 아니었다. 연령을 생각해 보면 마흔도 되기 전에 화경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할 수 있었다. “당가가 이제 막 날아오르려 하는데, 과거의 망령 따위에게 방해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권동제는 죽어야한다.” 당유기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암천회? 길어봤자 삼십 년, 사십년 밖에 되지 않은 것들이 암천이다 뭐다 하다니 가당치도 않도다.” 흑영부는 당가의 소관. 비록 당유기가 현역에서 은퇴하긴 했으나 아직 그 실력이 어디간 건 아니었다. 현역이었던 당명인이 뛰어난 천재였다곤 해도, 후기지수인 이상 전 담당의 조언이 필요했는지라 비록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어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문제의 흑영부는 현재 전 담당자였던 당유기가 당명인을 대신하여 운영 중이다. 자연스레 암천회에 관련된 기밀 정보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