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20)
망설이지 않고 사문을 추천했을 것이다. 하나 최근의 사태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얼마나 잘해야 하지?’ ‘부담스럽다.’ ‘잘못하면 대박은커녕 쪽박이다.’ ‘정녕 잘해낼 수 있는 건가?’ 바로 부담감이었다. 무림맹주는 정파인으로서 최고의 지위이다. 무림맹주라는 건 사실상 정파제일인이라 인정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히 사문 역시 부각된다. 어떤 세대건 무림맹주가 속한 문파 혹은 가문은 당대 최고의 영예를 누리며 온갖 혜택을 갖는다. 다만 이 권리만큼 무림맹주는 성과를 만들어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문제는 사실이 아니나 전대의 무림맹주 탓에 다음 대 무림맹주로서 부담해야 할 것이 늘어난 것이다. ‘오십 년 전에야 부패척결에 성공한 뒤라 기본적으로 두터운 신뢰층을 얻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무림맹주가 절대 권력으로 부정부패를 만들어낸 탓에, 감시와 의심이 늘었다. 이를 만회하여 다시 신뢰를 쌓으려면 전대를 뒤덮을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 우수한 성과를 내야 한다.’ ‘노력하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끄응!’ 정말로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책임질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였다. 권리에 비해 의무가 거대했다. 다혈질에 비교적 머리가 좋지 않은 팽군평조차도 입을 꾹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군사, 아니. 맹주 대리. 자처한 후보는 없소?” “한 분 있습니다.” “정말이오? 그게 누구요?” 장로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당가의 가주, 독왕 당유기입니다.” “무슨!” 쾅! 팽군평이 탁자를 후려치며 씩씩 거렸다. 그 외의 장로진 역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제정신인가?” “미쳤군!” “허, 참……” 대부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천에서 뭐라 왔소?” 황견이 제갈상에게 물었다. “아들이 저지른 배신, 아비로서 무림맹주가 되어 분골쇄신하겠다고 하더군요.” “지랄!” 황견이 흥, 하고 코웃음 쳤다. “여전히 기분 나쁜 사내로다.” 장로진들은 금세 당유기의 속내를 파악했다. “흑영부의 죄는 전 맹주께서 안고가셨으나, 당명인의 배신으로 인한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무림맹주가 되어 유야무야 넘어갈 셈이로군요.” 우백의 설명에 경인사태가 불쾌한 듯이 말했다. “세간에는 맹주가 권리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그럴 생각이라니, 담이 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이 나갔다 해야 할지……” 곳곳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유기……’ 제갈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당분간 흑영부는 운영할 수 없으니, 당가의 권리도 약해질 것을 걱정하고 나선 건가. 대범하구나.’ 오랫동안 해온 것이 있으니, 권리가 곧바로 사라지진 않는다. 하나 앞으로 있을 전면전에서 실적이 영 좋지 않으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하다. 그 외에도 권동제의 생존이라거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이러한 행동에 나선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무림맹주를 맡으려 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뜻대로는 될 수 없다.’ 사천, 당가. “하하하하!” 당유기는 기분 좋은 듯이 미소 지었다. 평소처럼 음습하고 우울한 기색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정말로 즐거운 듯이, 유쾌하게 웃었다. 당가의 가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눈을 의심할 광경이었다. “하늘이 당가를 돕는구나!” 믿었던 아들, 소가주의 배신을 비롯해 과거의 망령인 권동제의 등장으로 당가는 위기에 빠졌다. 매일매일 잠을 못 이루며, 앞날을 걱정하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무림맹이 모르게 자객을 보내기도 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신분을 숨겨야 하는 흑영부에서 사용되는 독을 제조하여 백여 명의 일류 자객들에게 지원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죽이기는커녕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후 아들에 대한 원망은 점차 커져만 갔고, 검신의 아이를 낳지 못한 딸의 무능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 하였던가. 얼마 뒤 남궁위무가 자처해 희생하고, 죄를 짊어짐으로써 당가의 죄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당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 언제나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 * 중경, 장강수로채(水路塞). “누님……아니, 총채주!” 수적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외쳤다. “꿀꺽, 꿀꺽…… 크으으!”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보인 건, 책상에 발을 올려두고 술을 목 너머로 시원스레 넘기는 미녀였다. 붉은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은 등허리까지 흘러내리고, 비단처럼 고우며 약간 곱슬곱슬해 파도처럼 출렁였다. 치켜뜬 눈매는 맹수처럼 사나우며, 그 안의 시커먼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 압도당할 만큼 냉혹했다. 잘록한 허리 위의 풍만한 가슴은 가릴 생각이 없는지,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모르는 복장이었다. 남자라면 당장 바지를 벗어 던질 미모였으나, 눈썹에서부터 광대뼈까지 내려오는 화상(火傷)은 흉악한 인상을 만드는 데 한몫해 흠칫하게만든다. 겉으론 보기엔 막 서른 살이 된 요염한 미부(美婦)였으나, 실제로는 불혹(不惑 : 40세)을 넘긴 중년이었다. “뭐냐?” “암천회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수로채주, 아니, 적림총채주 홍하랑이 손을 까딱였다. 수적, 수로부채주 야표가 서신을 건냈다. 홍하랑은 서신을 읽어 내리곤 코웃음쳤다. “무슨 일입니까?” 야표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암천회. 칠검전쟁이나 사문반란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 개입한 것도 모자라 뒤에서 조작했다는 무력단체. 무림맹과 사도천이 이 암천회와의 전쟁으로 동맹까지 맺게 만들어 화제가 되지 않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안인가.” “제안? 뭔 제안입니까?” “정사연합과 암천회가 전쟁을 준비중인 와중에 올 제안이라면 뭐가 있겠냐? 당연히 동맹이지.” 홍하랑이 보란 듯이 서신을 야표에게 던졌다. 야표는 건네받은 서신을 읽곤 눈을 크게 떴다. “전쟁에 승리할 경우, 중경의 산이나 장강은 물론이고 황하나 동정호…… 그 밖의 노략질을 묵인하며, 암천회의 무림 정복 시, 적림십팔채와는 대등한 동맹 관계로……” 요약하자면 도적 토벌을 내버려 두겠다는 뜻이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한데, 이 새끼들이 나중에 가서 입 씻지 않을지가 문제가 되겠군요.” “받아들여라.” “예?” 홍하랑의 고민 없는 대답에 야표가 되물었다. “그리 쉽게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약속을 지키건 지키지 않건,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하지 않다뇨?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야표가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하랑은 야표를 병신 보듯이 쳐다보곤 한숨을 내쉬더니만, 머리가 모자란 부하를 위해 설명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도와 사도, 아니, 무림 세력의 감퇴다. 특히나 그 정파의 위선자 새끼들이 여유가 생겨 협의다 뭐다 하면서 산채 및 수채를 털지 않도록 만들면 돼. 그것만으로도 중경 외의 타 지역에 돌아다니는 게 가능해지니까.” 적림십팔채는 하오문처럼 흑도다. 정파인에게도 사파인에게도 경멸의 대상이었다. 무림맹은 사문이나 개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려고 도적을 털고, 사도천은 재정 좀 채워보자며 턴다. 그 밖의 무인들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등장하는 신비문파나 은거기인은 출두를 알리려고 털었다. 수림이야 비교적 상황이 낫긴 한데, 녹림은 중경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수림의 수장이었던 시절은 상관없었으나 적림총채주가 되니 녹림도 책임져야만 했다. “그러면 굳이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공멸하도록 옥수수 뜯으며 구경이나 하면……” 홍하랑은 무심코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참았다. 작년 이맘때 쯤 회류채주(回流塞主)가 수하에게 머저리 같다고 호통을 치다가 뒤통수 맞고 죽었다. 도적에게 의리나 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잘해 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괜히 작은 일에도 막 대했다가 배신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무림맹과 사도천 다음으로 사라지겠지.” 홍하랑이 바로 앉아 목을 엄지로 슥 그었다. 야표는 무심코 목이 아니라 자세를 바꾸면서 드러난 풍만한 가슴을 힐끗 살폈다가 얼른 눈을 돌렸다. 일주일 전에 저 가슴을 훔쳐보던 수하 하나가 남색가인 수하에게 삼 일 동안 강간당했던 게 떠올랐다. 야표는 순간 향했던 시선이 들키지 않도록 이목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놈들이 만약 저희를 이용만 하고, 무림 정복에 성공한 다음 토벌하려 하면 어쩝니까?” “한낱 도적을 토벌하느니, 차라리 무림맹이나 사도천의 잔존 세력이나 찾아 없애는 게 나을 거다.” 총채주의 답변에 야표는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 정복이란 과정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복 이후에도 문제이다. 정사 할 것 없이 무림을 통합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 후 관리까지 생각해야 한다. 총채주가 된 이후의 일로 인해 툭하면 얼굴을 찡그리는 홍하랑을 생각하니 수긍이 갔다. “그리고, 주서천 그 애새끼한데 갚아야 할 빛도 있거든.” 홍하랑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것도 그렇군요.” 야표의 얼굴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신(新) 적림총채주, 홍하랑은 주서천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악연이 나름대로 깊은 편이었다. 약 십년 전, 주서천이 강호조출 때 천하백대고수인 도수창병 육대랑을 죽인 것이 시작이었다. 주서천과 제갈승계의 실종으로 인해 체면을 구긴 화산파와 제갈세가는 대노해 수림구채와 척을 졌다. 예전 같으면 적당히 통행료를 내고 끝낼 일이었으나, 화산파와 제갈세가가 그를 넘어, 토벌까지 나섰던 터라 적림십팔채, 특히 수림구채는 당시 거의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도적질으로 연명하던 수림구채는 한동안 수익이 끊겨 굶어야 했고, 녹림에게 조소 섞인 수모를 겪었다. 적림 내에서의 입지 역시 좁아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녀가 적림총채주에 오르고 수림구채의 입지가 오른 것도 주서천 때문이었다. 삼 년 전, 주서천이 정파인들을 이끌고 녹림을 토벌하여 전 적림총채주인 맹강을 죽였다. 녹림구채 중 대호채와 녹룡채가 박살 났고, 관병에 넘어감으로써 녹림채의 세력이 크게 줄어 들였다. 이후 녹룡채나 대호채가 남겨둔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녹림도의 싸움이 일어나 내분이 벌어졌다. 약 반 년 정도 후 녹룡채와 대호채를 대신할 산채가 생기고,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도 끝났다. 하나 이 사건으로 인해 녹림 역시 입지가 좁아졌다. 내분으로 녹림도가 줄기도 했지만, 녹림채주 출신이었던 맹강의 패배와 세력 감퇴 탓이었다. 수림구채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금니를 드러냈고, 몇 차례 싸움 끝에 총채주는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수로채주, 홍하랑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십 년 전, 녹림에게 받은 수모도 수모지만 토벌이 늘어나면서 여러모로 고생을 했다. 아끼는 수하를 여럿 잃기도 했다. 그 이후로 화산파나 제갈세가의 이름만 들어도 화가 솟구치곤 했다. “동맹을 받아들이겠다고 답신을 보내라.” * * * 무림맹주 선출 과정은 본래 오래걸린다. 전 맹주가 퇴임할 시기에 맞춰 후임자에게 인수인계가 완료된 이후에야 무림맹주에 오를 수 있다. 또한 후임자 선출 역시 구파일방 및 오대세가의 장문인이나 가주, 무림맹 장로진과 군사가 회의 끝에 결정지으나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전쟁이 코앞인 데다 전 맹주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하루라도 빨리 무림맹주를 뽑아야만 했다. 이 탓에 선출 과정은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다수결로 인해 무림맹주는 태극검을 추대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찬성하오.” 후보 중 일 순위라면 단연 상천육좌다. 검신은 어리기도 하고 지도력이 확실치 않아 미묘했다. 권동제의 경우엔 도리어 너무 나이가 많았다. 언제 죽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