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21)
모르는 노인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또한 한 사람이라도 더 전선에 설사람이 필요해 부적합했다. 자연스레 태극검, 운광에게 돌아갔다. “알았네. 부족하네만 맹주로서 소임을 다하겠네.” 무당파도 최초엔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무림맹주가 되는 건 좋지 않았다. 무당 장로들 중 반이 거절하라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운광은, “나 역시 과거의 망령이자 잔재이자 책임자일세.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하지 않겠나.” 사실, 운광은 누구보다 이번 사태에 당황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본래는 그 역시 남궁위무를 찾아가서 권동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거절 당했다. “검신도 나도 이 일로 발이 묶여있네. 자네까지 나서게 된다면 만약의 사태를 누가 막겠는가.” “끄응.” 오십 년 전, 운광도 신세대의 강자로 활약했다. 권동제와도 나름대로의 친분이 있었다. 누구보다 나서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남궁위무나 제갈상의 간곡한 요청에 아쉬워하면서 대기했었다. 그리고 계획과 더불어 무림공적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땐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다. ‘편히 쉬게나, 검성이여. 그대의 의지, 내가 잇겠네.’ 얼마 뒤, 태극검이 만장일치로 무림맹주에 오른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위임식은 생략됐다. * * * 전쟁의 근본은 물자다. 무인이라 해도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무기도 필요하다. 특히 겨울이라면 추위를 버티기 위해서 따스한 모포나, 옷 등이 요구됐다. 무림맹과 사도천은 전쟁의 준비를 위해 금의상단 및 여러 상단을 통해서 각 지부에 물자를 요청했다. 물자의 운송을 위해선 단연 호위도 필요하다. 손이 부족해 표국이나 낭인 등 무사들의 고용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무림맹과 사도천이 맡았다. 째앵! “크읏!” 개방의 절정 고수, 오귀성이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관호청! 이게 무슨 짓이냐!” 물자의 운송 도중 일이었다. 무림맹 소속의 절정 고수, 관호청이 미친 것인지 갑작스레 검을 휘둘러 오귀성을 기습했다. 검지를 잃긴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구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관호청이 매서운 눈매로 답했다. 그의 몸에선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살의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오귀성은 개방도답게 머리 회전이 빨랐다.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네 이놈! 무림맹을 배신하다니! 제정신이냐!” “제정신?” 관호청이 코웃음을 쳤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다. 미친건 너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정파다.” 그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면서 그게 마냥 도가와 불가의 진리인 양 변명으로 지껄이지.” “뭣들 하나! 저 배신자를 잡아라!” 호위대가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미, 미친……!” “자네 뭐하는 건가!” 배신자는 관호청만이 아니었다. 오귀성만이 아니라, 개방도 전원이 호위대의 무림맹 소속 무사들에게 포위당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전원 중소문파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나, 천추성, 그리고, 웅권협의 의지를 잇는 자로서 뿌리까지 썩은 정파를 처단하도록 하겠다.” 푹! 푸욱! “크악!” “컥!”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암천의 아래, 그 어떠한 차별도 없으리라!” 관호청은 오귀성의 목을 베며 외쳤다. “전쟁이다!” “급보입니다!” 콰앙! 전령이 회의실 문을 거칠게 열며 들어왔다. “보고하게나.” 회의 도중 난입할 정도면 보통 소식이 아니리라. “하북, 산동, 하남, 안휘, 호북, 섬서, 감숙, 청해, 사천 그리고 운남까지! 물자 운송 중 습격!” 상층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또한 정파 영역 내에서 무림맹 및 중소 문파 중 이 할이 배신하여 암천회임을 선언했습니다!” “……” 상층부가 술렁였다. “드디어 시작된 건가……” “허어…… 그렇게나 많이!” “끄응!” 암천회가 전부터 첩자를 심어 두고, 정파인을 회유한 것은 주서천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흑영부에 깊숙이 관여한 당가의 소가주, 당명인은 암천회의 간부가 아니던가. 배신은 이상하지 않다. 다만 생각보다 수가 많았다. “끝이 아닐 겁니다.” 제갈상이 그다지 희망치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사, 그게 무슨 소리요?” “여러분께서도 알다시피 전쟁에서 중요한 건 물자와 정보입니다. 후자의 경우엔 이 정보 하나둘로 인해 형세가 뒤바뀌곤 하지요. 아직 의심받지 않은 이들을 심어 두고 이쪽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유출시킬 겁니다.” “이 개놈들!” 팽군평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소?” 신인 무림맹주, 운광이 물었다. “발등 위에 떨어진 불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다.” “동감입니다. 물자 운송 호위 병력을 늘리고, 또한 배신에 대응하기 위해서 출신이 다양해야 합니다.” 혜노와 경인사태가 순서대로 의견을 꺼냈다. “애초에 배신자 중 대부분은 중소문파 출신이 아니었습니까?” 우백이 불만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황견이 눈살을 찌푸렸다. “출신이 확실한 이들에게 맡기자는 거요.” 중소 문파를 쳐내자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하하하, 대단하군!” 황견이 대놓고 이죽거리며 조소를 날렸다. “이 사달이 일어난 것 자체가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 대우로 인한 것인데, 또 차별하자는 거요?” “그 뜻이 아니외다. 황견 장로께서는 반응이 과하시구려. 만약의 사태를 배제하자는 말이오.” “그게 그 말 아니오!” 황견이 사납게 으르릉거렸다. “실망이군!” 황견과 사이가 좋지 않은 팽군평이 이번에는 같은 편을 들어 주었다. “설사 출신이 안 좋다 하여도, 그들 역시 같은 무림맹 소속이며 협의를 위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면, 누굴 믿자는 것이냐!” 팽군평이 흥분했는지 경어를 생략했다. “맹가 놈이 실로 오랜만에 바른말을 하는군.” 황견은 팽군평의 말에 동의하듯 피식 웃었다. “그만!” 쾅! 운광이 손바닥으로 책상 위를 내리쳐 정리했다. “얼마 전만 해도 분열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또 이렇게 싸우자면 어쩌자는 거요! 그분의 희생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생각이요?” “……” 당장이라도 불똥이 튀길 분위기였으나, 운광의 말에 깨끗이 사라졌다. 세 사람 다 입을 꾹 다물었다. 운광은 한숨을 푹 내쉬곤 군사에게 말을걸었다. “군사의 의견을 듣고 싶소.” “황견 장로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우백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고, 황견은 보란 듯이 웃었다. 그래도 대놓고 도발을 걸진 않았다. “암천회는 사람의 마음에 교묘하게 침투해 약한 부분을 이용하고, 속이는 데 능숙합니다. 공작 및 선동은 그들의 특기 분야이니, 만약 호위인원이 특정한 출신으로 편향된다면…… 그 결과는 좋지 못하겠지요.” “그러면 군사께선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경인사태 장로님 말씀대로 배신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출신으로 배치하여 물자를 지켜야 할 겁니다.” “나무아미 타불 군사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혜노가 염주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다른 장로진도 무언으로 긍정했다. “그나저나 줄어든 전력부터 어떻게 해야겠군요. 북해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떤지요.” 경인사태가 제안했다. “과연! 그걸 생각 못 했군!” “북해빙궁!” 북해빙궁(北海氷宮). 새외 무림 중 북측에는 북해란 곳이 있다. 여름인 남해와는 다르게 사계절 내내 겨울밖에 존재하지 않아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이다. 이 척박한 땅에도 여러 문파가 있으나 그중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게 바로 북해빙궁이었다. “북해궁주께서 도와주신다면 결과는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북해빙궁의 궁주가 바로 상천육좌 중 일인이자 홍일점인 북해궁주다. “북해빙궁의 저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북해빙궁의 무위는 옛적부터 유명했다. 일반적인 겨울이 아니라, 조금만 바깥에 있어도 금세 얼어 죽는 북해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으로 강인해야 한다. 무공이 필수라 무인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북해인은 구 할 이상이 무림인이며, 음한지기가 충만한 북해에 있어 기본적으로 수련의 속도나 내공 또한 심후하였다. 북해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힘든 일인지라 일반 무사조차도 이류, 아니 거의 일류의 무인들이었다. “북해빙궁은 과거에 중원을 침공했던 사례가 있지 않소? 그러다가 뒤통수를 치면 어찌하오.” “동의하오.” 북해가 워낙 척박하다 보니, 북해빙궁을 비롯한 북해인들이 비옥한 중원의 대지를 노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북해의 패배로 끝났다. 빙공(氷功)을 수련한 입장에서 중원의 따뜻한 기후가 도리어 불리한 환경으로 적용된 탓이었다. 음한지기가 부족해 회복도 느려지고, 기후 변화에 익숙하지 못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 그 후 북해빙궁은 후퇴하여 중원과 약간의 교류만 한 채 문을 닫고 살았다. 다만 그 무위는 여전히 위명을 떨쳐 세대가 달라져도, 북해제일고수 북해궁주는 상천에 이름을 올렸다. “마침 그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잘됐군요. 그렇지 않아도 전에 서신을 보내 의사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됐소?” “거절당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내린 폭설 탓에 식량난으로 문제라 하더군요.” 북해의 날씨는 그저 춥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심하면 일 년 내내 멈추지 않고 눈보라 폭풍이 몰아칠 정도로 이상기후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동사자(凍死者)는 물론이고 아사자(峨死者)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오게 된다. 암천회고 중원이고 간에 지금 당장 굶어 죽는 문제에 처해 있으니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식량을 대가로 고수들을 빌리는 건 어떻소?” “맹가야, 머리 좀 굴려 봐라. 우리에게 그런 여유가 어디 있냐?” 황견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찼다. 전쟁을 앞둔 무림맹 입장에선 그럴 여유가 없다. 종전 후도 마찬가지다. 자고로 전쟁에서 남는 것이란 없다. 전쟁은 파괴할 뿐이다. 사람도 식량도 환경도 부순다. 승패란 작은 문제일 뿐이다. “금의상단을 비롯해 구파일방의 속가제자 출신이나 무림맹 출신이었던 상단에서 지원을 해 준 덕분에 시작점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만, 북해빙궁을 챙겨 줄 정도는 되지 않습니다.” 제갈상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일축했다. 만약, 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정혈대전이나 정마대전 후 겪은 피해를 보충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武)와 금(金)이 깊이 엮이는 걸 싫어하는 무인들이었으나, 모순적이게도 누구보다 더 돈이 필요했다. 또한 그 돈이 목숨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전력의 이할이나 잃은 채로 싸워야 한다는 거요?” 황견이 어두운 안색으로 물었다. “이 할 ‘밖에’입니다.” 무림맹의 군사가 장로의 말을 지적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결과 역시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시작부터 불리하다, 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싸우기도 전에 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룡, 아니 천군사의 말에 황견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희망은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보다 우세한지 계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그저 행동하겠다는 선택이지요.” 제갈상은 진지하면서도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그러나 계산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보다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 그리고 희생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저희 군사진이 밤낮 구분 없이 힘내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어리며, 산전수전 다 겪은 강호의 어르신들보다 실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조금은 믿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군사님께서 소승을 부끄럽게 만드는 구려.” 혜노가 합장하며 경의의 눈빛을 보냈다. “예상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갈상은 지도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암천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림맹 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