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25)
실상은 의형제 같은 게 아니야. 정말로 알 만한 자라곤 사도천주 정도인데…… 사문반란 이후로 심어 둔 첩자들이 전멸하다시피 사라져서 어찌할 수가 없다.’ 첩자를 다시 심으려고 해도 사도천주의 경계가 워낙 심해서 어찌할 수가 없다. 반란을 겪었으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이젠 내부에 견제할 만한 세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옥형성의 일부였던 소음문은 음신을 잃고, 사문의 존속을 위해 완전히 사도천주의 아래로 들어갔다. 견제 세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서 틈을 찌를 수 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또한 사도천주가 무공만이 아니라 권모술수에도 능하고, 의심도 워낙 많다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반란 후에 배신자나 적의를 찾아서 족친 탓에 새로운 첩자는커녕 기존의 첩자들만 해도 숨는 데 급급하여 이렇다 할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천기는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 하나 밖에 없는 손을 올려 탁자를 두드리며 한숨을 토해 냈다. “남궁위무, 그자만 아니었더라면……” 얼마 전의 일을 생각하니 또 열불이 끓어올랐다. 무림을 경악시킨 대사건, 남궁위무. 정파의 위선을 비롯한 죄가 집중된 일이었다. 태풍의 핵인 권동제를 은거에서 이끌어 내고, 정파의 분열을 유도했다. 그러나 결국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작전도 터무니없는 방식을 통해서 실패했다. 범인이라면 꿈도 못 꿀 방식이다. 어떠한 영웅이라도 따라 할 수 없는 방식이다. 무공도 지위도 명예도 버렸다. 미래를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그 짧은 시간 내에 행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천기는 그런 전 무림맹주를 이해할 수 없었다. “흐흐. 대단하구나, 대단해…… 누군가에게 상을 주려 하면 그것조차 출신을 따지고 여러 명의 동의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누군가를 벌하고 죄를 덮어씌우고 은폐하는 데는 하나가 된 듯이 움직이다니.” 천기는 비꼬듯 중얼거리면서 차갑게 웃었다. 그 역시 가만히 지켜보지 만은 않았다. 무림맹 존립을 위한 남궁위무의 희생을 어떻게든 이용하려 했다. 하나 무림맹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처리가 훌륭했다. 손을 쓰면 어떻게든 다시 흔들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아쉽게도 시간도 손도 부족했다. 사실상 천기가 천기성, 천선성, 천권성을 일임하는지라 식사는 물론이고 수면 시간까지 부족할 정도였다. 조금 더 흔들면 내부 세력의 결속을 약하게 만들거나, 배신자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결전에 이길 계책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권동제는 어디 있나?” “아직 무림맹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칠성사병이 그림자 밖으로 나타나며 답했다. “상천육좌에게 변동 사항이 있다면 어떤 때도 상관없으니 보고하도록 하여라.” 복해빙궁이야 식량난으로 심각한 모양이니 약간의 경계만 하면 될 뿐,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북해의 궁주를 제외한 상천오좌가 문제였다. “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암천회라는 것을 알려 주마.” 어둠 속에서 천기가 차갑게 웃었다. 슥슥슥. 비수의 날을 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퍼졌다. “무슨 일이냐.” 천추, 당명인이 기척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췄다. “천기 님이 보내신 지령서입니다.” 당명인은 칠성사병에서 지령서를 건네받아 읽었다. “그리고 이건……” 칠성사병이 서류를 꺼냈다가 멈칫했다. 복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당가인가?” “그, 그렇습니다.” “상관없다. 보고해라.” 당명인의 얼굴에선 분노도, 슬픔도, 혐오도 느껴지지 않았다. 칠성사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글을 입으로 전달했다. “당가의 가주, 당유기는 여전히 사천에 틀어박힌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조금 지난 정보이나 무림맹주로서 입후보했었다고 합니다.” “무림맹주?” 당명인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됐다.” 당명인은 비수를 소매 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 모르게, 눈에선 독기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사흘 후, 귀주. 무림인의 아침은 빠르다. 동이 트기 전 운기조식을 위해서 밤도 아침도 아닌 시간에 미리 일어나 있다. 사박사박. 경비 무사가 걸을 때마다 지면의 눈이 깊게 파였다. 밤을 지새우며 경계를 서던 무사가 입을 쩍 벌리며 하품했고, 동료 무사는 꾸벅꾸벅 졸았다. “이, 이, 일어나, 이 새끼야!” 빠악! 의식을 잃기 직전, 동료 무사가 뒤통수를 맞고 일어나며 욕설을 내뱉으려 했다. “이 새끼야! 깨울 거면 얌전히 깨울 것이지 왜 남의 머리를 쳐?” 그는 사도천 소속의 무사다. 사파인 중에서 머리 맞고 화 안 낼 정도로 순한 사람은 없다. 안 그래도 잠을 제대로 못 자 짜증이 극에 다다른 상태였다. “앞! 앞에!” “앞에 뭐? 어디 천하절색의 여자라도…… 허억!” 무사는 무심코 머리를 들었다가 눈을 부릅떴다. 시선의 끝, 지평선에 대군(大軍)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띈 건, 온몸을 시커먼 갑주로 무장하고, 창을 어깨에 멘 장신의 무인이었다. 무사는 상부에서 내려온 신상명세를 떠올리며 목청껏 소리쳤다. 선두에 요광 및 대군 출현! 정사 연합 대 암천회. 그 첫 번째 대결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무림맹 상층부는 귀주의 격전을 예상하고 주서천을 비롯한 고수로 이루어진 별동대를 파견했다. 다만 귀주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상황인지라, 발 빠른 주서천만 따로 빠져서 귀주로 향하기로 했다. 경공도 경공이지만, 거의 끊이지 않는 내공을 소유했으니 속도나 지구력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정사 연합의 화해가 이어졌을 당시 무림맹에서 파견된 별동대는 귀주의 동북, 호남(湖南)의 장강 유역인 동정호(洞庭湖)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중원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며 아름다운 풍치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나, 한가하게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다. 안휘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보다는 장강의 물살을 타고 배를 이용하는 것이 더 빨라서였다. 동정호의 남쪽 끝자락의 포구에서 내려, 말로 갈아타거나 경공을 이용해 남서의 귀주로 갈 생각이었다. 하나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장강의 물살도 물살이지만 별동대 앞을 막은 수적 떼 탓이었다. “혹시, 저희가 누구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단리화가 머리에 쓴 죽립을 슬쩍 올리며 웃었다. 입과 다르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알고 있다. “파검봉, 아니 이젠 나이도 서른이니 다르게 불러야 하나? 단리화.” 적림십팔채의 반절인 녹림구채는 대부분이 중경에 밀집해 있다. 반면 수림구채의 경우에는 중경만이 아니라 전역, 정확히 말해선 장강 일대를 끼고 활동했다. 수채 역시 각지에 골고루 퍼져 있는 편이다. 호남의 동정호 일대 역시 수림구채가 있었다. 동호채(洞湖塞)라 불리는 중규모의 수적 소굴이었다. “서른인데 아직 이렇다 할 남자가 없었던 건 이 동호채주, 유탁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지 않느냐?” 유탁이 호호 하고 음흉하게 웃었다. 우락부락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 아무렇게나 자라난 지저분한 수염, 못생긴 얼굴은 도적 그 자체였다. 단리화는 유탁의 희롱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괜찮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특히나 당신 같이 목소리만 크고, 근육만 부풀어 오른 남정네는 하나같이 아랫도리가 손톱만큼 하더라고요.” “……” 미녀, 그것도 정파의 후기지수 출신에게서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무림맹에서 파견한 별동대도 할 말을 잃은 듯,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더 부끄러울 지경이야……” 당혜는 눈썹을 구부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화산의 매화검수, 낙소월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눈앞의 수적에게만 집중했다. “이, 이 계집년이……” 유탁이 눈을 부릅뜨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단리화는 유탁의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어머나, 농담이었는데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면 정말로 그런 모양이네요. 괜찮아요. 기교만 있다면 작아도 문제없으니까요. 아, 근데 그쪽은 보니까 기교도 별로인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저기 배 아래의 장강이나 임신시키지 그래요?” “죽여 버리겠다아!” 유탁의 피부 위로 퍼런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조, 조용히 하자.’ ‘웃었다간 죽는다.’ 동호채의 수적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적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거칠고 지랄 맞다. 성격이 유순하면 우습게 보여 금세 죽기 마련이다. 자기 자리를 넘보지 않게 하려면 성격도 지랄 맞아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제일 지랄 맞다는 뜻이었다. 만약 여기서 웃는다면 이 일이 끝나고 죽기 직전까지 맞거나, 물고기밥으로 던져질 것이 분명했다. “쳐라!” 유탁의 외침에 수적들이 달려들었다.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도 공격했어.’ 단리화가 물 흐르듯 검을 휘두르면서 생각했다. ‘장강이야 이들의 영역 내이니 우리의 위치를 알아낸 건 그렇다 쳐도, 전쟁 중인 걸 뻔히 알고 있음에도 무림맹의 고수가 여럿 있는 배를 습격했다는 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적림십팔채가 암천회와 손을 잡았다.’ * * * 귀주, 옹안에 모인 사파인만 이천여 명이었다. 사흘 전, 주서천과 고훈이 중개한 화해 협정 이후로는 각지에서 사파인이 모여들어 천이 더 늘었다. 고수는 적지만 인구가 많은 사파의 특성답게 약 천오백 명인 무림맹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 귀주의 정사 연합은 이로써 사천오백여 명. 전력의 숫자는 괜찮지만 무력이 좀 낮은 편인 게 흠이었다. 약 사흘 동안 정사 연합은 화해한 뒤, 재정비를 하고 연합군으로서의 지휘 체계를 갖췄다. 정파 측은 주서천과 신도균, 맹초혁. 사파 측은 조명. 금의상단의 고훈이었다. “요광 및 대군 출현!” 전령의 다급한 외침에 지휘 막사의 대화가 끊겼다. “도주한 종리도전 역시 보입니다!” 약 이틀 전, 종리도전은 모습을 감추었다. 주서천은 종리도전이 천추성이라 예상했던 바,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으으으, 그 개새끼…… 날 이용하다니……” 조명이 씩씩거리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종리도전과 몇 년 동안 귀주에서 등을 맞댄 전우인 동시에, 의형제 배분을 맺은지라 배신의 충격이 컸다. “귀주 전선의 힘, 보이도록 하지요.” 신도균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지휘 막사를 나섰다. “자만하시는 건 금물입니다, 암천회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닙니다.” 주서천은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경고했다. 귀주에서 하루하루 위험한 나날을 지내는 신도균이야 정파 특유의 높은 자존심의 경향이 옅으나, 그래도 없는 건 아니었다. 사실상 암천회의 저력은 소문만 무성할 뿐 대대적으로 이렇게 나선 적은 없다 보니 그리 체감되지 않는 모습인지라 요 며칠 동안 몇 번이나강조했다. “또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주로 무장한 자. 요광을 조심하십시오.” “정말로 그의 갑옷이 전부 만년한철인 겁니까?” 맹초혁이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만년한철이란 것 자체가 전설의 금속이다. 검이나 비수의 재료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있어야 한다. 한데 전신으로 휘감았다 하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예.” 사실 정확한 건 아니다. 하나 경각심을 높이도록 일부러 그리 말했다. 간야자를 데려왔다면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제갈승계의 곁에 있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귀주 지부장님, 아니 귀주전선장(貴州前線將)님께 총지휘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