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32)
전에, 요광의 목소리에 압도되어 얼어붙었다. “보다시피 함정, 그것도 기관에 걸려들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가?” 요광의 물음에 천기성 소속 칠성사병은 쉬이 답하지 못했다. 서로 마주 본 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칠성사의 두뇌, 천기성이라고 전부를 아는 건 아니다. 특히나 기관처럼 사장된 기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천기성 내부에서도 일부에 불과했다. “쯧.” 요광은 천기성의 반응에 혀를 찼다. “컥, 커헉!” “끅!” “끄으윽!” 손에 잡힌 풍산채주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지만, 요광은 개의치 않았다. 얼굴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생사가 위독한 순간에 맞춰서 집어 던졌다. 우당탕! “채, 채주!” “괜찮으십니까?” 녹림도, 그중에서도 풍산채 소속 산적들이 기겁하면서 바닥을 구른 왕급간에게 달려갔다. “또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다음은 이보다 더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요광의 투구 안에서 서슬 어린 안광이 뿜어졌다. 꿀꺽! 무심코 그 눈빛과 마주친 이들은 압도당해 고개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했다. “……” 요광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빽빽하게 늘어난 철의 기둥 탓에 햇볕도 잘 내리쬐지 않았다. 지상에선 잔존한 병력이 귀주군과 맞서 싸우는 모양인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듬성듬성 났다. 화첨창을 지면에 꽂고 길이를 늘려 위로 올라가 볼까 싶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보아하니 위로 올라가면 작동하는 기관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칫 잘못해서 연쇄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면 곤란하고, 충격으로 암반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혼자만 살아남는 것이라면 전혀 개의치 않았겠지만, 아쉽게도 이천의 수하들을 살려야만 했다. “의견을 내라, 천기성.” 요광의 목소리에서 은은한 노기가 묻어났다. 천기성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답을 내지 못하면 죽는다.’ 기관에 대해서 몰라도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것도 틀려선 아니 된다. 천기성은 급히 머리를 쥐어짜 내고, 의견을 통합해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이, 이 정도 규모라면 자재 또한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입니다. 운반하기 위한 통로와 출입구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천기성의 의견을 수렴한 요광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천여 명을 충분히 수용할 크기의 대공동이었다. 암벽이 이어진 천장은 철의 기둥으로 가려져 있다. 미세한 공간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고, 충격의 진동이 아직도 남아 있어 흙더미가 보슬보슬 내렸다. 그 외에도 천기성이 말한 대로 통로 역시 존재했다. 대리석이 깔려 있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척 봐도 인위적인 굴을 몇 군데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대군이 한꺼번에 이동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중상자, 사망자를 제외하고 인원수를 보고해라.” “천오백 명입니다.” 최초에 지반이 붕괴되면서 사망자 및 부상자가 속출했다. 또한 위로 올라가려다가 죽은 자도 있었다. “안쪽에서부터 미세하게 바람이 불어옵니다!” 땅굴을 정찰하고 온 칠성사병이 보고했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보고가 올라왔다. 바람이 들어온다는 건, 통로가 그리 길지 않으며 전부 출입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뜻한다. “본 회의 분타처럼 기밀을 위지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함정을 목표로 만들었다면 단발성이니 당연히 땅굴을 깊게 팔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위에서부터 적과 아군의 싸움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아하니, 그리 깊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천기성이 연달아 의견을 모아 보고했다. “좋다. 그러면 정찰을 보내 반 각정도 확인한 다음, 출발한다.” 이 앞에 뭐가 도사릴지 모르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도 없었다. 지상의 암천군이 전멸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합류해야 했다. 정밀한 검토나 정찰은 불가능했다. 같은 이유로 출구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한곳만 탐사할 수는 없었다. 칠성사병 중 발이 빠르거나 눈썰미가 좋은 이들이 뽑혀서 땅굴 안쪽을 훑어봤다. 요광도 그사이 땅굴 하나를 맡아 확인해 보았다. 화첨창의 길이를 늘려 끝에 닿게 하는 방법이었는데, 애석하게도 땅굴이 구불거려 도중에 막혔다. 길이는 늘릴 수 있으나, 눈이 달려 앞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거나 하는 재주는 없었다. 화첨창을 회수하자마자 별문제 없다는 보고를 전해 들었다. “외공을 수련한 자, 몸놀림이 날렵한 자, 독공에 내성 있는 자를 각자 앞세워 전진하도록 한다.” 땅굴의 숫자는 이십여 개에 이르렀다. 칠십오 명씩 나눠서 땅굴을 이용하기로 했다. 한 번에 두세 사람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넓이에, 길이도 상당하니 무리는 없어 보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도 즉석으로 횃불을 만들어서 시야를 밝혔다. 정찰도 별문제 없었으니, 함정은 무너진 지반과 미로처럼 얽힌 통로라 생각했다. 하지만 발을 내디디고 반 각 정도 시간이 지날 무렵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철컥. 푸쉬이이이이. “독이다!” “크악!” 최초의 시작은 독이었다. 통로의 벽면에 그어진 금 사이에서 독연이 뿜어져 나와 땅굴을 메웠다. 단연 두세 사람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공간에 껴 있던 암천군은 그대로 독연에 노출됐다. 뒤로 피하려고 해도 꼬리처럼 이어진 동료들 탓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독무(毒霧)만이 아니었다. 지옥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찰칵찰칵! 기계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원형으로 뚫린 땅굴의 벽면에 자그마한 구멍 수백 개가 나타났다. 퓨슈슈슛! “하, 함정…… 크아아악!” 수백 개의 구멍에서 날아온 건 날 선 비수를 비롯한 암기였다. 좁은 통로에서 쇠붙이가 날아오는 건 공포 그 이상이었다. 통로 내부는 금세 비명으로 가득 찼다. ‘당했다.’ 요광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절대방어의 흑철갑주 덕에 요광은 별문제 없었다. 암기는 튕겨 나가고, 독은 침입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요광이 후위와 거리를 두고 홀로 앞장선 덕분에 함정을 미리 발동시켜 막아내 피해를 줄였다. 그러나 멀쩡한 곳은 요광이 있는 땅굴뿐, 그 외에는 상황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내 몸! 내 몸이!” “으아악! 뜨거워!” 기관 장치는 가지각색이었다. 어떠한 원리로 움직이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일정 이상의 체중이 가해지면 발동하거나, 혹은 무언가를 건드리면 발동하는 등 여러 가지였다. 독연이나 암기는 기본이요, 불이 뿜어져 나와 화염지옥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뒤에서부터 함정이 발동되는 경우도 있어서 도망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 도대체 이걸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제갈승계!’ 제갈승계의 넉 자가 요광 및 천기성 머리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천재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고수들조차 어찌할 줄 모르는 기관의 설계는 악몽이었다. 일부러 함정에 걸려들기 위해 땅굴의 앞부분에만 기관 장치가 발동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정찰을 사용할 경우도 계산해서 몇십 명 이상이 들어와야 발동하도록 장치까지 해 뒀다. 요광은 창으로 벽면을 긁어 기관장치를 부수려다가 멈칫했다. ‘괜히 이상한 걸 건드릴 수가 있다.’ 마음 같아선 전부 부수며 가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봐 왔던 것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무섭구나, 제갈승계.’ 괴물은 주서천만이 아니었다. 병법에서 말하길,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고라 하였다. 그 말이 맞지 않은가. 기관의 설계자, 제갈승계는 다른 곳에서 손도 대지 않고 무공을 섣불리 쓰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함정인 걸 알고도 갈 수밖에 없다.’ 뒤는 막혔다. 옆길도 없다. 무언가를 부수면서 가기에는 위험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천기성 무리도 치를 떨었다. 오늘 몸소 느꼈지만, 기관지술의 위력은 대단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된 기술이 된 건 기관이 대단히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산학(算學)에 능통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 토목이나 야장술 등 각종 기술이 들어간다. 규모 자체가 크고 통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보니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삼안신투나 흉마, 혹은 왕이나 황제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도록 특수한 경우에만 동원되는 기술이었다. 무림에서 배척받는 거야 당연하다. 딱히 이렇다 할 재료 없이 기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기문진법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몸놀림이 잽싸고 힘이 센 무림인을 잡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 노력과 시간, 돈으로 고수를 배출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미친놈이 따로 없도다.’ 지상. 삼천오백 중 반 이상을 잃은 암천군은 순식간에 천으로 줄어들었다. 너무 앞에 있거나, 혹은 뒤에 있는 이들은 운 좋게 휘말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나 안심하기도 잠시, 그런 그들을 막아선 건 주변을 포위한 귀주군이었다. “제, 제기랄……” “물러나!” 암천군의 지휘관이 요광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요광 정도의 능력을 갖춘 자는 없었다. 최고 고수가 자리를 비우자 사기가 곧장 떨어졌다. “이때다!” 고훈이 들뜬 목소리로 손을 올렸다. “금의검문!” “발(發)!” 파앙! 암천군의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림자였다. 그들의 눈동자 너머에 수백에 화살이 비쳤다. 퓨뷰뷰뷰븃! “으아악!” “크윽!” 곳곳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고수들이야 쳐내거나 막았지만, 하수는 그러지 못했다. 눈먼 화살에 맞아 괴로워하기도 했다. 무림인 간의 싸움이 아닌 국가 간의 전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금의검문이라며!” “검문인 주제에 화살을 쏘다니!” 암천군이 화살을 보고 욕을 내질렀다. “검문이라고 검만 쓰라는 법이 있느냐?” 고훈이 이의채처럼 뻔뻔한 상인의 모습을 보였다. 과거, 칠검전쟁 때도 제갈승계가 만들어 낸 다발화전이라는 병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금의검문이다. 이제 와서 체면을 중시하니 뭐니 할 필요는 없었다. 다발화전을 관군의 병기부가 가져가 버려서 더 이상 무림에선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조명이 측면으로 도주하려던 녹림도를 베었다. “굳이 무리해서 힘쓸 건 없다!” 맹초혁의 검이 칠성사병의 심장을 꿰뚫었다. “정파는 견고한 방어벽을 만들어, 사파의 방패가 되어라!” “사파는 교대로 정파를 지켜 가면서 도망치려는 암천군을 함정으로 유도하거나, 격파해라!” 정사의 호흡이 하나가 됐다. * * * 지하, 호지관. “끄아아아아아.” 몇 번째의 비명인지도 모른다. 이젠 너무 익숙해 어디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스물에 이르는 땅굴은 지옥의 통로가 된 지 오래였다. 푸쉬이이. 또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독연이 나왔다. 휘리릭! 요광은 화첨창을 풍차처럼 돌려 독연을 반대편으로 쏘아 냈다. 통로의 끝 쪽에서 바람이 불어 왔지만, 산들바람 정도의 수준인지라 저항감이 대단하진 않았다. 사방에서 불이 뿜어져 화염지옥이 될 때도 있었으나, 이 역시 창을 풍차처럼 돌려 내보낼 수 있었다. 흑철갑주를 착용해 불길 속에서도 멀쩡했다. 내부에서 온도가 오르긴 했지만 버틸 만한 정도였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따라오는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광에게 선택되어 살 수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저승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가까워진다! 이제 곧 출입구다!” 요광이 외쳤다. 땅굴은 하나로 연결돼서 그런지, 옆의 땅굴까지도 그의 목소리가 닿았다. 온갖 함정에 진저리가 난 암천군이었으나, 이제 곧 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