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40)
가면 호북이 나오고, 서북으로 향하면 하남이 나온다. 다행히도 하남에는 소림사, 호북에는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위치해 있으니 안전상으론 걱정 없었다. “오천의 병력은 넷으로 나눌 겁니다. 약 이천이 본부에서 시간을 벌 예정이고, 그사이 삼천이 천씩 셋으로 나누어 퇴각합니다.” “퇴각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요?” “그렇습니다. 또한, 적의 추적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대군은 강력하나 이동에 제한이 생긴다. 단순히 진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그 탓에 무림맹은 퇴각에 있어 유리한 편이었다. “퇴각에 성공한다면 그 뒤는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터무니없이 어렵다는 거요. 저 대군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오는구려.” 우백이 골치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겁낼 것 없소!” 팽군평이 언제나처럼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정파 무림의 중심, 무림맹 본부인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소. 전면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퇴각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오.” “에휴! 낙관적이라 좋겠구먼!” 황견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놈이?” 팽군평의 이마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나무아미타불 팽 장로님이 하신 말씀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나, 그렇다고 시작부터 우려하는 것도 괜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외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혜노가 중재에 나섰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해요. 본부에는 무림맹주님과 권동제께서 계시니, 수적으로 차이가 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경인사태가 혜노의 중재를 도우며 찬성했다. 중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무림맹은 수적으로 열세이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정파 무림이야 본래 숫자가 적은 편인지라 다수에 포위당하는 건 익숙한 일이기도 하지만, 본부인만큼 고수나 정예 등이 여럿이라 쉽게 겁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본부에는 상천육좌 중 태극검과 권동제가 있다. 사기가 높아질지언정,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무림맹엔 기문진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합비의 본부는 오래된 만큼 요새나 다름없다. 오래된 세월 동안 정사대전 등 여러 전쟁을 겪었으나 본부가 함락된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의 경험이 축적된 만큼 여러 방어 설비도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기문진 또한 존재한다. “자고로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자만도 금물입니다.” 제갈상의 말이 상층부에 새겨졌다. “암천회주의 무위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적 없으나, 듣자 하니 그 천마를 무력으로 굴복시킨 괴물이란 걸 참고하셔야 합니다. 검신께서도 몇 차례나 경고한 부분이니 부디 명심해 주십시오.” 꿀꺽. 누군가가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으레 강호의 과장된 소문이라 생각했겠지만, 검신이 말한 것이니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최초에 천마조차 암천회의 주인이 아닌 간부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다가 경악했다. 세상에, 상천을 수하로 두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나 사실이라는 것에 입을 쩍 벌렸다. “암천회주가 등장할 경우, 막으실 분은 맹주님과 권동제 어르신뿐입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두 분께선 나서지 마시고 상황을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세세한 건 장로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러면, 무사히 퇴각을 성공시킨 뒤 뵙겠습니다.” 탕! 탕! 탕! 무림맹 경비대는 각 방향의 대문을 걸어 잠궜다. 그 앞으론 장애물을 배치해 방어를 준비했다. “군사께서 명령한 대로 기문진의 준비도 끝났소.” 황견이 보고했다.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이후의 퇴각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차 퇴각은 삼천 명. 그 책임자는 황견이 맡았다. 개방도답게 발이 빠르며, 또한 정보 단체의 일원답게 주변 환경이나 길에 대해 밝으니 당연했다. 또한 사리분별 또한 확실하고, 머리 회전도 빠르니 딱 알맞은 역할이었다. 퇴각 전까지 무림맹의 기문진이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도왔고, 이젠 떠날 때가 됐다. “적들이 다가왔으니 슬슬 죽림(竹林)의 통로로 한시라도 빨리 퇴각하시길 바랍니다.” “알겠소.” 퇴각 경로는 전 무림맹주, 남궁위무의 은신처였던 장소였다. 기문진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적의 추적을 따돌릴 수도 있고, 무림맹 상층부에게만 공개된 통로가 있으니 퇴각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제갈상은 등을 돌려, 정면을 봤다. 무림맹의 고수 무리가 군사의 명을 기다렸다. “사전에 말씀드렸듯이, 본부의 문이 부서지고 적군이 들어온 순간에 맞춰 팔진도(八陣圖)를 발동시킬 것입니다.” ‘팔진도!’ 제갈세가의 조상이자 과거 촉한의 승상이자 전략가였던 제갈량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기문진법이다. 사실, 기문진이 아닌 진법(陣法)이었으나 후대에 걸쳐 기문진법으로 연구 및 개량됐다. 또한 이 팔진도는 위력만큼 난해하여 천금이 들어가기에 무림에서도 두 장소밖에 없었다. 첫째는 창안지인 제갈세가요, 둘째가 바로 이곳 정파 무림의 중심지, 합비의 무림맹 본부였다. “여덟 개의 문이 부서지면서 적들이 들어온 순간, 그들은 다른 장소에 무작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되돌아가려 해도 문의 위치가 지속적으로 바뀌는 탓에 헤매게 되겠죠.” 무림맹 본부의 문은 정문을 포함해 여덟 개다. 최초 건축 설계 자체가 팔진도를 염려하고 만들었다. 그만큼 팔진도의 위력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난해하기로 유명한 만큼 팔진도의 위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진법가는 제갈세가에서도 극소수였다. 그중 한 사람이 천군사, 제갈상이었다. 괜히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군사직에 오르고 어릴 적부터 천재로 추앙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사이 최대한 적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소.” 운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콰앙! 말이 끝나자마자 팔문(八門)이 크게 흔들렸다. “들어옵니다!” 경비 무사가 외치며 경고했다. 이천에 이르는 무사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콰지직! “부서진다!” 콰앙! 여덟 개의 문이 거의 동시에 부서졌다. 나무와 철 조각이 비산하며 흑의 무복 차림을 한 칠성사병이 함성을 내지르면서 진입했다. “와아아아아!” 그야말로, 개미 떼와 같았다. 부서진 문은 사람을 꾸역꾸역 토해 냈다. “담을 넘어라!” 담 위로도 칠성사병 무리가 올라왔다. “크아아악!” 하나 벽을 타고 위로 올라온 순간, 그들은 아래에서 솟구친 창날에 의해 몸이 꿰뚫렸다. “기, 기관?” “기관이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문을 통해서만 들어올 리 없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책도 해 두었다. 바로 기관 장치였다. ‘다시 재정비해 둔 것이 참으로 다행이구나.’ 정파 무림의 중심지인 만큼, 본부에는 여러 보안 장치가 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야 사장된 기술이긴 했으나, 예전에는 주류는 아니어도 종종 사용되기는 했다. 삼백 년 전의 도둑, 삼안신투도 사용하지 않았던가. 다만 외면된 이후로 정비도 되지 않고, 쓸 일도 별로 없어서 녹슬다시피 내버려 둔 상태였다. ‘전에 승계가 무림맹에 왔을 때 봐주지 않았더라면, 쓰지 못했을 거야. 고맙다, 승계야.’ 고장 난 것이나 부품 몇 가지를 교체하는 수준으로 이렇게 재사용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시 전문 기술자가 설치한 만큼 수준이 높아, 제갈승계가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사용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으으!” “쿨럭!” 담장 위에 무게가 실리면서 반응하는 건 창살만이 아니었다. 극독을 발라 둔 암기 세례가 쏘아지거나, 혹은 독연이 위로 뿜어져 적의 침입을 차단했다. 사실상 성벽만 세워지지 않았지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아, 아니 왜 여기로 나와?” “넌 옆 백인대장 아니냐?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팔문의 상황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남문을 넘어왔는데 나타난 곳은 북서문이었다. 심지어 고정된 게 아니라, 한 사람마다 들어오는 곳은 같아도 도착한 장소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개개인의 당황은 물론이요, 첩첩산중으로 진형이나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되면서 개판이나 다름없었다. 짧게는 몇 주일, 길게는 몇 년 동안 손발을 맞춰 온 동료가 바뀌었으니 그 혼란은 더했다. “이때다! 쳐라!” 선봉인 팽군평을 시작으로 공격이 시작됐다. “아아악!” “커헉!” 암천군이 혼란에 잠긴 사이, 팔문각 장소에 분산되어 배치된 고수들이 무공을 선보였다. 정파의 정예들답게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수는 적어도 고수는 많은 정파 특징답게, 개개인의 무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또한 명문 정파답게 합격진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건(乾), 유지. 태(兒)와 손(異)을 변경. 리(離)와 진(震) 교차…… 생문(生門) 북북서(北北西)로 이동 후 사문(死門)과 변경.” 제갈상은 중앙에 서서 명령을 내렸다. 눈동자는 상하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장의 위치를 확인. 멈추는 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입은 무어라 중얼거리지만 읽을 수 없었다. 총지휘가 아닌, 팔진도의 조율을 하고 있었다. 팔진도는 발동한다고 끝이 아니다. 팔문의 지속적인 위치 변경을 위해 진법을 구성하는 사물을 장기 말처럼 움직여야 했다. 제갈상은 손에 쥔 접은 부채로 군사와 몇몇 무사만 알아보는 자세를 취했는데, 그게 신호가 됐다. 팔문 근방에 자리 잡은 군사진이 그것을 보면 무사들에게 전달했고, 사물을 움직여 위치를 변경했다. ‘대단하도다!’ ‘이리 완벽하게 팔진도를 운용할 줄이야!’ 팔진도를 운용하려면 기밀 유지를 위해 제갈세가 출신이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현재의 군사진은 대부분 제갈세가의 방계 출신이었고, 팔진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확인하여 반응하는 속도는 물론이고, 무사들의 움직임까지 계산해 지령을 내리고 있다.’ ‘팔진도를 이렇게 완벽하게 운용했던 이가 몇이나 있었단 말인가?’ ‘그야말로 지룡, 아니 천군사로다!’ 정파인치곤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녔으며 또한 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는다. 다음을 위해 잘못은 쉽게 인정하고 반성하며, 그 순간에도 어떻게 해야할지 전략을 짜낸다. 정보의 통제를 비롯해 사교력을 자랑해 정치에도 일가견 있으며 행정업무의 처리도 무시무시하다. 무공도 지략가치곤 상당하며, 또한 두려움이 없으며 그렇다고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인품이야 두말할 것 없고 술과 여자도 멀리하는 편이었다. 더더욱 무서운 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는 것과 현재도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장기이며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기문진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팔진도인가……!” 장로진 역시 경천동지할 위력에 경악했다. ‘그야말로 심상구현이 아닌가!’ 운광이 속으로 놀라며 목소리를 삼켰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심상구현은 사람의 의지를 무공이란 형태를 빌려서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발현하는 효력을 지녔다. 팔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형태가 무공이 아닌 학문이나, 극의를 넘어서 물리 법칙을 무시해 신비의 힘을 펼쳤다. 제갈량, 아니 제갈세가의 심상구현. 팔진도, 공간(空間). 그야말로 기문진법의 결집체이자 극의였다. “아니, 이런 걸 숨겨 두었으면 굳이 퇴각할 필요도 없지 않았나!” 팽군평이 신난 목소리로 도를 휘둘렀다. 무림맹 장로답게 천하백대고수의 실력을 선보였다. 통나무처럼 굵직굵직한 팔에 힘을 주면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랐고, 괴력을 뽐냈다. 우직하고 호쾌한 성격에 걸맞게 적이 도를 막아내도 멈추지 않고 병장기를 밀어내며 살을 베었다. “팽가야, 그 다혈질적인 성격 좀 자제해라!” 황견이 팽군평이 자만을 보이자 경고했다. “적들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으랴? 수적인 차이가 이리 나는데도 우세하다니!” 팽군평이 ‘으하하’ 하고 웃었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하다.’ ‘암천회라고 해서 긴장했더니, 아무것도 아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