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342)
것이다. 그 외에는 이 주변을 탐색 중이리라. 만이나 되는 무식한 숫자를 습격에만 사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답답함에 무심코 중얼거렸을 때였다. 누군가가 그의 옆을 지나갔다. “본대를 물려 추격대를 쫓아라.” 제갈상의 눈이 커졌다. 옆을 지나친 건 어딘가 모르게 키가 큰 느낌이 드는 소년이었다. 굳이 따지면 청년이 되기 직전이다. “……?” 태극검의 너머, 암천회주도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 꼴은 무엇이냐, 권동제.” 시간이 거꾸로 간 절대고수 권동제, 정백이었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니만, 정말이었던 모양이구나. 아니면 그 잘난 고집이 꺾인 게냐?” “암천회주는 노부가 맡겠다.” “조금만 크면 권동제라 부를 수도 없을 모습이로다.” 암천회주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썅!” 황견은 얼굴을 와락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오랜만이오, 황 장로.” 당명인이 차가운 눈동자로 황견과 마주 봤다. “오랜만이오? 이놈이 배신하더니만 강호의 선후배 간의 예절을 밥 말아먹고 온 모양이구나!” 황견이 욕설을 내뱉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측 수가 읽혔다.’ 무림맹 퇴각대 삼천은 본부의 뒷문인 죽림을 통해 합비를 유유히 빠져나가려 했다. 대나무 숲이 생각보다 광활하고, 기문진이 복잡해 길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으나 문제는 없었다. 중간 지점에 도착해 추격을 혼선시키기 위해, 천씩 셋으로 갈라질 때만 해도 순탄한 퇴각이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퇴각 도중, 묘한 기척이 느껴지더니만 일련의 무리가 가로막았다. 바로 전 흑영부이자 독룡, 당명인과 암천회였다. “무림 정파의 인간들이란 예부터 무언가를 숨기는 걸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소.” 당명인은 기분 나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를 잘도 찾아냈군.” 황견이 코웃음 치며 허세를 부렸다. ‘몇 명이나 있지? 얼마에게 포위된 거냐?’ 그러나 속으론 바싹바싹 말라 가는 중이었다. “무림맹 지하 뇌옥에 연결된 흑영부 또한 만약을 위해 외부에 통로를 따로 마련해 두었는데, 본부의 탈출구라고 따로 없겠소?” 제갈상이 걱정한 대로였다. 퇴각대는 함정에 걸려들었다. 천기는 천군사, 제갈상을 경계했다. 제갈상은 여타 정파인과는 다르다. ‘그대처럼 옛적에 흑영부에 대한 것을 알고, 묵인하고 지략에 사용했다는 걸 명심해라. 사고가 굳기는커녕 간악하니, 승산이 없다면 자존심이고 정정당당이고 뭐고 간에 필히 퇴각하려 할 것이다. 팔문은 회주께서 맡으실 예정이니 퇴각대는 우리가 맡는다.’ 본대와 분대가 편성됐다. 천기와 천추가 지휘하는 분대의 경우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이 주변 일대를 탐색해 퇴각대를 찾았다. 무림맹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인건, 퇴로를 정확히 모르니 최대한 넓게 퍼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기척만으론 일단 사백에서 오백 정도인가?’ 퍼엉! 황견의 얼굴에 암운이 끼었다. 당명인의 손에는 붉은 빛깔의 연기를 토해 낸 죽통이 쥐어져 있었다. “빠져나갈 생각을 한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파삭! 손에 힘을 주자 죽통이 부서졌다. 아니, 바스라졌다는 표현이 알맞았다. 독기에 잡아 삼켜져 불에 탄 재처럼 흩날렸다. * * * “뭐하고 있느냐.” 정백의 목소리가 제갈상의 상념을 깨웠다. “얼른.” 뒷말은 필요 없었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천육좌라 해도 암천회주와 그 뒤의 대군을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하다. 즉, 여기에서 권동제를 남겨 두고 퇴각한다는 것은 곧 그의 목숨을 대가로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제갈상은 오천의 병력과 권동제를 저울질했다. 단연 기울여진 것은 오천의 병력이었다. 단순한 오천도 아니고 정파 중심의 주요 병력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흘러갔다. 퇴각한 삼천이 포위당했을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만약 그 삼천이 허무하게 당한다면 본대 이천이 남아서 막아선 건 무의미한 일이 된다. ‘게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팔진도를 확인한다. ‘권동제께서 암천회주를 맡는다 할지라도, 대군이 넘어오질 못하도록 팔진도를 유지해야 한다.’ 팔진도의 운영은 군사 여덟, 이류무사 쉰여섯 명까지 합해 육십사 명이다. 퇴각이 정해지면 이들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순간에 불과한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상념이 서로 부딪치고, 얽혔다가 사라져 간다. 책임, 의무, 양심.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면서 끝내 답을 내놓았다. “알겠습니다. 절 포함해 팔진도에 속한 군사진과 권동제 어르신을 제외하고 본대를 물리겠……” “현 군사를 제외하고 팔진도만 잔류한다. 그 외는 한시라도 빨리 물러나 퇴각대와 합류해라.” 제갈상이 말하던 도중이었다. 늙고 쇠한 목소리가 대신 끼어들었다. “구, 군사님?” 경인사태가 당혹스러워하며 무심코 불렀다. 현 군사가 아니라, 전 군사인 제갈중호였다. “할아버님?” 제갈상 역시 당황했는지 평소와는 다른 호칭이 튀어나왔다. “아니, 진작 물러나셨을 양반이 여기에 왜……” 팽군평이 의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가하게 수다나 떨러 온 것이 아니니, 비켜라.” 제갈중호는 팔진도의 중궁, 제갈상이 앉아 있던 자리에 대신 앉곤 품안에서 부채를 꺼냈다. 전 군사의 몸처럼 군데군데 해지고 낡은 물건이었다. “할아버……” 손주의 목소리는 조부에게 닿지 못했다. 콰앙! 검과 권이 부딪쳤으나, 터져 나온 굉음은 화약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 같았다. 요동치는 건 소리만이 아니었다. 팔로 얼굴을 가려야 할 정도로 사나운 바람이 전장을 뒤덮었다. 힘겹게 눈을 떠 보니 암천회주와 대치 중인 권동제가 보였다. “뭘하고 있느냐!” 제갈중호의 호통이 고막을 때렸다. “군사가 된 자가 주저한 순간,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 제갈상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제갈상!” “퇴각한다!” 제갈상은 이름이 불리자마자 명령을 내렸다. “퇴각! 퇴각!” 약 이천에 이르는 무사들이 등을 돌렸다. ‘할아버님……’ 제갈상이 고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핏줄기가 턱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전속 전진, 퇴각대와 합류하십시오!” 결정을 내렸다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뒤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설명 역시 불필요했다. 조부에게 안녕을 고하는 순간조차 없었다. “제기랄!” 팽군평이 제갈상을 옆구리에 끼곤 분한 표정을 지었다. 입에선 욕설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인사 정도는……!” 그 몸 역시 등을 돌리고 있었다. “팽 장로님!” “제기랄!” 팽군평는 머리가 나쁜 편이지만, 그래도 머저리는 아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란 걸 알았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욕설을 내뱉으며, 제갈중호를 뒤로한 채 전속력으로 물러났다. “천군사!” 암천회주가 움직였다. 잔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공간과 공간 사이를 접은 것처럼 위치가 변경됐다. 정말로 사라졌다가 나타난 건 아니다. 사람, 아니 무인조차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쐐애애액! 겹겹이 쌓인 공기의 층에 구멍이 난다. 검극이 지나가자 대기가 둘로 갈리며 길을 열었다. 검극이 향한 곳은 팽군평의 옆구리, 제갈상이 있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신속(神速).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림없다!” 슈우욱! 하나 그 검극은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 측면에서부터 운광이 팔을 쭉 뻗어 검을 내질렀다. 부웅. ‘호오.’ 암천회주의 시커먼 눈동자가 감탄으로 빛났다. 검이 닿기도 전, 이상 현상이 벌어졌다. ‘검, 아니…… 기를 포함한 공간이 휘어져 돌아온 것인가?’ 검신엔 무형의 강기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압축하고 단단하게 굳힌 기는 엿가락처럼 구부려졌다. 힘의 방향이 꺾인다. 내지른 힘이 거꾸로 돌아왔다. 공력이 아니라 공간이 구부려졌다. 인간의 의지로 자연의 법칙을 바꿀수 있는 능력은 하나밖에 없다. ‘심상구현인가?’ 암천회주가 예상한 대로였다. 태극검의 심상구현, 이화접목(移花接木). 이화접목이란 본래 상대방의 초식을 흘린 뒤, 그 힘을 고스란히 이용해 적을 치는 초식이다. 하나 태극검의 손에서 펼쳐진 이화접목은 수준을 달리했다. 암천회주는 속으로 짐짓 감탄하며 퇴보를 밟았다. 그저 물러난 것만이 아니다. 손목을 꺾듯 튕겨 검을 반회전시킨 뒤, 재빠르게 회수한 다음 곧장 검을 번개같이 출수했다. 파앗! 검신이 시커멓게 번쩍였다. 째앵! 불꽃이 튀었다가, 콰아앙! 이윽고 폭발했다. 측정할 수 없는 양의 공력이었다. 어찌나 큰지 주변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렸다. “무슨!” 운광의 입에서 경악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당파의 신검, 태극혜검인가. 과연 유의 묘리의 극성을 이룬 검이로다.” 암천회주가 차갑게 웃었다. 무당파에는 삼대신공이라 불리는 신공절학이 있다. 그중 장문인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태극신공(太極神功)과 짝이 되는 것이 바로 태극혜검이다. “어떻게……” 운광이 놀란 건 암천회주가 태극혜검을 알아봐서가 아니었다. 방금 전의 공수 탓이었다. ‘놈이 펼친 극쾌(極快)의 검을 공간 채로 되돌려 보냈거늘, 피하지 않고 쳐냈다고?’ 암천회주의 무공이 어떤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무시무시한 쾌검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 쾌검의 묘리를 흘린 다음에 이화접목으로 되돌려 줬다. 즉, 속력도 그대로였다는 뜻이 된다. 원래라면 피하거나 검을 세워서 막아 내야 한다. 받아치는 건 불가능하다. 뒤늦게 낸 초식이 극쾌의 검, 그것도 먼저 출수한 공격을 막아 낼 리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무인이란 스스로를 단련하여 약함을 뛰어넘는 이가 아니던가. 자기 자신을 넘지 못해서야 쓰나.” 순간, 암천회주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안 그런가, 태극검.” 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가 수평을 긋는다. 겉보기엔 그저 휘두르기에 불과했으나, 위력은 평범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아! 그야말로 대자연이자 하늘이었다. 몸을 덮쳐 오는 공력은 사람의 수준이 아니었다. 지면에 닿은 발은 발목까지 깊게 파이고, 바위가 잘게 부서지더니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운광은 숨을 멈추며 심상구현을 발현했다. 극에 이른 이화접목의 묘리가 공간을 굽어 공격을 흘렸다. 쾅! 콰앙! 전방에서부터 날아온 검격의 파도와 되돌아가는 검격이 서로 부딪치면서 천둥소리를 냈다. 사나운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치면서 수염과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후우!” 공수를 교환하던 중이었다. 기합과 더불어 주먹이 측면에서부터 파고 들었다. “흐음!” 암천회주가 한 걸음 물러나며 턱을 뒤로 젖혔다. 정백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파바밧!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대쪽 주먹이 정권을 질렀다. 암천회주는 피하지 않고 검을 곧게 세워 막았다. 채애애앵! 쿠웅! 금속음과 굉음이 동시에 터졌다. 사납게 폭풍우 치던 기의 소용돌이가 충격파에 쓸려 나갔다. “하하하하!” 암천회주가 불현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권동제, 아니 정백이여! 대체 뭔꼴인가!” “……!” 운광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님……?” 그곳에 더 이상 소년은 없었다. 몇십 년 전, 함께 강호를 유람하던 청년이 있었다. “광 형, 이제 됐소.” 정백 대신 제갈중호가 답했다. 그리운 호칭이었다. “중호, 자네……!” 제갈중호의 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입에서부터 피가 흘러나와 흉부를 벌겋게 적시고 있었다. “전임을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임 맹주를 잃을 수는 없소.